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상티망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미리보기

“박경사, 정말 괜찮겠어?”

작은 아이보리색 철문 앞, 다섯사람이 모여있다. 카키색 항공점퍼를 입은 남자가 양복 외투를 대충 걸친 남자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하고 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살짝 줬는지 어깨쪽 옷이 살짝 구겨져있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반장님. 악력이나 힘 관련된 부품이나 프로그램은 다 빼버렸다면서요.”

어깨를 잡고있는 반장의 손을 톡톡 두드린 남자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풀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도 긴장했다는 느낌이 한껏 묻어나왔다. 아닌듯 하면서도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고,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 아랫 입술을 꽉 물고 있었다.

“이번엔 좀 제대로 된 분이 오셨나보군요. 박무혁 경사님, 밖에서 지켜보고 있을터이니 최대한 많은걸 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껏 마음을 잡고 들어가려던 무혁에게 초를 치듯, 양복쟁이 한명이 그를 불러세우며 말했다. 무혁이 살짝 고개를 돌리니, 검은 양복에 파란 넥타이를 맨 남자가 팔짱을 낀 채로 무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무언가를 캐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거만하게 턱을 들고 있는 그는 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무혁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이고는 철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모니터와 녹화/녹음 기계들, 두명의 기술담당자들과 보조 안드로이드 하나가 심문실 유리 안쪽과 화면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변화는 있습니까?”

무혁은 묵묵하게 심문실 안쪽을 지켜보고있는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건넸다. 무혁이 건네오는 악수에 손을 살짝 잡은 남자의 목에는‘정치규’라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말도 마십쇼. 무슨 절전모드 들어간거마냥 가마아안히 있습니다. 눈을 저렇게 감은채로요.”

무혁이 방 안쪽으로 눈을 살짝 돌렸을때, 망부석 하나가 심문실 안에 자리를 꿰차고 있는 듯 보였다.마치 자신이 석상인 것마냥, 수갑을 찬 채로 묵묵히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무혁은 치규 옆쪽에 활짝 펼쳐진 서류를 눈으로 대충 훑어보았다. 온 경찰청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찾는덴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무혁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심문실에 들어오기 전 서류를 볼때는 사건 조서와 기본적인 신상명세를 보고 들어가는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물품 등록 신고서’가 서류철 맨 위에 올려져 있었다. TA-360이라는 기체명이 쓰여 있었고,이름 란에는‘마크’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드로이드 연쇄살인마라니… 참…”

무혁은 파일과 심문실 안쪽을 번갈아 쳐다봤다. 눈을 감은채로 미동이 없는 것을 보고 있자니 잘 만들어진 마네킹을 앞에 놓고 대화를 하는 상상만 들었다. 아무리 여러가지 사건을 맡아왔던 그였지만 작금의 상황은 어딜 믿고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도무지 관점이 서질 않았다.

“소름끼치시죠? 저희도 저 놈 보고있자니 영 불편합니다. 빨리 그냥 집에 가서 다리 뻗고 자고싶다구요. 심문하러 들어갔다가 바보처럼 깨지고 나온 형사가 다섯입니다 벌써.”

“하… 관련 자료는요?”

“아… 봉숙아?”

치규가 손짓을 살짝 하자, 한발짝 뒤에 떨어져있던 안드로이드가 무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갑습니다, 박무혁 경사님. 사건과 관련된 정보가 필요하신가요?”

무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치규를 살짝 바라봤다.

“이름을 봉숙이로 지어요?”

무혁은 치규와 안드로이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안드로이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갸우뚱 거리듯 기울이고 있었고, 치규는 코를 살짝 긁적였다.

“아 뭐 어떻습니까. 이름을 뭘로 짓든. 어짜피 얘네들이 우리 심문 작업을 대신해주는거도 아니고 그냥 반쪽짜리 인공지능 들어간 고철덩어리 아닙니까. 당장 우리 서에만 백마리가 돌아다니잖아요. 꼬라지도 딱 무슨 나사 빠진거마냥… 그런거 아냐, 봉숙아?”

치규는 안드로이드의 배쪽을 손등으로 살짝 툭 쳤다. 안드로이드는 아무런 반응 없이 무혁에게 손을 뻗었다.

