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기억

  • 장르: SF, 판타지 | 태그: #식민별 #퇴화 #멸종
  • 평점×5 | 분량: 91매
  • 소개: 한 생물학자가 고향을 떠나 아내와 함께 식민별로 이주해 여생을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아내의 민감한 폐는 식민별의 대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의사의 권고에 따라 퇴직 후 다시 고향으... 더보기

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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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고 전실로 들어간다. 현관문이 닫히자 전실에선 ‘우웅’으로 시작해서 ‘윙-’하는 시원한 소리가 나며 정화기가 작동한다. 나는 정화 작업이 끝날 때까지 서서 기다린다. 집안으로 통하는 투명한 중문을 통해 아내가 웅가리 엘드를 안고 거실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잠깐의 정화 작업이 끝나고 중문이 열린다. 내가 거실로 들어서자 아내가 한 팔로 가볍게 안아주며 퇴근한 나를 맞이한다. 동시에 아내의 품에 안겨 있던 엘드는 나를 향해 팔을 뻗는다. 나도 한 팔은 아내를 가볍게 안아 주고 다른 팔로 엘드를 받아 안는다. 서너 살 정도 되는 아이만한 엘드는 꽤 묵직하다. 아내는 엘드를 나에게 맡긴 채 부엌으로 간다. 나는 아내에게 건강을 생각해서 무거운 애완동물을 안고 다니는 것 좀 그만 두라고 한마디 하려다 그냥 욕실로 향한다.

 

 

 

 

“정화기 소음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나는 식사를 하며 아내에게 말한다.

 

“소음이 약간 커지긴 했지만 일부러 고칠 정도는 아닌 거 같아요. 어차피 이 집에서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굳이 고치느라 돈 들이고,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나는 정화기의 소음이 커지면서 기능도 떨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 말했지만, 아내는 곧 정화기 따윈 필요 없는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므로 쓸모없어질 것에 공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키우던 웅가리를 맡아 줄 사람을 구하는 게 아내에게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나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몇 년 전 이 별에 와서 처음 알았다. 아내의 폐가 약하다는 걸. 아내나 아내의 가족들조차도 알지 못했던 일이다. 이 별의 대기 구성 물질과 우리 별의 대기 구성 물질은 약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호흡에 큰 지장은 없다. 물론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장기간 이곳의 대기에 노출됐을 경우 폐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극소수였으므로 정부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공공건물에 공기정화장치를 의무화할 것을 법제화했다. 폐가 약한 사람들은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외출 시에는 공기정화 기능이 있는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극소수에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처음 이 별에 왔을 때 아내는 공기가 좀 답답하다고 했었다. 나도 아내도 적응하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 별에 온 지 한 달쯤 되어 아내가 호흡곤란을 일으켰을 때, 아내가 입원한 며칠 사이 나는 부랴부랴 집에 공기정화시설을 갖춘 전실을 마련했다. 그게 13년 전이다. 오래된 공기정화기의 기능이 떨어져 아내의 몸에 이상이라도 생길까봐 걱정하는 내 마음을 아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엘드를 키우겠다는 사람이 오늘도 없어요.”

 

역시나 아내의 머릿속은 웅가리 생각으로 꽉 차있다. 이 별의 토착동물인 웅가리는 다른 종에 비해 유난히 손가락의 활용도가 높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동물을 ‘웅가리’라고 명명했다. 웅가리는 손가락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어이다. 우리 집에서 애완용으로 키우고 있는 웅가리인 엘드도 손가락을 잘 쓴다. 사람보다 두 개 적고 크기도 앙증맞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엘드의 손가락 사용은 회사 연구실에서 키우는 웅가리들에 비하면 천재적이라 할 만하다.

