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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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안에 들어서자 어두워서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에, 병의 라벨만 보일 정도의 조명이 채워져있었다.

 

 

 

계절이 무르익어가는 시간에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고 있었다. 어두워서 검은색인지 네이비색인지 모를 테이블에 잔이 두 개 올려져 있고, 약간의 거리를 둔 사이가 초면에 만났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술을 마시며 잔 너머로 서로를 살피는 게 꼭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고양이들 같았다. 머리를 높게 묶은 여자는 얼음이 다 녹아가도 술잔을 비우지 못했지만, 안경을 쓴 여자는 자연스레 메뉴판 너머로 눈이 돌아갔다. 그렇게 두 번째 잔을 시키고 나서야 둘의 온도가 비슷해진 듯 보였다.

 

 

 

 

 

 

 

“작가님은 그럼, 경험에 빗대서 글 써요?”

 

 

 

“처음 글을 쓸 땐, 겪었던 일처럼 저절로 써지더라고요.”

 

 

 

“그다음에는요?”

 

 

 

“자꾸 경험이 묻어 나오고 내가 바라는 환상을 적게 돼요.”

 

 

 

“…”

 

 

 

“그래서 요즘 참 힘들어요.”

 

 

 

 

 

 

 

작가가 높게 묶었던 머리가 흘러내렸다. 작가는 머리를 넘기고 그 손을 테이블 위 잔으로 향했다. 손가락 끝에는 얼음이 녹아가는 온도가 전해졌다.

 

 

 

 

 

 

 

“그리고 작가님이라고 하지 마요, 그냥 글 배우는 사람이에요.”

 

 

 

“왜요? 저는 형사님이라고 불러주면 그렇게 좋던데.”

 

 

 

“형사님 맞죠, 졸업하면?”

 

 

 

“그랬으면 좋겠어요.”

 

 

 

 

 

 

 

작가는 멋쩍은 듯 얘기했지만, 형사의 안경 너머로 진지함이 보였다.

 

 

 

 

 

 

 

“여기 자주 오세요?”

 

 

 

“아뇨, 오늘 처음 왔어요.”

 

 

 

“…”

 

 

 

“왜요? 자주 올 거처럼 생겼어요?”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작가님이야말로 정-말 안 어울리시네요.”

 

 

 

“제가요?”

 

 

 

“여기 목적 있는 사람들이 오는 데잖아요.”

 

 

 

“저는…”

 

 

 

“믿어줘야 될지 말아야 될지-”

 

 

 

“트위터에 뜨길래…”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작가는 민망한 듯 얼굴이 빨개졌다. 그 모습이 형사는 싫지 않았다.

 

 

 

 

 

 

 

“먼저 말까지 걸었잖아요 아-주 자연스럽게.”

 

 

 

“그건…”

 

 

 

“저 맘에 들었어요?”

 

 

 

“…”

 

 

 

“와- 거짓말 못 하나 보네?”

 

 

 

“..안경이 맘에 들어서요.”

 

 

 

“네?”

 

 

 

“그 안경 어디서 샀어요?”

 

 

 

 

 

 

 

형사는 안경 너머로 작가의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하, 안경이 맘에 든다는 얘기는 또 처음 들어보네.”

 

 

 

“오래.. 썼어요?”

 

 

 

“아뇨, 오늘 지적하여 보이고 싶어서 쓴 거예요.”

 

 

 

“저 잘 보여요?”

 

 

 

“그럼요-, 여긴 어두운데 그쪽은 아주 후광이 나서 눈을 못 뜨겠네요.”

 

 

 

“제가 써봐도 될까요?”

 

 

 

“네?”

 

 

 

“…”

 

 

 

 

 

 

 

형사가 잔을 들어 올리던 손을 멈추고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죄송해요, 궁금해서…”

 

 

 

“사실 도수가 엄-청 높아요, 보니까 술 꽤 마신 거 같은데 이거 쓰면 바로 웩- 쏠릴걸요?”

 

 

 

“하하, 초면에 그럴 수는 없죠.”

