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끝나지 않을 모험을 계속해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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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법칙이 변할 정도로 긴 시간.

 

행성의 의미도 망가져 별 대다수가 마치 필름처럼 엮인 가운데 우주 한가운데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모든 세계의 종말인가. 아니면 무한의 끝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인가.

 

한때 판타지 세계라 불렸던 곳에서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답을 구하고자 했던 이들은 정답을 찾기 위해 우주 중심으로 떠난 지 오래니까.

 

그마저도 수억 년 전의 이야기.

 

저 우주 중심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아련하게 보이는 가운데, 별의 표면에는 우주의 수평선 끝까지 모래와 먼지가 가득하다.

 

이 우주에서 생명이 영원히 살아갈 방법은 없다.

 

시간의 끝에 남은 생명들은 그걸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종말이 오늘은 아니다.

 

그렇기에 세계의 변두리에 남은 나그네들은 오늘도 저 빛나는 중심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태양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낡아빠져 툴툴대는 캠핑카에 잡다한 물건을 싣고.

 

바퀴 아래에는 썰매를 묶고.

 

우주 중심으로 흐르는 바람을 타기 위해 돛을 활짝 펼친 채.

 

흘러간 구시대의 멜로디를 스피커로 흘려보내며.

 

 

 

릴에서 풀려나간 수억 줄의 필름이 끝없이 늘어진 것 같은 우주의 어느 느긋한 종말 날.

 

“끝나지 않을 모험을, 계속해나가.”

 

사막 배로 개조한 캠핑카는 구시대의 사람들이 남긴 해도를 길잡이 삼아 사막을 나아가고 있었다.

 

사막 배의 선장이자 이 시대의 흔하디 흔한 나그네이며, 조타수인 동시에 조리사고 악사이기도 한 그는 시가를 문 채 구시대의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 태양이 빛나는 밤에.”

 

흉악할 정도의 음치였지만 이 배의 유일한 선원이자 최강의 선장인 그를 누가 막으랴.

 

“high yai ya. hi yay a. don’t stop romancing sail……. 응?”

 

소음에 가깝던 노래가 돌연 멎었다.

 

옛 성채로 추측되는 거대 유적지가 전방에 나타나면서 그의 시선을 빼앗은 것이다.

 

“이거 운이 좋군. 쓸만한 스크랩이 있으려나?”

 

그가 운이 좋다고 말한 건 거대 유적지 중심지에 자라있는 사과나무 때문이었다.

 

제대로 자라있는 식물은 귀하다.

 

사과를 구할 수 있다면 최고고, 그게 아니더라도 약간 잘라 꺾꽂이를 하면 그것만으로도 상당량의 식재와 교환할 수 있을 터였다. 잘만 흥정하면 제대로 된 사막 배를 하나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막 배에서 내린 그가 마법진이 빼곡한 벨트를 정해진 순서대로 만지자 마스크를 포함한 방호복 일체가 그의 몸을 감쌌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 유적에서는 필수적인 장비였다.

 

스크랩 수집과 관련된 기대는 금방 식어버렸다. 유적에는 여행에 쓸만한 물건이나 가치 있는 광물 대신 사방에 책과 신문, 종이가 널려있을 뿐이었다.

 

“고고학 지식이 없는 내가 책을 싣고 다녀봤자 쓸 일도 없고……. 튜버 타임즈? 으, 대체 언제적 신문이야. 번역마법도 적용이 안 되는군.”

 

“말이 너무 심하네. 6억 년 전쯤에는 블루스타, 테크네카와 함께 최상위급 그룹이었다고. 아니다. 8천 년 전이던가?”

 

“누구냐!”

 

나그네는 자세를 낮추는 동시에 두 정의 라이플과 퇴마드론을 소환했다. 물리공격은 물론 영적 공격까지 완벽하게 대비하는 유적 약탈자의 이상적인 경계 태세였다.

 

“굉장한 속도로군. 속도만은 내가 인정했던 검사보다 빠르겠어.”

 

“칭찬을 할 거면 상판 정도는 보이고 말하는 게 어때?”

 

“일리 있군. 경계하고 있는 사람한테 안 보이는 데서 말하는 것도 별로겠어. 지금 내려가지.”

 

정체불명의 느긋한 답변 이후 착지음이 들렸다. 마구잡이로 쌓여 언덕을 이루던 신문더미에는 먼지가 버섯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나그네는 이를 확인하자마자 풀오토로 탄환을 퍼부었다. 퇴마드론 또한 그가 사격한 곳 일대에 강력한 인공염파를 퍼부었다.

 

탄환을 아까워하는 일은 없었다. 애용하는 탄약은 모래에 주술을 걸어 굳히면 얼마든지 수급할 수 있기에 그는 한번 방아쇠를 당기면 탄창이 바닥날 때까지 쏟아내는 버릇이 있었다.

