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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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생을 종종 길에 비유한다. 살다 보면 곧게 뻗고 평평해서 걷기 편한 길을 걸을 때도 있고 자갈과 모래가 잔뜩 깔려 걷기 불편한 길을 걸을 때도 있고 짙은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길을 걸을 때도 있다.

 

나는 대체로 포장이 잘 되어 걷기 편한 길 위를 걸어왔다. 뾰족한 자갈이 잔뜩 깔린 길을 걷거나 엄청나게 큰 바위가 앞을 가로막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잘 넘어왔다. 내게 주어진 업보라고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자갈이 발바닥을 찔러 피가 나도 바위가 앞을 가로 막아도 나가야 한다고. 앞으로 가다 보면 결승선이 보일 거라고. 설령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해도 최선을 다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항상 제자리였다.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있었다. 그래, 나는 로터리 위에 있었다. 의지가 없으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커다란 로터리에. 되돌아보면 나는 다른 길로 갈 수 있었다.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지원했고 오해가 쌓여 내 곁을 떠난 여자친구를 잡지 않았고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안정적으로 뽑힐 회사에 지원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이정표를 찾지 않았다. 그저 내게 주어진 길만 내려보며 묵묵히 걸었다.

 

연구소에 들어온 과정이 어떻든 이곳에 와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태구를 만나, 진경 씨를 만나, 재익이를 만나, 다른 멤버들을 만나 나는 변할 수 있었다. 나는 변했다.

 

더 나은 현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 해도.

 

태구가 내게 남긴 한마디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 나는 무모한 짓을 해보려 한다. 더 나은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

 
*
 

“어서 오세요.”

 

남자는 손님을 맞이하는 점원의 목소리에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읽고 있던 갈색 가죽 양장본을 가방에 넣었다.

 

“어, 여기야!”

 

남자는 여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자는 동여맨 카키색 머플러를 풀며 남자에게 다가왔다.

 

“진짜 오랜만이다. 재익아.”

 

“진짜! 진짜 오랜만이야, 진경 누나. 일단 앉아. 뭐 마실래?”

 

“내가 주문할게.”

 

“아냐, 누나는 밥 사줘. 뭐 마실 거야?”

 

재익은 짓궂게 웃으며 카운터로 갔다. 진경은 재익이 기다리던 테이블에 앉았다. 제법 어른 티가 나는 청년을 보며 진경은 시간의 흐름을 새삼 실감했다.

 

“올해는 훈련하러 안 나가?”

 

“다음 주에 나가. 연말이라서 한국 잠깐 들어온 거야.”

 

“역시 유능한 코치님은 바쁘네.”

 

“아직 선수야. 그나저나 크리스마스인데 여자 친구 안 만나?”

 

진경은 재익이 가져다 준 카페라떼를 입에 가져갔다.

 

“누나야말로 남자친구 안 만나?”

 

두 사람은 웃고 말았다.

 

“우리가 거기서 나온 지 얼마나 됐지?”

 

진경은 손가락을 접으며 수를 셌다.

 

“삼 년? 사 년인가?”

 

재익도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접었다.

 

“사 년. 만으로 하면 삼 년이네.”

 

“시간 참 빠르다.”

 

두 사람은 TRAST 연구소를 나오던 날을 떠올렸다. 세세한 모습은 서로 다르게 기억했지만 큰 그림은 비슷했다.

 

두 사람이 도왔던 남자는 돌아오지 못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찌그러진 무언가가 ‘MIRROR-ONE’ 안에 있었을 뿐이었다. 결말을 아는 영화를 본 것처럼 멤버들은 다진의 최후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다진이 돌아온다면 그건 기적이라고.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이라고.

 

닥터는 약속을 지켰다. 다음 날 바로 멤버들은 연구소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