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기분

작가 코멘트

아버지의 일 관계로 전학을 자주 다녔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이상한 관습이나 규칙이 있는 동네라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손있는 날’을 경계하던 동네가 있었다. 학급 달력에 빨간 색 동그라미가 쳐진 날짜들이 있어서 반 아이에게 물어보자 그날은 동네의 아무 집에 시어머니가 온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한번 오면 막을 방법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전학와서 앉은 자리의 원래 주인이 있었는데, 그 애의 집에 시어머니가 나타나서 가족이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봉변이 뭐냐고 묻자 말을 흐렸다. “그렇다고 오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그 동네를 떠올린 건 결혼하고 1년째 돼가는 시점이었다. 그렇다고 오신다는데 오지 마시라고 할 수도 없고, 라고 중얼거리다가 나는 문득 다이어리의 시어머니 방문 기록과 ‘손있는 날’을 대조해본 것이다. 그 후 나는 시어머니의 잦은 방문을 사유로 이혼했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바뀐 내 주소로 계속 찾아온다. 너는 웃어른을 모실 줄을 모른다고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냐고 아이 소식은 없는 거냐고 타박한다. 전처와 장모는 내게 병원에 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