 

실제로도 냉혹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나그네는 대화를 청하며 접근한 사기꾼들 대부분을 이 방법으로 해치워왔다.

 

하지만 이날은 예외였다.

 

“이런이런. 한 솔로가 먼저 쐈다고 어필하고 싶었나?”

 

“쳇. 미끼작전?”

 

나그네는 혀를 차자마자 바로 다음 수를 준비했다. 수류탄이다. 안쪽에는 노동규정을 무시하고 잔뜩 굶겨놓은 화염마법의 정령이 갇혀있었다.

 

나그네가 준비할 수 있는 순간 화력 중에선 가장 고화력.

 

상대는 이 수를 정확하게 간파하고는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와 손을 맞잡았다.

 

아직 핀을 뽑기도 전이었다.

 

수류탄을 막으면서 모습을 드러낸 건 장발의 사내였다. 허름한 청바지 하나를 빼면 걸치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신발조차.

 

순간의 실수가 단숨에 목숨을 앗아가는 필름의 우주에선 보기 드문 차림새였다.

 

그는 샐쭉 웃어 보이고는 한번 겹쳤던 손가락을 나그네의 어깨까지 내렸다.

 

“미끼 같은 거 안 써도 그쪽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단순히 더듬은 건 아니었다. 팔 전체가 구속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나그네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번졌다.

 

“큭. 어쩐지 운수가 좋더니만…….”

 

“되게 긴장하네. 안심해. 안 죽이니까. 조건만 맞으면.”

 

“조건? 내 사막 배를 노리는 건가?”

 

“고철 더미는 공짜로 줘도 안 가져. 내가 원하는 건 네 이야기야.”

 

“이야기? 위험지대나 보물에 대한 정보 말인가?”

 

“아니. 말 그대로 너의 이야기. 항해일지 같은 거 있어?”

 

“있긴 하지만……. 왜 그런 걸 원하지? 이 사막의 우주에서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텐데?”

 

“삭막한 우주야말로 이야기가 가장 필요한 곳이지. 기자단 놈들도 전부 죽어서 이젠 내가 직접 찾아다녀야 할 판이라니까. 아, 만약 일지 내용이 많으면…….”

 

“많으면?”

 

“피자 한 조각 줄게.”

 

“15년 치 일지를 모조리 넘겨주지! 아깝다고 약속 바꾸지 말라고!”

 

“딜.”

 

그는 눈에 벌겋게 핏대를 세운 나그네를 보며 작게 키득거렸다.

 

 

 

아득한 옛날, 이곳이 인류왕국의 거대요새로 불리던 그 시절.

 

나그네를 손쉽게 제압한 사내는 그 당시 왕국의 왕으로 군림했다.

 

퇴위 후에는 농부 마법사로서 이웃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농사를 적당히 망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마법사나 상인이 되는 등, 역할에 충실한 유희를 즐기기도 했다. 성별도 꽤 자주 바꿨다.

 

그의 이름은 그림.

 

셀 수 없이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현자들이 그에게 온갖 힘을 부여한 덕분이다.

 

처음엔 자신에게 부여된 그 힘을 싫어하지 않았다. 능력을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가 싫어했던 건 현자들이 자신의 운명에 멋대로 개입했다는 것 정도였다.

 

이게 저주나 다름없다는 걸 깨닫기까진 20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의 강함은 확실하게 세상의 도리와 이치를 넘어버렸다.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현자들은 최강의 인간을 만들었다 여겼지만, 실제로는 신의 영역까지 손댔던 것이다.

 

힘을 얻은 그림을 기다린 미래는 정점의 쾌감이 아니었다.

 

그는 지구의 신이나 판타지 세계의 여신이 하위차원의 다스리는 정도로 만족한 이유를 온몸으로 알아버렸다.

 

신들은 세상의 이치를 비트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만큼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해결해버리고 말았다.

 

전능했기에, 피비린내 나는 노력 끝에 오는 달성감을 알 도리가 없던 것이다.

 

그래서 신들은 고의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했다. 우주를 떠나기 직전까지 그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철저히.

 

전능을 가진 인간에 불과했던 그림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윽고 가장 친한 친구가 죽은 뒤, 그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를 깨달았다.

 

전능에는 고독이 뒤따른다는 문제를.

 

그가 고독하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인류도 전능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그와 동등한 위치에서 문제를 마주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림 본인마저도 자신이 왜 공허함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다.

 

단 한 명, 제3자이자 친구로서 그림을 관찰할 시간이 충분했던 튜버경을 제외하고 말이다.

 

튜버경은 관찰과 추리만으로 그가 미래에 마주할 문제를 예측했다.

 

그는 전능에 도달해버린 그를 가여워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여러 가능성이 고려되었고, 튜버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취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이야기였다.

 

전능을 가지고 언젠가 전지적 존재에 근접할 인간조차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