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K (제1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우수작)

  • 장르: 판타지, SF | 태그: #신체강탈자문학공모전 #걸그룹 #최철진
  • 평점×30 | 분량: 114매
  • 소개: 어느 날 아버지가 걸그룹 팬클럽 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이제 그 걸그룹을 좋아한다. 나만 안 좋아한다고? 그리고 그게 죄라고? 더보기

HOOK (제1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우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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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아버지는 팬클럽 회장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에게 궁금한 것도 많고 그만큼 묻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그동안 어디서 지냈는지,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는지, 그리고 왜 떠났는지.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궁금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하필 많은 가수들 중에 어째서 그 그룹의 팬클럽 회장이 되었는지. 아버지는 대답 대신 CD플레이어에 CD를 넣고 집 안을 울릴 듯 크게 음악을 틀었습니다. 저는 그 음악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목은 「HOOK」. 갈고리로 물고기를 낚아채듯 너를 내 남자로 만들겠다는 내용이죠.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그 음악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른 여자 그만 봐 나만 BARABA BEBE∼ 나는 너의 Her 그러니까 까지 마 UH! 제발 돌아봐 하지만 나 차가운 도시 여자 오지 않으면 내가 GO해 (그리고 간주가 나오고) 다른 여자 그만 봐 나만 baraba babe∼ 나는 너의 Her 그러니 까지 마 UH!(이 때 목소리는 생목소리가 아니라 기계소리) 내 이름은 HOOK 마치 LIKE Captain HOOK처럼 너를 훅 낚아채지.

멜로디 역시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작곡가를 욕할 정도였으니까요. 분명 손가락으로 책상을 무의식적으로 두드리다 ‘아, 이번엔 이런 템포로 해볼까. 잡다하게 이것저것 효과를 넣으면 멋있어 보일 거야’ 하고 대충 만든 게 분명합니다. 돌림노래 같은 가사와 멜로디였죠. 그렇지만 아버지는 그 음악에 열광했습니다.

네, 솔직히 미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그렇게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문화인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트로트 가수 송박자의 「네 멋대로」라거나 나잡초의 「야, 훈아」 정도만 따라 부르는 아저씨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이럴 수가, 아버지가 「HOOK」를 따라 부르면서 안무를 맞추다니.

왼손을 허리에 얹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골반을 좌우로 흔들고 상큼한 표정으로 웨이브를 하다니. 아버지가 그 그룹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진정으로 행복하게 웃었으니까요. 그렇게 아버지는 똥 씹은 얼굴을 한 어머니를 안방에 두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고 말씀하셨죠.

“저런 인간인 줄 왜 여태껏 몰랐을까?”

아버지는 애시 당초 우리가 자기를 이해할 거라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빈 방을 ‘지소’의 브로마이드와 앨범으로 장식을…… 네, 그 유명한 5인조 걸 그룹, 지소입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룹이지만 당시에는 신인이었죠. 아마 ‘지갑에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소녀들’이라는 뜻일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보니 맞나 보네요. 이렇게 긴 걸 어떻게 기억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름도 참 길죠. 요즘 그룹들은 이니셜과 풀 네임을 모두 갖는 걸 좋아하나 봐요. 왜 깔끔하게 하나만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암호 해독하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 방은 침대와 컴퓨터, TV를 제외하고는 온통 지소와 관련한 아이템들뿐이었습니다. 지소 CD, 사진집, 브로마이드는 물론 지소 멤버들이 프린트 되어 있는 티셔츠와 쿠션까지. 다 합하면 100여 개는 넘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버지가 간직하고 있는 품목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아이템들이 자기의 비밀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그 창고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제가 자신의 보물지도를 볼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솔직히 그다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지소 멤버가 프린트된, 자기 키만큼 큰 쿠션을 끌고 자는 걸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요. 생각만 해도 목이 타네요. 잠깐 물 좀 마실게요.

