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참석자의 자격지심 획득에 대한 이해

학회 참석자의 자격지심 획득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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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번 설에 큰 다짐을 하나 했다. 연초 다짐의 실패란 인류 모두에게 선험적으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특정한 시간대의 높은 실패율을 감안한다면, 다른 시기에 다짐을 하는 편이 논리적으로 알맞지만 모두들 연초에 거창한 계획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한 해의 시작을 두 번이나 겪는 대한민국 사람들을 보라. 두 번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높은 실패율을 보이니, 연초의 시간대 자체에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물론 현대의 인류는 많이 발전한 종(種)인지라 수학적인 계산에 의해 계획의 높은 실패율은 인류 평균과 차이가 없으며, 그저 시행횟수가 많기 때문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그것이 논리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초의 계획과 다짐이 실패할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원래 연초엔 계획 세우는 거 아니야.’라고 웃고 만다. 시기가 문제인 양. 이러한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나 스스로도 연초의 다짐이 성사되리라곤 장담하기 힘들겠지만 어찌되었건 큰 다짐을 하나 세웠다. 난 생각해본 적 없던 유혹을 생각했다.

 

‘다음 추석엔 집에 내려가지 않을 핑계를 찾아야겠어.’

 

집에서 했던 다짐을 학회장 안에서 지금도 다시 행한다. 다음 추석엔 집에 내려가지 않을 핑계를 반드시 만들고 말겠다고. 흔한 다짐이기도 했다. 이는 21세기에서 살아온 나날이 더 긴 20대 중후반 또래들에겐 자주 찾아오는 유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실패율 또한 높은 편이었다. 대게 그들의 부모님은 대가족으로 구성된 전통적 가족상을 경험했던 분들이었고, 명절의 합리성보다 앞서서 친척 간 얼굴이라도 맞대야한다는 거부하기 어려운 감성적 호소를 펼치는 데에도 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호소를 거부하기 어려운 우리 또래의 실험실 사람들은 명절의 휴식과 불편함을 떠들고 있었다. 가시방석은 아니었으나, 지압방석 정도는 되는 불편함이었던 것이다.

 

“선배는 이번 설에 안 내려갔어요?”

 

친척들끼리 얼굴을 맞대기 위해서라도 명절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던 가족들을 떠나, 명절이 달갑지 않은 경험을 공유하는 또래 세대에게 난 물었다. 비슷한 처지이니,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옆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며 무언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선배는 빙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 박사 되고는 늘 집 안내려갔는데, 몰랐어? 학교에서만 지냈지.”

 

연구실의 가장 연차가 높은 박사이자, 나와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선 학회장 뒷편에 비치되어 있는 간식 테이블에서 가져온 커피맛 쿠키를 뜯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또한 옆에. 커피맛 쿠키와 나쁘지 않은 커피 한잔. 학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도 했다. 다른 과자들은 다 빠져도, 비닐이 잘 벗겨지지 않는 커피맛 쿠키는 빠지지 않는다. 연구 분야, 학회의 규모와는 무관하게 커피맛 쿠키는 늘 상수처럼 존재했다. 연구해볼만한 주제일지도 모른다. 선배는 입에 물고 있던 쿠키를 반으로 똑 뜯어서 한입 넣고선 묻는다.

 

“줘?”

 

“아뇨, 괜찮아요.”

 

우물거리던 입을 빤히 보다가 난 다시 말했다.

 

“변명은 뭐라고 하셨어요?”

 

“전 부치기 싫어, 안 가. 이 정도? 난 이제 그 정도로도 충분해. 화난 전화는 한 며칠 무시하면 되는 거고. 그렇게 메시지 남기고 가족 카톡방을 명절 동안 나가있는 편이야. 귀찮잖아. 난 이제 전통에 엉덩이 붙이고서는 생각 없이 쉬는 시간이 좀 아까워지기 시작해서.”

 

“명절에 내려가지 않을 핑계 찾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영 도움이 안 되는 분이시네.”

