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르테미스

카페 아르테미스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나른한 오후, 손바닥에 얼굴을 괴고 선잠을 자던 김 순경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파출소에 한 여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인 상태라 얼굴이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냐는 김 순경의 질문에 여자가 얼굴을 들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표정은 우수에 차 있었다.

 

“자수하러 왔어요.”

 

그녀는 낮게 웅얼거리며 옆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더니, 본인이 치마를 입었다는 사실을 잊은 듯 단정치 못 한 모습으로 다리를 벌리고서 두 손으로 얼굴을 비벼댔다. 김 순경은 겨우내 쓰다가 한쪽에 몇 달 째 방치해 둔 무릎 담요를 가져가 그녀의 무릎 위에 덮어주며 물었다.

 

“자수라면, 무슨 일을 하셨나요?”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뭘요? 말씀해 보세요.”

 

여자가 손을 내리고 김 순경을 돌아봤다. 흰자위에 핏발이 가득 서 있었다. 순간 섬뜩한 한기가 김 순경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을, 사람을 죽였어요.”

 

“……네?”

 

“사람을 죽였다고요. 하아…….”

 

낮고 단조롭고 어딘가 공허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양 무릎에 손을 짚고는 괴로운 듯 머리를 흔들어댔다.

 

“살인한 걸…… 자수하러 오셨다는 건가요?”

 

“네, 맞아요. 안 그럼 다시는 안 본다고 했으니까. 제길, 그 나쁜 인간을, 도대체 왜……!”

 

여자가 제 무릎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웅얼거렸다. 김 순경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아, 네에, 일단 진정하시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주 악질이었거든요. 이제 우리 둘이서 행복하게, 아아, 아니지. 그 녀석이 있었지. 이리로 온다 그랬는데…….”

 

공범이 있다는 소린가? 어째 일이 복잡하게 돌아갈 모양새였다.

 

“알겠습니다. 당장 사건 접수해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커피 한 잔만 사 오면 안 될까요? 잠을 제대로 못 자서요. 여긴 참 시원하군요. 갑자기 너무 졸리네요.”

 

“커피는 여기도 있어요.”

 

김 순경은 벤치 끝에 마련된 정수기와 커피믹스를 가리켰다.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두유바닐라라테만 마셔요.”

 

“그럼 앉아 계세요. 배달시킬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아이스에 꼭 두유로 해 달라고 해 주세요.”

 

이 와중에 별 걸 다 챙기네. 김 순경의 생각을 읽은 듯 여자가 다시 말했다.

 

“제가 우유 알레르기가 심해서요.”

 

근처 카페에 전화하니 한 잔은 배달이 안 된다고 가지러 오라고 했다. 김 순경은 웬 정신 나간 여자 때문에 평화로운 금요일 오후를 다 망치게 생겼다며 한숨을 푹 쉬었다.

 

돌아보니 여자는 벽에 머리를 비스듬히 기댄 채 잠든 뒤였다. 길고 매끄러운 머리카락 몇 가닥이 뽀얀 볼을 지나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불그스름한 입술 위를 덮고 있었다. 흰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입술이 순수한 대조를 이뤘다. 이렇게 청초한 분위기의 여자가 살인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곤하게 잠든 모습이 희한하게 안쓰러워 보였다.

 

김 순경이 파출소 문을 열자 한여름의 후끈한 공기가 달려들었다.

 

 

며칠 뒤, 정신과 전문의 이현숙 박사의 진료실. 이 박사는 환자가 들어오기 전 재빨리 차트를 훑었다. 흥미로운 환자였다. 학계에 소수의 사례만 보고됐을 뿐, 삼십 년 가까이 정신과 전문의로 일해 오면서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증상이었다. 때문에 박사는 수많은 논문과 서적과 상담 사례를 찾아가며 때늦은 공부를 해야 했다.

 

환자는 본인이 사람을 죽였다고 제 발로 경찰을 찾아가 자수했다. 그런데 사건 조사 중에 경찰 측에서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하다며 이 박사에게 환자의 상담을 의뢰한 것이다. 오늘이 두 번째 상담이었다.

 

“최남선 씨, 지난번에는 남선 씨의 어린 시절에 대해 들어봤고요. 오늘은 여자 친구에 대해 들어보고 싶군요. 여자 친구 분 성함이……?”

 

“주인영입니다.”

 

“네, 그럼 인영 씨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부터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죠? 저는 빨리 처벌받고 인영이를 다시 만나고 싶은데요.”

 

“지금 인영 씨가 남선 씨를 피하고 있나요?”

 

“네.”

 

“왜 그런다고 생각하시죠?”

 

“제가 죄를 지었으니까요.”

 

“죄라……, 인영 씨의 남편 분이 엄청나게 폭력적이었다고 하던데요. 인영 씨의 반응이 어땠나요?”

 

“굉장히 두려워하고 화를 냈어요. 너는 악마야,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가 있어, 그건 죄악이야, 저더러 타락 천사라고도 했고요. 자길 다시 보려면 죗값을 치르라더군요. 그래서 자수한 거예요. 근데 왜 빨리 조사를 안 하고 사람을 이렇게…….”

