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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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떨린다.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다. 펜을 쥐고 벌써 몇 시간이 지났지만 정리되고 체계적인 것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왔는지 모르겠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공간이 나를 마구 옥죄고 짓누른다. 가슴이 답답하다. 난 한순간도 나를 이 공간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종이가 충분할지 모르겠다. 종이를 더 달라고 하면 줄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이 모조리 꿈이고 악몽인 것만 같다. 이 종이에 그 일들을 채워 넣을 생각이다. 볼펜을 받아서 다행이다. 연필이었으면 힘 조절이 안 돼 부러뜨렸을 것 같다. 횡설수설이라도 이해 바란다. 뭐라도 써야만 글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종이를 낭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마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처음부터 써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설명하려면.

살인마들의 시대였다. 텔레비전 뉴스마다 살인마가 판쳤다. 나는 색깔 없는 겨울 코트 속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주인아저씨 뒤에 놓인 텔레비전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난날 근방 일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 살인마. 그자의 공소시효가 오늘로 부쩍 다가왔다는 소식이 나왔다. 점잖은 남성 아나운서의 표정이 심각했다. 화면 하단으로 지나가는 뉴스 헤드라인이 그 전설적인 도끼 살인마를 추종하는 숱한 모방의 역사를 상기시켰다. 나는 그걸 보면서 그냥 춥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여자친구 데려올 생각은 없냐?”

비디오방 아저씨가 살랑살랑 웃으며 물었다. 나는 성인 코너에서 가져온 영화 비디오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설령 만든다 해도 아저씨한테는 못 보여줘요.”

“하긴, 그때는 여기도 졸업해야지.”

체구가 큰 사내였고 품이 넓어 보이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가볍게 비아냥거릴 때 양팔을 들어 ‘여기’를 지시해 보였었다. 노상 하던 것처럼 나를 놀리는 짓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슬슬 접어야 할 자기 장사까지 에둘러 깠던 것 같다. 이 중의적인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무척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일상에 젖어 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지금 돌아보기엔 너무나 기괴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저씨와 두어 마디 더 나누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대신 앞으로 벌어질 일의 배경이 될 이 장소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곳은 물론 망측한 커플들의 관광명소였다. 그렇지만 세간의 선입견처럼 한눈에 불건전하게 보인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외관상 그곳은 멀끔한 카페였고, 실제로 처음 아이디어도 그랬다. 1층에 바리스타가 서 있고 2층에는 TV를 하나씩 들인 방이 몇 개 나뉘어 있는 곳. 일종의 고급 룸카페였던 것이다.

이 창업 아이템이 야릇한 분위기를 띠게 된 건 집값 때문에 대학로에서 밀려나 골목 안쪽으로 으슥하게 비집고 들어간 탓도 있을 것이고, 본래 이 자리에 들어서 있던 진짜 비디오방의 상품들을 인수할 때 같이 사들인 탓도 있을 것이다. 당초 계획은 만화방까지 겸할 생각이었단다. 그런데 돈이 부족해서 마침 끼워 판 비디오로 때워 보려 했단 거였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비디오 룸카페’라는 해괴한 간판을 내걸게 만들었다. 거기에는 곧 유익하지 못한 딱지가 붙었다. 아저씨는 패착을 무르기는커녕 아예 유리창에 ‘방음완비’라는 종이를 프린트해 붙여서 주 고객층을 바꿔 버렸다.

뉴스가 끝난 텔레비전 화면 한편에 자막이 떠 있었다. 방송국 주관으로 제작된 특집 프로그램이 밤에 방송된다는 내용이었다. 도끼 그림이 배경이었고 ‘우리 사회에 남긴 자국.’ 문구는 대충 그랬다. 나는 그것을 뒤로 하고 2층으로 올라가 방을 골랐다. 그날은 평일이었고 더구나 오전이라 모두 비어 있었다. 오해를 막기 위해 쓰는데 나는 백수건달이 아니다. 평범한 대학생이고 그날 시간표가 오전 첫 타임 이후 오후까지 쭉 공강이었을 뿐이다. 하나씩 방문을 열어보고 가장 깨끗해 보이는 처음 방에 들어갔다.

문가에 뭔지 모를 화초 화분 하나가 있었다. 그것 말고는 3인용 소파 하나, 벽걸이 텔레비전 하나, 탁자 하나, 탁자에 딸린 의자가 네 개 정도였다. 나는 자리만 잡은 뒤 담배 한 개비 피고 올 생각으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그러나 남아 있던 게 한 개비뿐이었다. 나중에 새로 한 갑 사려니까 쪼들리는 지갑 사정이 기억났다. 잠깐 고민하다 혀를 차고 코트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가방을 대충 소파 위에 던져 놓고 TV를 켠 뒤 비디오를 재생 장치에 삽입했다.

