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코끼리 비사

  • 장르: 역사, 일반
  • 분량: 5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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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코끼리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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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4년 5월 3일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順天府) 장도(獐島)에 방목(放牧)하는데, 수초(水草)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瘦瘠)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하니, 임금이 듣고서 불쌍히 여겼던 까닭에 육지에 내보내어 처음과 같이 기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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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노 만돌(萬乭)이는 골이 나 있었다. 그는 사람인데 오히려 짐승에 불과한 코끼리에 구속되어 있었다. 임금인 태종이 그를 이 코끼리 관리에 배속하여, 그는 졸지에 코끼리 사육사 비슷한 신분이 되어 버렸다.

 

만돌이는 높은 파도에 배가 흔들려, 멀미를 하여 배 안에다 토를 해대는 순상(順象)이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순한 코끼리, 순상이라니, 누구냐, 이름도 잘 지었네, 빌어먹을.

 

만돌이는 손을 뻗어 순상이의 귀 안쪽을 쓰다듬었다.

 

지금 봐도 장대하였다. 이 동물은. 다리는 커다란 굴피나무의 그루터기만하고, 귀는 공작선(孔雀扇)마냥 느긋하고 우아하게 펄럭였다. 몸통은 자기가 본 어떤 수레보다도 넓고 높았다. 그리고 그 코! 마치 두툼한 능구렁이처럼 조용히, 능숙하고 날렵하게 움직이는 저 코를 볼 때마다 만돌이는 입 안에서 경탄의 한숨을 공글렀다.

 

‘하아, 코끼리는 코가 손이로구나.’

 

어찌 하였든, 이 코끼리는 지금 다시 뭍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코끼리는 다음과 같은 사정으로 유배되어 왔다. 때는 태종 1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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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1년 2월 22일

 

일본 국왕(日本國王) 원의지(源義持)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쳤으니, 코끼리는 우리 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명하여 이것을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5두(斗)씩을 소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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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 국왕도 저 남쪽의 섬라(暹羅 ; 태국)에서 선물로 이 순상이를 받은 것이다. 이 코끼리는 엄청나게 콩을 먹어댔다. 일본왕은 실권이 없었고, 다이묘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니 날마다 다섯 말씩 콩을 처먹어대는 이 순상이가 달가울 리 없었다. 일본왕은 골치를 앓았다.

 

그가 자신의 후궁과 합방하는 날이었다. 후궁이 왕의 요대를 끄르고 있었다. 뭔가가 잘못됐는지 요대가 잘 안 벗겨졌다. 왕은 푸념을 했다.

 

“아우! 정말 짜증나네. 그래도 일국의 국왕인데, 코끼리한테 쓰느라고 요대 하나 갈지 못하고 있다니!”

 

후궁은 그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나직이 읊조렸다.

 

“도노사마[전하], 코끼리는 아무데도 쓸데가 없고, 또 섬라의 선물이니 함부로 죽일 수도 없으니, 우리도 저 이웃나라 조선에 선물로 바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러면 왕실 재산을 축낼 일도 없고, 이웃나라에 선심 쓰는 척할 수 있으니 오죽 좋겠사옵니까.”

 

왕은 무릎을 쳤다. 그렇게 하여 순상이가 조선에 오게 된 것이다.

 

조선왕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수많은 궁녀들, 무수리와 관노들이 후원에 모여들었다. 코끼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 무수리가 이야기했다.

 

“아휴, 뭐 저렇게 커다랗고 망측한 생물이 다 있담!”

 

그러나 망측한 건 인간이 더했다. 남자 노비들이 무수리들한테 대놓고 소리쳤다.

 

“와! 저거 봐 저거, 저렇게 큰 물건 본 적이 있나? 아, 기미상궁, 자네는 수라상 말고 저런 것도 맛본 적이 있나?”

 

하여튼, 순상이는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후궁들도 호기심에 못 이겨 코끼리를 보러갔고, 그건 신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법석으로 인해, 순상이는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제 발정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순상이는 날카로워졌다. 그때, 한 인물이 코끼리를 구경하러 왔다. 그는 전 공조전서 이우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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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2년 12월 10일

 

전 공조 전서(工曹典書) 이우(李瑀)가 죽었다. 처음에 일본 국왕(日本國王)이 사신을 보내어 순상(順象)을 바치므로 3군부(三軍府)에서 기르도록 명했다.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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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는 공조에 근무한 전력이 있었다. 거칠고 남에게 뻐기기를 좋아하는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에 어깨가 좀 으쓱해졌다. 그는 이 무리들에게 자신의 대담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울타리를 넘어 코끼리 우리로 들어갔다.

 

“어허, 그놈, 참 추하다.”

 

동료들이 그를 부추겼다.

 

“어이, 거 저놈을 좀 놀려 보시구랴!”

 

이우는 관중을 쳐다보며 가슴을 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긴 곰방대를 꺼내들었다.

 

이우는 성큼성큼 코끼리를 향해 걸어갔다. 순상이는 눈을 한두 번 껌벅껌벅하고,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순상이의 코는 머리의 회전에 맞추어 커다랗게 8자를 그렸다. 전형적인 코끼리의 위협 자세였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이우는 오금이 저렸다. 그러나 뒤에서 깔깔 웃으며 부추기는 관중들 때문에, 그는 다시 꼿꼿이 허리를 펴고 뻐기듯이 가슴을 폈다. 그는 팔자걸음으로 천천히 순상이에게 다가갔다. 그는 슬쩍 순상이의 옆으로 돌아갔다. 코끼리는 순간 몸을 틀었다. 그가 자신의 사각지대로 들어서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끼리는 이우가 다시 자신의 시야에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그가 재빨리 자신의 왼쪽 눈이 있는 방향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상이는 갑자기 자신의 눈이 끈적끈적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우가 그의 왼쪽 눈에 침을 뱉었기 때문이다. 순상이가 몸을 틀어 이우의 정면에 섰다. 그러자 이우는, 곰방대로 순상이의 코를 내리쳤다.

