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키(Stuc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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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키(Stuc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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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털에 빨간색 새의 깃털로 만든 머리띠를 찬 인디언 소녀의 시꺼먼 눈이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유리창에 가려진 인형의 검은 눈동자에 신경을 빼앗겨 있었다. 얼핏 보기엔 검은 눈동자에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자 검은 눈동자 안에 노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소름 끼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노인은 이내 투명한 유리창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척자들이 한창 우리가 지금 서있는 이 땅에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입니다. 개척이라는 위대한 일에는 언제나 모험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사실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새로이 땅을 개척하려는 개척자와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 인디언 인형에 얽힌 이야기도 바로 그러한 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 개척자 그룹이 인디언 부족들만이 살아가고 있던 땅에 도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찰이 벌어졌습니다. 인디언들은 개척자들에게 자신의 땅을 내주고 싶어 하지 않아 했고, 개척자들은 땅이 필요했고요. 이러한 마찰의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났고, 그 사고로 인해 인디언 소녀 한 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개척자들의 리더였던 크레이그 경은 목숨을 잃게 된 인디언 소녀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고, 그 소녀를 기리기 위해 인디언 아이를 본 따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인형이 만들어지고 몇 달 뒤에, 자택에서 크레이그 경과 아내, 그리고 아들이 모두 살해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크레이그 경의 아들이 이 인형을 품에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옆에 스크립트 된 신문기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당시 언론에도 굉장히 크게 보도가 되었던 실화입니다. 저주 받은 인형으로, 이 사건이 일어난 뒤에 잠시 세상에서 종적을 감췄던 인형이었는데요. 지난 2002년 익명의 기증자가 기증을 해주어, 이렇게 세상에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큐레이터를 보며 생각했다. 제대로 된 설명은 하지 않는, 엉터리 큐레이터군. 인디언 소녀가 왜, 어떻게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아. 노인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인디언들은 총을 멘 채 마차와 말을 타고 들어온 개척자들을 환영했다. 물론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인디언들이 개척자들을 진심으로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인디언들은 이미 개척자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 쉽게 자신들의 부족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학습이었다. 인디언들은 알고 있었다. 저 개척자들이 자신들의 땅에 도달할 때까지, 수 십 명의 동족의 피로 만든 길을 밟아왔다는 것을. 인디언들은 그들의 총과 칼에서 동족의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인디언들은 개척자들에게 자신의 땅을 쉽게 내주었다. 본인들의 땅을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당신들의 영토를 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개척자들은 모든 땅을 원했다. 그래서 개척자들은 묘수를 생각했다. 먼저 인디언들이 약속을 어기게만 만든다면,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인디언 소녀를 꾀어내었다. 맛있는 음식을 줄게, 재밌는 장난감을 줄게. 크레이그 경의 아들이 중심이 된 개척자들의 아이들이 인디언 소녀를 꾀어냈다. 인디언 소녀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선을 넘었다. 그리고 인디언 소녀는 살해되었다. 크레이그 경의 손에 의해. 소녀는 두 눈을 감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인디언 소녀의 시체가 명분이 되었다. 자신의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항의하러 온 인디언들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개척자들이 들고 있던 엽총이었다. 인디언들의 활은 아무에게도 박히지 않았다. 인디언들은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인디언들의 피 위에 개척자들의 건물이 세워졌다. 인디언들의 피 위에 도시가 세워졌다. 그리고 지금, 이 박물관도 세워진 거겠지.

 