주인아저씨가 볼썽사납게 놀리긴 했어도 내가 그때 보려던 영화는 포르노가 아니었다. 스릴러물이었다. 평범한 스릴러물이다. 적당히 야하고 적당히 폭력적인. 그리고 대중적으로 꽤 유명한 작품이다. 아까 그 도끼 살인마 이야기를 각색한 내용이긴 했지만 호평 일색이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 작품을 선정하는 데 나는 어떠한 불순한 의도도 갖지 않았음을 여기서 밝혀 둔다. 아무튼 내가 영화가 잘 나오는지 확인한 뒤 똑바로 닫지 않은 문을 잠그려고 돌아설 때였다. 거친 발소리가 들렸다.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온 것은 빨간 등산점퍼를 입은 남자였다. 뜻밖의 사태에 난 동작을 멈췄다. 불의 고리를 뛰어넘듯 몸을 웅크리고 잽싸게 문설주를 통과한 불청객은 얼핏 작달막해 보였으나, 방 안에 들어와서 몸을 완전히 펴자 의외로 키가 훨씬 커졌다. 얼굴이 까무잡잡했고 나이를 꽤 먹어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히는 중년의 사내였다. M자 탈모의 시작을 의심케 하는 머리카락의 형태와 굵은 눈썹의 인상적인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약간 쇳내가 풍겼다. 외국인처럼 생기진 않았었는데 잘 모르겠다. 손에 검은색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성급히 달싹이고 있어 완고한데다 거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씨근덕거리는 입술을 좌우로 한 번씩 당기고 날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내 존재를 발견했다는 듯 극적으로 입을 벌렸다. 이어서 씩 웃었다. 하지만 그건 멋쩍은 웃음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오.”

그러면서도 사내는 자기 어깨에 걸고 있던 스포츠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제 방인 양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 깔끔한 금속음이 났다. 나는 당혹스러워서 아무런 항의도 못하고 있었다.

“앉아. 편하게 있어.”

사내의 목소리는 신사적으로 들렸으나 내가 그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누구세요?”

“한 가지 재밌는 게임이 있어. 그걸 해 보자고.”

사내가 대답 대신 지껄였다. 나 역시 정말로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에 돌려줄 “여긴 제가 빌린 방인데요.”가 목구멍에서 쏙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사람이 있는 줄 알면서 들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사내는 스포츠백을 질질 끌어 방 한쪽에 놓인 탁자까지 옮긴 뒤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것의 지퍼를 끄르며 재차 권했다.

“자, 맞은편에 앉으라니까. 시작이 빠를수록 좋다고.”

나는 그의 부름에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그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두 눈은 휘둥그레졌고 뒤통수 한가운데를 망치로 맞은 듯한 기습적 충격이 찾아왔다.

놈은 가방에서 새까만 권총을 빼 들고 나를 겨누며 말했다.

“앉으라니까. 저기 의자 있잖아.”

내가 이 사태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권총이다. 이 나라에서 만날 기회라곤 영화 속밖에 없는, 경찰이나 갱스터가 들고 다니던 검은색 네모반듯한 플라스틱제 권총이다. 충격에 반응하는 뇌가 시간을 두고 감각 정보를 천천히 실감한다는 상식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 내 뇌는 초장부터 공포에 질렸다. 이를테면 온몸이 싸늘해지는 걸 느끼는 작업 말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때 놈의 목소리가 유난히 친절하게 들린 기억이 난다. 내 머릿속은 이미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고 얼간이처럼 눈알만 뒤룩뒤룩 굴려댔기에, 빨간 점퍼 사내는 내가 자기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지 몇 번이나 재확인해야 했다.

“알겠어? 스무고개 같은 거라고. 예, 아니오로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정답을 구체화하는 논리 추론 게임이야. 갑자기 무례한 요구하는 것 같아도 이해해. 친구들과 내기를 하나 했거든. 스무고개 어떻게 하는지는 잘 알지? 그래, 자, 그럼 이 이야기를 들어 봐. 한 산장이 있어. 사람들에게 방을 주고 숙소를 제공하는 곳이야. 한데 어느 날 그곳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어. 소리를 듣고 산장 주인이 허겁지겁 달려가 방문을 열었지. 눈에 들어온 것은 두 남자였어. 한 남자는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어. 그 옆에 내팽개쳐진 권총이 하나 떨어져 있었지. 그리고 다른 남자는,”

그가 내 표정을 살피며 뭉뚝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빨간 등산점퍼를 입고 그 곁에 서 있었어. 내 말 알아듣겠어?”

그 비유는 너무나 직관적이고 명확해서 다른 의미라곤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내 풍선처럼 팽창하는 것 같은 머리통을 들고 있기가 힘들어졌다. 떨리는 머리를 처박고 탁자 위에 대 놓은 권총만 쳐다보고 있으니, 사내는 주목하라는 듯 총구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이게 주어진 상황이야. 그리고 넌…… 그래, 스무 가지 질문을 통해 이 남자의 살인 행위를 증명해야 해.”

그가 몹시 흥분된다는 듯 작은 눈을 반짝였다. 어딘가 과장된 것이 틀림없는 듯한 열기가 붉은 얼굴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무척 강렬한 공기가 방을 휩쌌다.

“실패하면 널 죽일 테니.”

그것이 놈의 선언이었다.