 

“에이, 이 추물아! 어디서 한갓 미물 녀석이 건방지게!”

 

관중이 환호를 질렀다. 이우는 뒤돌아서서 곰방대를 높이 쳐들고 말했다.

 

“어이, 여보시오들! 이게 뭐라고 겁을 먹는답니까? 지깟 놈이 그래봤자 미물 아니겠소!”

 

이우는 그의 손에서 곰방대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또각! 하는 소리가 났다. 이우는 뒤를 돌아봤다. 코끼리 순상이가, 바다거북이 껍질로 만든 자신의 소중한 곰방대를 단번에 코로 꺾어 버린 것이다. 순상이는 곰방대를 관중 쪽으로 집어 던졌다. 관중들은 비명을 질렀다.

 

이제 발정기 스트레스로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지구 최대 육상동물의 공격을 당해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우는 순상의 발에 짓밟혔다. 그날, 사람들은 ‘이우’의 흔적들을 하루 종일 통에 쓸어 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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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3년 11월 5일

 

병조 판서 유정현(柳廷顯)이 진언(進言)하였다.

 

“일본 나라에서 바친바,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玩好)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두 사람을 다쳤는데,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사람을 죽인 것은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일 년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백 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周公)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故事)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소서.”

 

임금이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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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피곤하였다. 임금은 인간에 대한 환멸로 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개국공신인 정도전을 비롯하여, 형제, 외척의 숙청을 단행한지 오래였다. 임금은 인간 불신감에 절어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각, 태종은 신하들로부터 코끼리 순상이가 전 공조전서 이우를 밟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종은 시큰둥했다.

 

“결국, 전 공조전서 이우가 코끼리를 도발했다는 것 아니겠소.”

 

병조판서 유정현이 머리를 조아리며 이야기했다.

 

“그렇습니다. 이 코끼리가 언제 또 인간을 해할지 모릅니다. 원컨대 코끼리를 안사(安死)시키시옵소서.”

 

태종은 병조판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경멸스러운 인간 같으니.

 

“병조판서에게 묻겠소. 일본국왕이, 그 코끼리를 짐에게 보냈소, 이우에게 보냈소?”

 

머리를 바닥에 처박은 병조판서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당연히 코끼리 순상은 전하에 속하는 것이옵니다.”

 

태종은 무릎을 만졌다. 태종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소. 코끼리는 짐에게 속하는 것이오. 그러니 곧 짐의 화신이오. 이우는 코끼리에게 침을 뱉었지만, 곧 짐에게 침을 뱉는 것과 다름없소. 그러니 이우는 밟혀죽는 게 당연하오. 어떻소이까. 병조판서 영감.”

 

병조판서 유정현은, 엎드린 자신의 뒤통수에 꽂히는 임금의 시선을 느꼈다. 이럴 수가, 이 세치 혀 때문에 죽게 생겼구나. 그는 자신의 뇌 속에 입력된 고전들을 재빨리 뒤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배워온 고전 중에, 이 상황에 맞는 문구, 그리고 재치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랐다.

 

이런 위급 상황이 그의 머리 회전을 매우 빠르게 만들었다. 그는 알맞은 고전을 생각해 냈다.

 

“주상 전하, 옛 중국 고사에서 주공(周公)이 코끼리를 몰아낸 사례가 있습니다. 전하께서 코끼리에 용서를 베푼 것을 백성들이 알면 그 큰 은덕에 감화를 받을 것이옵니다. 순상을 저 남쪽의 떨어진 해도로 귀양 보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임금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네가 살 길을 그렇게 찾았구나. 어허, 그것 참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로다. 한낱 미물을 귀양 보낸다니, 참 그럴듯하기도 하지.’

 

임금은 자신의 서슬 퍼런 기운에 유정현이 완벽히 엎드린 것을 알았다. 임금은, 그래,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공께서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찌 공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 허허, 참으로 묘안이오. 고사를 빌어 한낱 짐승을 몰아낸다니 말이오. 여봐라! 공의 말대로 코끼리를 전라남도의 장도(獐島)로 유배 보내도록 하라. 사복시에서 동물을 잘 다루는 노비 하나를 차출하여 코끼리가 자연의 숨을 다할 때까지 돌보도록 하라. 명심하라. 이 코끼리는 짐에 속한 것으로, 곧 짐에게 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하느니라.”

 

모든 신료들이 엎드려 왕의 명을 받들었다.

 

 

 

그렇게 순상이는 장도에 유배되었다. 공노 만돌이는 이 순상이와 함께 고향을 떠나 이 먼 곳까지 왔다. 만돌이는 순상이가 미웠다. 만돌이는 가끔 순상이의 발을 차기도 했다. 그러면 순상이는 그저 눈만 꿈벅꿈벅하였다.

 

“하아, 참 넌 이렇게 순하기만 한데… 네가 사람을 죽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구나. 그런데 이것도 결국은 풀인데 왜 그렇게 먹지를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