1부 5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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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소장은 엉겁결에 운동화를 벗어주었고 승주는 자기 구두가 담긴 비닐봉지에 운동화를 집어넣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빨리 둘러보자고요. 집주인 오기 전에.”

“뭐?”
 

독 소장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불안함과 불쾌감이 쭈뼛 일떠섰다.

 

“이거 무단침입이잖아. 미쳤어?”

 

승주 표정도 불안해 보였다. 안면 근육이 오그라들 것처럼 경련을 일으켰다.

 

“이미 들어왔잖아요. 지금 논쟁할 시간 없어요. 일단 잽싸게 둘러보자고요.”

 

“아니, 이게 무슨.”

 

“저는 2층 보고 올게요. 소장님은 1층 훑어보세요.”

 

“뭘 훑어봐?”

 

승주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2층 계단을 따라 사라졌다. 독 소장은 둔기에 얻어맞은 듯 어리뻥뻥했지만 심장이 요동치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저절로 떨리는 사지를 다잡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체 뭘 보라는 거야. 어휴.”

 

바른 생활 사나이로만 살아온 오랜 습성이 심장 박동을 통해 계속 경고음을 울려댔다. 이러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드보일드 탐정 노릇은 한참 나중으로 미뤘건만, 어쩌다 이리 예기치 못하게. 더구나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니. 이건 아니잖아. 자책감마저 합세하자 심장은 더 발광을 부렸다.

 

이성 나부랭이는 대체 어디 간 건가. 좀 진정시켜 보란 말이다. 독 소장은 눈을 감고는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깨 너머로 배운 명상호흡을 실행해 보았다. 하나둘 셋 넷, 숨 쉬고 내 쉬고, 천천히, 그렇지, 괜찮아, 괜찮아. 다소 진정이 되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얼간이처럼 찌그러지지 말자고 이성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독 소장은 일부러 눈을 부릅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뭘 찾아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지만 그저 둘러보기만이라도 하자며 이를 앙다물었다.

 

1층은 거실과 부엌만 있어 단출했다. 겉으로는 별것 없었다. 그저 집주인이 살림에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평범한 가정집 풍경이었다. 지저분한 모양새를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물건을 훔쳐가지 않는 한, 침입자가 왔다간다고 해도 티도 안 날 것 같았다.

 

조그만 거실에는 먹다 남은 술병과 물 때 묻은 컵 하나, 바닥에는 온풍기가 있고, 소파 앞 탁자 위에는 통닭 찌꺼기가 담긴 전기냄비가 놓여 있었다. 서랍장 안에도 흔해빠진 잡동사니뿐이었다. 부엌도 별 볼 일 없었다. 설거지 거리가 쌓인 거 말고는 인덕션과 핫플레이트, 전기오븐, 전자레인지뿐, 전기제품이 유독 많구나 하는 정도였다.

 

돌아서려는데 시선을 끄는 게 보였다. 주방 싱크대 한쪽이 휘장으로 덮여져 있었다. 천막을 들춰보니 가스레인지가 달린 오븐이었다. 가스레인지의 화구도 막아놓은 상태였다. 붙박이형 빌트인 제품이라 빼내지는 못하고 휘장으로 흉물스레 가려놓기만 했다. 사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였다.

 

‘이걸 왜 막아놨지?’

 

독 소장은 1층을 다시 훑어보았다. 부엌이고 거실이고 가스를 사용하는 제품은 없었다. 인덕션, 핫플레이트 같은 물건은 전기로 음식을 조리하는 제품이다. 하지만 보일러 박스를 열어보니 가스 회사 마크가 분명했다. 가스보일러를 쓰고 있는 걸로 봐서는 가스 자체에 반감이 있는 건 아닐 테고. 그럼 가스레인지 회사와 원수지간? 당장은 이유를 모르겠지만 미심쩍은 것만은 분명했다.

 

호기심에 잠긴 독 소장 뒤로 승주가 살며시 다가섰다.

 

“뭐 좀 발견하셨어요?”

 

“아유, 깜짝이야.”

 

승주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창백했지만 희열이 아른거렸다. 떨고 있는 스웨이드 손으로 독 소장의 양가죽 손을 맞잡았다.

 

“소장님, 그만 나가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승주는 현관문으로 나가려는 독 소장을 잡아채 창문으로 이끌었다. 현관문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잠긴 상태로 둬야 했다. 불법의 현장에서 떠난다는 사실에 두 사람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으려는 순간, 자동차가 달려와 멈춰 서는 소리가 들이닥쳤다. 두 침입자의 시선이 현관문으로 꽂혔다. 현관창 너머로 자동차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차문을 열고 나온 누군가가 차 안에 있는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심장은 더 맹렬하게 우왕좌왕 호들갑을 떨어댔다. 두 사람은 저절로 말문이 막혀버렸지만 빨리빨리! 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우르릉 쾅쾅 울려 퍼지는 것 같은 환청을 느꼈다. 마미 밀즈(Mommy Meals) 비닐봉지도 부스럭부스럭 외쳐대고 철 지난 잡지책도 갈기갈기 짖어댔다. 빨리 도망쳐, 이 얼간이들아, 빨리!

 

독 소장이 먼저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두툼한 점퍼 자락이 겹쳐 밀리면서 엉덩이가 창문 틈에 끼었다. 다급해진 승주가 독 소장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독 소장 몸이 빠져나가자 승주는 신발 봉지를 창문 밖으로 던지고는 자기 몸을 들이밀었다. 미끈한 반코트 역시 끼고 말았다. 코트 잘못이 아니라 코트 주인이 겁먹은 탓이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독 소장이 승주의 머리채를 잡아당기자 반코트가 뿌지직 빠져나왔다. 승주는 비명을 참아내면서도 유종의 미를 잊지 않았다. 창문을 사뿐히 닫아주고 나서야 담쟁이 벽에 널브러져 한숨을 토했다.

 

창문 너머로 집주인을 확인해 볼 여유는 없었다. 그저 깡충 걸음으로 엉금썰썰 기어 나왔다. 탁 트인 인도로 들어서자 맵찬 바람이 온몸으로 감겨들었다. 이 우중충한 공기가 이다지도 꿀맛이라니. 혹사한 심장은 여전히 취한 채로 해롱거렸다. 두 사람은 곡절 많은 연인처럼 서로 부둥켜안은 채 민박집을 향해 비몽사몽 이끌려 갔다.

 

숙소로 돌아온 독 소장과 승주는 한동안 각자 침대에 널브러져 심신을 달래야 했다. 독 소장은 생수 한 병을 깡그리 마셔버리고는 다시 누웠다. 옆으로 돌아보니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