 

“우리가 하고 있는 대화가 조사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해지실까요?”

 

“조금은요.”

 

“남선 씨는 어떠세요, 지금 심정이요?”

 

“제가 사이코패스인지 알아보려는 건가 보군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어요. 제가 죽인 그 박무진, 알고 보면 불쌍한 인간이에요. 애초에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나서 부모한테도 버림받았다고 들었어요.”

 

“피해자를 꽤 잘 알고 계신 것 같군요.”

 

“물론이죠. 적을 이기려면 적에 대해 잘 알아야 하니까요. 저는 인영이를 그 인간한테서 보호해왔어요. 제가 살아가는 이유죠. 인영이도 그 사실을 잘 알아요. 저한테 의지를 많이 했고요. 이혼하고 싶다는 말도 여러 번 했지만…… 매번 실패하고 말았죠.”

 

“나중에 주인영 씨와도 얘기를 해 봐야겠군요. 하지만 오늘은 남선 씨 사연부터 들어보도록 할게요.”

 

 

반 년 전, 남선은 카페 아르테미스에 들어섰다. 출입문에 달린 방울이 맑고 청아한 소리로 그의 등장을 알렸다. 6평이 될까 말까 한 아담한 가게였다. 커피를 제조하는 직원용 공간과 2인용 테이블이 두 개 놓인 고객용 공간을 1미터 남짓한 카운터가 반으로 나누고 있었다.

 

남선은 따뜻한 두유바닐라라테를 주문한 뒤 테이블에 앉아, 인영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기계가 두유를 데우고 거품을 내는 동안 그녀는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머그잔에 바닐라 시럽을 담았다. 다음엔 시럽 위에 커피를 따르고 가느다란 숟가락으로 휘저어 섞은 뒤 머그잔을 살짝 기울여 따뜻한 두유를 부었다. 두유가 빠르게 소용돌이치며 커피와 섞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두유 거품을 지그재그로 흔들어 표면에 띄운 뒤 가운데를 죽 가르며 하트 모양을 완성시켰다.

 

인영의 움직임에 따라 길고 매끄러운 머리칼이 찰랑거리며 그녀의 어깨를 스쳤다. 남선은 저 머리카락들이 제 손가락 사이를 부드럽게 흘러내리던 느낌을 떠올렸다.

 

인영이 커피가 준비됐음을 알렸다. 남선은 잔을 받으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인영이 당혹스러운 듯 양 볼을 붉히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인영아, 나 기억 안 나? 남선이, 최남선.”

 

“최남선……?”

 

인영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생각에 잠기다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남선이, 너구나! 이제야 생각났어. 그래, 그런 거였어! 어쩐지!”

 

“뭐가?”

 

“내가 쓰는 웹소설 남자 주인공 이름이 최남선이거든. 이상하게 그 이름이 쓰고 싶었어. 너였구나.”

 

인영이 배시시 웃었다. 남선도 따라 웃었다. 인영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여자였다.

 

“로맨스?”

 

“응.”

 

“오, 그럼 나 멋있게 나오나?”

 

“당연하지.”

 

인영이 ‘너처럼’ 하고 작게 덧붙이고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떨구며 물었다.

 

“너도 아직 글 써?”

 

“그럼. 주인공은 항상…….”

 

“나라고?”

 

“맞아.”

 

볼에 다시 한 번 복숭아 같은 홍조가 돌며 인영이 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그녀의 손을 잡고 거닌 과수원, 그곳에 만발한 복사꽃잎들이 카페 안에 흩날리는 것 같았다.

 

“잘 지내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남선은 괜스레 물어봤다. 인영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뭐, 그럭저럭.”

 

“무진이 형도 잘 있고?”

 

“알잖아.”

 

인영은 더 이상 남편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뒤돌아서서는 커피 머신 옆에 어질러진 재료와 잔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남선은 선 채로 커피를 홀짝였다. 사랑스러운 바닐라 향과 깊은 커피 내음 덕분에 마음이 한층 포근해졌다. 그녀가 안겨주던 이 향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그는 코트 주머니에 든 초콜릿을 꺼냈다.

 

“사실 오늘 이거 주려고 온 거야.”

 

인영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돌아봤다.

 

“뭔데?”

 

“오늘 밸런타인데이잖아.”

 

인영이 당황해하며 한 발 물러섰다.

 

“남선아, 나는…….”

 

“알아, 네가 왜 내가 아닌 그 사람을 선택했는지. 그래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언제나 널 지켜보고 응원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인영의 말간 볼 위로 맑은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내가 왜 널 잊고 있었을까? 미안해. 나 정말 못 됐지?”

 

“그렇지 않아. 넌 열심히 살려고 했을 뿐이야.”

 

남선은 잔을 놓고 카운터 뒤로 돌아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내가 다시 왔어. 네가 날 부른 거야. 인영아, 사랑해. 내일 또 올게.”