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서, 한동안 입을 벌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날 죽인다고? 왜? 그렇지만 사내는 자기가 내뱉은 말로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나는 죽는다. 그건 내가 문제를 맞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감각에 빠진 채 난생처음 보는 권총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이런 물건을 어디서 구한 걸까? 두려운 와중에도 불현듯 그런 의심을 할 수 있었다. 가짜 권총을 가지고 위협하는 게 아닐까? 왜 어떤 영화에서도 플라스틱제 물총에 까만 칠만 해 놓고 상대를 위협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가. 그건 또한 내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그 편이 훨씬 개연성 있으니까, 마치 내 의지로 상황을 조절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그 의심에 매달렸다.

“내 말이 장난 같아? 게임에 응하지 않으면 그냥 죽여 버릴 거야. 도망치려고 해도 죽어. 이 거리에서 빗맞힐 거란 기대는 하지 마.”

그러나 인제 보니 사내는 문에서 먼 쪽의 의자를 스스로 차지하고 앉아 있던 것이었다. 그 자리는 자신의 여유를 드러내 들고 있는 총이 진짜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내가 문으로 도망을 시도하더라도 조준점을 그다지 많이 옮겨 줄 필요가 없는 효율적인 자리였다. 방의 문은 안쪽으로 열리는 구조였다. 그리고 방아쇠는 문고리보다 잡아당기는 데 시간이 훨씬 덜 걸렸다.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생명의 위협을 비로소 실감했다. 최초에 목구멍을 틀어막고 가슴속으로 들어온 응어리가 천천히 얼어붙고 있었다.

사내가 내게 요구한 사항을 뒤늦게 따라잡아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그는 산장 이야기를 했다. 산장에서 한 남자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같은 방에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총성. 나는 같은 방에 있었던 남자가 상대를 살해했다는 증명을 찾아내야 한다. 스무 가지로 제한된 질문을 가지고서.

상대를 살해했다는 증명을 찾아내라고? 대체 뭘 질문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다시 혼란에 빠졌고 이 사내가 문제를 잘못 설명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사내의 인내심에 이미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친절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전과 비교해 퍽 꾸민 티가 나는 목소리로 의도치 않게 나를 몰아붙였다.

“아니면…… 처음엔 내가 도와줄까? 경험이 없는 사람은 무얼 질문해야 좋을지 모를 수 있지. 그래,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좋아. 힌트라고 치자고. 이런 질문은 어때. ‘시체와 같은 방에서 발견된 남자에게, 도망칠 시간이 있었나요?’”

그가 제안하던 어느 한중간에 갈 길을 잃은 듯한 쇳소리가 뒤섞였다. 동시에 그가 총구를 들었고 나는 그 손이 어떤 욕구를 참고 있는 듯 가볍게 떨리는 것을 목격했다. 불안하게 요동치던 내 속은 여지없이 뒤집혔다.

“시체와 같은 방에서 발견된…… 발견된 남자에게, 도망칠 시간이 있었나요?”

내가 미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어벙하게 물었다.

사내가 웃었다. 내 목소리가 웃겼다기보다 순순히 그의 룰에 따르는 게 만족스러웠던 듯하다.

그 표정을 보니 내가 돌아가는 사정을 올바르게 이해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내는 정말로 나와 ‘논리 게임’을 벌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러나 그놈은 갑자기 기분 좋아 보였다. 직전 뻣뻣한 신경증에 시달리는 듯했던 그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방긋 웃어 보였단 말이다. 그건 부자연스럽고 괴기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티끌만한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방금처럼 고분고분 따라 준다면 당장은 날 죽이지 않을 것 같았다.

등 뒤로 외롭게 재생되고 있는 영화의 소리가 내 의식을 깨웠다. 두려워하며 나를 옥죄던 무의식이 겨우 한숨을 돌린 것이다. 그래, 이런 식이란 거구나. 질문으로 답을 구체화하는 논리 게임. 그 자체는 친구들과 몇 차례 해본 적이 있어 익숙했다. 바싹 굳어 있던 뇌가 조금 풀렸다. 생존 세포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권총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냉철한 분석과 사고가 간절히 필요하게 되었음을 느꼈다. 늦게나마 이미 던져진 내 첫 번째 질문을 사내가 제시한 사건에 대입해 보았다.

남자에게 도망칠 시간이 있었는가? 상대가 제시해 준 것치곤 괜찮은 질문이었다. 살인 이후 도망칠 시간이 없었다면 당연히 남자에게 혐의가 몰릴 수밖에 없다. 만일 도망칠 수 있었는데도 남아 있던 거라면 그것대로 묘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사내는 묵묵히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있었어.”

그의 몸짓과 말투는 괴이쩍게도 나를 맥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유를 찾기 위해 별로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대답을 듣고 나서 문제 속 상황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남자의 범행을 증명하기 위해 파견된 경찰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런데 내 질문이 남자의 범행을 증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총성이 울린 직후 시체와 함께 발견된 남자. 그런데 다른 증거는 없고 이 남자가 보통 사람들처럼 자기는 시체의 죽음에 연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치자. 그렇다면야 기실 그 자리에서 내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때 그는 그저 시체를 발견한 최초 목격자에 불과하다.