 

연구실의 웅가리들은 케이지 하나에 한 마리씩 넣어놓는데, 케이지는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벽이 막혀있다. 이 별에 연구실이 세워진 초창기에는 사방이 철창으로 된 케이지를 다닥다닥 붙여 놓았었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옆 칸의 다른 웅가리와 닿기라도 할까봐 케이지 한 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녀석들이 시간이 지나자 철창사이로 팔을 뻗어 옆 칸의 웅가리에게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먹이 때문인가 싶어 먹이를 늘여주었지만 살만 더 찔 뿐, 서로에 대한 공격성은 줄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격성 강한 개체와 순한 개체가 반반이라는 것이었다. 연구실에선 공격적인 개체들을 안락사 시키고 순한 녀석들만 연구용으로 키웠다. 그러다 차츰 웅가리에 대한 연구가 발전해 지금은 성질 사나운 녀석이 발견되어도 안락사가 아닌 뇌 시술로 간단히 해결한다. 뇌 시술은 지능인 약간 떨어진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순한 성격으로 만드는 데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게다가 연구용 웅가리는 지능이 좋을 필요도 없다.

 

초창기엔 연구용 웅가리를 확보하기 위해 야생의 것들을 잡아 순한 것만 선별했으나 10년쯤 지나자 연구실에서 번식시킨 개체가 전체의 반에 이르렀다. 시간이 더 지나 내가 이 별에 부임했던 13년 전엔 힘들여 야생에서 잡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연구실에서 태어난 웅가리가 너무 많아 일부를 도태시켜야 할 판이다. 그렇게 도태될 뻔한 녀석들 중 하나가 우리 엘드다.

 

고향에서 키우던 애완동물은 이곳으로 데리고 올 수 없었다.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국제연합이 행성간 동물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던 외래 동물이 의도적이거나 실수로 야생화 되어 그 지역 생태계를 교란시킨 경우가 여러 나라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생태계 보존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행성의 동물에게서 어떤 알려지지 않은 병원균이 묻어와 퍼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행성간 동물 이동은 금지되어야 한다. 다만 연구 목적으로 허가된 동물은 예외다.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여러 종의 애완동물들을 키웠다. 그러나 행성간 동물 이동 금지법 때문에 고향에서 키우던 애완동물들을 모두 자식들에게 맡기고 우리 부부만 단출하게 와야 했다. 이 별에서 한동안 적적하게 지내던 우리는 내가 일하는 연구소에서 안락사 당할 뻔한 엘드를 데려오면서 활기를 찾았다. 웅가리는 이 별의 다른 종들보다 지능이 높아 훈련도 잘 되고 제가 예쁨 받는 법을 금세 터득한다. 연구소에서 태어난 웅가리의 용도를 애완용으로 변경하고, 연구소 밖으로 반출하기 위한 몇 가지 조치만 하면 누구나 웅가리를 애완용으로 키울 수 있다. 엘드도 그 몇 가지 조치인 중성화 수술과 공격성을 줄이는 뇌 시술, 유전자 등록과 위치추적기 삽입,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한 모근 제거 등을 하고 데려왔다. 어떤 사람들은 웅가리를 취향에 맞게 성형하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최고라는 생각에 그런 수술은 하지 않았다. 엘드는 그렇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와 몇 년을 함께 했다. 새끼 땐 이 별의 동물에 대한 수의학 수준이 지금보다 낮아 잔병치례도 많았고 죽을 고비도 두세 번 넘겼지만 엘드는 잘 이겨주었다. 그리고 폐 질환 때문에 집에서만 일하게 된 아내에게 엘드는 유일한 말벗이 되었다. 물론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지만…….

 

우리 부부는 퇴직하고 나서도 이 별에 정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폐가 이 별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 순간, 퇴직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엘드가 늙어 죽을 때까지 만이라도 더 머물자던 아내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의사의 권고에 엘드를 키워줄 사람을 찾고 떠나기로 했다. 내 퇴직일은 가까워 오는데 엘드를 맡길 곳을 찾는 일은 전혀 진척이 없다. 덕분에 아내의 머릿속에서 나는 점점 더 엘드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신세다.

 

아내는 한숨을 쉰다. 나는 걱정하는 아내에게 별 도움도 안 되는 말을 해 준다.

 

“엘드의 나이 때문에 키우려는 사람이 없는 지도 몰라요.”

 

엘드는 우리 별의 공전주기로 따지면 12살이 넘었다. 이 별의 공전주기로 계산하면 약 31살 쯤 되는 것 같다.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나이보다는 뉴스에 흉흉한 기사가 자꾸 나와서 사람들이 웅가리를 더 기피하는 거 같아요.”

