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 해리성 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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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혁 오빠? 상혁 오빠 맞지?”

그를 다시 만난 건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이는 한 카페에서였다. 제주도에 정착한 지 1년, 유진은 같은 직장 선배, 도연과의 만남을 위해 토요일 오전, 한 카페에 왔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유진이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보고 있는데 도연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분은요, 언니?”

결혼을 앞둔 도연이 약혼자를 보여주겠다며 주말에 시간을 비워놓으라고 했을 때 유진은 망설였다. 몇 년간의 긴 고통의 시간을 끝내고 새 출발을 하려 제주도에 내려 온지 1년, 여러모로 불안정했던 유진을 살뜰히 챙기며 도와줬던 도연의 제안을 유진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주말에 바람도 쐬고 해야지, 그리고 서진씨 주변에 괜찮은 친구들 많거든.”

반 강제적으로 약속을 정한 도연의 의도를 유진은 모르지 않았다. 제주도 토박이인 도연은 직장 외에는 집에만 처박혀 지내는 유진을 자주 밖으로 불러내 숨은 명소나 맛집을 데려가며 유진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 애썼다. 도연 덕분에 유진은 낯선 곳에서의 삶에 차츰 적응해갔고 조금씩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주차 중, 커피 한 잔 하고, 좋은 데 가서 점심 먹자.”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훤칠한 키에 준수하게 생긴 도연의 남자친구, 서진이 카페에 들어섰다. 낯선 이와의 만남이 익숙지 않은 유진이 어색한 듯 서진을 마주한 순간, 유진은 과거로 빨려들 듯 정신이 혼미해졌다.

“상혁 오빠? 상혁 오빠 맞지?”

도연의 남자친구 서진을 바라보며 사색이 된 유진은 푸르르, 입술을 떨었다. 유진의 넋 나간 듯한 행동에 도연과 서진은 서로를 마주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음, 정말 닮긴 닮았네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유진이 내민 핸드폰 속 사진을 본 서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유진에게 말했다. 유진은 흐릿하게 얼굴만 확대된 사진을 바라보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유진이 네가 말했던 예전 남자친구?”

사진을 본 도연 또한 꼭 닮은 두 사람의 모습에 놀라며 유진에게 말했다.

 

2년을 함께했던 남자친구 상혁이 3년 전, 갑작스레 사고를 당해 죽고 나서 유진은 오랜 시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상혁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유진은 다니던 학교까지 휴학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집안에 처박혀 시간을 보내다 1년 전, 이곳 제주도에 내려왔다. 그와의 추억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1년, 도연의 도움으로 제법 제주에서의 생활에 적응했고 과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생각한 이때, 유진 앞에 상혁과 꼭 닮은 서진이 나타난 것이다. 서진은 도연과 마찬가지로 제주도 토박이였고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기간을 제외하고 서진은 줄곧 제주에서 지냈다고 했다.

“죄송해요, 제가 괜히 이상한 소릴 해서…”

유진의 사과에 도연과 서진은 손 사레를 치며 웃어넘겼지만 그들과 같이 있는 내내 유진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말투, 말할 때의 표정과 손짓, 걸음걸이 등, 얼굴뿐 아니라 습관까지 상혁과 꼭 닮은 서진을 보고 유진은 과거의 상혁과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3년 전, 유진에게 상혁의 죽음을 알려온 사람은 그의 누나였다.

– 김상혁, 뇌출혈로 사망, 가족 외에 조문객은 받지 않겠습니다.

초라한 한 줄 메시지로 전달된 상혁의 죽음을 유진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죽음을 통보받고 나서야 유진은 그의 주변 사람이나 가족사, 그의 신변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와 그의 죽음을 공유할 수도, 함께 아파할 수도, 장례식에 참석해 마지막을 함께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유진은 온전히 혼자, 슬픔을 견디어야 했다. 집에 틀어박혀 기억을 떠올리고 떠올려 상혁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모두 헤집고 나서야 그가 바닷가에서 나고 자랐다는 기억을 간신히 찾아냈다. 유진을 제주도로 이끈 것은 과거를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 상혁의 흔적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카페에서의 만남 이후, 유진은 도연과의 대화 도중 틈틈이 도연의 남자친구 서진에 대해 물었다.

“서진 오빠는 언제 제주도로 돌아왔어요?”

“음, 졸업하고 바로니까 한 3년 됐나? 대학 다닐 때는 서울에 정착할까 했는데 안 되겠더래, 바다 보며 자란 사람들은 바다를 못 잊거든.”

“그럼 언니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사귀었던 거예요?”

“아니, 서진씨가 제주도로 돌아오고 나서 얼마 있다, 우리 둘 다 서핑에 미쳤거든, 서핑 하러 갔다가 우연히 다시 만났어. 옛날 서진씨 같았으면 내가 거들떠도 안 봤지, 걔 서울 갔다 와서 사람 됐어. 흐흐.”

유진은 죽은 남자친구 상혁이 함께 워터파크에 갔다가 무심코 흘린 말을 떠올렸다.

‘아, 서핑하고 싶다, 유진이 너도 배우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