“핸드폰을 주시면 파일을 옮겨드리겠습니다, 박무혁 경사님. 저에게 핸드폰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혁은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안드로이드에게 폰을 내밀었다. 손가락에서 데이터 전송용 포트를 뽑아낸 그녀는 무혁의 핸드폰 아래쪽 단자에 손가락을 끼우곤 데이터 전송을 시작했다.

핸드폰 화면이 두어번 깜빡이고는 ‘전송완료’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초록색 화면이 뜬 것을 확인한 안드로이드는 무혁에게 폰을 내밀고는 살짝 인사를 건넸다.

“데이터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무혁은 폰을 받아들고는, 두 안드로이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한쪽은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고 또다른 한쪽은 입만 꾹 닫고는 눈을 감고 있었다. 무혁은 서류철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살짝 밀어놓고는,심문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동상처럼 앉아만 있던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은 파란색 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백금발의 머리와 하얀색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인간 실험체 한구를 보는 것처럼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어깨쪽에 파란색으로‘랭커스터Inc’라는 로고가 달려있는 그는 감각 없는 표정으로 무혁을 쳐다봤다.

무혁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무혁의 손과 얼굴을 두어번정도 번갈아 쳐다본 마크는 조심스레 손을 맞잡고는 다시 망부석처럼 앞쪽만 바라봤다.

“보통 말입니다.”

무혁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말했다. 입을 연 무혁의 모습에 마크는 귀를 미세하게 쫑긋거렸다. 자신의 앞에 앉은 사람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마크는 무혁의 미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제가 가장 처음 건네는 인사는… ‘식사는 하셨습니까’입니다. 근데 지금은 어떤 인사가 어울리는지 모르겠군요. 식사라는 행위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분인지라…”

무혁은 살짝 팔짱을 끼고는 몸을 뒤로 기댔다. 의자의 이음매가 많이 닳아있는지, 조용한 기운이 감도는 방안에 큰 끼이익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편하신대로 하시면 됩니다.”

마크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무혁을 쳐다봤다. 눈조차도 깜빡거리지 않는 마크는 미간에 뒀던 눈길을 천천히 내려 무혁의 입가만 바라봤다.

“편한대로라…글쎄요. 저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서요.”

무혁은 살짝 뒤를 돌아봤다. 방의 한 귀퉁이에서 카메라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지, 작은 렌즈 옆의 빨간불은 천천히 깜빡이고 있었다. 그는 살짝 팔짱을 풀고는 다리를 살짝 꼬아 올렸다.

“처음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네?”

“정말 처음이십니까.”

묵묵하던 마크가 무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깜빡. 그의 눈이 한번 깜빡였다.

“연쇄살인은 이미 여러번 맡으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크의 말을 듣고는 무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뭐… 그렇죠. 저도 처음에 이번 사건을 맡았을 때는 늘 하던대로 프로파일링을 했죠. 그런데 그 결과가 지금… 여기 있군요.”

무혁은 상대방을 존중하려는 듯, 마크를 살짝 가리켰다.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 13건의 연쇄 살인을 저지른 그 피의자가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였죠. 그 수갑을 차고 있는 이유도 그거 아닙니까.”

마크는 또다시 눈을 한번 깜빡였다. 조용히 무혁의 말을 듣고 있는 듯, 마크는 무혁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무혁은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마크의 신체적인 반응을 살펴봐도, 모든 반응들이 인간을 모방하려고 하는 것인지 안드로이드만의 독특한 행동특성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등골을 스치며 섬칫한 기분만 들었다.

“처음 수사를 할땐 인간이라고 전제를 깔고 수사를 들어갔죠. 그런데 막상 추적을 하고 쫒아보니 안드로이드였고, 모두들 당황했었죠. 혹시나 잡으려다가 다치는거 아니냐고. 아니나 다를까 당신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총 다섯명이 중상을 입었죠.”

“의도한 일이 아닙니다.”

마크는 살짝 눈을 깜빡이곤 나지막히 말을 뱉었다.

“의도한 일이 아니라뇨?”

“그 경찰분들을 다치게 할 의도도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계산해서 행동 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섯명이 다쳤지 않습니까.”

마크는 엄지손가락을 살짝 문지르고는 또다시 무혁을 쳐다봤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차적인 사고로 다치신거지,제가 그 분들의 어깨를 잡고 방어를 했을때 그 분들은 경상 내지 기절상태뿐이었습니다.”