네? 아버지는 어떤 분이였냐고요? 그러니까 지소 팬클럽 초기 회장…… 아, 가출하시기 전에. 아버지는 정말 성실한 회사원이셨어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식품회사 과장이셨죠. 회사에서 부르면 회사에 나가고 집에서 부르면 집으로 오시는 모범적인 아버지셨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시고, 아 그렇게 유명한 데는 아니고 그래도 이름은 댈 수 있을 만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시고 변변한 직장에 취직하시고 우리 어머니처럼 참한 색시를 얻으신 분이시죠. 그런 성공을 하셨음에도 독서와 자기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아버지는, 절대, 지소 팬클럽 회장이, 되실 분이, 아니란 말이죠. 저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TV에 나오는 시시껄렁한 쇼프로나 가요프로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단 말입니다. 주로 뉴스나 시사프로를 시청하고 아니면 신문이나 책을 벗 삼았어요. 맞아요, 그래서 제 말투가 문어체이기도 해요.

아, 당연히 연예인 얘기하는 또래 애들이랑은 상종도 안 했죠. 아버지의 지성을 그대로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했으니까요.

물론 아버지의 감성도 닮아 보려고 했습니다. 감성이라고 해야 할지 본성이라고 해야 할지. 사춘기 시절 이성에 눈을 뜬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나 궁금해지네요. 하지만 전 아버지의 학창시절 사진 한 장 본 적도 없고 그 시절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군요.

그러니까 우선 지소에 대한 인터넷 뉴스나 자료들을 검색해 보았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소수 극성팬들만 난리를 치나보다 싶었어요. 그 당시에는 쇼 프로에 지소가 패널로 등장해서 얼굴 몇 번 비추는 게 다였으니까요. 뭐 별 거 있나. 마우스 휠을 내리는데 지소에 관한 내용이 밤하늘 별들만큼이나 많았습니다.

아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그만큼 그 그룹이 스타가 되었다는 뜻이에요. 평소에 인터넷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에요. 공부하다가 필요할 때만 검색을 하죠. 일부러 연예기사를 피하기도 해요.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제가 기억하고 있던 지소는 이미 기억 저 너머에서 공중분해한 지 오래고 그 때 알게 된 지소는 완전히 다른 그룹이었다는 뜻입니다.

눈에 가장 먼저 띈 기사는 지소가 대표곡 「HOOK」으로 올해 가요 신인상을 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같은 시상식에서 가요 대상까지 받았다는 겁니다. 그 전부터 열심히 활동하던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다니. 지소에 관한 기사에는 오로지 칭찬과 격려만 있었습니다.

수 천 개나! 악플은커녕 지소와 상관없는 광고용 댓글조차 없었어요. 제가 그 기사를 본 게 작년 연말이었어요. 네, 그 방송사에서 주관하는 거였어요. 의아했습니다. 기사를 보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그룹을 욕하는 악플들이 넘쳐났었으니까요. 채널을 돌리면 어쩌다 그녀들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 보게 되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영 시원찮을 정도였습니다. 분명 그녀들은 예뻤습니다.

귀엽거나 예쁘거나 섹시하거나. 몸매는 모두들 비슷하게 글래머러스한 가슴과 매끈한 다리를 지녔습니다. 노래실력이야 뭐, 아시겠지만 아이돌의 가창력이 거기서 거기죠. 그렇다고 사이좋게 못 부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못 부르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매력 있게 잘 부르는 것도 아닌, 뭐 그런 뜻이죠. 네티즌들이 어떤지 잘 아시죠?

비슷비슷한 것들이 뭘 하겠다고. 개나 소나 섹시 컨셉이네.

성형수술은 잘 하고 나온 거니? 얼마 안 가서 흐물흐물해진다

언제까지 이딴 노래를 들어야 되는 거임?

그나마 이런 악성댓글들도 활동한 지 조금 돼서야 달렸다고 합니다. 데뷔 초에는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니까요. 그야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신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소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가출하고 돌아온 얼마 동안은 마치 저를 세뇌시키듯 많은 얘길 하셨지요.

지소의 초창기 시절을 얘기하실 때면 당신의 얼굴은 침통하게 일그러지곤 했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한 번에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진 건 아닙니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도 세상을 단계별로 만드셨다죠.

하지만 지소는 달랐습니다. 지소가 대중들에게 관심을 얻게 된 건 욕먹은 지 일주일도 안 된 시기였으니까요. 지소에 관한 기사에 달리는 댓글의 수준도 달라졌습니다. 어떤 공연에서 지소 멤버들 중 막내가 무대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사진이 실린 기사였습니다.

귀여븐 막내 어디 보는 거임? 오빠 보는 거임?

