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나쁜 날 – 1 (제1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우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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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다가, 당장에라도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릴 기세였다. 하늘 향해 고즈넉이 고개 든 인력거꾼 박 첨지는 기다리고 있었다. 추위를 물리쳐줄 따뜻한 햇살을.

추위는 이 12월의 찬 오전 말고도, 열심으로 노동해도 나아질 기미 없는 가난에서도, 누에마냥 야금야금 존재를 갉아먹는 인생에서도, 버리고 어디 도망이라도 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식솔(병들어 끙끙대는 아내와 배고파 울부짖는 어린 새끼)들한테서도, 종내 인력거를 잡아주지 않는 손님으로부터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박 첨지 생각에 더 춥고 덜 춥고, 안 춥고 등이 따시는 차이는 결국 얼마나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데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그 어떤 항변과 반발을 갖다 붙여도 그 이치는 변함없는 것이었다. 빈곤한 시대의 모두가 그렇듯이 박 첨지 역시도 돈이 절실했다.

이놈의 돈이 있어야 쿨럭거리는 아내에게 약 한 첩 사다줄 수도, 개똥이에게 쿨렁대는 젖을 물려줄 수도, 당장 목구멍에 모주 한 잔 쏟아 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돈이 들어오려면 사람들이 자신의 인력거를 잡아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왜 요사이 이 인간들이 인력거를 잡지 않는 걸까. 왜 요즘 들어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걸까. 잘 아는 놈들도 말야.

왜 저잣거리에 썰렁한 바람이 부는 거지. 쪽바리들 때문인가? 이렇게 백날 인력거 끌어봤자 뭐하나 돈이 들어와야지. 못 사는 놈은 뭔 지랄을 해도 매양 못 살기만 한다는데 이러다가 언젠간 골병들어 죽을 거여. 박 첨지는 가난이란 놈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재미를 붙여서 자꾸 돌아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나 충실하였다. 암울한 시대의 소시민답게 습관화된 일색의 체념이었다.

하지만 그는 맘 한편으로 좋은 세상이 도래하기를 진정 바라고 있었다. 모두가 똑같이 배부르고 모두가 똑같이 따뜻하고 모두가 똑같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똑같이……

“어이, 이보게 박 첨지.”

손 하나가 쓰윽 나타나더니 인력거 바퀴를 잡아 당겼다. 손잡이에 기대앉았던 박 첨지의 비쩍 마른 몸이 그 서슬에 약간 움직였다. 박 첨지의 고개가 돌아간 순간 수입의 희망에 부풀었던 그의 표정은 익숙한 찡그림으로 바뀌고 말았다.

“치삼이 아냐?”

선술집 주인인 친구 치삼이었다. 그제서야 박 첨지는 무의식중에 집 근처까지 인력거를 끌고 왔음을 깨달았다. 치삼의 집과 박 첨지의 집은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다. 치삼의 우글우글 살진 얼굴은 오늘따라 백지장같이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고, 온 턱과 뺨을 시커멓게 덮은 구레나룻은 얼굴에 드리운 먹구름을 강조하고도 남음이 있어 무슨 귀신같은 음산함을 풍겼다.

노르탱탱한 얼굴이 바짝 말라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수염도 있대야 턱밑에만, 마치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박 첨지의 얼굴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는 본디 모습이건만 오늘따라 이상한 치삼이었다. 뭔가에 쫓기듯 불안스럽기 짝이 없는 꼬락서니는 호방했던 본새와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이봐 박 첨지 많이 바쁜가……? 잠깐만 좀 보세.”

“뭔데, 왜 그래?”

치삼은 자신의 선술집을 힐끔 살피며 목소리를 죽였다.

“우리 마누라가 말이야. 마누라가 이상해.”

“아주머니가 왜?”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하던 짓도 늘상 똑같은데…….”

“그런데?”

“꼭 사람이 달라진 거 같단 말이지!”

“아, 이 놈이, 싱겁긴. 그게 무어 이상할 일이야?”

“글쎄 내 말 좀 들어봐. 마누라가…… 분명 마누라가…… 분명 마누란데……”

“마누란데?”

