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 난초

  • 장르: 판타지, 기타 | 태그: #이세계 #일상물 #성장물 #판타지 #잔잔
  • 분량: 48매
  • 소개: 심해보다 더 심해인 ‘심심해’ 세계에 사는 ‘나’의 태몽은 난초다. 늘 난초 머리핀을 하고 다니는 ‘나’를 R... 더보기

심심해 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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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공원 벤치에 앉아 반짝이는 돌을 홀로 감상 중이다. 내 두 손에 담긴 이 영롱한 돌은 일전에 B가 내게 준 거다. 인정하긴 싫지만 솔직히 내 마음에 쏙 든다.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 준 건데 왜 이리 마음에 든담.’

 

이 돌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투명하고 반짝거려서 마치 예쁜 손거울 같은 돌이다. 영롱한 빛을 넋 놓고 보고 있으면 온갖 상념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꺼내 보곤 한다. 실은 요즘 좀 심란했기에.

 

‘기분 꿀꿀할 때, 이걸 꺼내 보면 기분 좀 나아질 거야.’

 

이 돌을 선물해주던 B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 당시엔 코웃음을 쳤지만 그 애 말대로 돌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좀 괜찮아진다.

 

‘선물 고르는 센스 하난 인정해주지, 흥.’

 

내가 좋아하는 걸 눈치채고는, B가 몇 개 더 챙겨줬다. 나머지 돌들은 집에 있다.

 

휴대용으로 가지고 나온 돌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스케치북과 이젤을 폈다.

 

요즘 그리고 있는 그림을 마저 완성하려 한다. 그냥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린 그림이다.

 

화폭을 바라보다가 의문이 들었다.

 

‘난초, B가 준 반짝이는 돌들, 그리고 웃고 있는 B……’

 

난초만으로 충분한데 뭘 이렇게 많이 그렸나 싶었다. 실은 전부터 주로 난초만 그렸기에.

 

나는 난초를 좋아한다. 내 태몽이 난초라서 좋아한다. 엄마는 난초 꿈을 꾸시고 날 낳았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에 난초 머리핀을 손수 만들어주셨는데 내 맘에 쏙 들어서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하고 다니다.

 

그런데 나는 실제 난초를 본 적이 없다. 난초 모형은 있다. 그것도 B가 준 거다. 돌을 선물해줄 적에 덤이라면서 줬다. 점토로 만든 난초 모형에 리본을 달아 주었다.

 

내가 사는 이 세계엔 난초라는 게 없다. 난초는 지상에서 나는 식물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해저다.

 

해저 세계이자, 심해 세계이다. 심해 중에서도 더 심해에 있는 세계라서 지상인들 사이에선 ‘심심해’라고도 불린다. ‘심심해’는 고요하고 적막한 세계다. 나는 심심해 토박이고, 조용하고 평온한 이 세계가 참 좋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내년에 지상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 심심해 대학에 재학 중이다. 우리 학교는 지상에 있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K대학교와 교환학생 사업을 진행해왔다. 나는 올해 교환학생을 신청했다.

 

교환학생을 신청한 후부터 이상하게 기분이 영 싱숭생숭하다. 지상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그냥 여기에 있고 싶기도 하고. 어떤 마음이 더 큰지 잘 모르겠다.

 

‘그냥 신청 취소할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과 심심해 세계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서로 뒤엉켜 있는 상태이다.

 

‘교환학생 선정자 1차 발표는 앞으로 한 달 후니까 그때 가서 고민하자. 1차 때까진 취소 가능하니까.’

 

나는 잡념을 거두고 그림을 그리는데 집중했다.

 

“난초야!”

 

집중 좀 해보려는데 결코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은편에서 B가 내가 있는 벤치로 뛰어오고 있었다.

 

‘나 좀 그냥 내버려두지.’

 

아무래도 오늘 그림 그리기는 글렀나보다. B가 있으면 집중하기가 어렵기에.

 

발 빠른 B는 금세 내가 있는 벤치에 자릴 잡고 앉았다.

 

“기다리라니까 먼저 가버리다니! 난초! 너 정말 실망이야. 너무해!”

 

장난 반, 애교 반의 뉘앙스로 B가 말했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오늘 나 먼저 간다고 했잖아. 너 방과 후에 담당 교수님이랑 면담 있다며.”

 

“금방 끝나는데 좀 기다려주지! 난초는 하여간 성격이 너무 급하다니까.”

 

B는 투덜대며 오자마자 벤치 위에 책가방을 툭 내려놓더니 그걸 베개 삼아 누웠다. 누운 B에게 속으로 쏘아붙였다.

 

‘네가 너무 태평한 거거든?’

 

하지만 내 속을 알 리 없는 B가 투덜거렸다.

 

“의리 없게 먼저 가버리다니. 난초, 네가 그러고도 내 멘토라고 할 수 있어?”

 

B는 지상인이다. 올해 K대학교에서 심심해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온 학생이다. 우리 과로 배정된 B는 본인의 멘토로 나를 택했다.

 

‘내가 원해서 네 멘토 하는 거 아니거든? 선배들 다 놔두고 왜 하필 난데?’

 

나는 속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보통 교환학생의 멘토 역할은 동기보다는 한 학년 위 선배가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선배가 후배를 챙겨주는 게 여러모로 더 나을 테니까.

 

지상에서 심심해로 교환학생이 오면, 심심해 대학교 재학생 중 한명을 1:1 멘토로 붙여준다.

 

심심해 대학교와 지상의 K대학교는 교환학생 사업에 멘토링 프로그램을 접목하고 있다. 해저세계와 지상세계의 멘토멘티가 짝이 되어 함께 활동하는 프로그램이다.