 

남선은 그녀의 단아한 이마에 입 맞추고 카페를 떠났다.

 

인영은 가늘게 떨리는 방울 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남선이 남기고 간 온기와 바닐라 향을 오래도록 음미하고 싶었다. 이마에 얌전히 내려앉던 입술의 감촉도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인영의 마음속에 봄볕이 쨍하게 비치며 훈훈한 봄바람이 살랑였다.

 

그때, 방울이 요란하게 짤랑거리며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들었다. 새나가 하이힐을 또각대고 뭐라고 떠들며 들어오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이런 식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여자였다.

 

“으아아, 춥다, 추워. 좀 있으면 봄인데 날씨가 미쳤나? 언니, 나 뜨끈한 카페모카 한 잔만.”

 

새나가 양손을 비비며 테이블에 앉았다.

 

“휘핑크림도?”

 

“당연하지. 알면서.”

 

인영은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머그잔에 초콜릿 소스와 커피를 담아 섞은 뒤, 데운 우유를 붓고 휘핑크림을 올린 다음 초콜릿 소스로 장식했다. 커피를 받은 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 하트래? 뭔 바람이 불어서?”

 

“밸런타인데이잖아.”

 

인영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머금고 돌아서서 본인이 마실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그때 새나의 감탄이 들려왔다.

 

“오오, 초콜릿이네! 나 먹어도 되지?”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새나는 이미 포장을 잡아 뜯는 중이었다.

 

“황새나!”

 

안에는 딱 네 개의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동그라미, 세모, 하트, 별. 새나가 별 모양을 집어 들었다.

 

“왜, 우리 사이에 네 거 내 거가 어딨다고?”

 

새나가 입 안 가득 초콜릿을 물고 웅얼거리다 포장 안쪽에 끼워진 작은 카드를 발견했다.

 

“어, 이런 게 있었어!”

 

“이리 줘!”

 

인영이 재빨리 손을 내밀었지만 새나는 몇 발짝 물러서서 손을 높이 들었다. 그녀보다 키가 작은 인영은 카드에 손이 닿지 않았다. 새나가 팔을 번쩍 든 채로 고개를 젖히고 카드에 적힌 문구를 읽었다.

 

“인영아, 내 밸런타인이 되어 줄래? 너의 수호천사, 남선. 언제나 사랑을 담아?”

 

“이리 내 놓으라고!”

 

인영은 풀쩍 뛰어서 카드를 빼앗았다. 소중한 카드는 이미 새나와 인영의 손을 거치며 구겨진 뒤였다. 인영의 속상함에도 아랑곳없이 새나는 박수를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언니, 어휴,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몰래 만나고 있었던 거야? 형부가 알면 어떡하려고!”

 

순간, 인영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이한테 절대로 말하지 마.”

 

“미쳤냐? 언니 경치라고?”

 

말은 저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황새나는 그런 여자였다. 기분이 내킬 때면 뒷일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인영이 무진에게 당한 폭력의 일부는 새나 때문이기도 했다. 눈치 없이 방정맞은 입을 놀려대는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인영은 새나를 온전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자유분방함이 부러웠다. 곁에 두고 흉내 내 보려 해도 절대 터득할 수 없는 속성이었다.

 

“에이, 내가 또 멍청한 짓 했네. 자자, 사과의 선물!”

 

새나가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남선이 인영에게 준 것과 같은 제품이었다. 새나의 가방에는 초콜릿이 가득했다. 오늘 손님들에게 줄 거라고 했다. 그녀가 운영하는 바(bar)인 아프로디테를 찾는 손님들이었다.

 

“언니는 무슨 모양 먹을 거야?”

 

“난 나중에.”

 

“아오, 이 답답이. 먹고 양치질 하면 돼. 자, 맛이나 좀 봐봐.”

 

“……그럼 난 동그라미.”

 

인영은 동그라미 모양의 초콜릿을 집어 조심스럽게 한 입씩 깨물어 먹었다. 혀까지 함께 녹아버릴 것처럼 달았다. 남선과 함께하면 매일 매일이 이렇게 달콤할까. 자신이 그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남편이 과연 놓아줄까.

 

인영은 결국 다 못 먹고 반쯤 남은 조각을 내려놓았다. 계속 먹다가는 낭만에 취해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새나는 손님들한테 준다던 초콜릿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집어 먹고 있었다.

 

“적당히 좀 먹어. 이 썩겠어.”

 

“양치질 하면 괜찮다니까. 언니 이럴 때 보면 꼭 누구 같아.”

 

“그나저나 이렇게 많은데 왜…….”

 

인영이 새나의 가방에 든 초콜릿들과 엉망으로 뜯긴 남선의 초콜릿 상자를 번갈아봤다.

 

“원래 남의 거 뺏어 먹는 게 더 맛있잖아?”

 

새나가 새빨간 입술로 손끝에 묻은 초콜릿을 쪽쪽 빨며 해죽거렸다.

