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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인섭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의 티셔츠는 식은 땀에 젖어 있었고, 숨을 몰아쉬며 심장 언저리를 쥐어뜯었다.

 

목 언저리를 더듬으며 상처가 없는 것을 확인 한 그는 다시 침대로 몸을 누였다.

 

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한 인섭은 그대로 눈을 감고는 폰을 던져버렸다.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섭은 팔을 조심스레 들어 눈 언저리에 얹었다. 묵직한 느낌이 그의 머리를 울려대는 총성을 눌러놓는 것 같았다.

 

이미 해가 떠올라 창문 틈으로 불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집 창문에는 시트지들이 꼼꼼하게 도배되어 빛 하나 새어들어오지 않았다. 가끔 문을 열어 곰팡이 냄새만 적당히 날렸던 인섭은 지금에서야 굳게 닫힌 창문을 열었다.

 

바깥에서는 더운 바람이 불어왔고, 눅눅하고 끈적한 공기가 인섭의 몸을 휘감았다.

 

그때, 인섭의 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렸다. 폰을 확인한 그는 넋을 놓고는 앉아만 있었다.

 

진동이 한번 더 울리고, 그의 핸드폰 화면에는 황 계장의 메세지가 떠올랐다.

 

[오늘 영결식. 제복 입고 와라.]

 

인섭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욱신거리는 어깨를 주무르며 일어난 인섭은 멍하니 화장실로 향했다.

 

물때가 가득 낀 거울에 떠오른 인섭의 얼굴은 어두웠다. 콧망울 언저리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반쯤 감긴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던 인섭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한쪽 입꼬리만 슬쩍 올린 그는 찬물을 틀어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있던 기름때들이 씻겨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이나마 제정신을 잡은 인섭은 면도기를 집어들었다.

 

불규칙하게 자란 수염들을 한번 쓰다듬은 인섭은, 면도 젤 거품을 듬뿍 묻혀 수염을 깎아 내려갔다.

 

떠나는 사람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조금도 보여주기 싫었던 듯, 인섭은 힘이 빠져 약하게 떨리는 손을 꽉 부여잡고는 천천히 면도를 해나갔다. 면도 거품이 면도기 날에 밀려 사라질 때마다, 거뭇거렸던 턱이 말끔해졌다.

 

거품이 조금씩 사라져가며 인섭의 손떨림은 심해졌다. 수명이 거의 다 해 희미한 불빛을 비추는 형광등 불 아래, 인섭은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깜빡거리는 불빛 아래, 인섭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세면대를 붙잡고 눈물을 터트리던 그는 그대로 화장실에 주저앉아 소리없이 울부짖었다.

 

 

 

 

 

 

 

문이 굳게 닫힌 강당 안에는 훌쩍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강당 좌석들에 도열 해 있었고, 좌석의 불은 모두 꺼진 채였다.

 

백색 조명을 켜둔 무대 위에는 큰 사진 두개가 놓여 있었다.

 

크게 인화된 진철과 만식의 사진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조명 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사진속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꽃에 둘러쌓여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들의 머릿가에는 검은띠가 두갈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국장님의 추도사가 있겠습니다.”

 

연단에 서있던 남성은 두어걸음 뒤로 물러났다. 빈 자리에 전 국장이 종이를 가져와 섰다.

 

“크흠… 크흠…”

 

마이크 대를 움직여 자신의 입 앞으로 가져온 전 국장은 목을 몇번 가다듬었다.

 

헛기침을 하며 목을 정리한 그는 가져온 종이를 연단에 내려뒀다.

 

“우리는 오늘 단순히 우리의 동료를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등을 맞대고 버텨나가던 또다른 하나의 버팀목을 잃은 것입니다. 박진철 주사와 한만식 주사는…”

 

손을 모으고 서있던 인섭은 부어오른 눈이 욱신거려 살짝 눈을 비볐다.

 

대응팀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던 인섭은 행여나 또 눈물이 나올새라 모자를 더욱 눌러 썼다.

 

인섭의 옆에 서있던 황 계장은 강당 천장으로 고개를 살짝 들었다.

 

“나흘만에… 시청장 치뤄주네… 나흘만에…”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랫 입술이 잘게 떨려오는 걸 느꼈는지, 황 계장은 팔로 눈물을 살짝 닦았다.

 

“내가 양복입을 일 없게 만들라고 했잖냐… 내가…”

 

진철의 영정사진을 보던 그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는 나지막히 읊조렸다.

 

그의 옆에 서있던 인섭은 옅은 숨만 내쉬고 있었다. 마이크의 리버브에 울리는 전 국장의 목소리는 인섭의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소음만 만들어냈다. 인섭은 멍하니 귀를 닫고는 진철의 영정사진만 바라봤다.

 

한번도 진철이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술을 마시고 서로 회포를 풀때 바라봤던 얼굴이라도 웃었으면 했지만, 언제나 그는 무표정했다.

 

늘 그에게 조금이라도 웃으라는 말을 내뱉고 싶으면서도, 당장 인섭 스스로가 웃지 못하고 얼굴을 굳히고만 있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괜찮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살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고 하루만 더 아침에 눈을 떴었으면 하는 마음만 들었다.

 

그렇기에 더 얼굴을 굳히지 않고 마음을 풀고 일을 하고 싶었다. 인섭도 진철도 긴 시간동안 같은 마음만 가졌다.

 

하지만 달리고 달린 끝에 온 종착점에는 진철의 영정사진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지못했던 환한 얼굴을 마지막에 다다라서 바라보고 있었다. 인섭은 다시 모자를 푹 눌러썼다.

 

코끝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울분과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늘어난 모난 돌덩이들을 참으려 주먹을 꾹 쥐었다. 웅웅대는 마이크 소리에 귀를 닫고 이를 악물었다.

 

인섭은 심호흡을 두어번 하고는 간신히 눈물 기운을 떨쳐냈다.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전 국장은 이미 연단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연단으로 걸어가서 헌화를 하고 있었다.

 

“뭐하냐 인섭아. 갔다오자.”

 

황 계장이 인섭을 잡아끌었다. 막 정신을 차렸던 인섭은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 인형처럼 끌려 내려와 무대 옆 계단에 섰다.

 

점점 진철에게 가까워 지고 있었다. 웃고있는 진철의 사진 앞으로 한발짝 한발짝씩 걸어갈 때마다, 진철이 남겼던 마지막 말들이 인섭의 귓가에서 멤돌기만 했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팔찌가 낭비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 한마디, 진철이 울부짖으며 했던 한마디들이 인섭의 머리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황 계장에게 이끌려 무대 가운데 선 인섭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진철은 그의 앞에서 웃고 있었다.

 

정모를 쓰고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는 진철의 눈을 보던 인섭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인섭의 어깨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애써 참으려고 눌러뒀던 모든 것들이 터져 나온 듯, 그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서는 꾸욱 입을 눌렀다.

 

또다시 비명이 새어나올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더 숨막히는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인섭을 옆에서 보고 있던 황 계장은 인섭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괜찮다… 괜찮아…”

 

황 계장은 어깨를 두번 툭툭 두드려 주고는 먼저 국화꽃을 내려놨다.

 

“미안하다… 진철아…”

 

그의 뺨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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