 

아내가 상심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흉흉한 기사라니요?”

 

나는 오늘 정신없이 바빠 뉴스 하나 열어 볼 틈도 없었다.

 

“웅가리가 주인을 공격하는 기사요. 오늘 아침엔 늦잠 자던 주인을 애완용 웅가리가 공격하고 도망쳤대요. 부엌에서 쓰는 레이저커터로 주인 눈을 찔렀대요.”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웅가리가 지능이 다른 종에 비해 높긴 하지만 레이저커터를 조작할 줄이야……. 아마 그 녀석은 평소 주인이 요리하는 모습을 유심히 봐온 듯하다. 우리 엘드도 가정에서 다양한 사물과 상황에 노출된 채 자라서 그런지 연구실에서 케이지에 갇혀 자란 웅가리들에 비하면 상당히 똑똑한 편이다. 그래도 뇌에 시술을 한 덕에 전혀 공격성을 띠진 않는다. 그런데 그 녀석은 어쩌다 주인을 공격한 걸까?

 

“정말 끔찍하죠. 그 기사 나고부터 웅가리를 애완동물류에서 배제해야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웅가리를 애완동물류에서 배제해야한다는 사람들’ 그들은 환경운동가도 박애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웅가리의 높은 지능에 뭔지 모를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뿐이다. 다른 동물에 대해선 애완동물로 삼건 말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게 그 증거다. 엘드에게 썩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며 식사를 마친 우리는 각자 취미생활을 하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침대에 눕는다. 내 취미는 엘드와 놀아주기이다.

 

침대에 누워 TV를 켠 아내는 웅가리 관련 뉴스를 섭렵한다. 나는 옆에서 뉴스를 보다가 깜빡깜빡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웅가리 관련 뉴스에 웬 유적이람?”

 

그러다 아내의 혼잣말에 깜짝 놀라 눈을 떠버린다.

 

이 별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은 별의 곳곳에 남아있는 문명의 흔적을 보고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흔적들은 식물과 이끼류가 덮고 있는 두께만큼이나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다. 건물로 보이는 허물어진 인공구조물 안에는 문명과 전혀 상관없는 동물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 문명의 주인은 어디로 간 걸까?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별을 떠나 우리처럼 다른 별을 찾아간 걸까? 멸종한 걸까? 이 별이 한 번 공전할 동안 지성을 가진 원주민을 찾아 샅샅이 별을 뒤지던 탐사대는 그런 생명체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별의 1년은 우리 별의 0.4년이다. 공전주기와 달리 자전주기는 우리별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 밤낮이 전환하는 시간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다. 사람과 비슷한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없음을 확인한 후, 이 별은 국제법에 따라 우리나라의 식민별이 되었다. 우리나라 탐사대가 맨 처음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별은 크기는 작지만 육지와 바다가 적절히 섞여 있고, 생물과 광물 자원이 풍부한데다 대기 또한 우리 고향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이주해 살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별이다.

 

뉴스에선 폐허가 된 유적들을 보여주며 어떤 용도로 이용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지금은 사라진 이 별의 원주민들은 무선 통신을 이용할 만큼 문명이 발달했고, 우리만큼이나 다양한 삶을 살았다는 게 보인다. 뉴스의 후반부에 어느 연구팀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는 자막과 함께 연구팀의 수장이 인터뷰를 한다. 아내의 혼잣말에 잠이 깨 얼결에 뉴스를 시청하던 나는 자막대로 충격에 빠진다. 옆에 있던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이 별을 떠났거나 멸종했다고 알려진 문명의 주인은 다름 아닌 웅가리라는 연구 결과다. 뉴스에선 그런 연구결과를 뒷받침할 증거들이 속속 제시된다. 정말인 것 같다. 주거 용도의 건물로 추측되는 유적은 내부가 웅가리 성체가 활동하기 좋은 크기이다. 우리가 발견한 책들에 있는 원주민 그림은 웅가리와 비슷하지만 확연히 달랐는데, 그것이 오랜 세월 웅가리가 야생 생활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한 결과라며 진화의 과정도 설명한다. 도대체 웅가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그들은 찬란한 문명을 버리고 숲에 들어가 야생동물이 된 걸까?