 

인영은 새나가 말하는 ‘남의 것’이 비단 초콜릿뿐 아니라 남자도 뜻함을 알고 있었다. 화냥년, 악마 같은 년, 그 순진한 얼굴로 잘도 그런 짓을!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과 매정한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인영은 고개를 저으며, 다 식어버린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들이켰다. 썼다. 인생이 늘 그렇듯. 달콤함을 맛 본 뒤라 더욱 그랬다.

 

“그이가 요즘도 바(bar)에 오니?”

 

“아니, 못 본 지 좀 됐어. 맨날 놀고먹는 인간이 뭐 그리 바쁜 척이야?”

 

새나의 대답에 인영은 난데없는 체기를 느꼈다. 황새나, 내가 모를 줄 아니? 새나도 가증스럽고 남편도 가증스러웠다.

 

살아남고자 끌어들인 인연들이었다. 그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인영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다른 인연은 철저히 배제해 왔다. 그들이 없다면 인영은 완전히 혼자였다.

 

“아우, 배불러. 오늘 저녁 안 먹어도 되겠다.”

 

새나는 초콜릿을 그새 네 상자나 해치웠다. 아까 주문한 카페모카도 바닥이 드러난 지 오래였다.

 

“언니, 나 간다! 운동 좀 해야겠어.”

 

새나는 다시금 하이힐을 또각대고 방울을 시끄럽게 울리며 카페 문을 열었다.

 

공기가 찼다. 입은 것이라곤 얇은 스타킹 한 겹뿐인 다리를 타고 한기가 올라왔다. 폭신한 털 코트를 입었지만 어깨가 절로 움츠려졌다.

 

그럼에도 새나는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걸었다. 다리를 힐끔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스타킹은 당당한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가느다란 망사 사이로 보여줄 듯 말 듯 애를 끓이는 자태에 남자들은 넋을 놓았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흥분이 피어올랐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단 것을 많이 먹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자, 더부룩하던 속이 꺼졌다. 그 동안 해가 완전히 지고 세상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새나는 바(bar)로 향했다. 캄캄한 가게 안에 조명을 밝혔다. 간판에도 불을 밝혔다. APHRODITE 라는 아홉 개의 알파벳이 선명하게 빛났다.

 

작지만 소중한 가게였다. 이곳에서 그녀는 여신, 아니 신이 되었다. 남자들이 그녀의 발가락 하나라도 핥아 보려고 머리를 조아렸다. 새나는 그들의 뒤통수를 하이힐 굽으로 찍어 누르며 그들 위에 군림했다. 그들의 아내들이 쳐들어와 새나가 공들여 말아 놓은 머리를 쥐어뜯고 욕만 해대지 않는다면 꽤나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다.

 

화냥년이라고 눈 흘기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흥, 그러는 엄마는 뭔데? 엄마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 내가 화냥년이 되고 싶어서 됐어? 내가 그 괴물한테 짓밟히는 동안 엄마는 어디서 뭘 했는데?

 

괴물이 사라진 뒤에 새나는 또 다른 괴물의 구속을 받아야 했다. 바로 엄마였다. 새나는 엄마에게 제대로 된 화냥년이 뭔지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가게에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새나는 기억 속의 엄마를 구둣발로 걷어차 시커먼 낭떠러지로 밀어 넣은 뒤 화사한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주문받은 술과 함께 초콜릿을 내 가자 그들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웬 초콜릿?”

 

“오늘이 밸런타인데이잖아요. 사모님 가져다 드리세요.”

 

“에이, 새나가 준 걸 마누라한테 주면 아깝지.”

 

손님들과 농을 주고받는데 출입문에 달린 방울이 울리며 무진이 들어섰다.

 

“왔어?”

 

그는 고개만 까딱하고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을 못마땅한 듯 쳐다보더니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보이지 않는 벽 너머로 무심하게 시선을 던진 채 그는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새나는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옆 테이블의 남자들도 무진을 힐끔댔다.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의 눈길마저 사로잡는 남자였다. 2미터에 가까운 장신에 우람한 어깨와 튼실한 다리,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이목구비, 한 번 마주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깊고 차가운 눈빛. 고대 로마인들이 칭송하던 전쟁의 신 마르스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새나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혐오했다. 잠깐 사랑을 나누기엔 최고였으나 평생의 반려로는 최악인 남자였다.

 

새나는 그가 늘 마시는 칵테일을 준비했다. 냉장고에 차갑게 보관된 유리잔을 꺼내 얼음을 가득 담고 소다워터를 반쯤 담은 뒤 에스프레소를 내려 얼음 위에 따랐다. 갈색의 커피가 탄산수를 타고 내려가다 중간쯤에 멈춰 층을 이뤘다. 새나는 만다린 나폴레옹 리큐어를 꺼내 얼음 위에 두 바퀴 돌려 따른 뒤, 얇게 썬 오렌지 슬라이스를 올려 장식했다. 명장(名將)이자 황제였던 한 남자 이름을 딴 보나파르트 칵테일, 군신(軍神) 아레스에게 어울리는 음료였다.

