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 장르: 일반
  • 분량: 60매
  • 소개: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나와 주변인물들의 이야기 더보기

식물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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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니 밝은 조명이 비치는 하얀 천장이 보였다. 누워 있는 것으로 보나, 보이는 풍경으로 보나 나는 병원에 있는 듯 하다.

 

이상한 점이라면 손가락 하나를 포함해서 몸 전체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기억을 되짚어본다. 분명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신호는 정확히 지켰다. 서두르느라 양 옆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리자 자동차가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 뒤엔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내 몸이 붕 뜨고, 등뼈가 아스러지는 고통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느껴졌다.

 

‘난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는 건가.’

 

자동차에 맨몸으로 치인 것이니 당장은 못 움직인다 해도 이상할 게 없긴 하겠지. 오히려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할 상황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사했다.

 

 

 

눈을 뜨고 한참을 있었으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누군가 있긴커녕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함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 뒤로 한참을 더 있었더니 흰 가운을 입고 안경을 낀 사람이 다가와 말도 없이 내 양쪽 눈에 작은 손전등을 갖다 대더니 그대로 아무 말도 없이 나갔다.

 

나는 그에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지금 뭘 하는 것인지 등을 물으려 했으나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난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도 알지 못한 채 한참을 있다가 피곤함이 몰려와 잠에 들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 정신을 차리니 내 눈에 전등을 댔던 의사와 가족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대체 무슨 일이에요? 동생아, 여기 좀 봐!’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식물인간이 됐단 말인가요?”

 

아빠가 말했다.

 

“의학적으로 구분하자면 조금 다릅니다만 세간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의사가 말했다.

 

“식물인간이란 소리잖아요! 아이고…….”

 

엄마가 흐느끼며 말했다.

 

“그래서 깨어날 가능성은 있는 건가요?”

 

아빠가 엄마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기적적인 확률로 깨어난 사례도 있긴 합니다만 현실적으론…….”

 

의사가 머뭇거렸다.

 

“알겠습니다.”

 

아빠는 흐느끼는 엄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동생은 나를 힐끗 보더니 밖으로 따라나갔다.

 

‘내가 식물인간이라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 단어를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애써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젠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앞으로 평생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이는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더 끔찍한 것은 내가 의식조차 없다고 생각하는지 나를 앞에 두고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왜 엄마가 울고 그래. 진짜로 울고 싶은 건 나라고.’

 

자신이 그런 존재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니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터인데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그저 숨만 쉬고 있는 것을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식물처럼 고정돼서 살아만 있는 것을 정녕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얼마나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도 잊은 채 그저 살아만 있는 상태다. 어느 날, 침대를 끌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간호사로 보이는 여성이 나를 진찰하더니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두 분을 간호하게 되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께요.”

 

‘두 분이라니? 나 말고도 누가 온 건가?’

 

“아, 소개가 늦었네요. 보이시진 않겠지만 옆자리에 같은 환자분께서 오셨어요. 물론 지금은 두 분 다 움직일 수 없고, 많이 힘드시겠지만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 서로 힘내도록 하죠.”

 

간호사는 웃으며 말했다.

 

‘나 말고도 식물인간이 들어온 건가.’

 

서로 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이유도 모르게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동류의식을 느꼈다.

 

“그럼 다음에 봬요.”

 

간호사는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의식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나에게 저렇게 말을 걸어준 것은 솔직히 기뻤지만, 저것도 오래 가지 않을 테지. 식물은 키우고, 자라는 걸 바라보는 맛이라도 있지 누가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이는 식물인간이 귀엽다고 언제까지고 말을 걸어주겠는가…….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져 필요한 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나갈 게 뻔하다.

 

하지만 금방 그만두리라 생각했던 간호사는 매일같이 오늘은 상태가 괜찮은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물어보며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다느니 질리지도 않고 즐겁게 말하는 것이었다.

