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닌 이력서에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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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문제 없이 평탄히 흐르던 고정석의 인생이 이상한 길로 흐르기 시작한 것은 퇴근길 차 안에서였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장마처럼 비가 쏟아졌다. 원래도 예민한 성격이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더욱 예민해지는 정석은 퇴근에 정신이 팔려 곡예 운전을 하는 차들 사이에서 점점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퇴근 후 회사에서 가능한 빨리 멀어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빗길 미끄럼 사고는 사망률이 세배나 높다. 면허 시험에서 다들 이정도는 공부했을 텐데. 배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라울 지경이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불로 변하자 정석은 차를 안전선 뒤에 세웠다. 옆 라인의 차들이 들쭉 날쭉하게 횡단보도 위로 고개를 들이미는 것이 불쾌했다. 그 와중에 벨소리가 울리자 정석은 다소 짜증스럽게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았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셨어. 지금 병원이다.]

 

화면에서 반짝이는 짧은 메세지에 정석은 잠시 그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것도 잊고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은 움직이지 않는 정석의 차 때문에 뒤에 선 차들이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정석은 얼떨떨한 얼굴로 차를 출발시켰다.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서른 두 살이나 먹은 성인인 그가 할아버지가 평생 건강히 곁에 있을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과 실제로 겪는 것은 달랐다. 정석은 병석에 누운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어서 곤혹스러워졌다. 

 

그만큼 정정한 어르신이었다. 전후의 폐허에서 맨손으로 회사를 세우고 가난했던 집안을 일으켜 세운 할아버지는 나이라는 개념을 알고는 있을지언정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행동했다. 광복, 대한민국 수립, 그리고 전쟁까지 격동의 시기를 모두 견뎌내는 동안 할아버지의 육체는 담금질할 수록 더 단단해지는 무쇠처럼 강해졌다는 것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회사에 출근하고 주말마다 각지의 명산과 유명한 절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할아버지는 정말 나이에서 벗어난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당장 지난 주말에도 나보다 더 빨리 청계산을 오르던 어르신인데…. 

 

잠시 생각하던 정석은 결국 핸들을 돌렸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급작스러운 좌회전이었다. 뒷 차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렸지만 정석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난폭 운전으로 빗길을 달렸는데도, 병원에 도착해보니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가벼운 뇌졸중이었다. 할아버지의 비서 겸 개인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한비서님이 용케 알아챘다. 오랜 시간 요양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경력이 있는 그녀는 할아버지의 말이 어눌해지고 얼굴이 마비되는 징후를 읽어내고 신속히 차를 불러 병원을 수배했다. 같은 건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정작 피붙이인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일이나 하고 있었다니, 얼굴이 화끈해질 지경이었다.

 

벌써 병실 복도에는 연락을 받고 달려온 친척어른들과 부모님들이 뭔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에 본 적도 없는 친척들까지 몰려 와있는 속셈이 빤히 보여서 조금 아니꼬왔지만 정석은 모른척 헛기침을 하며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렸다. 

 

어머니는 복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아버지를 매서운 눈초리로 돌아보았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투였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는데, 자신만 모르고 있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다. 정석은 쏟아질 핀잔을 단단히 각오하고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는 어떠세요?”

 

“여기 손이 몇인데 너까지 오니? 내일 출근은 안 할거야?”

 

냉정한 목소리였지만 끝이 떨리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늘 강철같던 어머니도 이번 일에 꽤나 놀라신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얼른 어머니의 뾰족하게 마른 어깨를 감쌌다. 

 

“여보, 석이도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아야지.”

 

“일하는 애한테 무슨 말하는 거예요? 할 일 없으면 가서 과도나 사와요. 내일부터 병문안이랍시고 과일들이 쏟아질텐데 깎아 먹을게 있어야지.”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일단 앉아요.” 

 

아버지가 조심스레 어머니를 의자에 앉히자 어머니는 그제야 좀 진정한 듯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것을 신호로 북적북적 몰려있던 친척들이 눈치를 보며 흩어졌다. 늘 칼 같이 나뉘어져 있던 어머니의 가르마가 흐트러져 있는 걸 보니 그네들을 상대하는 것도 보통 큰 일이 아니었나보다.

 

“아버님이 석이를 좀 아끼셔? 석이 얼굴 보여드리면 더 빨리 일어나실 거야.”

 

그래도… 뭔가 탐탁치 않은 듯 말을 흐리던 어머니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정석은 재빨리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지금 할아버지는 괜찮으세요?”