 

침대 위, 우리 부부의 발치에 누워 잠든 엘드를 바라본다. 매일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 애원하고, 손톱만한 간식 하나에도 기뻐 팔딱팔딱 뛰고, 우리의 눈치를 살펴 놀아줄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는 저 동물이 문명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당장 일어나 방을 따로 마련해 주고, 교육을 시키고, 사람처럼 대해야 할 것만 같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엘드가 우리에게 사람의 말로 또박또박 인사하는 게 아닐까?

 

 

이 연구결과는 큰 파란을 일으킨다. 찬란한 문명을 누리던 지성체에서 언어마저도 잃어버린 야생동물로 전락한 웅가리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웅가리의 숨어있던 지능이 되살아나 다시 이 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사람들을 공격할 거라는 근거 없는 공포에 쌓인 사람들도 있다. 동정이든 공포든 웅가리를 키우기가 꺼림직하다는 이유로 애완용으로 키우던 웅가리를 연구소에 다시 반납하는 이들도 많았다. 모든 애완동물은 유전자정보를 등록하고, 위치추적 장치를 삽입하기 때문에 함부로 유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키울 수 없게 되거나 키우기 싫어진 애완동물을 처분할 곳 마저도 없으면, 사람들이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거나 학대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입양한 곳에 반납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웅가리는 우리 연구소를 통해서만 입양이 가능하다. 그래서 연구소는 갑자기 늘어난 웅가리들로 사육장이 포화상태가 될 지경이다. 웅가리를 계속 키워도 안전할지를 묻는 문의도 쇄도해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

 

요리용 레이저커터로 주인의 눈을 찌르고 도망쳤다던 웅가리가 잡히고 그 행적이 드러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웅가리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집 주변의 방범용 카메라 영상을 분석한 결과 코코링이라는 이름의 그 웅가리는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쯤 전부터 야생 웅가리와 교류가 있었다. 주인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야생 웅가리와 코코링이 서로 마주보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는데, 같은 종끼리 뭔가 끌리는 게 있나보다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했다. 사고 당일 코코링은 집을 벗어나 곧바로 그 야생 웅가리를 만나 숲으로 들어갔다. 숲엔 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위치추적 장치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 후 하루 동안 코코링의 위치추적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위치추적 장치가 다시 작동하자 비로소 경찰은 코코링을 잡을 수 있었다. 경찰은 코코링을 잡을 당시 여러 마리의 야생 웅가리가 함께 있었다고 했다. 코코링을 보호하려는 웅가리들의 저항이 거세 포획 과정에서 상당수를 죽일 수밖에 없었고, 도망친 웅가리들은 숲으로 깊이 들어갔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곧바로 경찰들이 스캐너를 동원해 그 일대를 뒤졌지만 한 마리도 스캐너에 잡히지 않았다. 또한 경찰들은 하나같이 야생 웅가리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이러한 보도가 나가자 사람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한다.

 

‘연구실에서 나고 자란 웅가리를 꾀어낼 만큼 영악하고, 스캐너도 잡지 못할 만큼 잘 숨고, 레이저커터를 조작할 만큼 지능이 높다’라는 사실에 근거한 공포는 그래도 이해할만 하다. 웅가리가 깊은 땅속에 대단위 군락을 이루고 살 것이라는 추측부터 머지않은 미래에 첨단무기로 무장한 웅가리 대군이 공격해올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상상까지 사람들의 이성을 좀먹고 커가는 공포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결국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군 장비가 동원된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된다. 경찰이 들고 다니는 개인용 스캐너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군용 장비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 살고 있는 웅가리들의 집단을 몇 개 찾아낸다. 찾아낸 야생 웅가리들은 모두 잡아 임시로 급하게 마련된 사육시설에 넣는다. 군 수색대는 웅가리의 서식지에서 이상한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된다. 웅가리를 비롯한 이 별의 생물을 연구하는 나도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참여한다.

 

 

“그래서요?”

