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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진철의 집으로 향한 황 계장과 인섭은 경찰들과 인파가 사라진 썰렁한 아파트 단지에 발을 찍었다.

 

바닥에서는 떼다 만 폴리스 라인 테이프가 뒹굴거렸다.

 

아파트 입구 옆에는 진철의 차가 서있었고, 창문 위에는 빗물과 뒤엉킨 먼지가 소복히 쌓여 있었다.

 

윗쪽 층계를 올려다보던 인섭은 자신의 팔을 쿡쿡 찔러대는 느낌에 고개를 내렸다.

 

“안갈거냐?”

 

황 계장은 물고있던 담배 필터를 옆으로 튕겨버리고 말했다.

 

인섭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빨리… 빨리 챙기자 빨리…”

 

황 계장은 입고 있던 양복 자켓을 바투 고쳐입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곰팡이와 녹이 잔뜩 슬어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4층으로 올라 온 인섭과 황 계장의 앞에는 팔짱을 낀 사람이 있었다. 몸뻬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남성은 코를 파내어 통로 바깥으로 튕겼다.

 

“시청에서 오신거 맞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네.”

 

황 계장이 인섭의 어깨를 툭 치자, 인섭은 안주머니에서 수습 관련 서류를 내밀었다.

 

종이를 받아든 남성은 알겠다는 듯 눈썹을 으쓱거렸다. 복도 쪽을 가리킨 그는 종이를 대충 구겨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403호요.”

 

손가락 끝을 따라 복도를 보니 문이 살짝 열린 집이 있었다.

 

인섭과 황 계장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곤 진철의 집이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시트지와 암막 커튼을 아직 치우지 못해 햇빛은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고, 퀘퀘한 냄새까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휴… 이런데서…”

 

황 계장은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며 불을 켰다. 형광등 불빛이 비추자마자, 공중에는 작은 먼지 덩어리들이 떠다니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뿌연 먼지가 날아다니는 방 중간중간에는 여전히 제대로 닦지 못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인섭은 손전등으로 방안을 훑고 다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황 계장은 창가로 가서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방안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며 희미하게 남은 시체 썩은 냄새가 날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방안에는 집기들도 몇 안남아 있었다.

 

싱크대에는 냄비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파리만 꼬였고, 거실로 보이는 공간에는 티비조차 없었다.

 

진철이 있던 방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보니, 방 안에는 가구조차 몇 남아있지 않았다.

 

벽에 달린 붙박이 옷장과 침대 하나, 그리고 서랍장 하나가 전부였다.

 

컴퓨터 책상 위는 언제 정리 됐는지, 모니터와 본체를 뒀던 흔적만 남아있었다.

 

인섭은 쌓여있는 먼지를 손으로 쓰윽 쓸어냈다. 손에 회색으로 묻어나는 덩어리는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참…”

 

인섭의 뒤를 따라 들어온 황 계장은 방안을 둘러보고 탄식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메고 있던 가방을 침대위에 내려둔 그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멍하니 서랍장만 바라봤다.

 

“얘 왜이리 뭐가… 없이 사냐…”

 

황 계장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내 밑에 있는 놈이 이렇게 사는데 제대로 둘러 보지도 못하고… 참…”

 

그는 서랍장의 가장 윗칸을 열었다. 안에는 팬티와 양말 몇개, 무지티만 몇장 놓여 있었다.

 

한숨을 쉰 황 계장은 가방으로 옷들을 말아서는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남아있는 옷가지들도 몇가지 되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서랍을 쭉 열어갔지만, 가방은 빵빵하게 차지 않았다.

 

그나마 두께가 있는 옷이 청바지였지만, 그마저도 돌돌 말아 눌러넣으니 가방안의 공간은 아직 널널해보였다.

 

컴퓨터 책상으로 걸음을 옮긴 황 계장은 가장 윗쪽 서랍을 열었다. 서랍장의 가장 안쪽에는 차키가 있었다.

 

“야, 인섭아.”