인디언의 인형을 만든 것은 개척자들이 갖고 싶었던 전리품이었을 뿐이다. 소녀의 칠흑처럼 짙은 검은색 머리칼을 봉제 인형 위에 올린다. 소녀가 쓰고 있던 머리띠가 인형의 머리 위에 올려졌다. 개척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낄낄거렸다. 개척자의 아이들이 인디언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여기까지가 큐레이터가 말한 ‘사고’의 진실이었다. 그리고 큐레이터가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도시가 점점 커지며 리더의 자리를 두고 권력다툼이 생겼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크레이그 경의 오른팔이었던 비터는, 크레이그 경이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끝났다. 크레이그 경과 그 가족의 시체를 거실에 모아둔 비터는, 크레이그 경의 아들에게 인디언 인형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인디언 인형의 저주라고 여겼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스스로 알고 있던 개척자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저주 받은 인형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버려졌던 인형은 몇 년 뒤 집시 유랑단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이후 몇 군데의 골동품 가게를 전전하다 이 박물관까지 오게 된 모양이었다. 노인이 이토록 자세하게 알고 있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그리고 본인이 불과 5년 전까지 운영하던 골동품 가게에 이 인형이 잠시 머물렀기 때문이다. 물론 노인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저 어린 손자를 골려주려는 할아버지의 괴상한 취미일 뿐이라고 생각해왔을 따름이다. 다만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과 너무나 유사한 질감을 보여주었던 머리카락과, 눈동자 없는 검은 유리 눈알이 짙은 인상으로 남아있어,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졌던 적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노인이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에 큐레이터와 관광객 무리는 벌써 다음 섹션으로 향하고 있었다. 개중의 끝에서 무리를 따라가던 흑인 남성이 고개를 돌렸다가 노인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할아버지, 안 따라오시면 놓고 갈 수도 있어요. 이제 곧 박물관 문 닫는다고요. 빨리 돌아야 돼요.”

 

노인은 혼자 박물관을 찾아온 관람객이었지만, 왠지 큐레이터를 쫓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엉터리 설명을 듣고 그 설명에 대한 지적을 머릿속으로 하는 것도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지. 노인은 지팡이를 짚으며 느릿느릿 관람객 무리를 따라갔다.

 

잡다한 골동품들이 굉장한 의미와 역사를 지닌 유물로 둔갑한 모습이 노인에겐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인디언들의 장식구라며 코요테의 뼈를 이어 붙여 만든 목걸이 같은 것, 인디언들이 사용하던 토기 같은 것들이 쭉 늘어서 전시되어 있었다. 큐레이터는 한 가지 유물을 지나칠 때마다 아주 길게 유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는데―대체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과 같은, 그러나 어떤 근거도 남아 있지 않은 사실상 지어낸 이야기들이었다―큐레이터의 이야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노인은 입이 근질거렸다. 관광객들의 환상을 깨고 싶은 욕망이 벽난로에서 피어난 연기가 굴뚝에 차오르듯이 가득 찼다. 자신의 말에 표정이 굳는 큐레이터의 얼굴, 당황하는 관광객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다가 이내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몹쓸 늙은이가 다 되었군. 저게 저들의 장사인데, 그걸 방해하는 건 영업방해라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지, 노인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나마 이 엉터리 박물관에서 진실 된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자연에서 실제로 살아 숨 쉬었던 존재들뿐이었다. 80년 전에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거대한 육각공룡의 뼈를 이어 맞춰놓은 것이라든지, 42년 전에 발견된 이구아나돈의 뼈라든지, 50년 전에 죽은 코요테의 뼈라든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워진 미국 들소의 뼈 같은 것들, 이백 년 전에 개척자가 타고 다녔다는 말의 화석 같은 것들. 뼈라는 명확한 증거가 남아 있어 진실 되었지만, 역시나 그 뼈에 붙이는 살들은 다른 고기들이었다. 노인은 큐레이터가 떠드는 살을 다시 발라내 뼈만을 남겨두는 일에 몰두했다. 뼈, 노인은 인간이 살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자신들이 살아왔을 이야기가 담겨 있는 뼈를 좋아했다. 다른 전시품들은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그리고 자신의 가게에서 매일같이 보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노인은 진실을 안다. 수많은 박물관에 퍼져 있는 물건들 중에 진실 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이러한 뼈들은 골동품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명백한 진실―물론 뼈마저 사실은 석고로 만들어낸 가짜라고 한다면,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노인은 주저했다―, 저 뼈의 주인공이 언젠가 이 지구에 살았고,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죽었다는 그 명백한 진실, 존재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에 이르는 개체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인은 5년 전 골동품점의 문을 닫고, 먹고 살기 위해 여러 일들을 전전하면서 주말이면 항상 여러 지방의 박물관을 찾아다니곤 했다. 이 박물관에 와있는 것도 인디언 인형과 같은 것들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이 광활한 땅에서 뛰놀다가 죽음을 맞이했을 존재들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노인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고, 동시에 평생 동안 동경해온 생각이기도 했다. 노인은 아버지에게서 골동품점을 이어 받지 않기를 원했다. 골동품점 같은 고리타분한 일보다는 현장에서 화석을 발굴하는 일 같은 것이 노인이 평생 동경한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노인은 오랜 갈등―그래봐야 자신의 내면에서 들끓는 갈등이었을 뿐, 노인은 무척 엄했던 할아버지에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결국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노인은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골동품점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일은 꿈 꿀 수도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끝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노인은 매일 아침 동아시아에서 1113년에 만들어졌다는 청자와 몽골의 무당이 가지고 다녔다는 유리구슬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언젠가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항상 욕망해왔었다. 그리고 그 욕망을 실현할 시기가 드디어 찾아왔다. 자식들이 모두 독립하고, 함께 살던 아내마저 5년이 넘는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것이 10년 전의 일이었다. 사실 10년 전부터 거대한 전당포 상가가 생기며 도시의 구석에 구겨진 종이처럼 외로이 놓여 있던 노인의 가게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예전에는 전당포 같은 역할도 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이상한 물건만 파는 가게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5년 전, 매일 같이 쌓이는 먼지와의 싸움만을 계속해오던 노인은 결단을 내리고 가게를 내놓았다.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나선 노인은, 부푼 꿈을 위한 첫 번째 발걸음으로 지역 대학교의 고고학 수업을 청강하기로 했다. 하지만 꿈과 이상의 괴리는 노인의 예상보다도 더 컸다. 지루한 수업을 견디지 못한 노인은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가 수업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노인은 계획을 바꿨다. 노인은 발굴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의 젊은 사람들은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노인을 응원해주었으며, 기꺼이 노인을 발굴 현장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문제는 노인의 노쇠한 신체 능력으로는 발굴 현장에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80년 전에 늙어 죽은 물소의 다리뼈보다 더 상태가 안 좋은 노인의 무릎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장장 1년 동안 수십 번의 좌절을 경험한 끝에 노인은 결국 꿈을 포기했다. 대신 노인은 차선책을 구했다. 주말마다 여러 지방을 여행하며 각 지방의 대표적인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떠나 다니기를 4년, 노인이 도착한 박물관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노인은 어렸을 때 보았던 인디언 인형과 마주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저주 받은 인디언 인형이라는 점이, 노인을 조금 찝찝하게 만들었다.