 

칵테일과 함께 초콜릿을 내 가자 무진은 세모 모양을 집어 들었다. 딱딱하게 얼려둔 초콜릿이 강한 어금니 사이에서 와드득와드득 부서지고, 그는 차가운 칵테일을 입가심 삼아 들이켰다.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가며 그의 또렷한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형부, 오랜만이네. 요즘 통 안 오더니.”

 

“인영이가 다시 소설을 쓰고 있어.”

 

묘하게 어긋난 대답에 새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나한텐 아무 말 없던데? 아, 혹시 그래서!”

 

새나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돌아보는 무진의 눈빛이 번뜩였다.

 

“너도 본 거야? 그렇지? 그 자식이 여기도 온 거지?”

 

“아니, 아니야. 아아, 사실 모르겠어.”

 

새나는 남선이 주고 간 초콜릿과 카드에 대해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녀는 인영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다. 아픔이 많은 여자였다. 배우고 싶은 점도 많은, 야무지고 올곧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왜 이 박무진 같은 인간한테 당하고만 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나약함이 새나의 마음속에 끝 모를 혐오를 일으켰다. 자신이 인영이었다면 당장 무진을 차버렸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남자가 인생에 발을 들이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무진이 피식 웃었다. 그 미소는 잘 벼려진 칼날에서 반사되는 달빛 같았다.

 

“너희 둘 사이에도 비밀이 있나?”

 

있다. 새나가 인영을 미워하게 되면서부터. 새나는 완벽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인영이 존재하는 한 새나는 2인자의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심리를 눈치 챈 듯, 언제부턴가 인영이 새나를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인영이 오해하는 게 있었다. 새나가 원하는 것은 박무진이 아니었다. 주인영이었다. 그것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 특히나 박무진 이 남자에게는. 인영을 위해서라면 눈 하나 깜짝 않고 새나의 목을 그어버릴 냉정한 인간이었다.

 

새나는 특유의 농염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당연하지. 도둑질은 몰래 하는 거잖아?”

 

무진의 허벅지를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 속에서 비열한 욕정이 피어올랐다.

 

새나와 시간을 보낸 뒤, 무진은 집으로 돌아갔다. 방 두 개짜리 월세 아파트, 인영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 간신히 마련한 집이다.

 

동전 한 푼 벌어온 적 없고 집안일도 하지 않는 남자이지만 무진은 떳떳했다. 그는 괴물들에게 속박당한 공주를 구한 영웅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인영은 진즉에 미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녀가 최남선과 같은 글쟁이가 아니라 사나이 중의 사나이인 박무진을 선택한 이유였다, 라고 무진은 굳게 믿었다.

 

복도를 면한 작은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무진은 뱃속에서 부글거리는 진한 분노를 느꼈다. 인영이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만족을 모르는 여자다. 무진과의 관계가 삐걱대면 늘 저렇게 소설로 도피한다. 정면 돌파란 주인영에게 목숨을 버리는 일보다도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무진이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작은 방에서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인영이 노트북을 급히 덮은 것이다. 종종거리는 발걸음 뒤로 인영이 얼굴을 내밀었다.

 

“늦었네. 저녁은?”

 

무진은 대답 대신 따귀를 날렸다.

 

“아앗!”

 

인영이 얼굴을 감쌀 새도 없이 뒤로 나가 떨어졌다. 무진은 책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우악스러운 손놀림으로 노트북을 펼쳤다. 패스워드 입력 창이 떴다.

 

“비번 말해.”

 

“말해줄 것 같아?”

 

“그렇지. 그럴 리가 없겠지.”

 

무진은 노트북을 다시 덮은 다음 높이 들어 책상 모서리를 내리쳤다. 쾅쾅 소리가 연이어 난 후에 노트북은 너덜너덜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인영의 눈동자에 눈물이 어렸지만 시선은 텅 비어 있었다.

 

“또 그 자식 생각하나 보군.”

 

무진이 중얼거리며 인영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커다란 손이 다시 한 번 인영의 뺨을 후려쳤다. 인영은 비명조차 못 지르고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은혜도 모르고.”

 

무진은 나지막하게 내뱉고, 책상 위에 놓인 인영의 스마트폰도 책상 모서리에 찍어서 부숴버렸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서는 와이파이 공유기를 잡아 뽑은 뒤 그것도 벽에 힘껏 던져 박살을 냈다.

 

작은 방으로 돌아갔다. 인영이 가냘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무진의 도움을 청했을 때. 약하디 약한 소녀의 몸으로는 저를 능욕하는 괴물에 맞서기가 힘들었다. 대항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더 큰 폭력이었다. 그녀에게는 괴물을 능가할 다른 괴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무진이 대신 나선 것이다.

 

무진은 그때 망설이지 않았다. 괴물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 온몸이 희열로 들끓었다. 괴물과 무진 자신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진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움켜진 손아귀 안에서 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지는 설골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퍼렇게 벼린 식칼로 그 같잖은 남성의 상징을 난도질할 때는 마약과도 같은 환희에 사로잡혔다.

