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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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와 만났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출장 차 대전을 방문했다가 다음 날 옥천으로 가기 위해 대전 시외터미널 근처 여인숙에 묵었을 때니까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장마철이어서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날이었다.

예년에 비해 장마가 길었던 때라 출장길에 아내가 챙겨준 우산을 쓰고 몇 번을 와도 낯선 거리를 헤맸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느라 양복 바짓단은 비에 젖어 온통 흙탕물이었다.

파르르르 젖어 금세라도 꺼질 듯 깜빡이는 여인숙의 간판을 발견하고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그 안으로 들여놓았을 때 나는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어두컴컴한 현관 안쪽은 동굴처럼 좁고 퀴퀴했다. 인기척 하나 없는 현관 근처에 주먹만 하게 뚫린 조그만 미닫이창 앞에 서서 헛기침을 하자 드르륵 소리를 내며 창이 열렸다. 코 근처에 부스럼이 진 노파가 희끄무레한 것이 잔뜩 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루 묵고 가려는데요. 방 있습니까?”

“없어, 방은 꽉 찼슈.”

콰광, 밖에서 건물을 때려 부술 것 같은 뇌성벽력이 으르릉 울었다. 나는 손에 든 우산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절망적인 기분으로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방 하나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바깥 날씨가 저모양이라……”

“쓸 만한 방은 다 나갔어. 쪽방으로 사글세 치는 방들이 많아설람…… 오면서 터미널 근처에 공사하는 거 못 봤는겨?”

“……그런가요.”

억수 같은 장대비가 문짝을 덜걱덜걱 붙들어 흔들었다. 저 빗속으로 다시 나가서 묵을 곳을 찾을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망할 비…… 머리를 북북 잡아 뜯으며 몸을 돌리는데 잔뜩 쉰 노파의 목소리가 나를 붙들었다.

“하룻밤만 묵고 새벽 일찍 나갈 셈이라면 어떻게 방 하나야 변통해 줄 수 있을 것도 같은디…….”

“네? 될까요, 그렇게? 저는 내일 아침 첫차로 올라갈 거라서 그렇게만 해 주시면 감사하죠.”

“으으음…… 기달리보게.”

노파는 잠깐 내 얼굴을 꼼꼼히 살피더니 미닫이를 왈각 닫아걸었다. 닫힌 창 너머에서 노파가 웅얼웅얼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한참 이어지더니 위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산 손잡이를 쥐고 꾸물거리는데 꽉 닫혔던 미닫이창이 열리고 노파가 눈짓을 했다.

“3만 원. 204호실이여.”

지갑에서 돈을 세어 노파에게 건네주자 노파는 입술을 실룩이며 그것을 받고 낡은 키를 던지듯 내주었다. 204라고 쓰여 있었을 법한, 매직으로 그려진 그림에 가까운 숫자는 손때가 묻어 희미해져 있었다. 키를 손에 쥐고 멀뚱하니 노파를 바라보자 쇳소리 섞인 기침을 칼칼하니 내뱉으며 쪼글거리는 손가락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5시엔 나가야 혀. 5시, 잊지 말고.”

“아,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서는 등 뒤로 창이 드륵 소리를 내며 닫히다 잠깐 멈추었다. 노파의 목소리가 검은 복도를 타고 흐느적거리며 기어와 등 뒤에 달라붙었다.

“……거시기, 누가 와도 문 열어주지 말여.”

“네?”

희미한 소리에 갸우뚱거리며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지만 미닫이창은 이미 닫혀 있었다. 콰르릉, 지축을 울리는 천둥소리에 바르르 떠는 문 너머로 억센 빗줄기의 그림자만이 복도를 길게 가로질렀다.

*

204호는 계단을 한층 올라와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보이는 방이었다. 혹시나 해서 손잡이를 잡아 비틀자 낡은 경첩이 삐꺼덕거리며 온몸을 비틀어 괴괴한 비명을 질렀다. 머쓱한 기분에 손잡이를 잡았던 손을 바지에 한 번 스윽 문질러 닦은 후 키를 꽂아 돌렸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습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후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발을 들였다. 고요한 복도에 구두소리가 자기도 깜짝 놀랄 만큼 크게 울렸다. 문득 정체 불분명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방에 들어와 형광등을 켜자 몇 번이고 힘겹게 깜박이다 간신히 불이 들어왔다. 한눈에 들어온 방의 풍경은 습기나 퀴퀴한 냄새에 비하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향수가 밀려올 것만 같은 누런 장판 곳곳에는 먼저 머물렀던 누군가가 담배꽁초를 떨군 자국들이 눅진한 흉터를 남기고 있었고 한편에 대충 접혀 있는 이불 위에는 누런 자국이(땀자국, 아니면 침자국일 것이다.)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다.