“마누라 같지가 않단 말이야!”

박 첨지의 입이 여덟팔자를 그리면서 아랫입술이 닭 부리처럼 삐쭉 튀어나온다.

“그게 대관절 뭔 소리야?”

“딴 사람이 된 거 같다니까.”

“잘됐네. 그렇게나 쥐여 살더니만 인제 확 바꿔버리면 되겠네.”

“그게 아니야. 마누라가 참말로 이상하다니까.”

“아, 그러니까 뭐가 도대체 어떻게 이상하냐고?”

“그걸 잘 모르니까 이상하단 말이지!”

이 고사상 돼지대가리 같은 놈이 지금 자신을 갖고 농을 치고 있나. 문득 박 첨지는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아내의 파리한 얼굴이 생각났다. 그에 반해 치삼의 아내는 눈이 볼 살에 파묻혀 뜰 수도 없을 정도로 통통했다. 게다가 지리산 반달곰처럼 힘이 세 쌀가마를 좌우 하나씩 들고도 걸을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잘 먹은 탓이다. 두 놈년이 주야로 불 켜놓고 술장사 해 낙엽처럼 돈을 긁어모았다. 나는 이 꼴로 죽지 못해 사는데 저 놈은 살 맛 잘도 느끼면서 산다, 친구사이라지만 까놓고 보면 친구 같지도 않은 친구 아닌가. 박 첨지의 머리에 슬그머니 화가 일려는 찰나,

“자고 일어나니 사람이 바뀐 거 같아. 눈 뜨고 나서부터 이부자리에 누울 때까지 잔소리밖에 안 하던 여편네가 아무 말도 안 하다니까.”

치삼이 강조를 한다.

“그래? 반찬은 더 잘 나오지 않디?”

“그게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긴, 자고 일어나니 변했다며? 니 눔이 간만에 허리춤 한번 제대로 돌린 게지. 그러니까 남정네 같은 왈패가 하루아침에 수줍음 타는 새댁이 된 거 아니냐. 껄껄.”

박 첨지는 농 반, 화살 반으로 치삼을 쏘았다.

“이 놈아. 농 치는 게 아니라니까. 마누라가 진짜 이상해. 어디 많이 아플까 봐 그러지.”

박 첨지에게 집에 있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 게 이걸로 두 번째다. 어디 아플까 봐 그러는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다 이 상놈아, 박 첨지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다.

“아, 그러니까 어째 어디가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이상하냐고!”

“나도 잘 모른다니까!”

“예끼 잡놈! 사람 바빠 죽겠는데 흰소리나 하고 자빠졌어? 난 갈 테다.”

“어,어. 그러지 말고…….”

그 때 치삼의 아내가 선술집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었다. 두 사람이 나누는 언성에 나온 듯하였지만 박 첨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내다 팔 안줏거리를 준비하는 척하면서 몰래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박 첨지의 눈에 들어온 지리산 반달곰의 얼굴엔 아무런 동요도 없어보였다. 이웃다운 웃음에서부터 성가심의 눈흘김까지. 그게 평소와 다르긴 좀 달랐다. 마침내 박 첨지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시오. 아주머니.”

“예, 안녕하세요.”

무뚝뚝하고 감정이 없는 평평한 목소리.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여자다운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장독대 같은 탄탄함이 허수아비 같은 아내와 대비되면서 박 첨지의 심술엔 또 한 번 발동이 걸렸다. 인력거를 끌 기색으로 등을 돌린 박 첨지는 손잡이를 잡았다.

“아주머니. 윤배 아범이 아주머니가 이상하다고 하네요.”

치삼이 입을 딱 벌렸다. 치삼의 아내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래요? 어디가 요?”

“자기도 모른답니다. 이 눔이 어디 가서 딴 짓이라도 하고 들어왔는 모양이지. 맨날 보던 것도 다르게 보인다니 말요.”

박 첨지가 웃는 사이 치삼의 아내는 선술집 포장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어, 내가 말 실수했나?”