나는 경직된 채 침묵을 지켰다. ‘믿었다’라는 표현은 적절한 것이 못되겠지만 하여튼 나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사내는 이제 한결 여유로운 태도로 나를 기다려 주었다. 침묵이 한참 동안이나 계속됐는데도 더 이상 재촉이라든가 지루함을 암시하는 행위가 한 번 없었다. 놈의 생각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첫 번째 기회를 타의로 소모하게 만든 점은 유감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이 방의 규칙을 이해하는 데 투자했다고 생각해라. 대신 다음부터는 간섭하지 않으마.’ 놈이 내게 그 보상을 주고 있었다.

사내는 눈물 나게도 자기가 듣기에 좀 더 흥미로운 질문이 생산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직시하게 되자 때늦은 분노와 반발심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바보 같이 저항하는 대신 난 주어진 시간 동안 ‘이 방의 규칙’이라는 것에 관해 공들여 숙고했다. 일말의 틈을 갖게 되자 좀 더 사태를 냉정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이놈은 미친놈이다.

분명하다. 친구들과 내기인가 뭔가 진행하겠다고 이 짓거리를 벌이고 있다. 진짜배기 미친놈이다. 그리고 둘째 그런 녀석에게 내가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셋째 내게 살해 위협을 가하는 미친놈은 진위를 시험하기에 너무 무서운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이 방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리고 넷째, 그놈이 내게 게임에 참여하길 원한다.

사정은 그랬다. 내가 미치광이와 함께하는 이 게임에 몰두했다고 이상하게 여기진 말기 바란다. 난 그 순간 총구와 결부된 위협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잘것없는 지푸라기 한 가닥의 가능성에도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어디선가 들어 본 ‘광인에게도 자기만의 세계와 규칙이 있다.’라는 명제가 제발 진실이길 바랐다. 해답을 내놓는다면 나를 살려 보내주겠다는 말이 진실이기를 바랐다. 앞뒤 순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첫 번째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사내는 이렇게 말했었다.

“문제를 맞힌다면 너는 내게서 아무런 해악도 입지 않고 여기서 탈출할 수 있어. 음, 표현을 고치는 편이 좋겠군. 여길 탈출한 뒤에도 내게서 아무런 해악도 입지 않을 거야. 네가 이 방을 나서자마자 쏴 죽인다느니 그런 유치한 짓거리는 하지 않을 거라고. 아무튼 무슨 말인지는 이해하지?”

아주 들떠 있었는데 마치 이것저것 자기 설정을 구체화하려고 문장을 계속 덧붙이는 시나리오 작가처럼 얘기했다. 결코 독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꼴은 아니었다.

“뭐, 악마와 장난 한 번 한다고 생각해.”

소름 끼치도록 종잡을 수 없는 희락이 그때 그의 표정에 묻어났다.

물론 내가 이 미치광이를 마냥 믿고 하라는 대로 따랐던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힌다고 해서 그가 날 살려 보내 줄 위인인가를 당연히 의심했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 ‘악마의 장난’에서 벗어날 다른 탈출법, 즉 스스로 그곳을 도망쳐 나오거나 몰래 경찰을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등등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성공적인 결과는 내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궁리는 상황에 별반 주요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실제로 실행에 옮긴 것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는 군더더기를 모두 제거하고, 주로 게임이 진행되어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관해서만 서술하려고 한다. 다만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탈출 시나리오와 위기감, 공포, 효율적인 질문에 관한 계산 따위가 마구잡이로 혼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

게임에 관해서는 앞에서 이미 모두 밝혔다. 던져진 상황에서 남자가 시체의 살해범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라. 다소 해괴한 승리 조건을 가진 게임이다. 제한은 스무 가지 질문이었고 방금 하나를 쓴 상황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 남은 19가지 질문을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당시 내가 적절한 질문을 찾기 위해 분석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범행 현장에 대한 질문으로 직접 정답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이 게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즉 게임이라면,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미친놈이 낸 문제는, 내가 쉽게 승리할 수 없도록 고안되었을 거란 말뜻이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문제 속 그 남자에겐 혐의가 가지 않을 상황이란 거다. 그런 식으로 뼈대가 짜여 있을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나는 그 문제의 전체적인 얼개부터 차근차근 파악해 나가야 했다. 그렇다면 가장 정석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두 남자는 서로 아는 사이였나요?”

내가 친구들과 비슷한 게임을 할 때 초반에 자주 선택하는 질문이었다. 벌어진 상황 이전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서 먼저 인물의 과거를 캐는 방식이다. 만일 두 남자가 아는 사이였다면, 다음 질문을 모색하기도 훨씬 쉬워진다. 가장 쉽게는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었음을 추정하는 형태로 이어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이를 부정했다.

“처음 보는 사이였어.”

역시 쉬운 문제를 내 주진 않았군.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제한된 차례 안에 정답을 맞힐 수 있을까. 어쩌면 감을 잡을 때까지 10개 이상의 질문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걱정이란 것은 본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나 벌써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 질문은 18개나 남았고 그때까지는 내게도 여유가 있었다. 일단 사내의 답변에 관해 생각해 보자.

문제 속 인물들 사이에 서로 면식이 없다면, 살해 동기를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모르는 사람 간에 살인날 경우라고 해 보았자 우발적 아니면 무차별 범죄밖에 더 있을 것인가. 하지만 역시 남자가 도망치지 않았다는 점이 걸렸다. 총성이 있은 뒤 근처에 있던 산장 주인이 달려와 현장을 발견한 상황이다. 증거물을 처리하기엔 시간이 빠듯하다. 그 말대로 권총도 그 방 안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도망치는 편이 나았지 않았을까?