 

확고한 다짐을 위한 조언을 얻으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조언을 구한 상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소통의 여지없는 핑계를 내세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핑계란 그런 것이다. 핑계란 말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설명의 의무를 거부하는 하나의 기만이니까.

 

“무슨 일 있었어? 늘 집에 쉬러 잘 내려가더니 왜? 게다가 너희 집 오빠가 전 부치잖아. 아버지는 안하신다지만 뭐, 오빠 하나라도 써먹을 수 있으면 한결 편하지.”

 

“저한테 시키는 건 없긴 하죠. 그래도 싫어요. 뭔지 알죠? 어차피 엄마가 하시는데.”

 

“그래, 뭔지 알아. 그래도 배부른 말이네.”

 

농담 같은 진심에 쓰게 웃었다. 여전히 선배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을 잇는다. 커피맛 쿠키의 비닐이 작게 바스락거린다.

 

“오빠는 속 편하게 제사 앞으로 안 할 거라고 크게 이야기하는 편?”

 

“엄마랑 둘이서 작당모의 중.”

 

“어머니도 제사 하지 말자고 하셔?”

 

“아뇨, 엄마는 제삿밥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엄마 제사만 해달래요. 치킨이랑 피자 올려서.”

 

선배는 이미 쿠키를 목 너머로 넘겼고, 비어있는 입에서 터져 나온 건 웃음뿐이었다. 한참의 웃음 뒤에 선배는 다시 묻는다.

 

“그래서, 진짜 왜?”

 

“벌써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요.”

 

선배는 히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도 않은 채로 이쪽을 봤다. 놀리고 싶어 안달난 표정이었다. 그 반응을 받아줄 여유가 조금이나마 남아있었던 나는 따라 웃고 말았다. 명절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연애는 하니? 결혼 생각은 있고?”

 

명절의 질문들은 신기한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세월을 조금 더 견뎌낸 이들에겐 선의를 가진 질문이었고, 젊은이들에겐 친구 사이에서도 오가지 않을 무례함이기도 했다. 그래도 난 구태여 선의의 말을 시대의 변화라는 교정 시설에 집어넣고 싶진 않은 편이다. 그런 지적의 필요를 느끼진 못하는 사람이라서. 오히려 따지자면 그 상대가 누구건 사람의 말이라면 선해하길 바라는 쪽에 가깝다. 물론 내 태도와는 무관하게, 이미 명절의 말은 오랫동안 풍화되었고, 20대 중반의 또래들에게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로 채워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 낡음을 구태여 지적할만한 체력이 남아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정도만이 차이일 뿐이다. 말했듯이, 난 그런 체력 소모를 선호하지 않았다.

 

“우리 아가, 똑똑하고 공부도 많이 했으니 남자들이 줄섰을 텐데.”

 

체력 소모가 싫은 게으름뱅이인 나에게 말썽을 피우지 않는 것만이 1차적 목표로 설정되곤 했다. 난 때론 나의 얌전함이, 혹은 체력 소모를 선호하지 않는 태도가 유전자에 새겨진 채로 세상에 나온 것인지, 부모님께서 그런 딸을 원했기 때문인지 헷갈리곤 했다. 어찌되었건 난 그 명절의 말들 앞에서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난 스스로가 자동차 안에서 햇빛을 받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고모님은 참, 벌써 그런 이야기를. 아직 공부 중인데요.”

 

나의 아버지는 무마하려는 시도인지, 진심을 담았는지 알 수 없는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부엌에서 거실 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난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조금 고민하고 있었다. 유일한 이해자는 내 견뎌내길 바랐던 걸까.

 

“좋은 사람 만나서 잘 해야 할 텐데 그치?”

 

언제나 사람 좋은 고모할머님은 용돈을 주며 그렇게 물으셨다. 난 웃었다. 이제 대학원생이고 나름 돈 받으며 연구실 다니고 있지만, 고모할머니께 나는 아직도 귀여운 조카의 사랑스러운 딸일 테니까. 5만원권의 노란색이 눈에 들어온다. 두 장. 신사임당이었다. 난 그 이상일 수는 없었으리라.

