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남자

아낌없이 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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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대, 괴로워하고 있군요. 그대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지 나는 감히 상상이 안 됩니다. 그대의 고통을 내가 대신해 줄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을 바쳐 그대를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그대, 처참한 모습이군요. 그대의 아름다운 눈과 손과 머리카락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군요. 눈꽃처럼 반짝이던 눈망울이 살덩어리와 한데 섞여 뭉치고, 얼굴과 두피 곳곳에 어지러운 불꽃이 피었네요.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조차도 볼 수 없는 그대, 하지만 내 눈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나에게는 내적인 기준 위에 서 있는 정의이므로 외적인 기준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아름답다는 겁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미쳐 있죠. 스스로 요상한 기준을 세우고서는 그 기준에 미달하는 자들을 깎아내립니다. 자신도 그 기준에 들지 못하면서요.

 

왜 세상의 로맨스는 아름다운 자들의 전유물이어야만 할까요. 우리 모두 로맨스를 할 수 있는 성정을 타고났는데 말입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로든 책으로든 남의 로맨스를 보면서 울고 웃는 모습을요. 그래서 나는 나만의 로맨스를 꽃피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언제였을까요, 당신을 처음 본 것이. 당신이 투석을 하러 내가 근무하는 이 병원에 왔던 날이군요. 지루한 투석 시간 동안 말동무가 되어 주기 위해 당신의 친구가 함께 왔었죠.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대의 눈망울을 통해 심연을 보았고, 그대의 영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아챘습니다.

 

그걸 어떻게 볼 수 있냐고요? 제 나름대로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해야겠군요. 어머니 덕에 발달한 능력이죠. 매일과 매 순간의 기분이 아들에 대한 태도를 좌지우지하셨던 분이거든요. 그런 어머니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어머니의 영혼의 상태가 어떤지 재빨리 파악하는 재주를 기르게 됐답니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나를 키우며 들어간 생활비와 학비, 어머니의 자유를 앗은 구속감, 어머니의 어깨에 쌓이는 의무감과 책임감만큼이나 늘어가는 빚을 미워했던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나 자신을 다독여왔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무너지고 나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과,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둘 다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야겠군요.

 

내 얘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애초에 이 편지를 쓴 것은 당신을 위로하고자 함이었는데. 그대라면 내 사연을 기꺼이 들어줄 것 같아 말이 많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고통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 편지와 함께 보내는 것을 소중히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마십시오. 이것은 응당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런 식으로라도 나는 내 죄를 씻어내고 싶습니다.

 

착한 그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것을 드리더라도 나는 그대의 고아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눈치를 보며 살아온 자의 특별한 감각이라고나 할까요.

 

 

 

2.

 

내가 드린 선물로 그대가 소중한 빛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선물을 그대의 친구가 보고는 경악하여 쓰러졌다는 소식도요. 세포가 괴사하지 않도록 정말 심혈을 기울여 포장한 건데 그것이 그토록 놀라웠나 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겠지요. 나는 이제 당신의 일부가 되었으니까요. 당신의 눈이 되어 당신의 머리로 세상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나는 더더욱 그대 앞에 나설 수가 없게 됐지만, 괜찮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 큰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과거에 내가 당신에게 바랐던 소망, 그것을 하룻밤의 악몽으로 여기고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가여운 그대, 내가 상처받을까 봐 안타까워하던 모습,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니,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토록 극악무도한 고통을 그대에게 안겨준 나인데요.

 

괴로워 마십시오. 그대를 괴롭히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 자신의 죄를 나 스스로 상기하고자 함입니다.

 

아아, 오늘도 내 얘기를 늘어놓는군요. 원래 죄가 많은 사람은 변명하려고 말이 많아지는 법이죠.

 

그대, 이제 영화관도 가고 미술관도 가고, 추악하지만 일면과 일면에 아름다움도 공존하는 이 세상을 마음껏 감상하고 만끽하기를 바랍니다. 그대의 맑고 고운 시선에 나의 안구, 아니 당신의 안구도, 세상의 흉함도 모두 정화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당신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환희와 열정과 감격을 내가 볼 수만 있다면. 당신이 그것들을 느낄 때 내가 곁에서 공유할 수 있다면. 너무 큰 바람이겠죠. 나는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마저도 감사해야 하는 놈인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3.

 

그대, 어느덧 일 년이 지났군요. 지난번의 내 편지를 받고 이름도 주소도 모두 바꿔버리셨죠. 병원까지 바꾸셨더군요.

 

그대를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이 나약한 영혼이 그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가 잘 지내는지 무척 걱정이 됐으니까요. 사실은 그리움이 더 컸다는 게 솔직한 변명이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대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계시더군요.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지난번 편지에 말씀드린 대로 나는 당신의 눈이 되어 당신의 머리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아침에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로 아침을 때웠죠.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갈 때는 청바지와 회색 니트 위에 낙타색 코트를 입고 갔고요. 그리고 상담을 받으며 많이 우셨죠.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 생각하니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선물을 하나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여자들은 헤어스타일을 참 자주 바꾸지요. 당신도 사고, 아니 사건이라 해야 할까요, 전에는 그랬었다는 걸 압니다. 긴 머리의 그대는 청순하고 늘씬한 매력이 있었고 짧은 머리의 그대는 귀엽고 강단 있는 모습이었죠.

