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퍼,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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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북극으로 가, 웨이.]

 그래요, 알고 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미 여러 번 들었거든.

 연구에 미친 파이퍼가 보낸 편지는 보고서처럼 간결하고 짧은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시작하는 문장, ‘그러나, 놀랍게도, 그렇기에’로 시작하는 흔해빠진 접속사의 연결들. 대부분이 최근 연구 동향 얘기였다. 어린 시절보다도 말수가 준 건지 원체 그런 식으로밖에 글을 못 쓰는지 몰라도 편지 속엔 파이퍼의 일상 따윈 적혀있지 않았다. 난 그 글을 읽고 또 읽어가며 북극 기지에 연구지원서를 썼다.

 파이퍼를 뒤쫓아가려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경비행기에 타고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벌써 한참을 이어진 비행에 속이 메슥거렸다. 이런 데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익숙해지는 일이라고는 없는 모양이다. 창밖을 보면 거의 다 녹아내린 해빙이 눈에 띈다. 옆자리는 소란스럽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요?”
 ”두고 온 게 없나 생각 중이었어요.”
 ”우리가 두고 온 거야 많죠. 나는 딸이랑 남편이 집에 있답니다.”
 ”저는 가족이 없어서요.”

 그래도 두고 온 거야 많죠. 내 등을 두들기는 손은 두꺼운 장갑과 보온재 사이에 스쳐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낸다. 마음 좋아 보이는 금발의 중년 연구원. 경비행기에 탄 인원들은 어째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인다. 세상에 희망이나 즐거움 따위가 제법 남아있다 믿거나 믿어보려고 하는 얼굴들. 나는 새삼스레 미소지으며 화답했다. 파이퍼는 대체 이런 분위기에 어떻게 적응했던 걸까? 이미 오래전 늦어버린 연구에 대책을 세우러 가는 게 우리 아니었나.

 파이퍼가 마지막 편지를 보낸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당신은 편지로부터 몇개월 뒤쯤 미국에 돌아왔지만 내게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북극의 백야 속에 살며 드디어 쓸모없는 나라는 사람의 기억도 지워버렸나 싶었다. 답장이 도착하지 않았느냐고 한 통의 편지를 더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답장을 받고 싶었으면 편지를 받지 못 했느냐고 먼저 한 통을 더 부쳤을 사람이다.

 떨림과 소음 속에 앞자리에 앉은 연구원이 이러다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며 웃었다. 나는 나의 작은 집 책상 속에 내버려 두고 온 편지를 생각하다 그 사람을 향해 미소지었다. 의례적으로 짓는 내 미소에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해주던 파이퍼가 떠올랐다.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뒤쫓아가려고 애쓰면 밀어내고 질린 듯이 구는 사람. 정상적인 척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굳이 비참하게 만들던 사람. 추위 속에 깜빡이며 겨우 버티고 있는 태블릿피시의 화면을 바라보다 다시금 종이로 된 노트를 펼쳐 들었다. 맨 윗줄에 날짜를 적어넣고 그 밑에 글을 적어 내려갔다. 흔들리는 글씨로 첫 문장에 썼다.

 [오래전 북극점을 방문한 아문센 일행의 말대로, 극점은 여전히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