 

노인은 큐레이터와 관람객 무리를 따라가는 것이 벅찼다. 노인과 관람객 무리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굉장히 큰 간극을 사이에 두고 있었기에 지금 노인과 관람객 사이의 거리 차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노인이 겨우 큐레이터 무리를 따라잡았을 때, 관람객들은 가운데 놓인 무엇인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의 굽은 등으로는 이미 자리 잡은 관람객들의 뒤통수만 보일 뿐이었다

 

큐레이터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거대한 통나무가 왜 뉘어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그냥 엄청 큰 통나무를 잘라놓은 것에 불과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 안에는 굉장한 것이 숨겨져 있습니다. 자, 제가 가리키는 곳을 보시면요―큐레이터가 가리키는 곳을 본 관광객들이 탄성을 내질렀다―온전한 개의 모습이 보입니다. 통나무에 끼인 개의 모습 말입니다. 모형이 아닙니다. 미라입니다. 이 개의 이름은 스터키인데요, 물론 사후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2002년도에 <서던 포레스트 월드>에서 실시한 인터넷 공모를 통해 지어진 이름입니다. 나무에 끼었다는 데에서 착안한 이름이죠. 이름대로, 정말 이 모습 그대로 발견되었습니다. 1980년에 벌목회사 조지아 크래프트의 벌목꾼들이 높이 8.5m의 떡갈밤나무를 자르다가 나무통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는 벌목꾼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 벌목꾼은 개의 눈이 번뜩였다고도 기억하고, 또 다른 벌목꾼은 개가 숨을 쉬고 있었다고 합니다만, 이는 그 당시에 너무 놀란 나머지 착각한 것이었죠. 스터키는 죽어 있었어요. 다만 너무나 생생하게 죽기 직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거였을 뿐이죠. 벌목꾼들은 스터키를 빼내고 나무만 가져가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무언가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류의 발전에 대해, 인류의 학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었던 거죠. 서던 포레스트 월드에도, 우리 박물관에게도 무척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벌목꾼들은 스터키가 들어있는 부분만을 잘라 나무 박물관 서던 포레스트 월드에 기증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스터키가 언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어떤 이유로 통나무에 들어갔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연구 끝에 전문가들이 밝혀낸 바로는, 스터키는 20년 전인,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68년 전에, 연도로 말씀드리자면 1960년도 즈음에 죽음을 맞이했던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덩치가 매우 큰 사냥개였던 스터키는 아마도 나무 사이로 도망친 너구리나 혹은 다람쥐 같은 것을 잡기 위해 나무통 속으로 들어갔던 모양인데요. 스터키는 안타깝게도 사냥감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저 큰 몸이 나무통에 그대로 끼어버리는 바람에, 나무속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죽음을 맞이한 스터키가 다른 야생 동물들의 먹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뻥 뚫려 있던 나무가 굴뚝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패한 스터키의 냄새가 굴뚝처럼 뚫린 나무를 통해 하늘로 날아가 다른 동물들이 냄새를 맡지 못했던 것이죠. 스터키의 사체가 썩지 않은 이유는 떡갈밤나무에 있는 타닌 성분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타닌 성분이 주변의 물기를 모두 흡수하는 작용을 해 주위 환경을 건조하게 유지시켰던 거죠. 이런 작용이 스터키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저수분 환경의 미생물 작용도 둔화시켰던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보시는 바와 같이, 완전히 보존된 미라의 모습으로 스터키가 발견된 것이죠.

