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귀(倀鬼)가 부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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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었다. 검은 구름으로 들어찬 하늘이 우르르 울릴 때마다 수천수만 개의 굵은 물줄기가 하늘에서 쏟아졌다. 하늘은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길상은 멍하니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비를 다스리는 용이 무언가에 노한 것처럼 폭우를 뿌리는 것 같다. 길상은 그렇게 생각했다. 용은 저 구름 위를 바다처럼 헤엄치며 물을 뿌리는 것일까? 길상은 한번 상상해 보았다. 그런데 용이란 짐승은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뱀과 비슷한데 깃털이 달려있을까? 길상은 최대한 용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확실하게 떠오르는 모습이란 게 없었다.

길상이 용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은 아직 범의 모습을 본 적은 없어서 그 모습을 또렷하게 머릿속에 그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용이란 것은 할머니들이 가끔 해 주는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존재였다. 저 멀리 바다를 다스리고 하늘에서 비를 내리는 게 영물이라 하지만 용이 어떻게 생겼는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라님을 용과 같은 거라고도 했다. 결국 용이나 나라님이나 길상 같은 존재가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았다.

아마 범과 용이 다르다 한다면 어디에 있는지 진짜로 있는지 알 수 없는 용과 달리 범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 길상 역시 범을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범을 마주친다면 그것을 범이라고 분명 확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왠만하면 범을 마주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게 진실한 바람이다.

길상은 또 생각했다. 짐승 같은 인간에겐 흔히 사람들은 벼락 맞아 뒈질 놈이라는 욕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지금 하늘이 죄 많은 자를 꾸짖기라도 하는 걸까. 마치 사람이 발악을 하는 것처럼 빛이 번뜩이더니 이내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에서 분명 벼락이 떨어졌으리라.

설마 사람이 맞았을까? 만약 아까의 벼락이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면 그 사람은 큰 죄를 지은 사람인 걸까? 길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벼락에 맞아 죽는 게 끔찍한 일이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길상은 벼락에 맞아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차마 그것까지 상상하지 못한다. 길상은 벼락이 떨어지는 것보다 호환에 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더 보아왔다.

길상은 의심스러웠다.

이 고을에선 벼락에 맞아 죽는 것보다 범한테 물려 죽는 일이 더 흔할 거야. 그렇다면 호환은 꼭 죄가 있어서 당하는 게 아닌 걸 거다. 아마 산신은 저 천둥벼락을 몰고 다니는 비구름보다 변덕스러워서 사람의 행실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내킬 때마다 사람을 덮치는 것이 분명했다. 길상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나가, 동생이 죄가 있어서 호환을 당한 거라 한다면 생사람을 잡은 것처럼 억울해했고, 죄가 없어도 호환을 당한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억울하다 싶었다.

호환(虎患)은 그런 것이다.

억울은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 원통하더라도 어딘가 해소할 일은 없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이건 비단 길상의 가족에 한해서만은 아니었다. 이 고을에 호환을 당한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다만 가족이 연달아 셋이나 호환을 당한 것은 특이하다 싶었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길상을 안쓰러워하면서도 걱정했다.

– 창귀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부르러 찾아온단다.

길상의 몸이 으슬으슬하게 떨려왔다.

어제는 뒷집 할머니의 몸이 안 좋아 보여 그녀 대신 물을 길어주었다. 옆집 아재가 비가 오기 전 지붕을 보수해야 한다기에 그 일을 거들었다. 그 덕에 길상은 약간의 음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와 함께 감기 기운까지 얻어 온 것 같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몸이 쑤신다고 했고, 길상은 자신이 아궁이를 살필 테니 어머니는 들어가 쉬시라 했다.

길상의 어머니 역시 생계를 위해 밖에서는 품을 팔고 집에서는 하루 종일 바느질과 씨름을 해야 했다. 어머니의 몸 상태를 듣고 비가 올 것을 예견해 미리미리 땔나무를 마련해 놓은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언제 범이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산은 무서웠지만 그래도 길상은 나무를 했다. 산에 오르고 내려올 때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령들에게 감사의 절을 올려야 할지 모른다.

길상은 그런 아이였다. 자신이 상황에 딱히 한탄을 하거나 원망을 하지는 않는다. 호환을 세 번이나 당한 집이라고 사람들이 무서워해도 그것을 탓하진 않았다. 오히려 자기 집의 생계를 걱정하여 일을 시켜주는 것도 고마운 지경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것이 터무니없이 흐르기에 그 자체에는 괴로워할지라도 그걸 가지고 원망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진 않았다. 원망을 괜히 엉뚱한데 풀기에는 두 사람이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막막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호환이 지금 당장 자기 앞으로 닥치지니 않기를 바랄 뿐. 그것이 길상의 순박한 바람이었다.

길상은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몸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아궁이의 불을 쬐면 따스한 열기에 한기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오한과 그에 따라오는 불안이 근래 마을에서 벌어진 불길한 일을 상기시켰다.

두려운 기억으로 남은 일이 불안한 몸 상태로 인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 호환이다!