 

 

 

 

“그런 일이 있었어요.”

 

“심란했겠네.”

 

놀림의 시도를 관둔 선배는 고개를 조금 끄덕이며 그렇게 평했다.

 

“왜 다들 명절에 내려가기 싫어하는 지 좀 알겠더라구요. 공부한다고 하면 조금 무시해주거나 이제 별 이야기를 안 하셨는데, 어차피 결혼은…하겠거니 하셨겠죠. 그러니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하셨을 거고.”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어?”

 

난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되묻는다. 짗궃은 표정이 만연한 선배의 표정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뭘요?”

 

짐작하는 대답이 들리지만 나는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선배는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고선 속삭였다. 연인의 밀어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아직 동성혼이 허가가 안 되는 나라라 못해요~ 라고.”

 

짐작했던 말이 나왔다. 나와 선배의 사이는 그랬다. 귀를 덮은 긴 머리를 살짝 넘기면서 선배는 말했다. 그리고 웃었다. 선배는 그런 연인이었다. 자신이 배제된 이야기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 세계의 형태에 화를 내고 비웃음을 남길 수 있는.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을 머저리라고 여길 수 있는 단단함, 혹은 무심함. 하나의 존재에 대한 여러 서평 중에 단단함을 골라 사랑하기로 난 마음먹었기 때문에, 선배는 나의 애인이었다.

 

“고모할머님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 충격 받으시면 안돼요. 큰일 난다.”

 

“아직 할머님의 마인드가 열려있지 않으시다면, 그건 좋은 판단이네.”

 

선배는 짐짓 과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맛 쿠키를 하나 더 뜯으며 다시 먹는다. 이번에는 커피도 한입 홀짝. 이번 학회 커피는 맛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좀 산미가 쎄다.” 그런 눈빛을 읽기라도 한 듯 먼저 말하는 선배. 그 대답을 들으며 아까의 대화를 다시 이어간다.

 

“그리고 아버지도 기절하실 듯.”

 

아버지 이야기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선,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다가 “그럼 어머니는 괜찮으셔?” 라고 묻는다.

 

“어머니는 괜찮을 거 같아요.” 묘한 확신. 선배는 씨익 웃었다.

 

나는 다짐하듯 다시 말했다. “웃으며 좋다고 하실 거 같아요.”

 

“기쁜 확신이네. 벌써 커밍아웃 한 건 아니지?”

 

“글쎄요, 짐작은 하실 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하진 않았어요. 당장은 할 생각도 없고. 근데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병원 보호자도 할 수 없다는 뉴스 보고 어이없어 하셨어요. 청원도 하시고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냥…으레 하시는 어르신들의 행동일수도 있겠지만.”

 

약간 머쓱해지는 기분에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어야할지 모르는 나를 보고선 선배는 대답했다. 위안과 안심의 말을 하고 싶은 듯 했다.

 

“그럼, 든든한 우군 한 분이 계시군. 난 시어머니께 잘해드릴 자신 있어.”

 

“그거, 프로포즈?” 서로는 웃는다.

 

“결혼해줄래?”

 

“반지는?”

 

선배는 커피맛 쿠키 비닐을 동그랗게 말아서 내 손가락에 끼워주려고 한다. 난 선배의 손을 밀어내며 피식 웃는다.

 

“됐어요, 교수님 오신다.”

 

더 농담을 이어나갈까 하다가 저 멀리서 연구실 교수님이 오는 걸 보고선 난 말을 돌렸다. 농담은 언제든 둘이서 할 수 있겠지. 그래도 분위기가 환기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던 결혼이라는 주제는 다시 생각해보면 그다지 먼 일은 아니기도 한 것이다. 물론 내가 선배와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만 뺀다면.

 

“다들 설은 잘 보냈어요?”