 

스터키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람객들이 서던 포레스트 월드 박물관을 방문했다고 해요. 그러나 서던 포레스트 월드에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터키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고, 꽤 오랫동안 전시해오던 스터키를 가져갈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때 우리 박물관도 나섰죠. 정말 치열한 경쟁 끝에 우리 박물관이 스터키를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서 계시는 이 박물관에서 스터키의 모습을 보실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노인은 까치발을 들어보기도 하고, 연신 사람들 사이의 틈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여전히 위로 드러난 거대한 나무 둥치만 보일 뿐 스터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노인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미라가 된 사냥개라니. 이 빌어먹을 사람들은 언제쯤 자리를 비킬까. 사람들이 신나서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젠장, 박물관에서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다니! 노인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노인에게 말을 걸었던 흑인이 큐레이터에게 물었다.

 

“전에 있던 박물관은 도대체 왜 이 대단한 미라를 포기한 건가요? 심지어 이 미라 덕분에 관람객도 늘었다면서요.”

 

“서던 포레스트 월드 관리자 말에 따르면 관리가 무척 힘들었다고 하네요. 소문으로는, 밤이면 스터키가 사라지곤 했다고 하는데―큐레이터의 말에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요. 아무래도 관리비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박물관 운영에 있어 약간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우리는 정말 엄청난 비용을 서던 포레스트 월드에 지불하고 이 스터키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자 사진 다 찍으셨으면, 이제 다음 섹션으로 이동해도 괜찮을까요?”

 

사람들은 스터키에게 충분히 원하는 사진을 다 찍어냈다는 듯이 미련 없이 큐레이터를 따라 움직였다. 마치 들어왔던 바닷물이 밀려나가며 드러나는 뻘처럼, 노인의 눈앞에 스터키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노인은 말을 잃고 말았다. 나무 안에 갇힌 스터키의 모습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아름답기보다는 오히려 처절하고, 공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마지막까지도 죽음을 부정했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을 미라로 만든다는 것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하얗고 날카로운 이빨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검게 탄 것처럼 그을린 몸과 나무 안쪽으로 보이는 몸통.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몸. 마지막까지도 뻗은 듯이 통나무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한쪽 다리. 죽음이라는 관념을 미라로 만든다면 스터키의 모습처럼 될 것이 분명했다. 노인은 머릿속으로 스터키의 삶을 그려보았다. 어떠한 이유로 숲으로 가게 되었던 사냥개, 주인과 떨어졌던 사냥개, 나무 사이로 너구리를 좇아 들어간 사냥개, 그리고 나무에 끼인 채 울부짖었을 사냥개, 그러나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은, 혹은 누군가가 버리고 갔을 사냥개의 모습….