 

 

 

 

 

 

 

작가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잔을 넘겼다.

 

 

 

 

 

 

 

“왜 혼자 술 마시고 있어요? 이쪽 친구 없어요?”

 

 

 

“네.. 저 원래 친구 없어요.”

 

 

 

“와- 그건 나랑 똑같네.”

 

 

 

“정말요? 의외네요.”

 

 

 

“공부하느라, 운동하느라, 친구 만들 시간이 없네요.”

 

 

 

“친구들한테 인기 엄청 많을 스타일인데..”

 

 

 

“친구한테 만요?”

 

 

 

“아, 아뇨”.

 

 

 

“하하-”

 

 

 

 

 

 

 

형사는 웃으며 잔을 비웠다.

 

 

 

 

 

 

 

“술 잘 드시네요.”

 

 

 

“혼자 마시면, 주량이 늘어요.”

 

 

 

“왜요?”

 

 

 

“그만 마시라고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

 

 

 

“자리 옮길래요? ”

 

 

 

“좋아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작가와 함께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시간 가량 얘기를 하던 두 사람은 밖으로 나섰다.

 

 

 

 

 

 

 

생각보다 추워진 날씨에 팔을 쓸어내리던 형사가 작가를 쳐다봤다. 약간 몽롱해 보이는 얼굴을 보자니 스스로 술이 깼다. 좁은 길목을 걸어서 한 번, 두 번 꺾어 나오자 사람들이 가득한 길거리가 나왔다. 방금 나온 길과는 다른, 사람이 가득 찬 거리. 형사는 이질감을 느끼고 시끄러운 클럽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둘은 생각없이 한참을 걷다가 상수까지 넘어왔다. 형사는 작가에게 자주 가는 곳이 있냐, 물었고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기대 안했어요-라고 웃으며 근처 술집으로 작가를 끌어당겼다. 형사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시끄러운 호프집에 스며들었지만 작가만 이 곳에 처음 와본듯 보였다.

 

 

 

“글 쓴다 그랬잖아요.”

 

 

 

“네.”

 

 

 

“무슨 내용이에요?”

 

 

 

 

 

 

 

주문하는 소리에 작가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아서 형사는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뭐라구요?”

 

 

 

“여기서 말하기 좀 그런데요-.”

 

 

 

“왜요?”

 

 

 

“그냥, 누가 들을까봐요.”

 

 

 

“차라리 여기서 말해요, 시끄러운 소리에 묻힐거에요.”

 

 

 

 

 

 

 

작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여기서 말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형사를 향해 평상시보다는 큰 목소리로 얘기했다.

 

 

 

 

 

 

 

“요새는 판타지물을 쓰고 있어요.”

 

 

 

“판타지물?”

 

 

 

“현실에 없는, 상상을 써요.”

 

 

 

“무슨 내용인데요?”

 

 

 

“창피해서 자세히는 말 안할래요.”

 

 

 

“더 궁금하게 그럴래요?”

 

 

 

 

 

 

 

작가는 자리를 세팅해주는 알바생이 오자, 이때다 싶어 맥주를 시켰다. 형사는 궁금함을 뒤로 한 채,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안주는 어묵에 수저를 내려놓는 스테인리스 철판까지. 챙- 소리를 내며 쇠컵에 물을 따르고 마주 앉아있던 형사가 먼저 입을 뗐다.

 

 

 

 

 

 

 

“생각보다 이름을 물어볼 일이 없어요.”

 

 

 

“왜요?”

 

 

 

“글쎄요, 마지막에 아쉬우면 이름을 물어볼 것 같은데 그래 본 적이 거의 없어요.”

 

 

 

“거의?”

 

 

 

“한 번 있었죠,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다음 사람들은 이름도 안 궁금해지더라구요.”

 

 

 

“아-.”

 

 

 

“결국 이름도 모르고 그냥 하루 술 먹고 잊는 사이가 많았어요.”

 

 

 

“그랬구나.”