 

저녁식사를 마친 아내는 내 옆에 앉아 질문을 퍼붓는다. 웅가리에 관한 연구들은 현재 상황에서 대단히 민감한 부분이라 아내에게 조차도 말해 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다. 나는 최대한 선을 지키며 아내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웅가리가 살던 굴은 인공으로 만든 것인데 땅속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두껍고 견고한 벽으로 쌓여 있었어요. 개인용 스캐너가 감지 못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요. 크기도 사람이 들어가도 될 만큼 넓고 높았고요. 여러 가지 용도의 실(室)들이 있고, 전자장치도 많았어요. 나야 그쪽 분야는 잘 모르지만 그 장치들을 살펴본 전문가는 폐쇄된 공간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설비를 컨트롤 하는 장치와 외부의 침입을 막는 방어 장비도 있고, 무기로 보이는 것들도 많다고 했어요. 결론은 방공호 같은 게 아닐까 한답니다.”

 

“방공호요? 큰 전쟁이 있었나요?”

 

아내는 눈을 반짝인다. 아내의 호기심에 나는 밤새 시달릴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한다. 엘드가 졸린지 놀다 말고 아내에게로 와 아내의 다리를 끌어안는다. 안아달라는 표현이다. 아내는 엘드를 품에 안는다. 엘드는 아내의 품에서 곧 잠이 든다.

 

“당신은 웅가리가 두렵지 않아요? 그 무거운 엘드를 여전히 사랑스럽게 안아주는 군요.”

 

“나도 길에서 웅가리를 만나면 무서울 거 같아요. 별로 나갈 일이 없어서 다행이지만요. 하지만 우리 엘드는 다른 웅가리와는 다르잖아요. 12년 넘게 키웠지만 지금껏 사람을 적대시한 적 없었어요. 훈련도 잘 돼 있고, 무엇보다도 연구소에서 나온 이후로 한 번도 다른 웅가리를 본 적도 없어요.”

 

엘드에 대한 아내의 사랑과 신뢰는 무한하다. 나는 잠든 엘드를 보며 뭔지 모를 패배감을 느낀다.

 

“지금껏 방공호의 기계장치들을 사용한 건가요?”

 

아내는 다시 야생 웅가리 이야기로 돌아온다.

 

“아니요. 그 장치들은 사용 안한 지 너무 오래 돼서 이젠 작동하는지조차 의문스러웠어요. 쌓인 먼지가 수천 년은 묵은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도 웅가리가 왜 저렇게 퇴화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계장치들을 연구소로 가져갔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아내는 조바심을 드러내며 계속 캐묻지만

 

“그건 모르죠. 우리 연구소도 아니고……. 우리도 타 연구소 결과를 알려면 공식발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아내는 적잖이 실망한 눈치다. 나는 더 이상 새로운 정보가 없다며 아내를 달래 오늘을 마감한다.

 

 

며칠 후, 아내의 생일 저녁에 친한 후배 부부를 초대한다. 나도 아내도 좋아하는 이 젊은 부부에게는 이제 겨우 기어 다니는 아기가 있다. 우리는 오랜만에 아기를 안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지만 오늘은 수면캡슐에 재워놓고 왔다.

 

“그 집 웅가리는 잘 있죠?”

 

이야기꽃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아내가 묻는다. 그러자 후배 부부는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실은……, 우리 해랑이 연구실로 보냈어요.”

 

나는 후배가 해랑이를 연구실에 데려왔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내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무척 놀란 얼굴이다.

 

“며칠 전에 해랑이가 아기를 공격했어요.”

 

“세상이나!”

 

놀란 아내에게 후배의 아내가 부연설명을 한다.

 

“물론 우리 아기가 해랑이를 괴롭히긴 했지만, 아기가 뭘 알겠어요? 그저 놀자는 의미로 건드린 게 해랑이 입장에서는 괴롭힘을 당한 게 된 거죠. 그래도 해랑이가 화가 나서 아기를 때리는 걸 보니까 정이 뚝 떨어지고 무서웠어요. 그렇잖아도 요즘엔 웅가리에 대한 무서운 기사들이 자꾸 쏟아져 나오는데…….”

 

웅가리가 원래는 우리와 같은 수준의 지능을 가진 생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웅가리 기피현상은 더욱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