그날 안개가 유달리 심하게 낀 날,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사람의 시체, 아니 이젠 사람의 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조각들을 마을 사람들이 발견했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산을 넘던 외지인이 아니라 마을 사람의 시신이었다. 그 가족들은 찢기고 피에 젖은 옷가지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어쩌다 그가 범에게 습격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 해도 떨어지지 않은 대낮이었고 마을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논두렁에서 그는 사라졌다. 마치 귀신의 소행처럼 안갯속으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했다.

안개가 어느 정도 물러나자 사람들은 사라진 이를 찾았다. 그가 끌려갔다 싶은 자리에 핏자국과 찢긴 옷자락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발견된 것이 몸통은 사라지고 손과 발, 그리고 끔찍한 형태로 남은 그의 머리였다.

사람들은 발견된 시신을 보고 진저리를 쳤다. 호환의 흔적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음 일에 착수해야만 한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이의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돌무덤을 쌓기 위한 단단한 돌을 긁어모은 뒤, 사람들은 이제 사람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조각만 남은 시신을 겨우 그러모았다. 그리고 불을 피워 그것을 불태웠다. 원래 화장은 그 시대에 고려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호환이 닥치면 그렇게 했다. 그렇게 범에게 끌려가고 남은 시신을 불태웠다. 사람들에겐 호환에 당한 시신 자체도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리라.

살아남은 그의 가족들은 울지도 못했다. 그날 닥친 호환(虎患)의 충격 때문에 혈육을 잃은 슬픔보다는 공포가 더 큰 자리를 차지했다. 급사한 자들은 생에 미련이 많아 원귀가 된다고 했다. 고통스럽게 죽은 자 역시 원귀가 된다. 그렇다면 범에게 잡아먹혀 죽은 사람들도 원귀가 되는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범에게 잡아먹혀 죽은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죽다 못해 범에게 매이는 창귀(倀鬼)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창귀가 된 혼령은 가까운 사람을 홀려서 범에게 끌고 간다고 했다. 그렇게 또 범에게 잡아먹힌 사람 또한 창귀가 된다 했다. 그런 귀신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다만, 호환이 이렇게 자주 일어난다면 거기엔 사람이 감히 알아낼 수 없는 귀신이 부린 수작 같은 것이 끼어있지 않겠냐고 막연히 추측을 할 뿐이다.

그렇게 귀신의 존재를 믿을 정도로 호환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일이었다.

그들이 잡아먹힌 사람의 시신 위에 돌을 쌓고 그 돌무덤 위에 시루를 단단하게 얹은 뒤 또 그 위에 칼을 꽂는 건 단순 창귀가 두려워서만은 아니었다. 호환이 창귀를 만들어내고 창귀가 다시 호환으로 사람을 이끈다면 그들과 접촉하지 말아야 호환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라도 돌무덤을 봉하고 또 그위에 날붙이로 찍어 눌러 죽은 자들이 나오지 못한다면 또 다른 호환도 닥치지 못할 것이라는 기묘한 믿음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사람들이 범에게 잡아먹힌 시신을 발견하면 그것이 마을 사람이던 외지인이던 상관없이 돌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길상 역시 호식총(虎食塚)을 만드는 자리에 있었다.

길상 역시 호환을 두려워하는 마을 사람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길상은 호식총을 만드는 걸 거들면서 범에게 붙들려 끌려가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범의 불같은 두 눈을 마주치면 사람은 그 눈에 홀린 듯 꼼짝을 못 하게 된다고 한다. 범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오금이 저려 다리가 풀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범에게 물린 사람들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짐승에게 끌려갈 것이다.

끌려가는 인간들은 범에게 잡아먹히는 순간에도 온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만약 범을 마주치고 까무러치거나 적어도 범에 물린 순간 목숨이 끊어진다면 잡아먹히더라도 고통이 덜하지 않을까? 만약 잡아먹히는 와중에도 그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것이 더 상상하기 끔찍할 뿐이다. 몸이 찢기고 뜯기고 피가 새어나가는 고통을 느끼며 사람은 죽어가야 하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길상의 몸에 찬 바람이 스친 듯 오한이 일었다.

길상의 아버지는 고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행상이었다. 그는 길상이 철이 들기도 전에 산을 넘다 호환을 당했다. 길상은 어렴풋이 그때의 일이 기억이 났다. 길상의 가족을 둘러싼 사람들의 수군거림, 새파랗게 질린 어머니의 얼굴. 사람들은 길상의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지만 그가 어떤 모습인지 당시 어렸던 길상에겐 보여주진 않았다.

길상의 누나 역시 나물을 캐러 갔다가 한낮에 범을 마주쳤다. 아니, 길상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리 추측할 뿐이다. 아버지 때와 달리 길상은 그날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물을 캐러 간 누나가 반나절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누나를 찾았다. 하지만 누나가 있었을 거라 예상된 장소에 남아있던 것은 바닥에 흐트러진 바구니와 찢기고 피로 적셔진 그녀의 옷자락뿐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누나를 찾아다녔던 길상은 그 옷자락을 확인했다. 아버지 때와 달리 누나는 시신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틀림없는 범의 소행이라고 떠들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