이번 질문으로 끌어낼 수 있는 의문이 이렇다. 하면 다음 질문으로 꼽히는 후보군은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로 남자에게 도망치지 못할 사정이 있었는가? 예, 아니오라는 대답밖에 듣지 못할지언정 이야기의 맥락을 잡기 위해 시도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한들 몇 가지 질문 내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질문으로 이어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방금 떠올렸듯이, 증거물들이 특별히 자기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는다면, 현장에서 굳이 도망칠 이유도 없다. 그러면 되레 의심을 살 뿐이니까 말이다.

또 다른 질문으로 처음 보는 관계인 두 사람이 어째서 한 방에 있었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 문제의 배경은 산장이라 했다. 그렇다면 보통 방을 잠가 놓을 것이고 외부인은 드나들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방에 있었고 한쪽이 다른 쪽을 죽여 버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기회비용을 따져본 뒤 후자를 다음 질문으로 택했다. 두 남자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됐다.

“방의 주인이 상대를 방에 들여보내 주었나요?”

대답은 곧 돌아왔다.

“아니. 한쪽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고. 무단침입이라는 뜻인가? 설마 도둑이 들어 몸싸움 끝에 정당방위로 죽였다는 시시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나는 잠깐 뜸을 들인 뒤 물었다.

“방에 무단으로 침입한 흔적이 있나요?”

“아니.”

사내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을 씰룩거리다가 덧붙였다.

“문이 그냥 잠겨 있지 않았어. 그뿐이야.”

변덕스러운 놈이다. 기분이 죽 끓듯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내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으로 불안해졌다. ‘그뿐이야’라는 답변 자체도 결코 문제 속에 치밀한 트릭이 담겨 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순할지 모른다. 범죄라는 행위의 실태는 영화 속 철두철미한 지능범의 소행과 영 딴판일지도 몰랐다. 이자는 그냥 떠버리인 것인가? 머리는 좀 모자라지만 추리게임 영화 같은 걸 너무 인상 깊게 본?

“두 남자가 다투었나요?”

내 다음 질문이 이 같은 의심을 더욱 그럴듯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사내는 이 말을 듣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턱을 쓰다듬다 발을 동동 구르다 이렇게 말했다.

“충돌이 있었지. 이봐, 게임을 잘 이해 못했나 본데, 내가 요구하는 건 남자의 범행을 증명하라는 거야. 두 남자가 다툰 것은 아무도 듣지 못했고 따라서 네 질문은 거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상당히 불만인 투다. 마치 내가 계속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 재미없고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나는 기막혀 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들었다. 대뜸 정답 맞히기를 시키면서 상대의 오답에 이런 반응이라니. 어린아이 같다. 제멋대로다.

상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내가 주변의 잡동사니들을 곁눈질로 훑는 횟수도 빈번해졌다. 속으로 궁리해야 할 다른 사안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그러니까 탈출 시나리오 같은 것 말이다. 나는 테이블을 엎어 세워 총탄을 막는다든가 하는 상상에 사로잡혔다. 그런 상상에 쏟는 정신력에 반비례하여 내가 사내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훨씬 간편해졌다.

“산장은 고립된 공간이었나요?”

다시 말하지만, 내가 사내의 장단에 맞춰 질문을 던지는 행위를 게임에 몰입한 것처럼 잘못 간주하지는 말라. 그 같은 모습은 갖은 대책이 혼재된 내 머릿속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튼 겉으로는 계속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척을 했지만 말이다. 그러면 내 여섯 번째 질문에 관해 설명하겠다.

‘산장은 고립된 공간이었나?’ 그건 시체와 같은 방에 서 있던 남자를 범인으로 몰고자 할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이었다. 산장이 고립된 공간일 경우 제삼자가 끼어들 여지가 아예 사라진다. 그러면 용의자의 수가 제한되고 따라서 같은 방에 서 있던 남자가 범인일 확률이 높다. 나는 여기서 ‘예’라는 질문이 나오면, 다음 질문으로 다른 투숙객이 있었느냐 물으리라 결정했었다. 그리고 질문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탈출 방법을 재 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부정형 대답이 나왔다.

“아니. 주변에 민가가 그득했지. 단지 소리가 새어나갈 옆방이 없었을 뿐이지.”

소리?

비록 용의자 수를 제한하고자 했던 의도는 빗나갔지만, 내가 이 대답을 듣고 나서 떠올린 감상은 다음과 같다. ‘가만있어 봐. 상대는 총을 들고 있고, 여긴 도심 한복판이지.’