 

설마. 노인은 천천히 스터키 앞으로 다가갔다. 설마. 아니겠지.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노인의 머릿속에는 이미지 하나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하얀색 털에 갈색 점박이 무늬를 가지고 있던, 크고 멋진 사냥개의 모습. 그러나 아닐 것이다. 이런 우연은 있을 수 없다. 너무나 작위적인 우연이라고. 하지만 노인의 머릿속엔 선명한 이미지들이 나열되며 하나의 장면이 되었고, 장면들이 이어지며 기억이 되고 있었다. 건물보다 높이 솟아 있던 떡갈밤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던 숲, 숲을 뛰어가던 어린 소년과 그 소년을 쫓아오던 커다란 개의 모습. 열심히 땅을 파헤치던 소년과, 소년의 옆을 서성이던 개.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던 개. 개를 찾기 위해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버린 소년, 길을 잃은 소년, 아주 멀리서, 혹은 무엇인가에 막힌 듯이 답답하게 들리던 개의 울음소리.

 

아닐 거야. 노인은 생각했다. 그런 우연은 있을 수 없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녀석을 구분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서가 떠올랐다. 기억 속 녀석의 오른쪽 발은 다른 개들과는 달랐다. 녀석의 오른발은 다른 개들과 다르게 생겼었다. 녀석이 새끼일 무렵에 할아버지가 실수로 밟아서 오른쪽 앞발에 두 개의 발가락뿐이었다. 노인은 마치 통나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몸을 기울인 채 스터키를 살폈다. 나와 있는 왼쪽 발은 멀쩡했고,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오른쪽 발은…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 보이는 건, 곧 아니라는 뜻이라고 여겨도 된다. 이 녀석이 살아 통나무를 기어 나오지 않는 이상 절대로 확인할 수는 없을 거야. 노인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마주치게 되는 것만큼 불행하고 기분을 망쳐놓는 일도 없으니까. 과거의 감정이 다시 터져 나오는 일만큼이나 무용한 일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노인은 꽤 긴 인생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지겨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노인은 스터키의 통나무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벤치에 앉았다. 문득 노인은, 박물관에 자신만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많던 사람들의 소리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박물관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노인은 정적이라는 관념이 실체가 된다면 온 세상을 모두 덮을 만큼 아주 커다란 담요일 거라고 생각했다. 정적이라는 담요가 세상을 덮는다. 정적이 온 세상을 모두 덮은 순간은, 곧 죽음이리라. 죽음은 곧 정적에 휩싸이는 것, 모든 소리를 잃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리고 아내가 떠났듯이 그렇게, 노인도 정적이라는 담요에 덮여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올 것이다. 저 녀석도 통나무 안에서 소리를 잃고 세상을 떠난 거겠지. 가엾은 것.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을까. 노인의 머릿속에 갑자기 튀어나온 개의 모습이 그려졌다. 녀석의 이름은 체이서였다. 체이서는 잉글리시 포인터였다. 하얀색 털을 바탕으로 화가가 물감 뚜껑을 열다 튀어버린 것처럼 아무렇게나 난 커다란 갈색 반점이 몸의 절반 가까이를 덮고 있던 크고 멋있던 사냥개였다. 저 스터키라는 개와는 달리 무척이나 윤기 있는 털을 가지고 있었던 개였지. 암, 그렇고말고. 체이서는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사냥개였다. 그리고 노인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주에서 열린 여우 사냥 대회에서 우승은 거두지 못했지만 두 차례 준우승은 해본 적 있는 실력 있는 사냥개라고 할아버지가 매일 자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집에는 벗겨진 여우의 가죽, 여우 머리 박제가 벽에 걸려 있었고, 그 벽의 아래에 있던 장식장에는, 그래, 저 인디언 소녀의 인형이 들어 있었다. 인디언 소녀의 인형을 처음 본 곳은 할아버지의 가게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집이었군. 언젠가 조금 더 커서 할아버지의 골동품 가게에서 다시 보았던 것을 마치 처음 보았던 것으로 지금껏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벽돌 벽난로 앞에서, 할아버지는 자신이 아끼는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권력자가 앉았다던 흔들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고, 인도에서 만들어졌다는 양탄자 위에 체이서가 엎드려 있었다. 체이서는 그 순간이 무척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것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엎드려 있다가도 벽난로에서 타들어가던 장작이 내는 딱, 소리만 나도 고개를 휙 들고는 무엇이 있나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니까. 이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체이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엎드려 고개를 자신의 앞발 사이에 파묻곤 했다. 노인을 바라보던 그 시무룩한 눈빛은, 노인에게 마치 어떤 사고라도 빨리 일으켜 자신을 흥분시켜달라고 말하는 듯 애절하기까지 했다. 그때 노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10살짜리 꼬마 아이는, 자신이 평생 본 것들 중에 가장 신기한 물건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눈을 뜨고 있을 때에는 함부로 손도 대지 못하게 했던 물건들을, 잠들어있는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하나, 하나 자신의 작은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그 촉감으로 물건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오후에 들려줬던 이야기들이 소년의 손바닥에 닿으며 소년의 머릿속에 한 편의 그림처럼 펼쳐지곤 했다.

