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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으로 살짝 눈을 돌린 인섭은 진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그녀는 여전히 손을 모으고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 많이… 많이 힘드셨던거죠…?

 

진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이야기했다.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한 글자 한글자를 또박또박 전하려 했다.

 

– 왜 아저씨를 자꾸 좀비라고 해요… 아저씨는 감염자 아니에요.

 

“아니 맞아.”

 

– 지금 저랑 이렇게 대화를 하고 계신데 어떻게 감염자에요. 어떻게…

 

“으…”

 

인섭은 벽에서 몸을 떼고는 화면을 확인했다. 진희는 한발짝 더 스피커쪽으로 가까이 와 있었다.

 

– 만약 아저씨가 정말 그 좀비라면, 어떻게 우리… 어떻게 이렇게 대화해요?

 

그녀는 문으로 고개를 힐끗 돌렸다. 문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본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인터폰쪽을 응시했다.

 

인섭은 그녀의 얼굴을 보곤 몸을 떨기 시작했다. 팔에서 서서히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 아저씬 사람이잖아요. 사람이잖아요!

 

“난…”

 

인섭은 그녀의 말을 듣고 팔을 내려다봤다. 검은 핏줄들은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사람이니까. 사람이니까… 저랑 말 할수 있는거잖아요.

 

“이젠 아니야.”

 

– 네…?

 

인섭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통증이 머리까지 점점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난 이제 사람이 아니라고!”

 

인섭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진희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난 사람이 아니야.”

 

– 아니에요. 사람이에요.

 

“내가 어떻게 사람이야!”

 

– 그러면! 왜 지금 이렇게 화를 내시는건데요?

 

“사람이 아니니까.”

 

진희는 한숨을 푹 쉬었다.

 

– 아니요… 사람이 아니면 화를 어떻게 내겠어요. 좀비들이 어떻게 화를 내요, 저. 저 그런거 본적 없어요.

 

“으…”

 

– 아저씨는 누가 뭐래도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인섭은 주사를 놓았던 부분을 손으로 감싸잡았다.

 

“진희야.”

 

– 네?

 

인섭은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주사기를 쳐다봤다. 주사기속에 남아있던 액체는 이미 인섭의 몸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였고, 피스톤은 밀려들어가 있었다.

 

“내가… 팔에…”

 

팔의 검은 핏줄은 점점 어깨쪽으로 번져갔다. 이미 손목 바로 밑까지 번져있는 검은 핏줄은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고, 어깨쪽으로 퍼져가는 검은 선들은 회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주사를… 하나 꽂았어…”

 

인섭은 또다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진희는 마음이 급한 듯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주사 안에…”

 

인섭은 목이 메여왔다.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진희는 간절하게, 또 눈을 꿈뻑거리며 스피커에서 나오는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숨을 두어번 내뱉은 인섭은 이를 악물었다.

 

“피가 들어있었어…”

 

– 무슨… 피요…?

 

“감염자… 피였지…”

 

진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스피커를 통해 빠져나온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다리가 살짝 풀렸는지 뒤의 난간에 몸을 기대었다. 문쪽으로 고개를 한번 돌려본 그녀는, 굳게 닫힌 문을 봤는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말했잖아… 이젠… 돌릴수 없어.”

 

인섭은 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풀썩 넘어졌다.

 

무릎을 꿇은 그는 팔과 가슴팍을 벅벅 긁어댔다. 피부속에서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밝게 깜빡이는 화면 속, 진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미동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두드리던 그녀는 얼굴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 아저씨.

 

그녀는 코를 한번 훌쩍였다. 그리곤 난간에서 몸을 떼고 다시 문 근처로 다가왔다.

 

– 정말… 돌릴 방법 없는거에요…?

 

“응, 없어.”

 

인섭은 눈을 천천히 감고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 싫어요.

 

“뭐?”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세글자에 화들짝 놀란 인섭은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았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것 같았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지, 그녀는 윗옷 자락을 잡고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 아저씨 죽는거 싫어요.

 

진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한계에 다다랐는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진희야…”

 

– 왜 아저씨가 죽어야해요?

 

그녀는 카메라쪽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로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 왜 아저씨가 죽어야하는건데요? 아저씨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죽어야 하는데요…

 

인섭은 공허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보던 그의 마음속에는 쓸쓸함과 씁쓸함만 가득 찼다.

 

“그러게. 난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개를 하늘로 살짝 든 그는 몸을 돌려 등을 벽에 기대었다.

 

인섭에게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의 몸은 천천히 바닥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다.

 

“여기까지 온걸까…”

 

인섭은 허탈한 마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빨래통 속에는 반납하지 못한 제복이 아직도 남아 쳐박혀 있었다.

 

잔뜩 구겨지고 헤진 제복은 빨래통 바닥에 놓인 채 빛을 보지 못했다.

 

“난 무슨 잘못을 했길래… 사람 취급도 못받는걸까.”

 

땀냄새 나는 빨래통 속에 쳐박힌 제복의 팔은 밖으로 삐져 나와 있었다. 인섭은 옷자락을 툭 치고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없어지겠지 난. 그러니까 너도 가.”

 

인섭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마음속 깊은곳 어딘가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어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바닥의 장벽 뒤, 웃음 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이내 그의 마음속에서는 슬픔이 몰려왔다.

 

눈물이 참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인섭은 자신에게 보낸 조소에 답하듯 오열했다. 또다시 소리가 죽은 고요한 비명소리였다.

 

– 안 없어졌어요.

 

진희는 훌쩍이며 말했다.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소리에는 노이즈가 가득 끼어 있었지만 진희의 목소리 만큼은 선명히 들려왔다.

 

– 지금 아저씨 저랑 이야기 하시잖아요. 아저씨 거기 있는거 다 알아요, 다…

 

“아니. 난 없던거야 애초부터. 여기 있다가 너도 다 뒤집어 쓸거니까 그냥 가.”

 

– 싫어요.

 

인섭은 벽에 머리를 한번 쳐박았다. 쿵 하는 소리가 인섭의 머리속으로 둔탁하게 전해졌다.

 

“제발 말좀 들어. 진희야… 가라면 가.”

 

인섭은 얼굴을 찡그렸다. 점점 몸이 식어가고 심장 박동이 느려지는게 느껴졌다.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고, 팔 부분의 감각이 점점 사라져갔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하는거야…”

 

진희는 화면속에서 고개를 천천히 들고 인터폰쪽으로 한발짝 더 다가왔다.

 

– 아저씨라서요.

 

인섭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린 그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무슨 소리야…?”

 

– 아저씨라서 그런다구요…

 

인섭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묵직한 팔을 들어올리기 힘들었던 인섭은 이를 꽉 악물고 벽을 짚었다. 몸을 움직이려 하자마자 몸 여기저기서 통증이 몰려왔다. 분노가 찾아왔고, 후회와 울분이 몰려왔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인섭은 이를 꽉 악물고 인터폰 앞에 섰다.

 

– 왜 아저씨가 어디 멀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거에요…? 그래서 저한테 이러시는거에요…?

 

그녀는 억울한 듯 눈물을 다시 한방울 흘렸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지, 그녀는 당황하여 황급히 흐른 눈물을 닦아내곤 또다시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 다른 이유가 왜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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