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최다미

내가 아는 최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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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었다. 정확히는 몸은 죽고 뇌만 살아남았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부모님이 가입하신 태아보험에 포함된 특약, ‘대체 신체 보장 서비스’ 덕분이다. 죽음을 앞두고, 나는 휴봇테크 연구소로 이송된 뒤 뇌만 깨끗하게 적출돼 인공 뇌척수액에 담겼다.

 

정신을 차렸을 때, 거울 속에 한 소녀가 서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낯선, 예쁘지도 밉지도 않은 얼굴, 이제부터 이게 내 얼굴이다. 키도 덩치도 딱 표준이다. 보급형이니까. 그래서 키가 원래보다 조금 커졌다. 좋아해야 하나?

 

맘에 드냐고 휴봇테크 상담원이 묻는다. 엄마 아빠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럭저럭요. 그런데 이렇게 생긴 애가 몇 명이나 더 있는 거죠?”

 

상담원의 얼굴에 당혹해하는 빛이 스치더니 곧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사는 동네에서는 너 하나뿐이란다.”

 

그 말은 이 동네를 벗어나면 나처럼 생긴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다행이네요.”

 

엄마 아빠를 위해 웃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는 예전이랑 똑같네. 얼굴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것도 다행이었다.

 

 

휴봇테크 고객 관리 기록

 

고객번호 : 20510821-20350612-7001

 

이름/성별/나이 : 최다미/여/만16세

 

대체사유 : 4개월 전 골육종 진단 받고 항암치료 시작. 사흘 전 나노봇 투입. 거부 반응으로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 발생. 고열, 호흡곤란, 의식저하,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이어짐. 염증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지는 바람에 조직을 재생할 수가 없었음. 체온이 40도에 이른 후 떨어지지 않아, 신체를 대체하기로 결정.

 

 

 

고객 상담 녹취록

 

관리번호 : 35249

 

상담일시 : 2051년 08월 21일 15시 04분

 

(전략)

 

상담원 : 가입하신 보험으로는 보급형이 전액 보장됩니다. 얼굴과 신체 사이즈는 이 카탈로그에서 고르실 수 있고요.

 

모 : 선택사항이 몇 개 없네요. 그나마도 우리 애랑 너무 달라요.

 

상담원 : 고급형 B로 업그레이드하시면 외모를 원하시는 대로 디자인해 드립니다. 추가 비용은 이 정도이고요.

 

부 : 몇 배가 뛰는군요……. 신체 기능은 어떻게 됩니까? 저희 아이가 원래 수영을 했는데,

 

상담원 : 아쉽게도 보급형은 생활방수만 될 뿐 수영이나 물놀이는 불가능합니다. 충전 단자에 다량의 물이 흡수되면 고장을 일으키거든요. 실수로 침수된 경우는 무료로 고쳐 드리고요. 고급형B는 외모만 맞춤형이라 신체 기능은 보급형과 마찬가지로 기본 사양으로 제공됩니다. 유전자를 분석해서 원래의 신체 기능까지 맞추고 싶으시다면 고급형 A를 선택하셔야 하고요. 고급형 A는 무선으로 충전하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도 됩니다. 따님과 같은 학교에 저희 제품, 아니 고객이 하나 더 있습니다. 현재 수영선수고요,

 

부 : 누군지 압니다. 하아…… 그냥 보급형으로 해 주십시오. 어떻게 생각해, 여보?

 

모 :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

 

 

나는 아침 식사 내내 엄마 아빠가 밥 먹는 모습만 멀뚱히 쳐다봤다. 엄마가 내 앞에 놓인 토스트를 가리켰다.

 

“좀 먹지 그러니?”

 

“배 안 고파.”

 

“맛이나 좀 봐. 아빠가 너 준다고 신경 써서 한 건데.”

 

“맛있어 보이고 냄새도 좋은데, 밥통 비우고 설거지하기 귀찮아. 그러니까 내 건 이제 차리지 마세요.”

 

먹고 마셔 봤자 인공위장에 쌓이기만 한다. 고대 로마 귀족처럼 맛만 보고 도로 게워내야 하는 거다. 먹는다는 행위가 이젠 노동으로만 느껴진다.

 

학교에 간 나는 전학생처럼 반 아이들 앞에 서서 인사를 해야 했다.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다미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단다. 다들 축하해 주고, 오랜만이라 낯설 수도 있으니 따뜻하게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

 

모든 게 익숙했다. 교실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단지 남들이 날 낯설어할 뿐이다. 수업 내내 곁눈질하던 아이들은 종이 치자마자 질문을 쏟아내고 누군가는 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이 안에 뇌가 든 건가? 우와, 이것 봐! 머릿결 짱이다. 진짜 같아!”