 

 

 

“그 쪽 이름도 별로 안 궁금해요.”

 

 

 

“진짜요?”

 

 

 

“글이 궁금해요.”

 

 

 

 

 

 

 

형사는 당황하는 작가를 앞에 두고 잔을 싹 비웠다. 작가는 도대체 왜 궁금하냐며 물었고, 형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글에 그 쪽이 많이 묻어있을거같아요. 이름말고, 제 앞에 앉아있는 자체가 궁금해요.”

 

 

 

“…”

 

 

 

“어때요? 보여주고 싶죠?”

 

 

 

“..제가 졌어요, 대신에.”

 

 

 

“대신에?”

 

 

 

“이 술 다 마시고 난 뒤에 보여줄게요. 맨 정신에는 안돼요.”

 

 

 

 

 

형사는 만족했다는 듯이 눈이 한껏 접히게 웃었다. 작가도 맥주를 연거푸 들이키며 속이 뻥 뚫리길 바랬다. 그동안 만났던 연애 이야기, 공부하는 이야기, 취업과 하고싶은 일.. 공통점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냥 말이 잘 통했다. 이 둘은 남이 들어주길 바랬던 이야기를 서로에게 쏟아냈다. 아까의 선은 얇아진 듯 보였지만 누구하나 넘어서지 않았다. 형사의 귀가 점점 빨개졌고 작가의 목은 점점 뜨거워졌다.

 

 

 

 

 

“술 잘 마시네요.”

 

 

 

“..그 쪽은 소주고 저는 맥주니까요.”

 

 

 

“그래도 페이스 맞춰줘서 고마워요.”

 

 

 

“..그정도는 매너죠.”

 

 

 

“좀 걸을래요?”

 

 

 

 

 

 

 

이번에도 형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가 따끈따끈해진 채로 밖으로 나왔을 때, 밤공기가 정말 시원했다. 따라나온 작가는 형사를 불러세우고 마주섰다. 손 한뼘 정도 차이나는 키를 맞추기 위해서 형사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날씨가 쌀쌀한데 이제 어딜 가고싶냐고, 작가가 형사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제가 골라요?”

 

 

 

“음..”

 

 

 

“이번엔 그 쪽 스타일로 가요.”

 

 

 

“까페 가실래요?”

 

 

 

“이 시간에도 까페가 열어요?”

 

 

 

“거긴 24시간이에요, 글 쓰다가 밤새 자기도 해요. 따라와요.”

 

 

 

 

 

 

 

처음으로 앞서나가는 작가의 뒤를 쫓아가는데 등에 멘 가방이 너무 작아서 형사는 웃음이 났다. 뭐가 들어가긴 해요? 물어보자 가방을 앞으로 메고 뒤적뒤적, 짐을 뒤지는 작가였다. 그리고 작은 노트를 꺼내서 보여줬다. 아까 보여주려던거에요. 형사는 노트를 받아들고 웃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새로 쓰게 된지 얼마 안됐어요. 한 한 달 됐나?”

 

 

 

“…”

 

 

 

“좀, 어때요?”

 

 

 

“…”

 

 

 

“뭐, 좋은 얘기 안해줘도 돼요. 그냥- 쓰는거에요, 그냥.”

 

 

 

 

 

 

 

형사는 조용히 노트를 읽어 넘기다가 이내 발걸음을 멈췄다. 작가는 뚜벅 뚜벅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서자, 멀찌감치 뒤로 쳐진 형사가 보였다. 노트를 읽는 손은 멈추지 않았지만, 형사의 사고가 뚝- 끊어진 것 같았다. 작가는 형사가 왜 따라오지 않는지 궁금해져 다시 뒤로 걸어갔다. 글이 그렇게 재밌나? 순간 좋은 상상을 하려다가 형사가 떼는 입술에 눈길이 갔다.

 

 

 

 

 

“이게 뭐에요?”

 

 

 

“말,했잖아요. 판타지물.. 많이 별로에요?”

 

 

 

“..왜 나한테 말 걸었어요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