여신이시다 관객들은 축복받았다

나두 봐주쇼ㅠㅠ

아름다움과 포스가 공존!

제 기억으로 그 막내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볼 살이 많다는 이유로 악플이 달린 적이 있었는데 말이죠. 지소뿐만 아니라 어느 연예인이든 마찬가지로 공격당하는 점이 있죠. 성형수술. 댓글을 보면 성형의과에서 일하는 사람인지 약물이나 수술에 대해 빠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무플에서 악플, 그리고 선플이 달리기까지 데뷔 후 일주일도 안 걸렸다는 겁니다. 댓글을 단 날짜를 보면 계산이 그래요. 물론 인터넷이나 미디어의 파급력이 그만큼 무시무시하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다 싶었습니다. 안 그래요? 쳇, 그럴 줄 알았어요.

다들 그런 반응이죠. 지소니까 당연하다. 그럼 왜 지소만 그랬나요. 다른 아이돌 가수나 연예인들은 대형 소속사에서 아무리 밀어줘도 못 뜨는 경우가 허다한데.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했는데. 외계인이라니 무슨 허무맹랑한 소립니까? 제가 그런 얘길 하고 다녔다고요? 지소가 외계인이라고? 아, 「패컬티」나 「인베이전」 같은 영화처럼 말이군요.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군요.

그건 모함입니다. 아무리 제가 지소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런 얘기까지 하지는 않습니다. 지소의 무지막지한 인기를 보면 그런 상상을 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런 빈곤한 상상력보다 더욱, 우리 사회에 긴밀한 내용이란 말입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깁니다만 일주일이란 시간은 그렇게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더욱 그렇죠. 제가 예전에 6박 7일 동안 중국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정말 긴 시간이었죠. 자금성, 천안문은 물론 압록강까지 다녀왔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제가 한국을 떠난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겁니다.

어떤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요. 그 중에 알 만한 것만 말씀드릴게요. 한국 해군의 군함이 남극 해적단들에게 납치되다가 빠져나온 일은 국제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죠. 그리고 부모님과 명절에 점당 만 원짜리 화투를 쳤다는 이유로 추방당한 연예인이 다시 한국으로 밀입국했어요.

아, 그 사람 인터뷰도 당신이 했다고요? 뭘 그런 사람까지 만났습니까. 연예인이 도박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청소년들의 본보기는 연예인이 아니라 어른입니다. 연예인이 도박을 하는 걸 보고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도박을 하고 거짓말 하고 돈을 몰래 빼돌리는 걸 보고 따라 하는 거죠.

아시다시피 저는 연예인을 옹호하는 입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연예인은 한 명도 없어요. 그저 제가 생각하기에 아니다 싶은 얘기를 하는 것뿐입니다. 책임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만만한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 좋지 않아요.

예전에는 뉴스에서 많이 보여줬잖아요, 책임져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져버리는 짓거리들. 그런데 지소가 뜨고 나서 그런 얘기는 사라졌어요. 이 얘기는 하지 말자고요? 아니, 그럴 거면 왜 인터뷰를 하겠다고 온 거에요? 잠깐, 지금 카메라랑 녹음기 제대로 작동되는 거 맞죠? 약속 지키세요. 분명히 말하지만 편집은 없는 겁니다.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반면에 한 걸 그룹이 일주일 만에 무관심과 비난과 찬사를 차례차례 받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 얘길 하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잠깐 다른 데로 샜군요. 하지만 이렇게 하고 싶은 얘길 떠들어 대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당신과 얘기하는 지금이 아니라면 아무도 내 얘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을 겁니다. 일주일이라니까 생각난 게 있네요. 제가 일주일 동안 중국여행을 다녀오고 아버지가 가출했어요.

아버지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하신 적이 없어요. 젊었을 때는 그럴 경제력이 없어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고는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저는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미있게 얘기해 드렸죠. 그런데 그때 아버지 표정은, 기분 좋게 듣고 있긴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어요.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중국에서 고생한 얘기도 했거든요.

아버지가 가출한 이유라. 그건 아버지가 지소 팬클럽 회장이 된 것만큼이나 뜬금없는 행위였습니다. 말씀드렸죠. 아버지가, 아니 아버지께서 얼마나 성공적인 환경에서 사시는지. 솔직히 말해서 저도 잘 모르겠어요. 끝까지 말씀을 안 하셨어요. 잘 다니던 직장, 잘 살던 집 버리고 왜 몇 개월씩이나 돌아오지 않았는지.