 

괴물의 숨통을 끊었지만 또 다른 괴물이 나타났다. 인영의 엄마였다.

 

피 맛을 본 무진은 나머지 괴물도 없애자고 인영을 종용했다. 그녀는 완강히 거부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 괴물도 무진이 처리하고 말았지만…….

 

무진은 인영을 지켜왔다. 애초에 그것이 인영이 바란 것이었다. 하지만 인영은 괴물들이 사라지자 무진을 두려워했다. 가족이나 연인이 아닌 짐으로만 여겼다.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무진이 머리보다 주먹을 쓰며 살아온 남자라도 인영의 감정 변화를 모를 리 없었다. 그것이 무진의 마음속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분화구에 불을 지폈다. 화산은 활활 불타올랐다. 무진은 차라리 그 불길에 휩싸여 재가 돼 버리기를 바랐지만 인영에게 서운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주인영, 네가 원하는 게 대체 뭐야? 내가 사라져 줄까?”

 

“나도 모르겠어, 어쩌면 좋을지.”

 

“네가 할 일은 하나뿐이야. 날 사랑하는 거.”

 

“오빨 사랑해. 하지만…….”

 

“그럼 됐어. 이제 그 자식은 잊어버려.”

 

무진은 인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눈물에 젖어 찝찌름한 입술에 고소한 초콜릿 향이 배어 있었다.

 

 

그로부터 반 년 뒤, 카페에서 커피를 받은 김 순경은 헐레벌떡 파출소로 돌아갔다. 얼음이 녹을까 봐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더운 날씨 탓에 살이 익을 것 같아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벤치에 앉은 여자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진하게 풀 메이크업을 한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봤다. 김 순경도 어리둥절해졌다.

 

이런, 벤치에 앉은 건 다른 사람이었다. 아까 그 여자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자수하러 온 사람이라고 내버려 두고 자리를 비운 게 실수였다. 윗분들이 알면 얼마나 야단을 치려나.

 

당황한 김 순경이 손을 내민 사실도 잊고 망연자실하는데 여자가 커피를 받아 흔들며 들여다봤다.

 

“뭐야, 이건.”

 

“아, 커, 커피요. 저기, 민원접수 하러 오셨나요?”

 

“요즘은 경찰이 이런 서비스도 하나?”

 

다리를 꼬며 놀리듯 웃는 여자의 모습이 요염했지만 김 순경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때, 여자가 잔을 도로 내밀었다.

 

“이왕 해 주실 거면 아이스카페모카로. 휘핑크림 얹어서요.”

 

뭐라고? 이건 또 무슨 정신 나간 여자람. 오늘 여자들이 날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건가? 그것도 파출소에서 경찰을? 김 순경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러다…….

 

 

며칠 후, 이현숙 박사는 새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주인영 씨와 자매지간이시라고요?”

 

“네. 남선이가 말 안 했어요?”

 

“네. 성이 달라서 몰랐네요. 개명하셨나요?”

 

“맞아요. 원래 엄마 따라 ‘주’씨였는데 엄마가 너무 싫어서 성도 이름도 다 바꿔버렸어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한 마디로 사이코였어요. 사람을 집에 가둬놓고 아무데도 못 가게 하고 아무도 못 만나게 했거든요. 그래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어요. 하긴 치마도 종아리 보인다고 못 입게 했는데 교복이 치만 걸 어떡해. 겨울에 입술 터서 립밤이라도 바르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냐고 난리를 치고요. 차라리 감방에 갇히는 게 낫지. 이 썩는다고 초콜릿 같은 것도 못 먹게 했다니까요. 아플까 봐 걱정한 게 아니라 병원비 나올까봐 절절 맨 거죠. 그래 놓곤 이빨 한 번 닦아준 적도 없으면서.”

 

“정말 힘드셨겠군요.”

 

“언니야 그랬죠. 나야 내놓은 자식이라, 내 맘대로 하고 살았어요. 엄마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거든요.”

 

새나가 갑자기 낄낄대며 웃었다.

 

“아아, 그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내가 미니스커트에 탱크 탑 입고  그 여자 화장품 진하게 바르고 나갔다 오니까 그 여자가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아세요? 저러다 뒷목 잡고 쓰러지겠구나, 쓰러져라, 쓰러져라 그랬죠.”

 

“그래서 돌아가신 건가요?”

 

“아뇨, 그 정도로는 안 죽더라고요. 대신 날 잡던데요? 화냥년아, 악마 같은 년아, 이 꼴로 니 아빨 꼬신 거지? 하면서요. 흥, 아빠는 무슨 아빠, 지 기둥서방이었지. 지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려들길래 언니가 형부, 아니 그땐 무진 오빠였죠, 무진 오빠를 불렀어요.”

 

“그럼 박무진 씨가 어머니를…….”

 

“맞아요. 뭐, 형부는 죽은 사람이니까 무슨 짓 했는지 얘기해도 상관없잖아요, 그죠? 암튼 그날부로 언니랑 난 자유가 됐어요.”

 

“심정이 어떠셨나요?”