전형적인 싸구려 여관의 모습에 오히려 조금 안도한 나는 비에 젖어 질척대는 구두에서 발을 꺼냈다. 물이 찬 구두 안에서 혹사당한 발에서는 악취에 가까운 발냄새가 풍겼고 비닐장판 위에 한쪽 발을 올리자 젖은 양말 때문에 찔꺽대는 소리가 들렸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단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겠다는 생각에 출장가방을 열고 아내가 챙겨준 옷가지를 꺼내들었다. 편한 티셔츠와 추리닝 바지를 한 손에 들고 화장실의 문을 열었을 때였다.

달각.

등골에 오소소 소름이 스쳤다. 나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휩싸여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가 달각거리는 소리,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온 그 달각거리는 소리.

그러나 돌아본 등 뒤에는 내가 가지런히 벗어놓은 구두 한 켤레만이 비에 젖어 볼품없는 모양새로 놓여 있을 뿐이었다. 현관에 매달린 거울이, 우산을 썼음에도 젖어서 이마 이리저리 흘러내린 앞머리 밑의 경직된 눈빛을 고스란히 비춰내고 있었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잖아.”

일부러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누구 들으라고 말한 것인지 의문스러워졌다. 잘못 들을 수도 있지, 피곤해서 그래.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변기 뚜껑을 닫고 마른 옷가지를 올려놓았다. 화장실은 좁고 더러웠지만 씻을 만은 했다. 구석에 잔금이 간 유리에 비친 얼굴이 스스로 보기에도 안돼 보일 정도로 지쳐 있었다.

“다음부터 출장은 강 부장이 직접 가라고 해야지.”

혼잣말로 구시렁대며 샤워기의 물을 틀어보았다. 온수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냉수가 콸콸 쏟아지는 것에 조금 낙담하며 나는 축 달라붙은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이번 출장은 애초에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출장에서 만나야 할 거래처들도 어느 곳 하나 호락호락한 상대가 없었다. 주말 정도는 회사 일에서 좀 해방되고 싶었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일자리 보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호강에 넘친 소리 하는구나. 나는 비누를 손에 쥐고 문질러 거품을 내며 잔뜩 불러온 배 때문에 허리에 손을 짚고 뒤뚱거리며 웃던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했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생긴 첫 아이였다. 얘가 너무 차대서 힘들어 여보, 그렇게 말하며 울상을 짓는 아내의 얼굴에도 행복이 감돌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빙긋 웃으며 얼굴에 비누칠을 했다.

달각.

이번에는 머리 위였다. 나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차마 위를 올려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비누칠을 하던 자세 그대로 나는 실눈을 떠서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눈 사이로 비눗물이 들어가 따끔거렸다.

“쥐…… 쥐일 거야.”

낡은 여인숙이니까, 쥐가 천장을 돌아다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까의 소리도 분명히 쥐였을 것이다. 나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허리를 폈다. 비누 거품이 묻은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신경과민이야.”

샤워기의 물을 일부러 세게 틀고 샤워를 하는 내내 나는 방안 곳곳을 누비는 쥐에 대해 생각했다. 쥐가 천장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쏠다가 제풀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상상까지 하고 나서야 나는 조금 웃을 수 있었다.

*

씻고 나와서 머리를 타월로 문지르다가 나는 내가 놓친 것을 떠올렸다. 아무리 날씨가 거지 같아도 맥주라도 좀 사올걸. 샤워 후의 맥주 한 모금이 그리워진 나는 혹시나 하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이내 닫아버렸다. 냉장고 안에는 요구르트 두 개만 예쁘게 놓여 있었다.

“죽겠구만……”

하루 종일 빗속에서 움직이고 깐깐한 거래처 사장을 접대한 후유증이 온몸에 나타나기 시작해 금세 노곤해졌다. 씻고 나오니 축축 늘어지는 바람에 벽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리모컨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덜컥 덜컥. 노곤하게 처져 있던 온몸의 신경이 갑자기 바짝 일어섰다. 손잡이가 움직이는 것을 노려보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 다른 방의 손님이 술에라도 취해서 방을 잘못 찾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문 근처로 다가가 손잡이를 꽉 쥐었다. 손잡이 너머로 상대의 악력이 느껴지다 이내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안에 누구 있어요?”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당황한 듯한 목소리. 순식간에 기운이 쭉 빠진 나는 이유 모를 한숨을 내쉬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