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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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유언

 

 

 

“제가 죽은 뒤에는 새장가를 들지 마세요.”

 

지방으로 멀리 떠날 출장 준비에 들떠 있던 이원수에게 날벼락 같은 말이었다. 침을 꿀꺽 삼킨 원수가 사색이 된 채 되물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요?”

 

호롱불빛을 받으며 사임당은 베갯모에 수를 놓고 있었다. 베갯모에는 고운 나비가 자수되어 있었다. 사임당은 남편의 얼굴을 외면한 채 바느질을 하며 말했다.

 

“까닭 없이 나온 말일까요? 뭐 찔리시는 거 없으신가요?”

 

마주보고 앉아 있던 이원수가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첩, 권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뜨끔해진 원수가 입가로 손을 가져가 마른기침을 했다.

 

“흠.”

 

사임당이 베개를 모로 세워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베개 통 속에 채워진 마른 향초가 향내를 일으켰다. 코끝이 간지러워진 원수는 딴 소리를 했다.

 

“어디에서 찬바람이라도 들어오나?”

 

원수가 닫힌 안방 문을 둘러보는 척 고개를 돌렸다. 바느질 하던 손을 멈추고 사임당이 고개를 들어 남편을 바라봤다. 불빛에 비친 사임당의 얼굴에는 지난 날 청초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었지만 왠지 피곤해 보였다.

 

“우리에겐 이미 7남매가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죽으면 예법에 따라 재혼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원수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렇다면 아내를 쫒아낸 노나라 공자는 예법에 어긋난 짓을 한 것이오?”

 

“그것은 난리가 나서 피난길에 아내와 헤어진 것이지 공자가 쫓아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증자는 왜 부인을 쫓아냈소?”

 

 

“부인이 시부모를 잘 봉양하지 않고 불효했기 때문에 내 보낸 것입니다. 그럼에도 증자는 새장가를 들지 않았지요.”

 

“그럼 주자는 어떠했소?”

 

“47세에 부인 유 씨와 사별했지만 다시는 장가를 들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듯 줄줄이 대답하는 사임당 앞에서 이원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원수는 하소연을 하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있소. 당신이 죽으면 집안 살림은 누가 돌본단 말이오?”

 

“첫째 딸 매창과 둘째 딸 향이 스무 살을 넘긴 지 오랜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그래도.”

 

“부인과 사별한 주자는 결혼 안 한 맏이와 살아서, 집 안에 살림을 봐 줄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재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는 가슴이 답답했다. 분명히 아내와 첩을 줄줄이 끼고 살면서도 세상을 호령한 옛 성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딱히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원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끌끌거렸다. 실상 사임당과 말씨름을 벌여 이겨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새 사임당이 종지부를 찍듯 말했다.

 

“옛 사람이 다 이러하니 더 이상 묻지 마소서.”

 

“허허, 하지만 그들은 모두 성인들이고 나는 범부에 지나지 않소. 어찌 필부의 삶을 성인의 도에 맞추려 하시오.”

 

“장부와 성인의 길이 어찌 다르겠습니까? 방금 영감께서도 모범을 찾고자 성인의 예를 묻지 않으셨습니까?”

 

입을 꽉 다문 채 이원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내가졌소.”

 

고개를 끄덕이면서 원수는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부인의 뜻을 잘 알겠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제게 금을 주시지요.”

 

“금이라니?”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했지요. 이 자리에서 확실한 언약을 해주시면 내겐 금과 같습니다.”

 

원수의 두 눈이 끔뻑거렸다.

 

“내가 아무리 미첨한 말로 당신과 약조를 한들 당신이 죽으면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겠소?”

 

단 둘이 나눈 대화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듯 묻는 것이었다. 그래도 사임당은 고집을 부리듯 단호했다.

 

“진심어린 말을 듣고 싶습니다.”

 

“알았소. 내 당신이 죽으면 절대로 장가를 가지 않겠소. 뿐만 아니라 첩도 두지 않을 것이며 기생조차 가까이 하지 않겠소.”

 

처음으로 사임당의 얼굴이 반색했다.

 

“정말이지요?”

 

자리를 고쳐 앉은 사임당을 향해 원수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면서 말했다.

 

“내 약속을 어기면 개라고 불러도 좋소.”

 

이때 흐릿한 미소를 짓던 사임당이 문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현룡아, 잘 들었느냐?”

 

문 밖에서 셋째 아들 이 이의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네, 어머님.”

 

현룡은 이 이의 아명이었다. 이 이를 임신했을 때 사임당은 동해바다에서 검은 용이 날아와 문머리에 서리는 태몽을 꾸었다. 꿈에 본 용을 일컬어 현룡이란 아명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