 

설 이후 몇 주간의 인사가 될 문장을 건네는 교수님. 나와 학생들은 설 연휴가 지나고 오랜만에 보는 교수님과 인사를 나눴다. 교수님도 한 잔의 커피를 들고 있었다. 학회 커피는 아닌 것 같다. 바깥에서 구매한 모양새였다.

 

“네, 교수님.” “잘 지내셨어요?” “저흰 어제 다 같이 게스트 하우스에 모여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지하철로 왔습니다.” “저희도 오랜만에 만나서 어젯밤엔 좀 놀았어요.” “좋은 시간이었겠네요.”

 

2월의 마지막 주, 월화수에 배치되어 있던 설 연휴 덕분에 학생들 대부분은 목요일과 금요일에 휴가를 써서 일주일 간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직후에 돌아온 분과 연합 학회는 다 함께 모이는 간만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화는 두런두런 이곳저곳을 오가며 이어진다. 잡담의 즐거움이었다.

 

“서울로 바로 올라오려니 차라리 낫기도 해요.”

 

“넌 집도 서울이라 아침에 따로 왔으면서.”

 

서울에 집이 있어서 곧장 학회장으로 찾아온 학생은 웃으며 말했다. 그 학생과 교수님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서울에 게스트 하우스를 잡고 오늘 아침에 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학회장으로 향한 참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농담이죠.”

 

“그럼, 다들 오늘 학회 열심히 들으시구요. 2층에서 우리 생명과 현 교수님 강연 들을 분은 저랑 같이 올라가죠. 누가 들으시죠? 아, 짐 챙긴 학생들 다? 두 사람만 빼고? 지현 양은?”

 

“아, 교수님, 전 3층에서 올해의 여성과학자 그 특별 강연 들으려구요.”

 

선배는 대답했다. 연차가 가장 높은 박사다보니, 교수님과 선배의 관계는 조금 더 밀접하고 편한 사이이지 않을까 난 생각했다. 그리고 교수님의 묘한 웃음과 대답을 들으며 난 스스로의 생각에 조금 더 확신을 가졌다.

 

“그래요, 지현 양 다운 선택이네요. 그럼 이따가 봐요. 다들 좋은 강연 들으시구요.”

 

언제나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교수님은 학생 몇몇을 이끌고 기조 강연이 이뤄지는 대형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럼 나도 간다?” 선배도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여긴 혼자 지켜야겠네요.”

 

“그런 거 같네? 왜, 혼자 남겨지면 슬퍼? 같이 있어줄까?”

 

샐쭉하고 장난스런 웃음을 난 거절했다.

 

“가세요, 가.”

 

연구실 사람들이 각자 듣고 싶은 당연을 듣기 위해 떠나가자, 좁게 느껴지던 테이블은 혼자 사용하는 넓은 테이블이 되어있었다. 주변의 분위기는 조금 어수선 했다. 곧 분과별 강연이 시작되니, 기조 강연이 끝나갈 즈음부터 하나둘씩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내가 들으려는 강연은 어차피 여기서 기조 강연이 끝나고 이뤄진다. 강의실 뒤편에서 커피를 한잔 타온 뒤, 대형강의실에 혼자 남겨진 채로 난 주섬주섬 학회 초록집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정기 봄학회라고 큼지막하게 적혀있지만, 난 정말 이 시기가 봄이긴 한 건지 의문스럽다. 늦은 설을 지나고 맞이하는 학회는 초봄의 시기에 열리긴 했지만, 봄이라기엔 아직 추웠다. 꽃샘추위까진 찾아오지도 않았고, 따뜻할 기미도 없이 아직 겨울 같다. 찬 바람이 불며 얼음이 녹아가는. 그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본격적인 학회가 시작됐다.

 

 

 

 

 

 

학회는 결국 사람이 한다. 과학이라는 존재가 나서서 당위를 역설하는 지식의 경연장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결국 사람이 주관하고 사람이 떠들고 사람이 듣는다. 모든 행위에 사람이 중간체로 연결된 이 일련의 화학적 작용은 그래서 이따금 삐그덕거릴 수밖에 없다. 이 사이에 이상적인 반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결국 사람에 의해 피로함을 느끼고 말았다.