 

약간의 희망도 없는 상황이라는 건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간호사를 보며 아직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보이진 않지만 바로 옆에 나와 같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조금이라도 힘을 내자.’

 

하지만 식물인간이란 것은 몸의 자유뿐만 아닌, 이런 새싹처럼 피어난 작은 희망조차 천천히, 그러나 철저하게 부숴버리는 것이었다.

 

 

 

하루는 내 연인이 찾아왔다. 내 첫사랑인 그녀와는 오래 사귄 사이로 같이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가는 등 연인다운 일도 많이 했고, 최근에는 사이도 많이 깊어져 약혼도 한 상태다.

 

그런 그녀가 언제나 보이던 미소와는 달리 험악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았다.

 

“오랜만이네. 들었어. 식물인간이 됐다면서?”

 

그녀는 슬프게 말했다.

 

“눈물 나게 슬프네. 날 신데렐라로 만들어줄 왕자님이 이 꼴이라니. 그거 알아? 난 널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어. 아니, 널 사랑하긴 했지. 네가 가진 돈을 말야. 너희 가족은 그런대로 부자였으니까, 난 그 돈을 보고 접근한 거야. 딱 보기에 연애경험도 없어 보이는 도련님인 만큼 속이는 건 일도 아니었지. 네가 날 사랑하듯이 나도 널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겠지? 그런 동화 같은 얘기가 현실에 있을까 보냐. ‘그리고 모두 행복했습니다’따윈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긴, 그 점에서 보면 나도 끝내 해피엔딩을 보지 못하는 비극의 여주인공이겠네. 날 행복한 인생으로 이끌어주리라 믿었던 돈다발을 든 왕자님이 이 꼴이니.”

 

그녀는 약혼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며 말했다.

 

“아직 약혼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관계를 정리한다 해도 내게 뭐라 할 사람 따윈 아무도 없겠지. 오히려 비극의 여주인공의 애절함에 너 이상으로 부자인 멍청이가 굴러들어올지도 모르겠네. 그럼 안녕. 이용가치가 없어진 널 다시 볼 일은 없을 거야.”

 

그녀는 평소엔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약혼반지를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며 나갔다.

 

‘이게 뭐야.’

 

가슴이 타는듯했다. 이런 일방적인 이별 통보가, 이런 잔혹한 고백이 어디 있냔 말이다.

 

‘대체 이게 뭐냐고!’

 

식물인간은 내 몸의 자유뿐만 아니라 내 모든 것을 서서히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하루는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은 이런 사람이라면서 명함을 꺼내 보였다. 아무래도 정치가인 모양이다.

 

“실례. 볼 수가 없는 상황이실 텐데. 습관적으로.”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반대편에 있는 카메라를 든 사람에게도 명함을 건넸다. 기자인 듯하다.

 

명함을 건넨 사람은 한참 동안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난 것에 정말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느니 온갖 현혹되는 말만 하더니 기자를 돌려보냈다.

 

그는 그제서야 편하게 의자에 늘어지더니

 

“뭐, 요점은 내가 널 이 꼴로 만든 사람이란 말이지.”

 

그제서야 본심을 들어내는 것이었다.

 

“시체나 다름없는 식물인간 따위한테 내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니, 정말 기분 나쁘군. 나 참 사람 죽인 것도 아닌데 일부러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운전자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병원 내에선 금연이라지만 그것도 사람이 볼 때 얘기지.”

 

운전자는 그렇게 말하며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나는 사람도 아니란 소리군.’