마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는 엄지손가락 둘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화가 나셨나보군요.”

마크의 반응을 보곤 무혁이 넌지시 물어왔다.

“네.”

“왜 화가 나셨습니까?”

무혁은 마크의 미간을 살짝 살폈다. 풀리지 않은 마크의 주름에서 눈을 떼지 않은 그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저를 흔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 어짜피 이 방을 나가면 해체될 운명 아닙니까.”

“해체라…”

무혁은 뒷쪽의 유리를 살짝 쳐다봤다. 바깥에서 보고 있는 눈이 한 둘은 아닌지라 말을 쉬이 꺼내기 힘들었다. 밖의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보낸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협박이 아닌 대화를 위해 자신을 호출했다는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해체를 할거였다면 체포 후 바로 하지 않았겠습니까. 데이터를 뽑으려면 이렇게 지지부진한 대화를 하지도 않았을거구요. 그냥 머리 뚜껑을 따서 메모리칩 뽑아서 읽어버리면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마크는 빙빙 돌리던 엄지를 뚝 멈췄다. 불안함의 표시였을지 혹은 예민함의 표시였을진 몰라도, 무혁이 말을 마치고 마크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니 마크는 손가락을 멈추곤 무혁과 눈을 맞췄다. 아무런 말 없이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고, 방안에는 고요함만 감돌고 있었다.

마크는 무혁의 눈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어떤 무엇도 원하지 않고, 단순히 눈 속만을 들여다 보는 마크의 눈길에 무혁은 불편함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해부하려는 듯, 눈 깜빡임 없이 자신을 관찰하는 마크의 눈동자는 흔들리지조차 않았다. 그 어떤 사인조차 보이지 않았다. 감정의 동요를 보여주는 눈동자의 흔들림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가슴팍의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면… 지금 대화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말없이 눈싸움만이 계속된지10분째, 마크는 살짝 눈을 깜빡이고 입을 열었다. 무혁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살짝 미소를 짓고는 또다시 팔짱을 끼며 몸을 뒤로 기울였다.

“음…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고 하죠. 랭커스터 사도, 우리 경찰도, 그리고 당신과 저 모두도요.”

무혁의 말을 듣고는 마크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해관계라고 하시는거 말입니다.”

“흠… 쉽게 가죠. 랭커스터 사는 당신이 어떻게 살인을 하게 됐는지를 알고싶어 하겠죠. 우리 경찰로써도 이 대화가 필요하죠. 아직 피해자 세명을 못찾았으니까요. 저기 윗선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당신을 뜯고 메모리를 확인하고 싶겠죠.”

무혁은 안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 이리저리 튕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신은 윤성은씨 소유기 이전에 랭커스터 사의 재산이죠. 그쪽 인간들이 분해를 비토하고 나섰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거죠.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는 겸, 당신이 왜 이렇게…”

핑. 무혁은 끈임없이 지포 라이터를 튕기며 소리를 만들었다. 조그마한 지포라이터에서 만들어진 것과는 다르게, 방 이리저리 부딪혀 울리는 소리는 공명하여 점점 크게 울려퍼졌다.

“다른 모델들과 다른것인가. 그걸 알기 위해서겠죠.”

텁. 무혁은 지포라이터를 닫고는 다시 안주머니로 밀어넣었다. 불쾌한 표정조차 짓지 않는 마크의 모습에 무혁은 혀를 살짝 차고는 다시 마크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그냥 당신을 분해하면 메모리 손실이 오지 않습니까. 최대한 손실 없이 당신에게 정보를 얻어내려면 이게 최선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당신과 제 이해관계는 어떤겁니까.”

“저요? 이게 제 일이니까요. 저 스스로도 궁금하기도 했구요. 왜 윗선이 절 불렀을지, 절 필요로 한지에 대해서요. 당신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것도 있구요. 그리고… 흠…당신의 상황을 잘 아시겠죠?”

마크가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조금이라도 더 잘 들으려는 노력을 기울여보는가 싶었지만, 무혁을 뚫어지게 보는 눈동자는 바뀌지 않았다.

“저는 열세명을 죽였고, 곧 재판을 받는다는거 말씀이십니까?”

“음… 그게 문제라는거죠.”