 

“…교수님께서는 A대학교를 졸업하신 뒤로, 미국으로 넘어가 C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셨으며….”

 

말의 도입부는 때론 수사 자체에 목적성을 둔 채로 점철되곤 한다. 그런 대화는 이제 목적과 의미가 하나이기에 많은 것들이 불분명해지곤 한다. 난 그 불확실함이 싫은 사람이었기에 피로했다. 그 수사를 선호하는 이들은 많다고 할 수 없으나, 일종의 예법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수식어들을 포기하려고 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남아있다. 문 앞에서 강의실 내에서 들려오는 사회자의 소개말이 이어지고 한창의 강연 또한 이어졌다.

 

“수식어만 짧았어도 제 시간에 끝났겠다.”

 

난 불평을 내뱉고서 빨리 두꺼운 옷을 싸들고 다른 강연이 있는 강의실로 향한다. 이전의 강연이 꼭 불필요한 수식어들 사이에서 방황하느라 늦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불평은 해야만 했다. 늦게 도착한 강의실엔 이미 고요함 속에서 열정적인 정보 전달이 이뤄지고 있었다. 강의실 뒤쪽으로 빙 돌아 자리를 잡고 앉아 초록집을 펼친 뒤엔 이미 배경지식 해설이 중반 즈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곧 집중력을 하나둘씩 잃어가기 시작했다. 강연의 내용 자체도 어렵지만, 배경지식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초반부터 놓쳤으니 도리가 없다. 명확한 지식 없인 집중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더군다나 강연자는 영어로 이야기를 진행 중. 더할 나위 없이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숨을 내쉬고 초록집에서 강연 내용을 미리 찾아 간략하게 메모한 부분을 읽으며 열심히 강연의 기승전결을 따라잡고자 노력해본다. 하지만 발표 자료로 준비된 ppt는 사진과 설명보단 텍스트가 많았고, 빈말으로나마 좋은 발표 자료라고 보긴 어려웠다. 강연자의 열정적인 자세와 이따금 던지는 농담들은 청중들에게 대략적인 이해와 웃음을 함께 선사하고 있긴 했지만,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기쁨 같았다.

 

‘올해의 여성과학자 수상하신 우리 학교 교수님 강연이나 들을 걸.’

 

선배가 그 특별 강연을 같이 듣지 않겠냐고 권유했지만, 난 다른 강연을 들어보겠다고 했었다. 나름 관심이 있던 분야기도 했으며, 학회란 모름지기 시야를 넓히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너무나도 옳고 당연한 말이었지만, 만사는 늘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 법이다. 악재가 겹쳐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지금에야 난 지금을 스스로의 실수라고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의 고집에 대한.

 

그렇게 스스로의 실수를 깨달아가는 시간이 지나고서, 질문과 답변 시간이 찾아왔다. 발표는 영어로 했던 발표자는 답변은 한국어로 진행하고 있었다.

 

“혹시 메틸트랜스퍼레이스의 역할이 이렇게 되리라고 예측한 측면은, 그동안의 연구 주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서 예측을 하신건가요, 아니면 다른 논문 같은 것들을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으신 건가요?”

 

“아, 그 이야기가 좀 긴데 괜찮나요?”

 

시간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사회자. 강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이어나간다.

 

“지금은 일에서 손을 놓았지만, 제가 포닥을 미국에서 하던 시절엔 아내도 포닥을 미국에서 하고 있었거든요. 결혼만 했고 이제 아이는 없이, 연구생활만 하던 차에 이제 서로 연구 주제 관련해서 가끔 의견 교환을 했어요. 서로 분야가 딱 맞는 건 아닌데, 이제 그래도 서로 다른 분야의 시선으로 보는 건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 아내가 그런 예측을 제안을 했어요. 계산화학 쪽이고, 에너지 포텐셜 흐름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이랑 모델링 했던 자료랑 비교했을 때, 유의미한 예측이 가능했죠.”