 

금전적인 문제로 가발을 많이 구비하지 못 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내 탓입니다. 하여 나는 나의 머리카락을 한 올도 빠뜨리지 않고 모아서 가발을 만들어 보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대머리가 됐느냐고요? 물론이죠. 단순히 가위로 자르는 것으로는 속죄의 깊이가 얕은 것 같아 두피까지 통째로 벗겨 만들었답니다. 반의반도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 싶은 고통이었지만 그대가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고 마지막 한 치까지 힘주어 뜯었답니다.

 

저를 용서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대를 경악하게 만들고자 함도 아닙니다. 일종의 고해성사와 징벌이라고 여겨주십시오.

 

이 추운 겨울, 내가 당신에게 다소간의 따뜻함을 제공하리라 생각하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보내드리는 선물은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해 써 주십시오. 당신의 허약한 몸이 감기에 들까 늘 걱정하는 나입니다.

 

 

 

4.

 

그대, 내가 드린 선물을 불태우고 계시군요. 조금 섭섭한 마음이지만 그대의 마음도 이해하기에 이 서운함을 멀리 던져버리려고 합니다. 길이가 짧았거나 색상이 마음에 안 드셨거나 한 것이겠지요.

 

하여 오늘은 다른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손가락들이 모두 뭉개져 학업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봤다고 해야 할까요.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나는 당신의 눈을 통해서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을 보니까요.

 

하지만 그대, 씻을 때 불을 끄거나 눈을 감지는 말아주십시오. 당신이 미끄러운 욕실 바닥에서 넘어져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그대, 거울을 볼 때마다 원망과 혐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그대 자신을 마주하는군요. 그때마다 그대는 유리에 입김을 분 다음, 망가진 손가락으로 나에게 편지를 쓰지요.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다고, 그러지 못 하는 자신이 증오스럽다고요.

 

착한 그대,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에게 드린 선물입니다. 아무런 보상도 대가도 바라지 않고 드린 것입니다. 날 염려해 돌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 알지만 받아드릴 수는 없습니다. 나에겐 나보다 그대가 소중하니까요. 그래서 그대의 고통을 함께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손가락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우리는 이것으로 아주 많은 일들을 하니까요. 나는 당신에게서 그것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손가락을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도 발달되지 않았으니까요. 이건 제 사과의 상징으로 봐 주십시오.

 

이것을 돌려드리고자 내가 지금 할 일은 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느낀 고통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죠. 나는 나를 단죄하는 심정으로 손가락 하나하나마다 작두질을 할 것입니다. 이것을 받고 부디 그대가 내 진심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다음부터는 편지 쓰기가 조금 힘들어지겠군요. 눈도 손가락도 없는 사람이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5.

 

그대, 울고 계시는군요. 내가 보낸 선물을 망치로 깨부수고 계시군요. 얼굴은 특별히 잘 난 게 없어도 손은 남자치고는 예쁘단 소리를 꽤 들었었지만, 아무래도 본체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니 그 생명의 기운을 잃은 것이겠지요. 보기 싫어하신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래도 의수가 잘 작동해서 다행입니다. 익명으로 기부한 것을 또 이렇게 밝히고 마네요. 겉으로는 아니라 해도 관심과 칭찬을 바라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가 봅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의사 생활하면서 돈 쓸 일이라곤 없어, 장롱 뒤의 먼지처럼 쌓여 있던 것으로 장만했으니까요.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없는 제가 무슨 일로 돈을 썼겠습니까. 이제라도 용도를 찾아 다행일 따름입니다.

 

궁금해 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가난한 어머니를 둔, 그런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제가 무슨 수로 의대를 가고 의사가 되었는지.

 

신은 그래도 완벽히 불공평하지만은 않나 봅니다. 제게 머리를 주셨으니까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에게는 끈덕지게 들러붙어 거액의 생명보험을 가입시킨 고마운 친구가 있었습니다.

 

사실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았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으로는 절 버렸지만 그래도 같이 살고는 있었으니까요.

 

버린 쪽은 저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에게서 그런 머리를 물려받고, 그대, 그거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아들의 지능은 엄마의 지능을 따라간다는 것을요, 지능에 관련된 유전자가 X염색체에 있거든요, 그 머리로 의대에 가서 배운 지식을 이용해 어머니를 버렸지요. 특별한 지능을 물려준 그 어머니를요.

 

나는 천벌 받아 마땅한 놈입니다. 어머니가 지옥에서 날 기다리며 내가 끌려 내려오기만을 벼르고 계실 것입니다.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몸이 한낱 흙이 되어 부서지기 전에 그대에게 하나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해 드리고자 함입니다. 부디 거부하지 마시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통장 잔고가 갑자기 늘어나 있더라도 놀라거나 돌려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애처로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