 

“야, 따가워! 뇌는 휴봇테크 연구소에 있어. 이 안에 든 거는 인공지능 회로고. 이 몸이랑 내 뇌가 신호를 주고받게 하는 거지.”

 

“뇌를 넣어갖고 다니면 안 되는 거야?”

 

“그러려면 산소랑 영양분을 공급해 줘야 돼서 구조가 복잡해진대. 이 몸은 충전만 해 주면 되니까 관리가 편하다나.”

 

“안 먹고 안 싸도 되다니, 진짜 편하겠다.”

 

“어! 그럼 생리도 안 하는 거야? 완전 부러워!”

 

“응…… 뭐어, 편하긴 하지.”

 

아기도 못 낳고. 엄마가 되는 환상 따위 가진 적 없었는데 못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억울하다. 물론 뇌에서 유전자를 복제해 인공수정하면 인공자궁에 착상시켜 낳을 수는 있다. 근데 그러면 엄마도 로봇, 아기도 로봇 같잖아?

 

“근데 너 예전이 더 나은 것 같아. 지금은 무슨 만화 캐릭터 같은데?”

 

이렇게 말한 아이는 내 베프인 현지한테 등짝을 맞았다.

 

“야, 너 그런 말 하면 어떡해?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 잊었어?”

 

“아, 맞다, 깜빡했네.”

 

에휴, 무신경함에 기분 나빠 해야 하나, 순진함을 이해하고 넘어가 줘야 하나. 그 때, 현지가 물었다.

 

“이제 안 아픈 거지?”

 

“응. 그 몸은 다 불태워버렸으니까. 뇌는 멀쩡하대.”

 

“다행이다. 걱정 많이 했어.”

 

현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현지의 손을 꼭 잡았다.

 

반장이 다음 시간이 체육이니 서두르자며 아이들을 다그쳤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체육! 기쁜 마음을 안고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그날 수업은 농구였다. 몇 달을 병원만 들락거리다 땀나도록 움직이니 날아오를 것 같았다. 드리블, 패스, 슛 모두 식은 죽 먹기였다. 키가 커져서인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예전에는 못 했던 덩크슛까지 해 내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 주에 실기 테스트 있는 거 알지?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연습하도록!”

 

체육 선생님이 말하고는 나더러 따로 좀 보자고 했다.

 

“다미야, 이런 얘기 하면 네가 좀 섭섭할 수도 있는데…….”

 

“알아요, 저 이제 수영 못 하는 거. 다른 거 하면 되니까 괜찮아요. 농구, 육상,”

 

“그런 게 아니라…….”

 

선생님이 어렵게 말을 이어나갔다. 무슨 얘기냐면 내가 운동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거다. 왜? 보급형인 내 몸이 표준적인 인체 기능보다 뛰어나도록 설계돼서, 형평성의 문제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거다. 법이 그렇단다. 만일 고급형 A라면 본래의 신체 기능을 가진 걸로 인정받아 출전할 수 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어딨어요!”

 

내 고함에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쳐다봤다. 선생님이 쩔쩔매며 달랬다.

 

“휴봇테크에서 설명을 제대로 못 들은 모양이구나. 아아, 이걸 어떡한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실기테스트에서 네가 아무리 잘 해도 A를 줄 수가 없게 돼 있단다.”

 

울고 싶었다. 그러자 인공 안구에서 인공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감정에 반응한 거다. 아이들이 몰려와, ‘우와, 눈물도 나오네?’, ‘진짜 우는 표정이랑 똑같다.’ 하며 웅성댔다. 창피하고 짜증도 나고 학교도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현지가 내 어깨에 손을 갖다 댔다.

 

“다미야, 왜 그래…….”

 

“나중에, 나 지금 얘기할 기분 아니야!”

 

돌아서면서 현지의 손을 밀치는데 현지가 “아얏!” 하고 손목을 잡으며 아파했다. 좀 세게 부딪쳤나? 현지는 계속 아프다며 연습을 못 하겠다고 하더니 결국 양호실에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연습 도중에, 체육관과 수영장을 가로막는 유리창 너머로 자꾸 눈길이 갔다. 남자 수영부 은결이가 입수하고 있었다. 하얀 물보라가 일고, 녀석은 돌고래처럼 앞으로 죽죽 나아갔다. 물 밖으로 나온 은결이가 환하게 웃었다. 저게 나였으면…….