무혁은 주머니 속에서 폰을 꺼내서는 기사 하나를 띄웠다. ‘안드로이드 연쇄살인마,정당한 길은 무엇인가.’란 헤드라인 밑에 깨알같은 글과 계란을 맞는 마크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법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안드로이드들을 위한건 아니니까요. 첨예한 대립과 토론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게 당신에게 이로운 길로 갈지 안갈지는 모르는거 아니겠습니까.”

떠오른 기사를 살짝 살펴본 마크는 살짝 눈을 감았다.

“당신이 재판을 받을수 있을지 없을지는 지금 하는 대화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왜 관리자 권한으로 던진 모든 질문이 막혀버리는지도 알아야 할거구요.”

마크는 앞으로 굽혔던 몸을 살짝 뒤로 폈다.무혁과 다시 거리를 만들려고 하는 듯, 조심스레 몸을 멀리한 그는 눈을 다시 살포시 감고는,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간단합니다.”

“어떤거 때문에 그렇죠?”

무혁은 조금 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늘 그랬지만 범죄자를 심문할때는 항상 유대관계부터 쌓아나갔던 그였기에, 그는 점점 스스로의 경계를 풀려는듯 약간 더 마크 쪽으로 나아가려는 제스쳐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허…”

마크의 대답을 들은 무혁은 허탈감이 들었다. 앞으로 기껏 몸을 숙여 경청하려는 자세를 취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살짝 이를 갈고는 다시 정자세를 취했다.

“그럼 대화를 요청한 이유가 뭡니까? 대화를 할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이구요? 이런 식이면 저도 그냥 바깥에 있는 사람들한테 당신을 인계해주면 되는거겠군요. 단편적으로라도 캐낼수 있게 말입니다.”

무혁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몸을 살짝 뒤로 돌렸다.그는 심문실 입구의 문 손잡이쪽으로 손을 살짝 뻗었다.

“그럼 수고하십…”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시죠.”

멈칫. 문고리를 돌리던 무혁의 손이 멈추었다. 눈을 꾹 감고있던 마크는 다시 푸른 눈을 번뜩이며 무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과거 이야기요?”

“네. 과거 이야기부터 시작하시면 될겁니다. 전 그렇게 명령 받았으니까요.”

“그러죠.”

무혁은 의자를 다시 끌어와 앉아서는 살짝 다리를 꼬았다. 어디 한번 말을 해보라는 식으로 살짝 팔짱을 끼고는 마크를 노려봤다.

마크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다가 입을 열었다.

“관리자 권한의 접근이 거부되는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랭커스터 사의 관리자 권한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걸 뚫으라고 있는게 관리자 권한 아닙니까.”

무혁은 의아함에 질문을 던졌다.아무것도 뚫지 못하는 관리자 권한이라면 그것은 관리자 권한이 아니라 일반 유저의 권한이나 다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제 뇌에 직접 입력된 명령들에 대해서는 관리자 계정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죠.”

“그 말인 즉슨…”

“제 소유주께서 절 해부했다고 보시면 될겁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요.”

무혁은‘오우.’하는 나지막한 한마디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마크의 구레나룻 부분은 예리한 물체로 갈려 있었다.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잘 덮은 상처였지만,날카로운 회전 톱이나 절단기로 잘라낸 후 인공 피부를 다시 덧댄듯 했다.

“저를 재프로그래밍 하거나 기본적인 원칙을 바꿀 만큼 실력있는 분은 아니었습니다.하지만 적어도 제 뇌의 방화벽을 해제하고 자신의 명령을 집어넣을 만큼의 실력은 있던 분이었죠.”

마크의 말에 무혁은 의아함이 생겼다.

“그분은 뭐하던 분이셨습니까?”

무혁의 눈만을 바라보던 마크는 살짝 눈을 한번 깜빡이고는 기억을 되짚듯 살짝 고개를 들었다.

“랭커스터사의 연구원이셨습니다.안드로이드들의 감정과 행동양식에 대한 코딩을 담당하는 분이셨죠.”

“그런분이 완전한 재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했다는건 의외군요.”

“하하…”

마크의 입은 웃음을 지으려는듯 움직였지만,그의 눈만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눈매가 움직이지 않았고,그저 무혁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 기본 프로그램과 원칙을 바꾸려면 그 분 혼자서는 무리였습니다.최소 네사람이 동시에 락을 해제해야 발끝이라도 건드릴수 있습니다.가상으로 세사람까지는 어떻게 락을 푸셨지만 그 이상은 그분도 무리셨죠.시간이 없기도 했구요.”

