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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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서는 안 돼.”

두 시간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승혜가 처음으로 낸 의견이었다. 엇갈리는 의견에 언성이 점점 높아지던 대원들의 소리가 단번에 사그라졌다. 네 명의 시선이 승혜에게 몰렸다.

“기껏 생명을 살리자고 이곳까지 왔으면서 죽이면 무슨 소용이 있어. 생명의 정체를 알 수가 없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던 게 관찰 아닌가? 적어도 그 생명체에게 우리한테 자신의 정체를 직접 설명할 기회를 줘야지.”

승혜의 말에 동감한 대원은 우주비행사 호연과 생태학자 주연이었다. 다섯 명 중 세 명이 ‘그 생명체’를 살리는 것에 동의했다. 다수의 의견이 결정되었으므로 나머지 두 사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 엔지니어인 테레즈가 승혜의 의견에 조건을 붙였다. 테레즈가 입을 열자 구의 이주 부분에 심은 번역기 칩이 곧바로 테레즈의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조금의 공격성이라도 보인다면 그때 가차 없이 그 생명체를 박제시켜 지구에 데려간다고 약속해. 그 정도의 차후는 보장받아야지.”

테레즈의 조건에 장의의도 동의함을 뜻하는 행동으로 가만히 승혜의 대답을 기다렸다. 승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생명체에 대한 두 시간의 회의는 거기서 마무리되었다. 이곳의 바다에서 생명체를 발견한 지 여섯 시간 만에 난 결론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쟁반 같은 창 너머로 빛나는 것은 얼음 행성이다. 40킬로미터 두께의 얼음을 뚫고 내려가야 존재하는 그 밑의 바다가 해양생물의 유일한 희망이다. 적어도 현재로써는. 얼음산의 협곡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상공에서 시추작업을 통해 뚫어놓은 구멍이 행성 표면에 순차적으로 보였다.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의 중력에 묶인 우주선 나비호는 이름과 달리 소금쟁이 같은 형상이다. 가운데 조종석이 있는 몸체로부터 기다란 다리 네 개가 뻗은 형태였다. 마치 부력으로 우주를 떠다니는 듯한 우아하고도 매끄러운 외관이었다.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행성의 표면은 달보다 밝게 빛났다. 커튼을 쳐놓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승혜가 암막 커튼을 치고는 침대에 누웠으나 시선은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쏟아지는 빛으로 향했다. 수면제를 처방받을 때, 의사는 다량으로 처방해주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승혜가 의사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안심은 “내가 우주까지 나가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겠느냐.”하는 것뿐이었다. 우주에서 죽을 거라면 적어도 그보다는 멋진 최후를 맞이할 거라는 뒷말은 생략함으로써 세 달치의 수면제를 처방 받았다. 하지만 의사의 걱정과 달리 승혜는 나비호로 온 이후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았다. 오늘 밤도 걱정 없이 잠들 수 있으리라.

나비호에는 두 달 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중국 창정에서 연락이 온 것은 일 년 전이었다. 만원 전철에서 또 다시 구토를 느끼고 있었을 때 말이다.

한강을 덮은 서울 야경 불빛이 우주의 별보다 숫자가 많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쾌속 전철이 아파트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며 승혜는 구토를 참아냈다. 재킷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이 흐른 이마를 닦아낸 후 입과 코를 막았다. 역과 역 사이는 고작 30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승혜가 전철 안내화면을 노려봤다. 합정역에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고, 머지않아 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을 헤치고 전철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통을 붙잡고 속을 게워내려고 시도했지만 숨 이외에 어떤 것도 쏟아지지 않았다. 그 다음에 도착한 열차도 마지막 횡단열차인 것처럼 어딘가로 피난 가는 듯한 사람들을 가득 채운 만원 전철이었다. 밀고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승혜는 의자에 앉으며 전철을 보냈다. 두 손을 맞붙잡고는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땅이 여전히 흔들렸다. 스프링시트 위를 걷는 울렁거림이 지속됐다. 4년 째 지속되는 울렁증에는 이름도, 발병체도, 그렇게 치료방법도 없었다. 재킷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의 알람도 무시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늘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연구보조의 전화거나 과학출판사 편집자의 안부전화일 것이다. 두 번 받지 않으면 둘 다 승혜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겠지. 하지만 두 번째 전화가 끊기고 세 번째 전화가 왔다. 승혜가 눈살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발신이 중국이었다.

바다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카운트다운은 실패로 끝났다. 흑해에서 미생물이 모두 죽었음을 확인하고 승혜는 이 지구의 모든 바다가 사해死海가 됐음을 발표했다. 돌고래나 해파리의 집단 죽음을 시작으로 청어, 산호초를 건너 바다 미생물까지. 지구의 5대양이 전부 죽은 바다가 되기까지 그로부터 딱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다의 모든 생명체가 다 사라지기까지는 그보다도 적게 걸릴 것이라는 게 모든 학자의 예언이었다. 지구는 바다가 보낸 마지막 신호를 제대로 듣지 못한 죄로 바다를 잃었다. 원인은 파지 바이러스의 변종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균을 공격하는 살균바이러스였던 파지가 공격의 대상을 미생물로 바꾼 것이다. 바이러스가 갑자기 변화한 원인은 여전히 규명할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변종된 바이러스의 피해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너무 늦었다. 인간과 함께 진화하는 바이러스는 언제나 인간보다 강하고 뛰어났으므로.

승혜가 그 모든 일말의 멸망을 모두 목격하고 다시 중국 창정으로 2년 만에 돌아와 마주본 것은 NASA 직원과 10년 전 잠시 호흡을 맞췄던 생태학자 주연이었다. 승혜는 주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잠시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물었다. 빌어먹게 먼 흡연구역까지 걸어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통화를 마친 후 부재중 전화를 세통이나 남긴 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부 망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학인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친구였다. 예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왜 불렀대?’하고 물었다. 승혜가 담배를 한 번 더 빠는 여유를 부리고는 입을 열었다.

‘나보고 우주로 나가래. 행성에서 바다를 살리고 오래. 미친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