 

옷장 안쪽을 둘러보던 인섭이 고개를 돌렸다. 황 계장은 인섭쪽으로 열쇠를 던져줬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섭의 손에 휘감긴 열쇠는 녹이 살짝 슬어 있었다.

 

“혹시 가서 챙겨올거 있으면 좀 챙겨와라.”

 

“차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어떡하긴… 상속이고 뭐고 받을 사람 없다고 했으니까… 폐차하든 해야지…”

 

황 계장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책상 서랍을 비우고는 옷장쪽으로 옮겨갔다.

 

옷장에도 옷이 몇 안보였다. 겨울용 코트 하나와 양복 한벌, 그리고 잔뜩 구겨진 대응팀 제복 두벌이 있었다.

 

인섭은 옷걸이에 걸린 옷을 하나씩 내리는 황 계장을 확인하곤 집 바깥으로 나섰다.

 

하늘은 흐렸다. 비가 당장 내릴 두껍고 짙은 먹구름은 아니었지만, 햇빛을 가리기엔 충분했다.

 

밝은 햇빛이 내리쬐지 않는 성진시의 모습은 케케묵은 방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진철의 차로 향한 인섭은 망설임없이 차 문을 열었다.

 

모닝 문을 여니, 상쾌한 이름과는 다른 찌든 담배냄새가 풍겼다.

 

차 안에도 남아있는 집기들이 많지는 않았다.

 

유틸리티 박스 안에는 라이터 몇개와 비우지 않은 재떨이가 있었을 뿐, 여타할 장식품들은 없었다.

 

인섭은 트렁크로 조심스레 발길을 옮겼다. 잠금을 풀고 트렁크를 여니, 안쪽에서는 인섭의 차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썩은 피냄새가 풍겨왔다.

 

옆에 덩그러니 놓인 쇼핑백을 집어든 인섭은 아무렇게나 던져둔 제복을 구겨담았다. 제복은 갓 꺼내 입었는지, 옅은 세제 냄새가 났다.

 

윗옷을 담고 바지까지 말아서 넣으려던 인섭의 손에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다시 바지를 펴 주머니쪽을 살펴보니, 주머니 부분이 작은 막대 모양으로 불룩 튀어나와있었다.

 

조심스레 주머니로 손을 넣어본 인섭은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목덜미에서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원통의 끝에 굉장히 좁은 관 모양의 무언가가 있었고, 반대쪽 끝에는 박스의 날개처럼 작은 날개가 달려있었다.

 

날개의 위쪽으로 수리검 같은 날이 이어진 끝에 또다른 동그란 뚜껑이 느껴졌다.

 

조심스레 원통을 잡고 손을 빼낸 인섭은 손을 덜덜 떨었다.

 

바늘쪽에 뚜껑이 달려 찔리지 않게 처리 한 주사기가 지퍼락 봉지에 쌓여 있었고, 주사기 안에는 검붉은 액체가 들어차 찰랑거렸다.

 

주사기 속의 액체는 점성이 있는 지, 안에서 묽은 슬라임처럼 흔들거렸다.

 

열린 트렁크에 털썩 주저앉은 인섭은 하늘만 바라봤다.

 

보건소에서 채취한 것으로 보이는 혈액은 진철의 팔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언제 주사했는지 알수도 없었다. 인섭은 눈을 감고는 진철의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던 때를 떠올렸다.

 

머리가 지끈거려 손을 올린 그는 손으로 눈을 지그시 눌렀다.

 

만식과 비슷한 운명의 길을 걸은 진철이 원망스럽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다.

 

‘문을 강제로 열고 진철의 손을 잡아 끌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리속을 스쳤다.

 

만약 황 계장이 주사기를 본다면, 기겁을 할 것 같았다.

 

“야, 윤인섭. 뭐해?”

 

가방과 옷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온 황 계장이 소리쳤다.

 

“아, 여기있습니다.”

 

인섭은 황급히 주머니에 주사기를 집어넣고는 트렁크 문을 닫았다.

 

차를 스윽 훑어보고는 인섭의 옆으로 온 황 계장은 인섭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 봉투를 발견했다.

 

“그거밖에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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