그것도 막대한 돈을 들고 튀었다니까요. 그 일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존칭을 쓰기도 하고 쓰지 않기도 하죠. 어쩔 수 없어요. 아버지가 떠나신 후로 집안은 엉망이 되었으니까. 일이라고는 생전 해본 적 없으신 어머니와 저만 남았었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가만히 카운터에 서서 바코드를 찍는 일을 몇 시간 동안 해보세요. 식은땀이 흐를 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계획한 공부 스케줄은 엉망이 되었어요. 학점 관리도 안 되고. 휴학해서 학비부터 벌기로 했습니다. 편의점 일만 했어요. 다른 일은 훨씬 더 힘드니까.

저야 젊으니까 일하면 된다손 쳐도 더 큰 문제는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 컸는지 아이돌 가수를 보면서 그 공허함을 채우신 거예요. 아줌마들의 우상 조용칠도 어찌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름이 뭐였더라. 슈퍼 A.P.M. 502? 당시엔 꽤 인기가 있는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습니다.

이름이 무슨 콜라주도 아니고 이것저것 덕지덕지 갖다 붙였는데 애들은 역시 반반하고 잘생겼더군요. 이 그룹이 쇼프로에서 자꾸 웃통을 벗어젖히니까 ‘근잘남’이란 말까지 생겼죠. 근육이 잘 생긴 남자란 뜻입니다. 잘 생긴 근육이라니, 도대체 어디까지 잘생겨야 하는 건지. 근육 생김새도 얼굴만큼이나 비슷비슷한 형태더군요.

어머니는 식사를 하실 때도 주무시기 전에도 항상 그 그룹의 동영상을 보셨습니다. 춤을 따라 추기도 했죠. 아버지나 어머니나 의외로 몸이 유연하시더군요. 그런 걸 다 추다니. 네, 슈퍼 A.P.M. 502의 댄스를 추신 어머니는 지소의 댄스를 추신 아버지를 나무라신 게 맞습니다.

한 가정이라지만 서로 다른 팬이니까 은근히 신경전이 있었나 봅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신 후로도 어머니는 슈퍼 A.P.M. 502를 좋아, 아니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따로 자기 방을 만드신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가 안방을 온통 슈퍼 A.P.M. 502 사진으로 도배를 했다는 겁니다. 두 분이 식사하실 때 모습을 보면 정말 웃겼습니다. 아예 대놓고 웃었죠.

두 분이 좋아하는 그룹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그들의 춤을 따라 추었으니까요. 오른손에는 숟가락 왼손에는 밥그릇을 들고 말이죠. 밥 먹으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 춤을 추면서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뭔가가 두 분의 몸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두 분의 표정은, 네 그래요, 해맑았습니다.

마침내 저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습니다. 지소 팬클럽에 가입하기로 말입니다. 아버지의 권유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화장실 휴지조차 지소 멤버들이 프린트된 것을 쓰는 아버지를,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좀 더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변태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만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시라도 지소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이해하는 수밖에.

어쨌든 인터넷으로 팬클럽 카페를 검색해 보니 꽤 여러 개가 나오더군요. 그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카페를 클릭했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카페였습니다. 아버지의 아이디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제 입으로 발음하기 민망해서. 네 좌우에 하트가 있는 그거에요. 역시 유명인사시군요 우리 아버지는.

카페는 크게 일곱 개의 상위 게시판이 있었고 그 안에 다양한 하위 게시판들이 있는 구조였습니다. 공지사항을 올리는 게시판과 각 멤버들의 이름과 특징을 따서 만든 5개의 게시판, 멤버에 관한 뉴스나 동영상을 올리는 게시판. 그렇지만 등급이 낮으면 게시 글들을 보는 데 제약이 따랐습니다.

저는 준회원이었는데 카페 매니저의 아들이라고 해서 자동 등업을 해 주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정회원으로 등업을 하기 위해 지소를 얼마나 잘 아는지 확인하는, 지소퀴즈를 풀어야했습니다.

문제1. ‘지소’의 정확한 뜻은?

문제2. 지소 싱글앨범 발매일은 언제?

문제2-1. 지소 싱글앨범 발매일과 지소 리더 생일을 합한 수는?