그러니까 나는 총성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지금 내가 꼼짝을 못하고 있는 것은 저 사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검은색 권총 탓인데, 저 권총만 어떻게 봉쇄한다면 나도 훨씬 적극적으로 탈출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내의 뒤편으로 불투명한 창문이 하나 나 있다. 성인 남성이 통과하기에는 빡빡한 넓이지만 그 너머로 정면에 길이 있다. 총소리 같은 걸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깝다. 비록 골목길이래도 엄연히 상점가인데 들을 사람도 무조건 있다. 창문이 열려 있고 말고가 소리의 확산에 있어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분명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른 음성과 배합되느라 볼륨을 줄인 영화 속 총소리가 진짜 총소리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건 당연하다. 설령 바깥의 행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쳐도, 그 사실을 인지한다는 건 방아쇠를 당기는 입장에선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테다. 창문을 열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사내에게 달려드는 최후의 수단을 취할 때 보험으로 작용해줄는지 모른다.’ 불과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내 좌뇌와 우뇌를 가로지른 일련의 사고 과정이 이러했다.

‘인제 슬슬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할 텐데. 창문만 보고 있다간 딴청 피우는 걸 들키겠다. 날 바라보고 있는 저 시꺼먼 총구로 다시 눈을 돌려놓아야겠어. 아, 막상 총을 시야에 넣으니. 아까 생각지 못했던 내 이론의 구멍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이자는 광인이잖아. 그러니만큼 남들이 듣든 말든 앞뒤 안 가리고 탕탕 쏘아댈지 모른다. 권총에 소음기가 달려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요새는 기술이 발전해서 그런 게 없어도 총소리가 별로 안 나는 총일 수 있다. 머리가 아프다. 질문은 해야 하는데. 어디까지 했었더라?’ 그다음 10초 동안 내가 전개시킨 의식의 흐름은 이러했다.

내 부실한 사고력을 떠벌리려고 쓴 게 아니고 내 다음 질문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썼다. 고민 끝에 내가 발견한 질문은 아주 처음에 제기된 문제 그 자체에서 나왔다. 총성만 혼자 계속 되뇌고 있으려니 섬광처럼 찾아온 기억이었는데, 요지는 사내가 문제를 얘기할 때 시체의 사인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단지 ‘총성이 들렸고 시체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라고 했을 뿐이다.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 적은 없다.

나는 의심했다. 만약에 이 표현이 무언가 의도적인 은폐를 의미하고 있다면, 그건 즉 거꾸로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해 보라’고 처음부터 신호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이 문제 상황의 핵심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한 주제를 두고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이처럼 오만 의미를 다 부여해 낼 수 있다. 좀 기막히게 생각될지 몰라도, 그때는 최소한 질문 하나를 소비할 가치는 있어 보였다.

“상대 남자는 총으로 죽었나요?”

그래서 나는 질문했고 사내의 반응을 관찰했다. 과연, 사내는 드디어 기다리고 있었던 질문이 나타났다는 듯 이를 드러내고 웃어 보였다. 사악하고 전에 없이 교활해 보였다. 나는 그 순간 어쩐지 그에게서 게걸스럽다는 인상마저 받았는데, 내 모든 것을 속속들이 먹어치우고 싶어 한 그의 의중을 잠시 엿볼 수 있었던 탓이 아닌가 싶다. 그가 벙싯거리며 마치 의도치 않게 빠뜨리고 만 부분이라는 듯, 그처럼 극적이라 오히려 더 의심스러웠던 태도로 말했다.

“아, 그거 말인데…… 내가 말하지 않았었군. 실은 크게 상관없는 부분이긴 한데. 콕 집어 정해 둘 필요는 없었거든. 글쎄, 어디…… 골라 볼까.”

그가 손을 아래로 뻗어 탁자 밑에 있는 스포츠백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 안에서 무언가 길쭉한 물체가 딸려 나왔다. 처음부터 풍겼던 쇳내가 확 끼치며 서늘한 기운을 냈다. 사내는 총과 함께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를 쳐다보았다.

“너는 어느 쪽이 좋겠어?”

시뻘건 도끼가 쪼그라든 내 동공을 가득 채웠다.

전기의자에 앉은 듯 팔이 뻣뻣해져 움직여지지 않았다.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다리가 제멋대로 꽉 죄어 붙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식은땀이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주먹을 쥐자 곧 사지가 덜덜 떨렸다. 도끼에 묻어 있는 선명한 피의 흔적이 내 눈과 코 심지어는 입까지 사로잡았다. 비릿한 공기가 내 얼굴에 뚫린 모든 구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귓가에 아무런 소리도 잡히지 않았다. 아주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는 인체 속 어떤 부위가 소리의 진공 상태 한가운데 방치된 느낌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극히 미세한 뇌세포 하나하나가 모조리 겁에 질려 아우성쳤다. ‘너는 어느 쪽이 좋겠어?’ 총과 도끼. 용도가 명확히 정해진 두 도구들. 그리고 내게 양보된 선택권. 선택이라고? 뭘 선택하라는 거지? 내가 고르는 것은 순전히 무의미한 영역을 구체화하는 일에 불과한 건가? 아니면…….

사내는 내가 무슨 예감을 가졌는지 뻔히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보란 듯이 총과 도끼의 손잡이에 양손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그리고 깨지기 쉬운 섬세한 유리 장식물을 살살 건드리며 장난치는 것처럼 나를 흔들었다.

“어느 쪽이 좋겠어? 직접 골라 보라고.”

직접 골라 보라고? 한쪽을 고르면 그걸로 날 죽일 건가?