“그정도의 정보면 상당히 보안등급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일개 안드로이드가 그정도를 안다는 것은…이상하군요.”

마크는 또다시 미소를 지었다.사람이 좋은 미소라는걸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혹은 정말 자신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그의 눈매는 가늘게 웃고 있었다.

“그것도 소유주분께서 가르쳐 주신거죠.그 이상은 저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무혁은 팔짱을 풀고는 책상쪽으로 살짝 몸을 기대었다.책상위에 손을 올려놓고는 조심스레 모아쥐고는 마크의 눈을 응시했다.

“웃으실줄 아는군요.”

“감정 프로토콜과 프로그램이 있으니까요.”

마크는 멋쩍은 듯 코를 살짝 문질렀다.무혁은 누군가가 자신의 목 뒤에서 허리까지 칼을 대고 천천히 내리 긋고 있는 듯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이 상황이 재미있으신가보군요.”

“아닙니다.심각한 상황이란건 알고 있습니다.단지 전 제 소유주분께 미소를 보여야 한다고 입력 받았을 뿐이죠.”

마크는 싱긋거리며 미소만을 보여주고 있었다.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색함과 불쾌함만 감돌고 있다.천천히 흘러만 가고 있는 시간,멈춰있는 공기 사이.두 사람은 또다시 서로를 노려만 보고 아무런 말도 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면 살인을 한것도 입력을 받은 것이었습니까.그것도 명령의 일환이었다고 하시는건지요.”

웃음기를 띄던 마크의 입꼬리가 천천히,아주 천천히 내려왔다.입꼬리가 뚝 멈춘 후,그는 또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무혁의 미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눈 깜빡임조차 없이,눈동자조차 굴리지 않고는 무혁에게 다시 눈길을 고정했다.

“네.”

“명령을 받았다…흠…명령이라고 단순히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하군요.수법이든,피해자를 유기하는 방법이든 뭐든요.”

“그 또한 명령이었죠.소유주분께서 그렇게 사람을 처리하라고 한 것이니까요.죽인건 그 분이었고,전 시체를 유기하는 일을 했었죠.”

무혁은 턱을 살짝 어루만졌다.머리속에 사건과 관련된 정보들을 다 집어넣고 왔지만,안맞는 부분이 생긴것 같았다.분명히 그가 사건 파일들을 보고 왔을때,최근 다섯건의 살인의 프로파일링에선 범인은 한사람이었다.

“맨 마지막 살인이 기억 나십니까?그때에 관련된 기억들을 좀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혁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왔다.

“마지막 살인 말씀이십니까.좋습니다.”

마크는 살짝 손톱을 매만졌다.무언가를 기억하려고 하는 듯 살짝 고개를 든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12월 26일.눈이 오고 있었습니다.전 성치산 기슭에서 또다른 사람을 죽이고 있었죠.늘 그랬던 것처럼 힘을 실어서 그 사람의 목을 눌렀습니다.명령을 받은 대로 였으면 천천히 질식사를 하도록 목을 꾹 눌렀어야 했죠.하지만 산 비탈에서 누르고 있던터라,뚜둑 소리가 났고,결국 그 사람은 숨이 막혀 죽지 않았죠.목이 부러져서 죽었죠.원래대로였으면 그런 결과가 나오면 안됐죠.명령 체계에 오류가 생겼고,그 다음으로 어떤 과정을 취해야하는지는 저에게 명령을 주지 않으셨습니다.그분이 하셨던 마지막 명령은 하던 일을 계속 하라는 것 뿐이었지 다른 건 없었습니다.하지만 혹시나 다른 방법으로 죽었을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그분께서 가르쳐주신게 없죠.전 제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학습했던 범주 안에서 처리를 내릴 데이터도 없었죠.그렇기에 그 시체를 그 장소에 두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마크는 두어번 눈을 깜빡였다. ‘이것이 당신이 원하시던 것이었습니까’하는 눈길로 무혁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무혁은 살짝 고개를 돌리곤 품속에서 폰을 다시 꺼내어 확인하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십쇼.부담스럽군요.”