 

“아내분의 공이 컸군요.” 사회자가 말했다.

 

“그럼요. 저도 정말 아내가 다시 연구를 재개하면 좋겠습니다. 육아 때문에 잠시 쉬다가…제대로 마치지 못했죠. 그래서 더더욱 아쉽죠. 연구원이나 교수로 어디든 부임할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이제 아이도 많이 컸고.“

 

사회자는 빙긋 웃고선 다음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분은 봄을 지나시지 못한 모양이었다. 성대한 박수소리와 이산화탄소가 가득 찬 학회 강의실은 후텁지근하다. 강연은 마무리 되었다. 열기 때문인지, 질문 때문인지, 답변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강연은 끝났기 때문에 나는 이산화탄소의 공격에서 빠르게 빠져나올 준비를 했다. 두꺼운 학회 초록집에 펜을 꽂고선 가방을 챙겼다. 입구가 앞과 뒤 양쪽에 있는 강의실은 역시 이런 면이 좋아. 사람이 상대적으로 덜 몰려있는 뒤쪽 입구로 향하며, 학회에서 제공한 과자 몇 개와 음료수를 가방에 챙긴다. 사람이 덜 붐비는 뒤쪽 비상구 계단을 내려와서 학회장 로비에 마련된 포스터 발표 부스 쪽으로 향하면서.

 

“강연, 잘 들었어?”

 

이미 준비된 포스터 발표 위치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배. 로비 구석의 포스터 발표 구역은 포스터를 담는 도면통을 짊어진 학생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요리조리 실험실 짐을 자신들의 자리에 두고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음, 잘 모르겠네요. 사실 이렇게 말한다는 건, 잘 못 알아들었다고 봐야겠죠.”

 

“영어였어?”

 

다른 강의실에서 있었던 연사 발표에 참석했던 선배는 그렇게 되물었다.

 

“우린 일단 한국어로 강연하셨는데.”

 

“저흰 일단 영어긴 했고, 질의만 한국어로 하셨어요. 그래도 차라리 영어 때문에 잘 이해 못했다면 위안이라도 되겠네요. 제 시야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영어 실력만 기르면 된다는 거니까.”

 

약간의 쓴웃음을 짓는 선배.

 

“그 시야라는 것도 공부해야 늘어나는 거지.”

 

“맞아요, 그러니 문제죠. 뭘 해도 게으른 본인이 문제라는 점만 깨닫게 되니까.”

 

“괜찮아. 석사가 뭘 알겠어. 내용도 어렵던데. 내가 말했잖아, 이거 초록집만 봐도 어려운 내용이고 우리 전공이랑 큰 연관 없어 보인다고.”

 

“하지만 무언가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죠.” 한숨을 내쉰다.

 

“이번에 못 얻었으면 오후 시간에 또 얻지 뭐.”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나의 선배.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24시간짜리 일일 한도 카드라지만, 선배의 위로는 늘 40시간 50시간은 될법한 여유를 담고 있다. 그 여유를 받아들인다면 진정으로 편해진다.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이 있고, 내일이 아니라면 모레까지 생각해도 된다는 여유.

 

“선배는 그렇게 오냐오냐 해주는 거 그만두셔야 해요. 석사는 원래 바보라지만, 그렇다고 공부 안하는 게 잘하는 짓도 아니고.”

 

말해놓고도 조금 스스로의 양심이 찔리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 특별 강연은 어땠어요?”

 

선배는 입만 웃더니 대답한다. “개판이었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난 당황했다. 선배는 농담으로는 보이지 않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강연이 별로였던 건 아니고.”

 

강연이 별로는 아니었다니, 다행이네.

 

“그럼 또, 선배 심사가 꼬일만한 언행이 있었나보군요.”

 

“이제 보지 않고도 맞추는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