 

멘토는 멘티가 새로운 세계에서 불편 없이 적응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지상에서 심심해로 교환학생을 보낸 경우, 심심해 멘토가 지상 멘티를 챙겨줘야 한다.

 

반대로 심심해에서 지상으로 교환학생을 보낸 경우, 지상 멘토가 심심해 멘티를 챙겨준다.

 

교환학생을 지도하는 담당 교수가 따로 있기에 학생 멘토의 역할은 그저 소소한 편이다. 그래도 나름 신경이 쓰이는 소임이라 주로 동기보단 선배를 붙여준다.

 

심심해 연령대와 지상 연령대를 따져보면, 나와 B는 동갑이다. 우리 둘 다 어엿한 성인이고, B가 우리 과로 배정받았으니 같은 과 동기나 다름 없다. 동기들끼리 멘토링을 하는 경우는 지금껏 한 번도 없다.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하여간 유별나다니까. B가 날 멘토로 택했을 땐 얼마나 당황스러웠는데.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누가 누굴 잘 챙기냐고.’

 

B는 우리 과 애들 다 있는 앞에서 망설임 없이 절 멘토로 지목했다.

 

‘내 멘토는 우리 과 난초가 해줬으면 좋겠어! 선배보단 같은 과 친구랑 멘토링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아! 난초야, 내 멘토 해줄 거지?’

 

넉살 좋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 B. 그날은 B가 우리학교에 온 첫 날이었고, 우린 그날 처음 본 사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친구’라고 말하는 B가 조금 어이없었다.

 

게다가 ‘난초’라니. 왜 날 ‘난초’라고 부르냐고 물으니, 애칭이란다.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참고로 멘토 선택권은 교환학생 본인에게 있긴 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학교에선 주로 동기보단 선배를 멘토로 추천한다.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은 그러한 추천에 그냥 따르는 편이고.

 

‘그런데 이 희한한 B는 같은 과 동기인 날 멘토로 선택했단 말이지. 도대체 왜?’

 

매번 드는 의문이다. 의문이 들어도 어쨌든 심심해 멘토가 된 이상, 지상에서 온 멘티인 B를 잘 챙겨주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래야 하는 의무감이 희미해진다. 의욕도 떨어지고.

 

‘솔직히 B가 나보다 더 여기 사람 같은걸. 지상에서 온 외부인이 맞는지 오히려 의심스럽다고.’

 

내 옆에 팔자 좋게 누워있는 B는 그리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 아니다. 여러모로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잘 하는 편이다.

 

B가 말하길, 여기 오기 전부터 심심해 세계에 관해 꽤 많이 공부했다고 한다. 심심해 교환학생으로 선정된 날부터 어마어마한 분량의 심심해 대백과를 다 읽고 왔다고.

 

그래서인지 여기 생활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원체 애가 수단이 좋아서 큰 곤란 없이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

 

“B, 아무리 봐도 너는 멘토라는 게 그다지 필요 없어 보이는데 왜 날 멘토로 지목한 거야?”

 

“또 그 질문이야? 난초 넌 지겹지도 않아? 그냥이라니까, 그냥.”

 

날 왜 네 멘토로 지목했냐고 종종 질문했지만 그때마다 B는 지금처럼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냥이란 게 어디 있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냥 난 너랑 멘토링하고 싶었어. 나는 난초 네가 신기한 걸.”

 

‘흥, 역시 그랬군.’

 

B란 인간은 확실히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지상에서 심심해로 교환학생을 온 것만 해도 그렇다. 얘가 우리 과로 온 첫날, B는 긴장한 기색 없이 마냥 신나고 들떠 보였다. 새로움에 대한 낯가림이나 두려움 따윈 전혀 없어 보였다.

 

‘넌, 새로운 것에 관심이 참 많은 것 같아.’

 

나는 B에게 종종 그렇게 말하곤 한다. 칭찬으로 한 말은 아니고 명백한 사실이라 그냥 한 말인데 B는 제 말에 꽤나 자랑스러워했다. B가 말하길, 자기 신조는 ‘개척’이고, 자기 장점은 ‘개척정신’이란다. 자칭 개척의 아이콘인 B에게 넌지시 나는 물었다.

 

“B, 혹시 우리 과 애들이 내 얘기했어?”

 

“네 얘기? 아니.”

 

“진짜 내 얘기 안 했어? 나 어떻게 태어났는지 말이야.”

 

“난 심심해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뭐?”

 

“<심심해 백과사전>에서 봤어. <심심해 미스터리 편>에 나와 있거든. 네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진짜 신기하더라.”

 

B의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가 이내 수긍했다.

 

‘내가 백과사전에 수록될만한 인물인가? 하긴 뭐 그럴 만하지. 솔직히 미스터리한 일이었으니까.’

 

지상에서 온 B의 입장에선 심심해 세계 자체가 신기할 것이다. 여기 사는 나란 존재도 신기할 테고.

 

‘게다가 내 경우엔 출생까지 유별나니 나한테 호기심을 갖는 건가.’

 

호기심 많은 B의 구미가 당길 만하다. 지상에 사는 보통의 인간인 B와는 조금 다르게 태어났다. 실은 나의 출생 방식은 여기 심심해 세계에서도 조금 독특한 일이었다.

 

나는 상상임신으로 태어났다. 내 출생에 관해 심심해 박사님들이 많은 연구를 해오셨다. 박사님들 말로는, 자가수정과 유사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100% 동일한 방식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딱히 그리 놀라운 일 같지가 않다. 특히나 여기 심심해 세계에선. 심심해 세계엔 자웅동체나 자가수정하는 생물이 지상보다 훨씬 많기에.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자웅동체나 자가수정하는 생물은 아니다. 그들과는 좀 다르다. 예전에 심심해 연구소 견학 갔을 때, 박사님들이 설명해주셨는데 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