내가 간과했던 또 한 가지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문제 속 시체 곁에 서 있던 남자. 사내는 마지막에 그 남자에 관해서 한마디 덧붙였었다. 그 남자가 빨간 등산점퍼를 입고 있었다고 했다. 꼭 자기가 입은 것과 같은 점퍼를.

그 말대로다. 나는 내가 가장 처음에 받은 본능적인 직감을 언제부터 흘려보내고 말았는지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내는 문제 속 남자와 동일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바로 그 도구로 날 죽일 생각이었던 거다. 난 이제껏 사내와 나눈 문답이 맨 처음부터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깨닫고 나서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두 남자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나요? 예. 우리는 여기서 처음 만났다. 방의 주인이 상대를 방에 들여보내 주었나요? 아니오. 이 사내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방에 무단으로 침입한 흔적이 있나요? 아니오. 문이 그냥 잠겨 있지 않았다. 내가 미처 잠그기 전에 이 자식이 뛰어들었으니까. 산장은 고립된 공간이었나요? 아니오. 문제의 배경은 사실 산장이 아니었다. 나와 사내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이 공간이었다. 주변에 민가가 그득하고 옆방에 아무도 들지 않은 망할 비디오 룸카페 2층의 바로 앞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남자는 총으로 죽었나요?’

남자는…… 남자라는 건.

내 얘기다.

“자, 고르지 않을 거야? 뭐 상관은 없는 거야. 여차하면 내가 그냥 선택해 주겠어.”

사내가 지껄였다. 나는 입안이 바싹 말라 있었다는 걸 깨달으며 성대를 억지로 게워내야만 했다.

“총…….”

파르르 발작하는 목소리가 가까스로 흘러나왔다. 심장에 고통이 느껴졌다.

“총으로 하죠.”

내 머릿속에 도끼로 사지가 잘려나가는 그림과 총알이 가슴을 관통하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느 쪽을 골랐을지 궁금하다. 나는 그때 그나마 덜 고통스러운 죽음이 후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한 번에 끝나는 간결한 죽음을 원했다. 그래서 총이라고 대답한 거다.

“그래, 그럼 그런 걸로 하자고. 남자는 총에 맞아 죽었어.”

그런데 그 말이 모든 이야기를 매듭짓는 도장을 찍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당신이라도 당연히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저항이 아니라 어떻게든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지 않으려고 심리적 발버둥을 계속했단 말이다. 생각을 했다. 몹시 생각했다. 사내는 정답이 정해지자 도끼를 탁자 한편으로 밀어치우고 다시 권총을 손에 쥐었다. 내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총구의 얕은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눈동자는 그것과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과 그 뒤편의 창문을 정신없이 번갈아 훑었다. 그때마다 같은 외침이 반복됐다. 진짜 쏠 셈인가? 이 자리에서? 이 도심 한복판에서?

“그 총에는 소음기가 달려 있었나요?”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 사내에게 경고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에 응하는 사내의 언행은 나를 경악시키기 충분했다. 그는 자기 권총을 쓱, 대수롭잖게 훑어보고 나서 대답했던 것이다.

“없었어.”

나는 정신병에 걸린 환자처럼 눈알에서 거품이 솟아날 때까지 시선을 붙잡아 두지 못했다. 뭐란 말인가, 방금 저 행동은? 저 미소는? 의도적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자는 총성이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건 말건 방아쇠를 당길 생각이었다. 주위 사람이라곤 아랑곳없을 터였다. 정녕 미치광이인 것인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이 물불 가리지 않는 놈이라고 했다. 나는 그자의 어리석은 제 살 깎아먹기를 제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가 단지 게임으로 그치지만은 않을 것임을 인지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남자는 경찰에게 체포당하나요?”

그 대목에서 사내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다시 진공 상태 속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주름에 둘러싸인 사내의 눈동자가 잔혹한 색깔로 덮여 있었다. 자연의 색조에서 붕 떠 있는 그 탁한 색깔이 이 공간이 아닌, 마치 정해진 미래의 결말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체포가 될지 조사로 끝날지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분명 그런 식으로 진행될 거야. 그럴 수밖에 없잖아?”

나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었지만 벌써 허탈감이 뒤섞인 심정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탁자에 맞붙어 있는 총구가 나를 맞았다. 마주하고 있으려니 몹시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고개를 치웠다. 붉은색 소방도끼가 시야에 들어왔다. 난데없이 등장한 그 도끼가 내 숨을 틀어막았다. 이성이 정수리에서부터 점점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무턱대고 바라보았다. 권총 못지않게 이상한 도구다. 도대체 어디서 온 물건인가.

나 자신만을 남기고 괴리된 세계가 무척 어색하게 보였다. 그것들이 쏘아 보내는 불안정한 위협이 미열로 바뀌어 나를 괴롭혔다. 어색한 소란이 주변에 퍼져 있었다.

고요한 방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영화 소리로 생뚱맞게 들떴다. 등장인물이 비명을 질러 데시벨을 올린 탓이다. 첫 번째 희생양. 그리고 급히 정적이 찾아왔다. 보지 않아도 무슨 장면인지 알 수 있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었으니까. 영화 장면의 상상과 함께 실제 사건의 경과를 정리하던 뉴스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하수처럼 흘러들었다. 영화가 정석을 따른다면, 이다음은 텔레비전 속 범인이 시체에 자국을 남길 차례였다.

