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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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년, 냄새나는 년, 더러운 년, 시발 년, 개 같은 년…….

강기의 머릿속에 온갖 욕설들이 떠올랐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자신이 앞의 여자에게 했던 말이었다. 강기는 감히 눈앞의 여자에게 그때와 같은 욕설을 해서는 안 된다.

지금 강기의 목줄은 지금 이 여자가 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한쪽 다리가 없이 걸어가는 건 아무래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시간이 꽤 지났건마는 강기는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보면서 두고두고 과거의 실수를 후회했다. 사고 이전에 네가 아무리 젊어도 무모한 짓은 하지 말라는 사람들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강기는 젊었고 혈기에 넘쳤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고 이후 목숨이라도 건진 게 다행이라는 사람들의 위안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3년 전 오토바이 사고 이후 그는 더 이상 두 발로 걸을 수 없었다.

그날 사고가 있던 날, 그는 자신의 왼쪽 다리가 사라진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이것은 기분 나쁘고 질 나쁜 악몽이야.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든 뒤 깨어나면 자신은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날 것이다. 억지라는 것을 이미 머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강기는 그렇게 바랐다.

하지만 한번 일어난 일이 다시 조정되는 일은 꿈에도 있을 수 없었다.

그 사고 이후 강기는 분노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자기 운명이 왜 이렇게 되었냐며 주변을 원망하기도 했다. 사고의 원인은 자신한테 있었으나 그때 적극적으로 자신을 말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증오하는 말을 쏟아냈고, 목숨이라도 건진 게 천운이라고 위로하는 사람들의 말을 매몰차게 거부했다. 그들의 의도가 나쁜 데 있지 않음에도 강기는 그런 이야기 따윈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는 모든 것에 화를 냈고 원망했고 우울해했다.

사고 이후 일관된 그의 행동에 지친 것은 강기 본인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이었다. 평소 그와 친하던 사람들은 하나 둘 연락을 끊어갔다. 그와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던 친구들도, 선후배도, 그에게 호의를 품던 여자들도 하나 둘 그를 떠나갔다.

이제 그에게 종종 연락을 하는 건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동생뿐이었다. 아버지는 달랐지만 유일하게 그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동생마저 최근 입대를 했기 때문에 연락이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었다. 동생은 강기의 몸 상태를 고려해 굳이 입대일에 굳이 보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형인 그를 배려해주었다. 당시 강기는 몸도 몸이었지만 마음도 만신창이었기에 동생을 배웅하러 나갈 형편이 되지 않았었다.

그래도 강기는 가끔 동생의 안부가 궁금하여 그전에는 연을 끊고 살다시피 한 어머니에게 종종 전화를 걸기도 했다. 어쩌다 연락이 닿은 그의 어머니는 그가 전화를 하는 것도 꺼려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모자지간의 정이 있기야 한 모양인지 돈이 필요하면 부처 주겠다면서 급하게 전화를 끊는 게 일반적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동생의 안부는 아주 짤막하게 얘기하고 말 뿐이었다.

어머니의 상태가 이 정도인데 어릴 적에 이혼하여 지금은 얼굴도 기억하기 어려운 아버지는 오죽했을까. 애초에 아버지란 작자는 강기의 연락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강기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이혼한 그는 희한하게도 재혼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결혼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네가 생긴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의 결과가, 과거의 오점이 화살이 되어 돌아온 결과라고 자식인 강기에게 스스럼없이 말하곤 했다. 그래도 책임감은 있었던 모양인지 얼굴을 마주 보고 사는 것마저 질색했음에도 생활비는 부쳐주던 그는 강기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을 끊어버렸다.

강기가 그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도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번호마저 바꿔버린 모양인지 연락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가 출가(出家)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렸음에도 강기는 딱히 아버지의 정이 그립진 않았다. 강기가 사람의 정을 그리워한 기억은 없었다. 그의 부모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낼 수 없는 이들이라 해도 강기는 언제나 혈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 에너지가 너무 넘치다 못해 주변을 불태워버릴 정도라고 질색하는 이들이 있었을 만큼. 때로는 그 에너지가 다른 사람이 취해야 할 것까지 끌어다 쓰는 정도라며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젊은 강기에겐 가소로운 일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강기가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강기는 낯선 이 감정에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 그의 넘치는 에너지는 이제 해소하고 나갈 데 없는 분노가 되어 그의 내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처음 분노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더 태울 것이 없어지자 저절로 몸을 줄여가며 서서히 소진되기 시작했다.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는 우울함과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 우울함과 허무함이 식은 재와 같아 강기의 마음을 버석하고 메마르게 만들었다.