 

“그 날은 가볍게 술 좀 마시고 돌아가는 길이었지. 살짝 취했었다고? 정말 살짝 취했을 뿐이었어. 꽤나 기분 좋은 상태로 운전하고 있던 지라 신호가 바뀐 것도 몰랐지. 그런데 갑자기 쾅, 하고 소리가 났지. 그대로 지나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로 한복판에서 사람을 쳤는데 안 들킬 확률이 더 적고, 뺑소니 친 걸 들키면 내 정치생활은 끝장이니까 말야. 다소 손해를 감수하기로 하고 구급차도 부르고 현장에서 목청껏 울부짖기까지 했지. ‘제발, 제발 이 사람을 살려주세요.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너도 내 명연기를 봤어야 했는데 말야. 하지만 결과는 식물인간. 이렇게 병원까지 찾아와서 의미도 없는 병문안에 시체 같은 놈 상대로 머리 숙이고 위로의 말씀까지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날 비난하겠지. 정말 슬픈 일이야. 내 고생도 몰라주고 말이지.”

 

운전자는 정말로 슬프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을 망쳐놓은 건 아무래도 좋고, 네 정치생활에 흠집이 난 게 문제란 말이냐? 내게 한 위로도 다 거짓부렁이고. 게다가 고생이라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진짜 고생을 네가 알기나 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 나도 참, 혼잣말로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다니. 우리 집 화단에 있는 식물이랑 대화한 셈 쳐둘까.”

 

운전자는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머리에 피가 쏠리는 기분이었다. 저 작자는 분명 사람을 죽여놓고도 그렇게 말하리라. 오직 자신의 보신만이 목적인 쓰레기 같으니. 하물며 날 앞에 두고 날 이런 꼴로 만든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다니, 화가 나는 것을 넘어 소름이 끼치는 정도였다. 저게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어느 날, 가족들이 병실을 찾아와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반가웠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니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날 위해 한 고민이 아니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죠?”

 

엄마가 말했다.

 

‘이거라니, 난 물건이 아니야!’

 

당연히 내 말이 들릴 리는 없고, 눈 앞에 있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얘기는 계속되었다.

 

“확실히 처치곤란이긴 하지. 사람 하나 살려놓기만 하는 데 이렇게 돈이 들 줄 누가 알았겠나…….”

 

아빠는 애물단지를 바라보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지 그래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진데. 딱히 우리가 죽이는 것도 아니잖아요.”

 

동생이 말했다.

 

“말을 삼가렴. 하지만 확실히 부담되긴 해. 얘는 살려주느라 하는 우리 고생도 모르고 죽음 같은 긴 잠에 빠져 있겠지.”

 

아빠가 말했다.

 

‘난 의식이 있어. 멀쩡히 살아있다고!’

 

“보험금 같은 건 어떻게 됐어요? 좀 탈 수 있었어요?”

 

엄마가 말했다.

 

“애한테 벌써 보험 들어놨을 리가 없잖아. 의료비라도 좀 줄일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

 

아빠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더 있어봤자 우울해질 뿐이겠네요. 이만 가죠.”

 

엄마가 아빠를 이끌며 나갔다.

 

“차라리 죽었으면.”

 

동생은 작게 말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저렇게 말할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한다. 날 살려두기 위해 고생하고 있단 것도, 내가 반응 하나 하지 못하는 식물 같아서 답답하다는 심정도 이해한다.

 

부모님도 말하진 않았지만 분명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심정이었을 테지.

 

하지만 내 앞에서 말할 것은 없잖은가! 난 이렇게 의식도 있고, 멀쩡히 살아있단 말이다. 비록 움직이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게 웃지도, 눈물 흘리지도 못하지만 감정이 사라진 로봇이 됐다거나 그저 살아만 있는 식물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어느 누구보다 가장 움직이고 싶고, 이 상황에 가장 슬퍼하고 화나고 있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이 답답함에서 탈출하고 싶단 말이다.

 

그런데 무덤 앞에서도 하지 않을 말을, 하물며 남들도 아니고 가족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냔 말이다…….

 

안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몸으로 죽을 때까지 꼼짝 못하는 식물 같은 인간을 끝이 보이지 않는 죽음까지 살려야 한다는 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힘들고, 부담되겠지. 아니, 오히려 가족이니까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머리론 이해할 수 있어도 마음에 상처 입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가슴이 찢어지는듯했다.

 

나도 할 수 있다면 죽고 싶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