농지거리로 화답할 치삼의 아내를 예상한 박 첨지는 기대가 채워지지 않자 뚱한 표정을 지었다. 치삼이 긴장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거봐, 이상하잖아?”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냐 이 놈아. 이러는 네가 더 이상하다. 아이구, 목 말라라.”

“나뿐만이 아냐. 푸닥거리하는 을화네 아들도 지 동생이 이상하다고 해. 딴 사람 같다고. 요새 온 시내에……”

“됐다. 나 이럴 시간 없다. 안 그래도 손님 안 잡혀 죽겠다.”

박 첨지는 치삼을 무시하고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뼈가 앙상한 박 첨지의 등에 치삼이 주절거리는 말들이 날아와 박혔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도 막걸리 한 잔 주지 않는 놈. 지 할 말만 딱 떠벌리고 마는 놈. 그렇게도 악착같으니까 돈도 잘 버는 거겠지.

치삼의 모습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하지만 그가 남겨놓은 말들은 귓속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병 수발도 못해 주고, 돈벌이도 시원찮은데 대책 없이 두고 온 아내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까. 그는 인력거를 끄는 걸음을 재촉했다.

손님을 잡아야 해 손님을,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어느 순간,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치삼이 남긴 말이 갑자기 뒷머리 털을 곤두서게 한 까닭이다.

“나도 모르겠어. 분명 내 마누라야. 하지만 저건 꼭 내 마누라가 아닌 거 같다니까!”

2

광동학교까지 가자는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 하나를 태운 것은 그로부터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집에 들어갔다가 아내와 개똥이 얼굴이나 한 번 보고 나갈까 생각할 무렵 골목에서 등장한 손님이었다. 가무잡잡한 얼굴이 재수없게시리 평소와 퍽 달랐던 치삼을 잊기에 돈벌이보다 더 좋은 약은 없을 터였다.

금방이라도 뭔가 싸지를 것처럼 하늘이 점차 먹 가는 벼루가 되어가던 정오 무렵이었는데,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던 이 양복쟁이의 얼굴도 하늘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그는 어디 큰 병이라도 앓는 사람처럼 쌀쌀한 날씨에 걸맞잖게 이마에 콩나물 대가리 같은 땀을 송골송골 흘리고 있었고 행동은 포수에게 쫓기는 노루 마냥 긴장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게 무어 대수랴 박 첨지는 개의치 않았다. 그 양복쟁이는 삼십 전이면 될 운임비에 두 배나 셈을 쳐 주었기 때문이다.

“육십 전 드리리다. 광동학교로 가주시오. 최대한 빨리!”

인력거를 타자마자 그가 쏟아놓은 고함이었다. 아니 이게 웬 떡이냐.

‘광동학교라. 거길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꽤나 시간이 걸릴 텐데……’

“자, 어서 빨리 가주시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오. 여기, 돈을 보시오.”

박 첨지는 꼴깍 침을 삼켰다. 재수 옴 붙어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박 첨지는 육십 전이란 돈을 보았을 때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꼈고, 그것이 손바닥에 떨어질 제는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그래, 이게 있어야 군불도 지피고 설렁탕도 사다줄 수 있지.

이게 있어야 소리도 안 지르고 이게 있어야 눈물도 안 쏟고 이게 있어야 마음도 안 아프지. 이게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지. 갔다 오자. 손님부터 모셔놓고 집에 일찍 돌아가자.

“빨리 좀 가주시오! 제발!”

그래서 그는 양복쟁이를 태운 채 달리기 시작했다. 이 돈이면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대지를 박차는 그의 발걸음은 날듯이 가볍기만 했다. 그것은 숫제 달음질이 아니라 거의 나는 비행이었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구른다기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가는 듯하였다. 예상도 못한 곱절의 행운에 기꺼워 한참이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을 때였다. 출발과 동시에 말문을 막았던 양복쟁이가 별안간 꽥 소리쳤다.

“안 돼! 그 쪽으로 가면 안 돼! 오른쪽 골목길로 드시오!”

