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라를 위하여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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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Tue. D-17. 신제중학교 B동 3층 자습실에서 쓴다.

나는 존나 힘들다.’

등 뒤에서 팔이 쑥 튀어나와 다이어리를 낚아챘다. 뒤를 돌아보니 자습 감독이다. 안경 쓰고 키가 작은 아저씨다. 애들 말론 고시생이랜다. 공부 안 하는 애들은 자습실에서 내보내겠다고 30㎝ 자로 책상 칸막이를 탁, 탁, 치며 감시한답시고 돌아다니는데, 자습 분위기를 제일 방해하는 새끼가 본인인 줄도 모른다.

자습 감독이 내 다이어리를 쥐고 뚫어지라 쳐다본다. 당황스럽다. 썅…. 남의 일기를 왜 읽어, 변태 새끼가. ‘나는 존나 힘들다’라고 딱 한 줄 썼는데 존나 오래 쳐다보고 있다. 자습 감독은 자습실에서 공부 말고 딴짓하면 벌점을 준다. 처음으로 벌점을 받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자습 감독은 화를 내지 않았다. 안경알 너머의 눈알 한 쌍이 다이어리를 보다 말고 나를 보았다.

자습 감독이 웃었다.

다이어리를 돌려준 자습 감독이 천천히 멀어져간다. 탁, 탁, 하고 책상 칸막이를 치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다이어리를 덮었다. 자습 감독은 나에게 벌점을 주지 않았다. 자습 감독은 그냥 웃었을 뿐이다.

무섭다.

집에 돌아와 자습실을 그만 두겠다고 했다. 파를 다듬고 있던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럼 너 시험 공부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도서관에서 할 거야.”

안방에서 아빠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언짢다는 표시이다. 안에서 듣지 말고 밖에서 의견을 내고 싸우든가 말든가 하면 될 것을, 짜증나는 수작이었다.

엄마가 혀를 찼다.

“잘 해. 학원비 낸 거 다 쓸데없게 만들지 말고.”

마치 학원비보다 자길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단 말투이다. 엄마는 내 인생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딸년이라는 것처럼 말했다.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면 아빠는 헛기침을 했다. 그건 동조의 의미였다. 아빠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편의점을 받았을 땐 드디어 상사의 꼰대질에 위 아플 일 없다며 웃던 아빠는 편의점 일을 시작한 석달동안은 괜찮다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주말 저녁, 학원에 다녀왔을 때 식탁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아빠가 나를 보며 히죽거렸다. 눈이 벌갰다. 아빠는 딱 한 마디 했다. 속았어.

그 후로 아빠도 엄마도 자기가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 너무 힘들다며 내게 털어놓진 않았다. 단지 짜증을 낼 뿐이었다. 아빠의 예전 직장 동기에게 속아 운영하게 된 편의점 적자 때문에, 엄마를 아랫것 취급하는 보험 고객들 때문에 힘든거면서. 고객들에겐 못하는 싫은 소리를 자식에게 퍼붓고.

저렇게는 살기 싫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이상하다. 이대로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 것 같다. 즐겁게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가난하고 천대받는 중학교 2학년에 영원히 머무를 것만 같다.

그런 기분 때문인지 점점 무기력해진다. 수행평가도 학원 숙제도 할 수가 없다.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고심 끝에 일기를 쓰기로 했다. 한 장 한 장 써나가는 일기. 그제도 어제도 살아있었고 오늘도 살아있다는 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