콱. 정적을 위에서 내리찍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여전히 도끼를 보고 있었다. 이것으로 사내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연쇄 살인마인가요?”

내가 당시 떠올릴 수 있었던 건 텔레비전 화면 한편에 나타난 그림과 ‘우리 사회에 남긴 자국.’ 그뿐이다.

사내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입술에 힘을 주었다. 턱 밑으로 찰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유명한 ‘도끼 살인마’는 사실 도끼로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다. 대중과 매스컴을 사로잡는 압도적인 별칭은 시체 한가운데 도끼로 찍은 자국을 하나 남기는 그만의 무시무시한 표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재다능한 자신의 재주를 과시하듯, 시체의 사인은 항상 다른 것이었다. 질식사나 익사나 돌멩이로 머리를 쳐서 생긴 타박상이나 기도를 찌른 자상 따위의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탁자 위 도끼와 권총을 한 시야에 들였을 때, 과거 이곳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자가 연상된 것은 당연하다. 이번 사인으론 총상을 고른 거다. 여기 이 자리에서 그 엽기적인 연쇄 살인마가 막 복귀를 선언하려는 참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상처 없는 내 깨끗한 몸통에 새빨간 소방도끼가 박히는 모습을.

“아니.”

사내는 불안정한 음색으로 대답했다.

위협하거나 조롱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그러고 나서 재차 웃음지어 보였는데, 그것이 매우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살짝 목이 멘 소리가 덧붙었다.

“그렇게…… 야만스러운 행위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입술 끝이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듯 바르르 떨렸다.

이제 와 회상하면 참 간교한 술수다. 내 뇌리에 새겨 놓는 그 강렬한 표정이라니. 파렴치한 설계에 분노도, 원망도 모두 느낀다. 그러나 역시 표출하기에는 너무나 두렵다. 나는 사내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어느 누가 이 연출의 의도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 난 이 돌발 사고와 같은 대답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사내의 태도 변화가 너무 뜻밖이었다. 그의 표정은 무표정한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일그러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노력해서 웃는 척하고 있다고 해도 덜 무서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중인격 환자를 보는 것 같아 몹시 질렸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물며 연쇄 살인마가 아니라는 대답에 내가 마음을 놓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나는 겁에 질려 그냥 사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는 조바심이 난 듯 나를 재촉했다. 재차 권총을 흔들며 말했다.

“10개 남았어.”

짧은 침묵. 그리고 뒤이은 당혹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남은 질문의 개수를 말한 것이었다. 스무 개에서 열 개. 벌써 열 개의 질문을 소모해 버렸다. 무려 절반이 지난 거다. 이제 이 두 손에 달린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는 숫자밖에는 남지 않았다. 이것을 다 써 버리고도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이 사내의 손에 죽게 된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셈이다.

다시 귀가 닫히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낭비한 질문들이 생각났다. 경솔하게 뱉은 말이 살면서 그토록 후회스러운 적이 없었다. 바보 같은 질문들. 무엇을 바란 건가? 상대가 연쇄 살인마라는 걸 알게 되면, 대체 뭐가 달라지냐고? 나는 긴장한 나머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절로 쥐어진 주먹이 무의식중에 탁자 위로 올라왔다. 새끼손가락 쪽을 탁자에 나란히 착 붙이고 그것만 내려다보았다. 질문. 내 질문은 무엇을 위해서 던져져야 했던 것이지. 처음에 혼란에 빠졌던 생존 세포가 간신히 헤쳐 나온 길을, 나는 또 되짚어서 반복하고 있었다. 맞다. 문제 속 남자의 범행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질문해야 좋을까.

범행의 증명.

거기서 통찰의 빛줄기가 지나갔다.

그제야 나는 이 게임이 돌아가는 원리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현실의 반영이었다. 문제 속 빨간 등산점퍼를 입고 있는 범인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내다. 그리고 까딱하면 시체가 될 상대방이 나였다. 사내는 죽고 싶지 않으면 내게 남자의 범행을 증명해야 한다는 과제를 내 주었다. 범행의 증명이란 곧 산장, 즉 사건 현장에 남겨진 상황과 물질 증거를 토대로 완성된다. 그리고 나는 이 공간에 우리들이 남기게 될 흔적에 대해서 충분히 개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실시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사내의 꼬리가 밟힐 만한 단서를 이 방 안에 남기게 되면, 곧 그의 범행을 증명할 수 있는 꼴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사내는 날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 대신 약속대로 나를 무사히 보내줘야만 할 터였다.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게임이 아닐 수 없었다. 미치광이의 전유물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경외심에 가까운 두려움이 솟구쳤다. 이자는 대체? 이 게임의 발상은 도대체? 이자의 ‘내기’는, 이따위 만행을 내기 삼아 벌이는 모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살인마들의 사교회인가? 사내가 이 게임에서 의도하고자 한 바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야만스러운 행위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이자는 파괴적이고 야만스런 욕망을 그럴듯한 머리싸움으로 포장하여 ‘점잖게’ 해소하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