문제3. MBS ‘우리 약혼 할까요‘에 출연하는 지소 멤버는?

문제3-1. MBS ‘우리 약혼 할까요’에 출연하는 지소 멤버가 방송에 나온 전체 시간과 방송에서 했던 대표적인 어록 다섯 가지는?

문제4. 지소 멤버 전체의 키와 체중을 곱한 수에 멤버 수를 나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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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문제가 스물세 개였습니다. 저는 그 중에 세 개만 맞췄어요. 아버지도 가르쳐주지 않으셨어요. 진정한 팬 마인드는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놀라운 건 이걸 맞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란 겁니다. 이런, 당신도 정회원이라고? 하긴 지금 이 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지소 팬클럽 정회원이겠죠.

어쨌든 저는 정회원이 되기를 포기하고 등급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자유게시판을 들어 가보았습니다. 모두 지소예찬, 지소찬양 투성이였습니다. 종종 아버지에 대한 얘기도 나왔는데 아버지는 그곳에서 여신들을 보좌하는 수호천사였습니다. 네, 유명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평민들 중에 유일하게 아버지만이 여신들을 사적으로 만날 수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의 인생을 지소에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지소에서 미소를 담당하고 있는 수연 언니처럼 먹었어요. 버터를 바른 토스트에 게맛살을 얹어놓고 먹으니까 배가 부르면서 날씬해지는 느낌이에요^^

요즘 지소 스케줄을 보니까 새벽 세 시부터 여섯시 까지밖에 못 자네요ㅠㅠ 가만 있을 수 없어서 저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누나들의 힘이 되기 위해 뭐든 하는 동생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제 소식통에 의하면 넷째 유니가 쓰는 생리대가 ‘라이트’랍니다. 그래서 저도 그걸 샀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자인지라 반창고 대신으로 쓰고 있습니다. 저도 여자로 태어났다면 유니처럼 살 텐데.

멤버들의 사소한 행동이나 습관 하나까지도 따라 할 정도였죠. 그렇게 하면 마치 자기도 지소 멤버가 되기라도 하는 양. 저는 그런 분위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카페를 탈퇴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가 요 근래에 눈으로 본 것들을 보다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친구의 컬러링을 들으면서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너 언제부터 컬러링이 「HOOK」이었냐.”

“언제부터긴 인마, 노래 나오자마자 바꿨지. 너도 컬러링 좀 바꿔라. 언제까지 모스부호처럼 딱딱하게 살 거야?”

“잠은 딱딱한 데서 자야 건강에 좋은 거야. 그런데 혹시 너도 지소 팬클럽이야?”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습니다.

“당연한 거 아냐? 얼마 전 정회원으로 등업했다. 대뜸 전화해 놓고 그런 걸 묻냐. 설마 넌 아직이냐?”

“……젠장, 넌 정말 좋은 놈이었어.”

저는 전화를 끊고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습니다. 열은 없었습니다. 환청을 들은 것도 아니었죠. 그러니까 그 친구, 중국에 같이 다녀오기도 하고 저만큼이나 연예계에 관심이 없던, 어떤 면에서는 혐오하기까지 하던 그 친구가, 지소 팬클럽 정회원이 되었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그것도 정회원이라니. 그 문제들이 정말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니.

오랜만에 집을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전시해 놓은 아이돌 아이템들을 보는 게 질렸습니다. 저는 공부하느라 어지간하면 밖에 안 나가요. 독서실 갈 시간조차 아까워서 집에서 모든 공부를 해결하죠. 그 때 휴학하고 나서 이것저것 많이 했죠. 전공 공부는 물론이고 토익이랑 회계사 준비를 했어요.

유통관리사에 금융자산관리사까지. 저에게 필요하다 싶은 건 모조리 공부했고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땄어요. 말했다시피 TV나 인터넷은 정말 필요하지 않은 이상 쳐다보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아버지의 성공을 동경해서, 나중에는 아버지가 망쳐놓은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좋은 데 취직하려고요. 그걸 아시는 부모님은 절대 제 방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함부로 들어오는 일도 없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소와 슈퍼 A.P.M. 502 브로마이드, 음반, 피겨 따위가 책상이나 침대 위에 올려 있는 겁니다. 암세포처럼 나날이 증식했습니다.

