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에서 깨어나서

작가 코멘트

내 친구 ㄱ이 부르면 누구든 단번에 그를 돌아보며 응답하고 다가간다. 예외는 없다. ㄱ는 자신의 그런 장기를 굳이 내보이지 않았지만 그를 오래 관찰해온 내 눈은 틀림없었다. 수학, 물리, 음악 선생님 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그는 “선생님.” 한마디로 물리 선생님이 그를 돌아보게 했다. 혜진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둘 있는 교실에서도 그는 단 한 번의 호명으로 그때그때 적절한 혜진이를 곁에 오게 했다. ㄱ은 어떤 혜진을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더 많이 불렀다. 그의 절대적인 부름은 앞이나 옆에서는 효력이 없는 듯했고, 정면에서 부르기엔 ㄱ이 너무 수줍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어느 날 그 혜진이 살해당하고 이루어진 전체 운동장 조회를 ㄱ은 불참했다. 대열을 이루고 서서 이리저리 몸을 뒤틀던 우리도 묵념의 시간만큼은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살인자.” ㄱ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조회시간 후에 나타난 ㄱ은 “결국 전체 학생 중에 살인자는 없었다.”라고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시효가 지난 지금도 나는 그가 내 뒤에 서는 걸 꺼린다. 그날엔 ㄱ이 누군가를 부른다면 애들이 함부로 뒤돌아서 뒷사람과 잡담을 나누지 않을 묵념의 시간일 거라고 판단했다. 나만이 묵념의 시간 동안 뒤돌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