 

“처치는 잘 끝났고 상태를 좀 더 봐야겠지만 몇 달 정도 재활 훈련을 하셔야 할 수도 있다더라. 아무래도 뇌혈관에 문제가 생긴거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말을 흐렸다. ‘그런데’는 병원에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어느새 어머니와 똑같은 얼굴로 아버지를 채근하는 자신이 느껴졌지만 정석은 멈출 수 없었다. 아버지의 낙천적이고 유들유들한 성격은 어머니를 상대할 때는 도움이 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좀 이상해. 아버님이 깨어나시고 난 뒤에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하신다. 네 엄마는 정신이 없으셔서 그런 거라고 하시는데, 너무 완고하게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셔서….”

 

덜컹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뇌졸중이 어떤 질환인지는 정석도 알고 있는 바였다. 노인들의 경우에는 이대로 치매 같은 질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들었다.

 

“제가 들어가 볼게요.”

 

아무래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어머니도 그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가습기가 미친듯이 돌아가는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방 중앙에 놓인 하얀 침대 위에 할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커다란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가 새삼 작아보여서 정석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석이 왔냐.”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기척을 눈치챘는지 할아버지가 눈을 떴다. 잠시 머뭇거리던 정석은 조심스레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할아버지는 발음이 아직 불분명하고 매우 피로해보였지만 다행히도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회사는 어쩌고?”

 

“퇴근했죠.”

 

그래, 벌써 퇴근 시간이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들렸다.

 

“은아한테 이야기 들었냐.”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예순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은아라고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셨다. 정석이 고개를 저어보이자 잠시 마른 시선으로 공중을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회사를 처분해야겠다.”

 

이번에는 발음도 분명했다. 정석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년에 찾아온 병과 갑작스러운 입원의 소회 때문에 내린 감정적인 결단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나도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세운 <독갑 물산>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배운 것 없이 가난해서 열 살도 되기 전부터 메밀묵과 찹쌀떡을 이고 지고 다니며 팔던 고씨네 아들이 고 회장님 소리를 듣게 되기까지의 여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 대신 정석이 아는 것이 있다면 회사는 할아버지의 고된 삶에 대한 트로피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런 회사를 갑자기 처분하겠다니, 정석은 상황이 얼른 이해되지 않아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고 회장은 정석의 반응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거다. 내가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처분할 작정이었어.”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거라고 해도 듣는 입장으로서는 갑작스럽다. 특히 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회사를 처분하다니, 누가 생각해도 그리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시작은 할아버지가 혼자 세운 회사일지도 모르겠지만, 수 많은 세월을 지나며 독갑물산은 이제 본사 뿐만이 아니라 공장과 지사까지 달린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모두에서 일하고 있는 사원들과 그에 딸린 식구까지 계산해보면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운명이 그 회사에 걸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석은 한숨을 내쉬며 고집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돌아보는 고회장을 마주했다.

 

“아예 본사 건물을 내려야 돼, 땅도 다 팔아버리고.”

 

“그러고 싶으셔도 할아버지 혼자 결정하실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이사회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고 돈만 밝히는 멍청한 놈들이야. 그놈들 의견은 들을 필요도 없어.”

 

정석은 아연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창업주라고 해도 회사 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 

 

“어쨌든,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할게요. 좀 쉬고 다시 생각해 보세요.”

 

“아니 근데, 이놈이… 좀 드러누웠다고 뒷방 늙은이 취급이야! 아주 쓰러지면 퇴물처럼 내다버리겠구만.”

 

분에 못이겨 괄괄하게 소리치려던 고회장은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 때문에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의 불같은 성격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정석은 자신의 안에도 저런 괄괄함이 숨어있을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3개월은 재활 훈련을 해야 한다던데…. 3개월이라니, 3개월이나 자리를 비울 수는 없어.”

 

혼잣말처럼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회사에 나가지 못해서 회사를 처분하시겠다는 건가, 자신이 회사를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중얼거리는 고회장을 보며 정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정석의 표정이 탐탁찮아진 것을 귀신 같이 눈치 챈 고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고얀 놈, 너 방금 내가 하는 일이 쥐똥 만큼도 없다고 생각했지?”

 

그렇게까지 신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정석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 말대로 고회장은 직접적인 경영에서는 손을 뗀지 오래였다. 현재 그는 독갑물산의 소탈한 노(老)회장으로 회사의 마스코트처럼 로비를 왕복하며 사원들을 격려하는 것 외에, 로비 구석에 있는 불편신고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회장이 직접 살피는 불편신고함이라니, 부담스러워서 사용하려다가도 도망치겠다는 것이 정석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어차피 내가 나가지 않으면 큰 일이 날게야.”

 

“그런 일 없도록 경영은 다른 사람들이 잘 할겁니다.”

 

고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석은 도무지 할아버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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