 

“자유가 됐다니까요?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어요. 형부를 왜 진즉에 안 불렀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주인영 씨는 그 때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활발하게 떠들던 새나는 별안간 침울해졌다.

 

“언니는 좋아할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고요. 속내야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엔 그랬어요. 나랑 형부를 어찌나 원망하던지. 등신같이, 그렇게 못살게 굴던 엄마가 사라졌는데.”

 

 

그로부터 9년 전, 인영은 뒤 베란다 창을 열고 큰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매미들이 귀 따갑게 울어대고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여름이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따위는 방해도 안 된다는 듯 아이들은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뛰어다니고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 걸었다.

 

인영은 한 손을 내밀어봤다. 저 찬란한 햇살을 만져 볼 수 있을까. 희멀건 팔뚝이 햇빛을 반사하며 빛났다.

 

중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틀어박힌 지 5년이었다. 인영은 남들처럼 대학도 가고 친구도 사귀고 싶었지만 엄마가 현관문을 밖에서 잠가놓는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아파트라서 창문으로도 나갈 수가 없었고 엄마가 휴대폰이며 인터넷도 모두 끊어놔서 외부와 연락할 길도 없었다.

 

처음에 인영은 엄마가 그러는 게 무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새아버지를 그렇게 처참하게 살해하고 유기한 건 무진이었지만 죄는 인영에게도 있었다. 무진을 끌어들인 게 인영이니까. 엄마는 무진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신세한탄과 악다구니에서 인영은 엄마가 다른 이유에서 비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만한 남자가 없었는데. 네년이 다 망쳐놨어!”

 

엄마는 마지막 남편인 장도식이 그 전의 남자들과는 달리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고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새아버지는 정말 엄마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았다. 그의 눈과 손은 인영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언제부턴가 인영은 새아버지가 엄마와 같이 산 이유가 인영 자신 때문이 아닌지 의심했다. 의심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멋대로 오해까지 만들어내고 있었다. 엄마는 자책보다 남 탓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 순진한 얼굴로 잘도 그런 짓을! 더러운 것, 화냥년 같으니라고!”

 

애초에도 모녀 사이는 살갑지 않았지만 이제는 철천지원수가 되어 갔다. 그에 따라 인영이 새나에게 의지하는 날도 늘어갔다.

 

새나는 늘 밝고 자유로웠다. 새나가 들려주는 바깥세상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무슨 재주를 가졌는지 새나는 엄마가 잠근 문을 손쉽게 열었다. 새나는 거침없었다. 엄마가 장롱에 숨겨둔 비상금을 훔치고, 엄마 화장품도 훔쳐 바르고, 밖에 한 번 나가면 엄마가 퇴근하도록 돌아오지 않아 인영을 애태웠다.

 

“언니, 이럴 필요 없다니까. 시간 맞춰 오면 돼. 답답하게 이러지 말고 같이 나가자, 응?”

 

“아니야, 엄마 말이 맞아. 난 죗값을 치러야 해.”

 

“언니가 뭘 잘못했다고? 장도식 그 인간이 죽을 짓 했지. 언니가 죽인 것도 아니잖아.”

 

“새아빠가 그렇게 된 건 다 나 때문이야.”

 

“뭐어? 언니, 미쳤어? 엄마가 하는 말을 진짜 믿는 거야? 그 인간은 처음부터 로리타에 사이코였다고!”

 

“그래도 그럼 안 되는 거였어. 이렇게 벌을 받으면 엄마가 용서해 주실 거야.”

 

“용서? 그 여자가 그럴 자격이 있어? 싹싹 빌어야 될 사람은 그 여자야!”

 

새나는 말이 안 통해서 속 터진다며 인영만 두고 훌쩍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적적해졌다. 물밀듯이 혼란이 덮쳐왔다. 인영은 엄마의 말도 새나의 말도 모두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은 무엇인지 몰랐다. 모든 것은 엄마가 결정해왔으니까. 이상야릇한 눈길로 딸을 쳐다보는 남자를 집에 들인 것도, 남자의 악행을 나 몰라라 한 것도, 무진과 함께 남자의 사체를 유기한 것도, 딸을 신고하지 않은 것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 동네로 이사와 딸을 감금한 것도.

 

“또 궁상맞게 그러고 있어?”

 

무진이었다. 새나가 나가면서, 문밖에서 죽치고 있던 그를 들여보낸 것이다.

 

인영은 혼자가 아니란 생각에 안도했다. 그의 품에 안겼다. 넓고 단단한 가슴이 듬직했다. 그에게서 바람 냄새가 났다.

 

“뭘 하고 돌아다닌 거야? 이거 피야?”

 

“아아, 지 주제도 모르고 깝죽대던 게 하나 있어서.”

 

그가 싸늘하면서도 눈부시게 웃었다. 인영은 그를 보며, 이곳으로 급하게 이사 오는 바람에 미납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렸다. 인영이 어릴 때부터 좋아한 책이었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책 같은 걸 사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수시로 도서관에서 빌려와야 했다. 인기가 좋은 책이라 예약하는 사람이 많아 한 번 보려면 몇 주 몇 달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운 좋게 빌려온 날에는 밤이 새고 종이가 닳도록 그것만 들여다봤다.