 

체이서는 어떻게 되었지? 그래, 나와 함께 할아버지 집의 뒤편에 있던 깊은 숲속으로 향했어. 할아버지는 가지 말라고 했었던 숲이었지. 귀신 들린 숲이라고,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며.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난 더욱 가고 싶었어. 그래, 그때의 나는 참 용기 있었지. 그러나 그런 용기는 언제부터 시들기 시작했을까. 그 날, 벽난로의 마지막 불씨가 꺼지던, 그 날부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왜 체이서와 함께 할아버지의 집을 나섰던 걸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해보려고 해도, 불투명한 실크 커튼에 가려진 것처럼 기억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지금, 벌써 68년이 넘게 지난 일을 기억해낸 사실조차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몇 차례 떠올려 본 적 없을 기억이었는데. 체이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이름인가.

 

숲에서의 기억은 의외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숲에서 소년은 개와 함께 달리고 또 달렸다. 나무 둥치에 등을 기댄 채 울었던 소년은―왜 울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마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 추측이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남자아이는 걸핏하면 울곤 하니까―이내 울음을 그치고 자신의 흥미를 끄는 일을 발견했다. 낙엽 사이로 하얀 것이 드러나 있었다. 소년은 낙엽을 열심히 파헤쳤다. 낙엽을 다 파헤치자 드러난 것은 하얀 뿔, 하얗고 거대한 사슴의 뿔이었다. 하얀 사슴에 대한 전설이 떠올랐다. 하얀 사슴을 만난 사람은, 하얀 사슴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기억을 여행한다고 했다.

 

노인이 하얀 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주인공은 체이서였다. 체이서는 고개를 빼들고 소년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뭐라도 발견한 거야?”

 

체이서가 혀를 빼물고 헥헥 거렸다. 체이서는 무엇인가를 발견했으니, 어서 따라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체이서는 모든 것이 새롭고, 재밌는 일이라는 듯이 코를 땅에 쳐 박고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녔다. 꼬리 끝에만 하얀 색 털이 나있는 체이서의 꼬리는, 고개를 들어도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솟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짙은 그늘을 만들어놓은 숲속을 유일하게 밝히는 불빛이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체이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부럽다. 나는 재능이 없는 걸까. 할아버지 몰래 빠져나온 건데,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몰래 나온 걸 들킨다면. 아마 지금쯤 잠에서 깨어나셨겠지?”

 

할아버지를 떠올리자 소년의 조그마한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소년은 할아버지가 두려웠다. 자신에게 그토록 엄한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말에는 어떤 토도 달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두려워했고, 그래서 소년도 할아버지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년은 할아버지를 싫어했다. 할아버지가 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소년 곁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난 것은, 아니 자신을 떠난 것은 모두 할아버지 때문이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주 아버지에게 돈이 안 되는 골동품점은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다른 일을 하자고 말하곤 했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소년은 분명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말했으리라고 확신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겐 비밀이 많았어도 할아버지에겐 어떤 비밀도 없는 사람이었으니까―할아버지는 소년도 앉아 있던 추수감사절의 식탁에서 어머니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원래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며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헤어지라고 명령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명령에 조금의 고민을 했을 뿐이었다. 어머니를 따라가고 싶었던 자신을 붙잡은 것도 할아버지였다. 가업을 이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가업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던 소년은, 자신의 의지대로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심한 절망감을 느꼈다.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소년을 그토록 오고 싶어 하지 않았던 할아버지 집에 맡기고는 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나버렸다. 가게에 들일 물건들을 보고 오라는 할아버지의 지시 때문이었다. 그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었다. 할아버지와의 생활은 지루했고, 답답했다. 평일에는 할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도시로 나가 할아버지의 골동품 가게에서 먼지를 먹으며 지루하게 시간을 죽여야 했고, 가게가 쉬는 주말에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이미 지칠 정도로 보고,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수 십 번이나 들어야 했던 골동품 속에서 지내야 했다. 어떤 신나는 일도 없었다. 소년은 여러 번 사냥을 따라가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할아버지는 네겐 아직 위험한 일이라며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집에 혼자 남아 골동품을 지키고 있다가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해 잠든 소년이 할아버지의 트럭 소리에 눈을 떴지만, 할아버지의 트럭은 언제나 비어 있었다. 오늘도 허탕이구만, 옛날이랑 달라. 할아버지는 애먼 개들을 탓했다. 이 녀석들이 밥값을 못한단 말이야. 할아버지의 소리에 루서와 체이서는 기가 죽은 듯이 꼬리를 말곤 했다.

