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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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번째 시도 끝에 ‘이계의 왕’ 의 체력을 약공격 3번만 더 맞추면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깎아 두었는데 요란하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대체 왜 쓰라고 놔둔 초인종을 안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시하면 엄마나 아빠가 알아서 하시겠지..

한참 몰입해서 분위기 좋았었는데 흐름이 한번 깨어지니 게임 패드를 잡은 손이 영 내 맘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

쾅!쾅!쾅!

하마터면 놀라서 욕설을 내뱉을뻔했다. 이건 현관문을 발로 걷어차지 않는 한 낼 수가 없는 강도의 소리다.

어찌나 요란한지 거실 공기가 뒤흔들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이씨.. 2시부터 아파트 전체 정전이라고 했는데.. 그전에 왕 깨고 저장하려 했드만..’

시계를 보니 1시 57분이었다.

순간 엄마 아빠가 점심먹고 장 보러 멀리 읍내 마트에 나갔다 오신다고 한 게 떠올랐다.

게임에 몰두해서 깜박 잊고 있었나보다.

‘이계의 왕’과의 한판 대결은 어쩔 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았다.

현관 쪽 방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주무시고 계시는 할머니가 깨는 것도 곤란했지만 방에서 내 핸드폰으로 만화영화에 빠져 있는 동생이 또 겁을 먹기라도 하면 그건 진짜 큰일이다.

할머니의 증상이 요새는 좀 괜찮아졌다.. 고 엄마가 말했었다.

할머니가 한참 안 좋았을 때는 나나 엄마를 붙잡고 욕설과 험한 말을 내뱉곤 하셨는데 요새는 그저 말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기만 하신다.

때때로 내가 방앞을 지나가면 할머니 방 가득 사다 놓은 사탕 중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잡아 건네주시곤 했다.

내 생각에도 더이상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거 말고는 할머니와 우리는 썩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젠 물릴 대로 물려서 책상 위에 쌓아둔 사탕 무더기가 처치 곤란하긴 했지만, 사탕을 건네주며 즐거워하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충치쯤이야 뭐 대수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동생이었다.

작은 소리나 다른 사람의 별 뜻 없는 행동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게 너무 심해져서 요새는 헛것이나 이상한 소리까지 들린다고 하며 발작을 일으킬 정도였다.

아직은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한 번만 더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또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난리법석을 떨게 분명했다.

“네 나가요! 문 두드리지 마세요!”

나는 게임기의 전원을 내리고 맨발로 다급하게 현관문 앞으로 뛰어갔다.

물론 아무리 급하다 해도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는 이상한 사람한테 문을 벌컥 열어줄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누구세요?”
“학생.. 집에 어른 안 계시니?”
“네. 어른 안 계시니 나중에 오세요.”

뒤돌아서 거실로 향하려는데 현관문이 들썩이며 바깥쪽으로 당겨졌다.

“일단 문 좀 열어줄래? 얼굴 보고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누구신대요? 그리고 왜 남의 집 문을 벌컥벌컥 열려고 하세요?”

조금은 놀라고 무서워서, 조금은 겁쟁이 동생처럼 별것도 아닌데 겁먹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거칠게 말이 나왔다.

“… 학생! 그런데 왜 어른한테 말을 그딴식으로 해?! ”

꾸민 듯 경쾌하던 문밖의 목소리가 낮고 감정 없는 말투로 돌변했다.

“네? 제가 뭘요.. 남의집에 막 들어오시려고 하니깐 그러죠.”
“일단 문부터 열지? 어른 문밖에 세워 두고 그렇게 말대답 따박따박 하는 거 아니야!”
“..아니요 어른 없다니깐요. 나중에 오세요!”

현관문 앞이 갑작스럽게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갔나?’

조용히 현관문 렌즈에 눈을 가져가 봤다.

목소리의 주인도 바깥쪽 렌즈에 눈을 대고 있었던 거 같았다.

눈앞에 불쑥 나타난 시커먼 눈동자뿐인 눈과 길게 늘어진 아래턱에 소스라치게 놀라 물러서는데 현관문이 더 거세게 들썩거렸다.

“문 안 열어!! 어디서 어린놈이 건방지게 어른을 밖에 세워두고!! 이거 빨리 안 열어!!”

심장이 너무 빠르게 쿵쾅거려서 어찔어찔한 기분이 들었다.

현관의 안전고리까지 마저 채웠는데도 좀처럼 안심이 안 된다.

“그냥 가시라고요! 자꾸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석아! 석아! 석아! 어서 일루와봐!”

내 고함소리에 응대한 건 놀랍게도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걸 들은 게 몇 개월 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괜찮겠지. 안전고리까지 채워놨으니..’

뒤돌아서 할머니 방으로 향하는데 뒤통수가 계속 서늘했다.

할머니는 안전의자의 팔걸이를 꽉 붙들고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팔걸이를 어찌나 꽉 잡으셨는지 쭈글쭈글한 팔뚝의 피부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게 다 보일 정도였다.

“너!! 내가 예전에 너한테 뭐라고 그랬어!!”

뜬금없는 할머니의 호통도 놀라웠지만, 할머니의 말투가 문밖의 목소리와 너무 비슷해서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