강기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기는 죽을 수 없었다. 그는 사고 당시 자신의 몸이 겪었던 고통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던 그였음에도 몸이 부서지고 피부가 찢어져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은 놀라우리만치 생생했다. 죽음에 도달하려면 다시 한번 그때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설령 그 고통을 감수하고 죽음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속이 시원할까? 그의 죽음에 다른 이들이 자신한테 부채를 느끼거나 혼자만 자신과 다른 행복을 누리는 것에 미안해하기라도 할까?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강기는 죽는 것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럽고 우울하고 온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견딜 수 없음에도 그는 죽는 것이 억울했다. 그렇게 그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삶이 절망으로 가득 찼음에도 그는 죽는 것이 두렵고 억울했기에 죽지는 못하고 하루하루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윤슬. 김윤슬.

강기는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나직이 불러보았다.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온 희한한 여자.

사고 이후의 어느 날이었을까?

그날 강기는 안에만 있기 힘들었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이 자신을 갉아먹을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던 그는 목발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목발에 익숙해지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건 강기가 견뎌내야 할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는 익숙해져야 했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그의 목발이 미끄러지고 그의 몸이 미끄러졌다. 그대로 떨어진다고 느끼며 강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 조심해요!”

강기는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감싸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딱딱하면서 폭신한 사람의 감각이, 자신을 받쳐주는 사람이 무게를 견디다 못해 휘청거리는 것을 등으로 느낄 수 있었다. 까딱 잘못하면 둘 다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준 덕에 강기는 손으로 계단의 난간을 붙들 수 있었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강기에겐 이것 또한 천운이었으리라. 그때 그녀가 그를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을 테니까. 강기는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그보다 훨씬 작은 체구로 낑낑거리며 그를 잡아주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은 위태로웠지만 단단해 보이기도 했다. 강기는 허둥지둥 계단 손잡이를 잡아 그녀에게서 벗어났다. 그렇게 그나마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자, 여자는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떨어진 목발을 들어 강기에게 건네주었다.

“어… 죄, 죄송합니다.”

강기가 여자에게 사과했다. 사과를 해놓고도 강기 스스로도 놀랐다. 강기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언제나 제멋대로 살아오던 그였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진득하게 민폐를 끼쳐오던 그였지만 한 번도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은 없었다.

하물며 자신의 실수로 일어난 사고에도 자신을 말리지 않은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렸던 그가 아니었던가. 생각지도 못한 자신의 행동에,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여자의 친절에 강기는 어쩔 줄 몰라했다. 여자에게 이런 식으로 친절을 받은 것은 왠지 처음 같았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자신에게 아양을 떨거나 아부를 하는 여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순수하게 자길 도와주는 여자를 그동안 만난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친 어머니마저 애정 주기를 거부하던 게 강기 자신이 아니었던가.

왜인지 이번에 강기는 그 여자에게 더 폐를 끼치기 싫었다. 그럼에도 여자가 자신에게 친절을 더 베풀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강기가 목발을 짚고 돌아가려 하자 여자는 강기를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거절하는 강기에게 그렇지 하지 않으면 왠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것이 강기와 윤슬의 첫 만남이었다.

윤슬은 참으로 이상한 여자였다. 강기를 처음 만난 것은 그 계단에서였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강기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윤슬은 강기와 비슷한 또래였고 형편이 좋지 않아 휴학을 여러 번 하면서 최근 겨우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와 봉사활동을 병행한다고 했다. 그녀는 강기가 걱정이 되었는지 아르바이트나 봉사활동이 끝나면 그를 도와주겠다며 종종 그의 집으로 찾아오곤 했다. 강기는 윤슬의 그런 친절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는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윤슬에게 강기가 함부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강기가 느끼기엔 윤슬은 자신에게 호감을 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자신한테 친절을 베풀리 없을 테니까. 봉사활동을 다닌다 하니까 처음엔 몸이 불편한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을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윤슬이 왜 강기를 특별하게 대하는지 그 저의를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강기는 사람의 정이 그리운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윤슬의 태도를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강기는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언제 윤슬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그녀의 이름은 특이하고 예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얼굴은 무척 평범하고 인상조차 흐렸다. 윤슬과 비슷한 얼굴은 세상에 많았기에 강기는 어쩌면 특이한 이름과 더불어 윤슬을 어딘가에서 봤다고 착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윤슬의 외모는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고 가끔 사람들이 윤슬을 보면 이름이 아깝다 생각했기에 윤슬도 가끔 장난처럼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묘한 일이었다. 강기 역시 객관적으로 그녀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윤슬 역시 자신이 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강기는 그녀가 다른 여자들보다 예쁘다고 느끼게 되었다.

강기는 자신의 심장이 처음 느끼는 감정으로 뛰는 걸 느꼈다. 첫사랑이라는 설레는 감정이 아주 뒤늦게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늦게 찾아온 첫사랑과 함께 불길한 덫이 그를 찾아들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