 

할아버지의 집은, 할아버지의 성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세상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세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배치해둔 모양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정말 몇 센티 정도 어긋났을 뿐인데도 그것을 알아차리곤 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불호령은 언제나 소년을 기죽게 만들었다. 할아버지 집에서 생활한 지 단 하루만에 소년은 할아버지에 대항할 어떠한 힘도 모두 잃고 말았다.

 

다만 단 한 가지, 단 한 가지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마음속으로 양보하지 않고 있던 것은 자신의 장래에 대한 결정권이었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직접적으로 소년에게 말하곤 했다. 네가 우리 가게의 뒤를 이어야 한다. 그러나 소년은 그 답답하기 만한 골동품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2층짜리 작은 건물의 10평 남짓도 안 되는 1층의 매장과 창고로 쓰고 있는 2층은 기괴하고 조악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비좁게 서있는 6단 장식장에 가득 찬 기괴한 물건들이 소년을 무섭게 내려 보는 그런 공간에서, 아버지처럼 답답하게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소년은 다른 꿈을 꾸었다. 8살까진 야구선수가 꿈이었고―그러나 아버지 몰래, 어머니를 통해 겨우 참여했던 야구부의 친선경기에서 참혹한 성적을 거두고는 꿈을 접어야만 했다―그 뒤로는 꿈을 바꾸어 고고학자를 꿈꾸게 되었다. 그 당시에 거대한 공룡의 뼈가 지역에서 발굴되면서 모든 아이들의 꿈이 고고학자가 되었던 것이었는데, 특히 소년은 그 꿈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러나 이 꿈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아버지가 부정적으로 반응했던 것―너는 우리 가게의 뒤를 이어야 한단다, 이미 죽은 동물의 뼈 같은 걸 발굴하고 다니는 일보다는 신비한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을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일이 좀 더 좋은 일이 아니겠니?―이 소년을 조금 두렵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말은 곧 할아버지의 말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소년은 그 꿈을 꾸고 있었고, 다만 할아버지에겐 굳이 말을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점심에 고비가 찾아왔다.

 

점심은 지겨운 사슴 스테이크였다. 언제 죽었는지 모를 사슴 고기에선 심한 누린내가 났다. 그 누린내를 잡기 위해 할아버지는 온갖 향신료를 뿌려댔지만, 향신료는 향신료대로 누린내는 누린내대로 따로 놀아 오히려 더 먹기 어렵게 만들었다. 질긴 사슴 고기는 마치 고무를 씹는 느낌이었다. 이틀 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이빨이 고기를 씹다 빠질 것 같았지만, 그런 투정을 할아버지에게 부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소년은 그저 묵묵히 고기를 씹을 뿐이었다.

 

“매트, 할아버지는 네가 내년부터 가게에서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소년은 방심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커다란 접시의 애먼 고기만 열심히 썰었다.

 

“할아버지를 위해 그래줄 수 있겠지? 자랑스러운 내 손자야.”

 

매트는 목을 타고 입안까지 타고 올라온, 싫어요, 라는 말을 혀로 겨우 억눌렀다. 고기의 역한 냄새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였는지, 갑작스럽게 구역질이 터져 나올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왜 그러니?”

 

구역질을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소년을 보고 할아버지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겨우 구토를 참아내며 소년이 말했다.

 

“아, 아니에요. 잠시 혀를 씹었어요.”

 

“이런, 조심해야지. 아무튼, 그래 줄 수 있겠니?”

 

다시 구토가 올라오는 것 같아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궁리하던 소년을 구한 것은 체이서였다. 거실에서 무엇인가 와장창, 하며 깨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놈의 개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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