 

인영은 아레스가 되기를 꿈꿨다. 연습장에 그의 모습을 그려본 것도 여러 번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덩치 크고 힘세고 용맹한 남자였다면 새아버지가 건드리지 못 할 거라 여겼다. 마침내 그런 남자를 만났지만, 그리고 그에 의해 새아버지에게서 해방되었지만 무진의 잔인함과 포악함은 인영에게 새로운 족쇄가 되었다.

 

“아까 새나랑 잠깐 얘길 했는데.”

 

“그래?”

 

인영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무진도 새나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이들이었다. 둘이 모이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 그 여잘 해치우자던데. 자기가 판을 깔아보겠다고.”

 

“새나가 그런 말을? 안 돼, 난 못 해.”

 

인영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넌 아무 것도 할 필요 없어. 우리가 알아서 할 거니까.”

 

그때 현관문에서 열쇠가 덜컹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성 없는 걸로 봐서 엄마가 분명했다. 인영은 무진을 재빨리 방으로 피신시켰다.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이 년이 또 기어나간 거야? 내 이걸 들어오기만 하면!”

 

엄마는 거실에 물건이 흐트러져 있는 것을 시작으로 온갖 것에 대해 트집을 잡더니, 인영을 무릎 꿇리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다 큰 년이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엄마 말도 안 들어? 내가 누구 때문에 이따위로 사는데! 이럴 거면 나가! 나도 내 인생 좀 살자고!”

 

하지만 인영은 엄마가 자길 내보내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인영이 없으면 엄마의 불평불만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엄마에게 인영은 밖에서 받아온 수모와 경멸을 쏟아 부을 하수구와도 같았다. 게다가 엄마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아무리 미운 딸이라도, 곁에 아무도 없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언제는 남의 인생 살았냐? 너 따위가 무슨 엄마라고.”

 

새나가 돌아왔다. 엄마는 더욱 격분했다. 본인 스스로도 터져 나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 하다 잡히는 대로 손에 쥐고 새나를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악마 같은 년! 말버릇 하고! 이 꼬락서니 좀 봐. 이러고 니 아빨 꼬신 거지?”

 

새나는 얻어맞은 곳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킬킬대기만 했다.

 

“아빠 같은 소리하네. 니 기둥서방이 왜 내 아빠야?”

 

“아빠가 아니면 뭔데? 아빠 만들어준다고 엄마가 고생하는 거 보고도 그딴 소리가 나와? 네년이 또 그런 짓 할까 봐 엄만 이제 결혼도 못 해!”

 

“약 오르지? 남자들이 너 같은 퇴물은 거들떠도 안 보니까. 나처럼 젊고 예쁜 애한테 질투나 죽겠지?”

 

인영은 새나가 저 얄미운 입 좀 다물었으면 했지만 새나는 멈추지 않았다.

 

“버릇없는 년! 어떻게 낳았는데!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낳아 달라고 한 적도 없고 키워 달라고 한 적도 없어. 싫으면 갖다 버려.”

 

“나가! 나가라고! 못된 년, 화냥년아!”

 

“화냥년은 남자 없으면 못 사는 네가 화냥년이지!”

 

“뭐야?”

 

엄마는 눈이 뒤집어졌다.

 

엄마도 인영도 새나도 동네 아주머니들이 엄마 뒤에서 뭐라고 수군대는지 모르지 않았다. 50이 다 돼가는 나이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기다란 파마머리를 휘날리며 동네 아저씨들에게 눈웃음을 흘리는 엄마는 동네의 명물이자 여자들의 경계대상 1호였다.

 

엄마는 자신이 때리는 존재가 제 배로 낳은 딸이란 사실도 잊은 듯 했다. 새나가 눈두덩과 입술이 다 터진 채로 인영을 보며 중얼거렸다.

 

“언니, 나 이대로 죽게 둘 거야? 엄마가 더 소중해, 내가 더 소중해?”

 

인영에게 새나는 이 지옥에서 그나마 숨이 트이게 해 주는 산소호흡기 같은 존재였다. 잃어버릴 순 없었다. 할 수 없이 방문을 열자 무진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그 뒤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인영은 모른다. 무진 대신 방에 들어가 귀를 막고 꽁꽁 숨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시신은 무진과 새나가 처리했다. 인영은 집안이 말끔해져서야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 전화해 엄마가 몸이 안 좋아 더 이상 일을 나갈 수 없다고 알리고 집을 옮겼다.

 

그걸로 끝이었다. 장도식이 사라졌을 때도 엄마가 사라졌을 때도 아무도 그 두 사람을 찾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그토록 존재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인영은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서글펐다. 자신도 이 세상에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니까. 무진과 새나가 개차반 같은 짓을 하고 돌아다녀도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것은,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끊으려다가도 다시 의지하고 마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들이 없다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