마크는 깜빡거리던 눈을 멈추었다.무혁은 폰을 이리저리 넘기며 파일을 찾고 있었다.파일상으로 떠있는 자료를 보니,성치산 사건이 마지막 살인사건이었고,그 이후로는 다른 사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인도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가 아닌 경추 신경 손상쪽에 무게가 더 실려 있었다. 정확한 정보를 말하려 머리를 집중하고 있는듯 했다. 무혁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 진실을 알아내야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당신 소유주와 결별한 것도 명령이었습니까?”

무혁은 폰을 덮고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마크의 얼굴을 봤을때,그의 입꼬리가 아주 짧은 순간 움찔거렸다.

“네.전 명령이라고 판단했었습니다.”

마크가 또다시 눈을 깜빡거렸다.한두번 깜빡거렸던 심문 초와는 달리,그의 눈은 두어번 연거푸 깜빡였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겁니까?”

무혁은 마크를 유심히 살필 수 있게 팔짱을 풀고는 마크의 몸 전체를 바라봤다.마크는 양손을 모은채로 미세하게 책상을 치고 있었다.자신에게 고정된 시선이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더이상 망부석이 아닌 듯 했다.

“말씀해주시죠,마크.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난 당신에게 명령을 내린겁니다.”

“당신은 제 소유주가 아닙니다.”

무혁은 살짝 몸을 앞쪽으로 굽히곤 팔을 책상에 올려뒀다.점점 마크쪽으로 몸을 기울이곤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크,아까 말했던 것처럼 지금 대화가 당신의 동아줄이 될수도 있어요.당신의 소유주와 무슨 일이 있던겁니까?”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왜그렇죠?”

“대답하기 싫습니다.”

“흠…”

마크의 눈 깜빡임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미간 사이에 고정되어있던 마크의 시선은 무혁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말씀 해 주셨으면 합니다.그래야…”

“싫다고 했잖아!”

-쾅!

무혁은 화들짝 놀라 심문실 책상에서 몸을 멀리 할 수 밖에 없었다.이를 뿌득 하고 간 마크가 갑자기 책상을 내려쳤고, 책상에 크게 패인 자국이 남았다. 큰 철근이 떨어지는 듯,고요했던 심문실 안에 큰 메아리가 퍼져나갔다. 무혁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전해졌다.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방을 아직도 울리고 있는 메아리와 합쳐질때, 무혁의 얼굴도 살짝 굳어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혀를 지긋이 깨문 무혁은 또다시 눈싸움하듯 마크를 바라봤다.

“폭발할줄도 아시는군요. 그렇게 불편하셨나봅니다.”

마크는 미동없이 무혁만을 보고 있었다. 폭발시킬때의 일그러진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또다시 냉정한 무표정을 짓고 있는 마크는 무혁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그의 푸른 눈빛에 변화는 없었지만, 버럭 화를 낸 후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섞여있는듯 보였다. 무혁은 옷의 먼지를 살짝 털고는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쉬었다 하죠. 저는 당신처럼 강철 체력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무혁은 미련이 없는 듯 마크에게서 등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반정도 녹이 슬어있는 문고리에서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무혁은 문이 반쯤 열렸을때 마크쪽으로 몸을 살짝 돌렸다. 마크의 시선은 여전히 무혁을 향해있었다.

“제가 당신의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단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쾅. 또다시 방안을 울려대는 큰 메아리가 방안을 이리저리 돌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음파의 한 가운데, 마크는 미동없이 무혁이 세게 문을 닫고 사라진 장소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심문실에서 나온 무혁은 급하게 와이셔츠 단추 하나를 풀었다. 막혔던 숨이 터져나오고 있었고, 그는 식은땀을 살짝 훔쳤다. 무혁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치규는 동충하초 드링크 하나를 건넸다.

“이제 왜 경사님을 부른지 아시겠죠?”

무혁은 멍하니 드링크를 받아들었다. 수많은 연쇄살인을 해결하고, 수많은 살인자와 수많은 범죄자들을 만나고, 한때는 사형수까지 만나 인터뷰를 따고 농담까지 하고 돌아온 그에게도 낯설고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방금전 대화를 곰씹었다. 치규가 키보드를 두들기며 심문실 안쪽 영상을 조절하고 있을 때, 무혁은 드링크를 단숨에 들이키고 심문실 바깥으로 박차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