물건도 물건이지만 어머니가 슈퍼 A.P.M. 502의 「We Are The Ener-Z」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아침을 시작하는 거나 아버지가 팬클럽 매니저로서 전화연락을 하는 거나(응, 풍선은 파스텔 핑크 컬러에 하트 모양 삼백 개 준비하고 플랫카드에는 ‘신인상 + 대상! 지소의 승승장구’라는 문구를 넣어. 팬클럽 분들에게 Cat Ears 머리띠 드리고. 그래 고양이 귀. 내건 특별제작 했다고? 그래 그럼 내가 저녁에 가서 써볼게.)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내가 우리 집에 있는 건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건지 헷갈리더군요.

마침 주말이었던지라 명동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북적거리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만큼은 소음을 듣고 싶더군요. 맨날 비슷한 노래만 듣다보니 (내 이름은 HOOK 마치 LIKE Captain HOOK처럼 너를 훅 낚아채지 라든가, 우리가 널 일으켜줄게 We Are The Ener-Z Ener-Z Ener-Z Z Z Z) 다른 소리들에 굶주렸나 봅니다.

화장품 가게, 영화관, 노점상인, 커플들, 친구들. 다양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자 밖에 나오길 잘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 정신 차리고 보니 집에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습니다. 어느 가게에서나 지소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겁니다.

지금까지 지나친 가게들 앞에 스피커에서 「HOOK」를 비롯한 「소녀를 불러봐」, 「KITYee」 등. 명동 거리 한복판에 멈춰 선 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부딪히면서 저를 흘깃 쳐다보았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상관있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였습니다.

게다가, 다들, 누구나, 파스텔 핑크 컬러에 하트 모양을 한 풍선을 들고 다니는 겁니다. 아찔했습니다. 잠깐 하늘을 쳐다보니, 맙소사. 하늘은 안 보이고 지소의 수상축하 플랫카드 수십 개가 건물 사이에 걸려 있는 겁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눈에 보이는 곳마다 지소의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습니다.

화장품 가게에 붙인 광고 포스터에도, 전자제품 가게 앞에도, 붕어빵 장수의 등에도. 그러니까 광고란 광고, 공간이란 공간에는 어딜 가나 지소 멤버가 웃고 있는 겁니다. 비틀거리며 걷다가 전자제품상점인 ‘안녕마트’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앞에 진열된 HDTV에 지소가 나와 춤을 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TV에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뉴스를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지소 팬클럽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 팬들의 열화에 편승한 정부는 내년 초부터 지소 멤버가 새겨진 화폐를 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올해부터 디자인을 공모할 예정이며 앵커인 저 역시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아니 인기가 있는 것도 정도껏이지. 이 나라에는 아예 ‘정도껏’이란 수준이 없어진 건가?

조금 더 걷다가 눈에 보이는 대로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버스 안에 있는 광고판에도 역시 지소가 있었습니다. 차창 밖을 보니 대부분의 차들이 지소 멤버들로 도장(塗裝)되었습니다. 버스 안에 들리는 라디오 방송도 지소 멤버 중 한 명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 앞에 앉은 운전기사 아저씨는 지소의 신곡 「Oh, Bar!」를 흥얼거리더군요. 마치 자기가 가사 속에 나오는 오빠라도 된 것처럼 신나게. 무작정 잡은 버스인지라 어느 노선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자주 타던 버스 안에 있어도 생소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을 겁니다.

도중에 한 광장을 지나쳤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전광판을 보며 똑같은 몸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전광판에 비친 모습은 「HOOK」의 뮤직 비디오였고 수 백 명은 족히 넘을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장관을 보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생기더군요.

그래 어딜 가나 마찬가지일 거야, 하고 말이죠. 실제로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지소천국을 보았으니까요. 결국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다지 편안하지는 않지만 밖에서 외톨이처럼 있는 것보다 덜 외로울 것 같았거든요.

인터넷을 하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 가입한 게 화근이죠. 지소가 어떤 애들인지 알려고만 했는데 저도 어느새 인터넷 유저가 되어 버린 겁니다. 아까 뉴스에서 본 화폐 디자인 기사 댓글에는 너도 나도 공모전에 응모하겠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벌써 다 만들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들의 댓글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고 있던 터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걸 봤습니다.

다들 미친 거 아냐?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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