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근원

소리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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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초능력을 믿는가?

나는 믿는다. 내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히어로물의 광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초능력을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한 달 남짓,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일종의 능력을 가졌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찾아온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능력. 그때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당시 나는 백수였다. 사실 몇 주 전 까지만 해도 백수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런 대학의 체육교육과를 졸업해, 그저 그런 동네 헬스장의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유명 연예인이 만든 헬스장이 근처에 새로 생기고 말았다. 해당 연예인의 명칭은 ‘P 배우’로, 그렇게 어렵다는 국민적 호감을 쌓은 인물이었고, 평소 근육과 건강의 소중함을 전방위로 알리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헬스장을 개업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언행일치의 갑이라며 큰 관심을 가졌다. 대표의 소신답게 그 헬스장은 운동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배우기 쉽도록 여러 프로그램이 갖추어져 있었다. 심지어는 시설도 깨끗하고 좋았다. 우리 헬스장보다 넓고 기구도 다양했다. 또한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았으며, 개점 할인으로 인해 오히려 저렴하기까지 했다. 인스타그램으로 그 헬스장을 염탐하던 나는 ‘나였어도 여기 간다’고 무심결에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이런 나의 배은망덕함을 우리 대표님이 알아채고 만 것일까, 나는 잘리고 말았다. 사실 배은망덕이고 나발이고 내가 잘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장사 안 되는 헬스장의 신입 여성 트레이너. 해고되기 위한 조건은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소중한 직장을 잃었다.

재취업을 위해 여러 군데에 이력서를 돌렸으나, 답장이 없거나 갑자기 자리가 찼다며 거절당했다. 열 군데 정도 반려당하고 보니 슬슬 멘탈도 깨지고, 아직 젊은데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안일한 마음에 직장 구하기를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한 마디로 백수가 된 것이다. 나의 일상은 집에 있는 42인치 TV를 하루 종일 보거나, TV를 보다 P 배우가 나오면 욕을 하거나, 누워서 휴대폰을 하다 잠드는 일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누워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한 가지 체감되는 바가 있었다. 근손실이었다. 근육으로 먹고 사는 직업인데 이렇게 가다간 근육마저 잃을지 모른다. 불안함에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하지 않나 싶어 상체를 일으켰다. 내가 그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이 바로 그때였다.

“…섹스”

응? 잘못 들었나 싶어 방을 돌아보았지만 당연히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휴대폰에 동영상이 켜있나 확인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거실로 나가보았지만 TV가 켜있지도, 사람이 있지도 않았다. 밖에서 난 소리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창문은 닫혀있었고, 멀리서 난 소리라고 할 수 없이 선명한 음성이었다.

그 ‘소리’는 다음 날에도 비슷한 시각에, 똑같이 들려왔다. 저녁 열 시 쯤이었다. 나는 누워있다, 너무나도 선명한 ‘섹스’를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에선 엄마가 TV를 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보고 있는 채널을 확인하자 잔잔하기로 소문난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이 채널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 거기다 해당 프로그램의 성우는 차분한 목소리 톤의 여자였다. 하지만 내가 들은 음성의 주인은 분명히 남자다. 나는 TV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세… 아니, TV에서 나온 소리 말고 뭐 안들렸어?”

“뭔 소리가 들려. 뭐 이상한 거 들었어? 뭔데, 말을 해봐.”

“아니, 그… 아니야.”

궁금증만 넘치게 된 엄마를 뒤로 하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엄마에게 고민을 상담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 집이 가족끼리 키스신을 보는 것조차 민망해 하는 유교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둘째 치고, 백수인 딸이 환청을 듣는다는 말을 듣고 좋아할 엄마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라면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요즘 힘드니?’라고 물을 것 같았다. 그런 동정을 받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으려니 생각하고 넘기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듯, 소리는 작지만 더욱 선명해졌다. 심지어는 ‘섹스… 섹스… 섹스…’ 이런 식으로 몇 번이고 반복되기도 하였다. 정신병의 일종일까? 내 욕구불만이 이렇게 환청이라는 결과로 찾아와버리고 만 것일까?

정신과에 가서 의사에게 이 현상을 설명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죽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욕구불만은 운동으로 다스리는 것이 좋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요즘 운동을 하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야! 혼자 결론을 내리고, 허겁지겁 달리기 좋은 옷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이런 일은 산책로를 한 바퀴 뛰고 나면 해결될 일이다.

집 주위에 있는 강변 산책로에 나와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달리기 시작한지 채 1분이 되지 않아, 나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소리가 미묘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혹시나 싶어 반대편으로 달려보았다. 소리가 미세하게 줄어들었다.

소리에 근원이 있다. 머리를 관통하듯 떠오른 가설이었다. 나에게만 들리는 환청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어떤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방향으로 힘차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