 

무슨 정신으로 버틴 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나갔다. 현지는 이미 조퇴한 뒤였다. 집에 가는 길에 메시지를 보냈다.

 

‘현지야, 미안해. 내가 정신이 나갔나 봐. 많이 아프니?’

 

바로 전화가 왔다. 현지 번호였는데 목소리는 현지 어머니였다. 굉장히 화난 말투였다. 우리 엄마 아빠랑 얘기 좀 해야겠다는 거였다. 현지 손목뼈에 금이 갔다고. 나는 너무 놀라서 네, 네 하는 대답밖에 못 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 아빠는 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처럼 어두운 얼굴이었다.

 

“다미야, 네 몸은 이제 예전과 달라. 힘 조절하는 법을 좀,”

 

“그건 왜 그 모양인데? 얼굴이랑 키는 표준이면서 힘은 왜 그렇게 세냐고?”

 

“혹시 모를 사고나 위험에 대비한 거랬어. 알다시피 한두 푼…… 짜리가 아니다 보니…….”

 

“이딴 몸 필요 없어. 원래 내 몸 돌려 줘!”

 

“알잖니…….”

 

엄마 아빠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말을 잊지 못 했다. 나도 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염증이 퍼져 수포가 터지고 곳곳이 녹아내렸지. 뇌를 꺼내자마자 불태워버렸잖아? 장례도 안 치르고 쓰레기장에 버렸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다.

 

“다미야, 어떻게든 업그레이드 시켜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렴. 내후년쯤이면 될 거야. 그때 가서 수영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알아보니 몸 전체를 재생시키는 기술도 개발 중이라는구나.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원하면 그렇게 해 줄 수도 있어. 희망이 없는 건 아니란다.”

 

엄마 아빠는 내 몸을 고급형으로 바꿔주려고 여가시간에 다른 일도 하고 있다. 나도 두 분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고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원망스럽다.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그럼 이런 수모도 안 겪고, 엄마 아빠가 하루 종일 일만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체육 시간이 즐겁지가 않다. 어렵던 동작이 연습하면서 나아지고 실력이 느는 걸 느낄 수가 없다. 이미 실력이 높은 상태니까. 더구나 이렇게 잘 하면 뭐 하나. 실기 테스트에서 B밖에 못 받는데. 친구들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구경하며 신기해하는 것도 성가시기만 하다. 그래도 나는 종횡무진 체육관을 누빈다. 그러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건 이것뿐이니까.

 

휴봇테크에 신체 기능을 낮춰달라고 요청하니, 꽤 높은 비용을 제시했다. 그리고 10년 무상 수리 서비스를 포기하면 해 준단다. 일단은 이렇게 살기로 했다. 업그레이드 비용에 보태겠다고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자 엄마 아빠가 말렸다. 나중에 취직 잘 하는 게 멀리 보면 훨씬 이익이라고, 공부나 열심히 하란다.

 

그런데 뇌는 그대로잖아? 갑자기 공부가 잘 될 리가. 재미도 없고 하품만 나는 건 여전하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미가 없다. 현지는 여전히 삐쳐서 말도 안 하고, 다른 애들은 내 몸에만 관심이 있다. 이거 해 봐라, 저거 해 봐라, 이것 좀 보자, 저것 좀 보자, 쿡쿡, 만지작만지작, 동물원 원숭이도 나보단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 것 같다.

 

그러다 싫증난 애들이 다른 얘기를 꺼내면 나는 시큰둥해서 딴청만 부린다. 학교 앞에 새로 생긴 분식점 떡볶이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누가 누구랑 사귀고 누굴 좋아하는지 나랑 무슨 상관일까. 남자애들은 나 같은 로봇한테 관심도 없을 텐데. 대학 입시도 바다 건너 다른 나라 얘기인 것만 같다. 난 하고 싶은 공부도 일도 없으니까. 없다기보다는 빼앗겼다고 해야 하나?

 

수업이 끝나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부 애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자유자재로 물살을 가르며 돌진하는 느낌, 딱 한 번만 느껴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가상체험만으로는 뭔가가 부족하다.

 

은결이가 물을 뚝뚝 흘리며 옆에 와서 아는 척을 했다.

 

“오늘도 왔네?”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샐쭉하게 고개만 까딱했다.</span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