박 첨지의 팽팽한 팔뚝에 소름이 끼치고 머릿속에서 불이 번쩍했다. 발악과도 다름없는 괴성이다. 탑승부터 운임료 그리고 이동 중의 행티까지 이 손님은 전형적인 승객의 모습과 전혀 맞물리는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 사실이 박 첨지에게 의심과 경계심, 그리고 불안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불청객의 의문스러운 정체, 신변에 닥칠지도 모를 위협의 가능성보다는 자기 하나만 보고 있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컸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점차로 가까워지는 오른쪽 골목 어귀만을 주시했다. 그곳은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먼 길인데다 이 시(市)에서 유명한 오르막까지 있다.

‘간 떨어질 뻔했네. 그래 본전 뽑겠다 이거로구먼! 아무렴 그런 큰 돈을 거저 주는 바보가 어디 있어!’

하지만 ‘냉큼 시행하렷다’에 곧이곧대로 ‘예이!’ 할 수는 없는 법. 지금은 양반·상놈의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선생님, 저리로 가면 두 바퀴를 더 도는 셈인뎁쇼.”

양복 소매가 언뜻 보이나 싶더니 큰 주먹이 박 첨지의 얼굴 옆으로 튀어나왔다. 박 첨지가 짧은 신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주먹 안에는 백통화(백통으로 만든 돈)가 가득 있었을 뿐이었다. 고개 돌려 양복쟁이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박 첨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뭔가 무서운 것에 질린 사람처럼 양복쟁이의 표정이 섬뜩했기 때문이다.

“가라면 가시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이거 도대체 무슨 심판이지. 박 첨지는 혼란의 한가운데를 질주했다.

또 돈이잖아, 돈! 돈!

“도…… 도대체 무슨 일이래요?”

“가주시오, 선생. 제발!”

선생이라고? 날 더러? 자신에게 몰아닥치는 시가지의 추운 정경이 낯설게 여겨졌다. 돈에다 선생까지!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인가? 아니면 미친놈을 태운 건가? 에라 모르겠다! 그래, 내 그 돈을 다 받아내고야 말겠다. 그래서 그 돈을 가슴에 꼬옥 품고 집으로 돌아가겠다. 집에 돌아가면 그 돈을 필요한 데에 아주 요긴하게 쓰리라. 너처럼 인력거꾼한테 펑펑 쓰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 연기가 솟고 된장국 냄새가 났다. 배가 고팠다. 박 첨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꽉 붙드시우, 선생님.”

쌩쌩하고 부는 바람에 얼굴이 따가웠다. 질주하는 자에게 그것은 진로를 가로막는 태풍 같았다. 순식간에 골목 어귀가 코앞까지 닥쳐왔다. 박 첨지의 다리에도 새로운 힘이 솟았다. 잠시 11시 방향으로 인력거를 이끄나 싶던 박 첨지는 곧 크게 오른쪽으로 회전하며 우측 골목길로 들어섰다.

빠르게 돌던 온 세상은 제자리를 찾기까지 매서운 바람 소리를 일으켰다. 새로운 방향을 찾은 인력거가 휘어청 넘어질 듯 왼쪽 바퀴를 공중으로 치켜 들었다가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나고 다시 바닥과의 접촉을 이뤄냈다. 바람에 맞서는 박 첨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언 모래알을 튀기며 인력거는 새로운 길을 달렸다.

“앗!”

직진에서 우회전으로 접어든 그 때, 길거리에 널린 빨래에 가려 낮은 위치의 자신에겐 보이지 않았던 어떤 걸 박 첨지는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진행하던 방향에 새로이 나타난 세 사람, 요동치는 강풍의 세상 한복판에 잠시 스쳐 지나간 모습의 그들은 바로 장검을 찬 순사들이었다.

양복쟁이는 분명 이들을 보고는 골목에 다다르기 전 냅다 소리 지른 것이었다. 그러자 박 첨지의 머릿속에 새로운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이 놈 혹시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놈이 아닌가!’

“안심하시오. 난 저 순사들에게 쫓길 만한 죄를 지은 인간이 아니오.”

박 첨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양복쟁이가 대답했다.

“그냥 쭈욱 가기나 해요. 내 반드시 그만한 돈을 더 줄 테니까.”

다행히 순사들은 따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범죄와 관련된 자라는 확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박 첨지는 문득 얼마 전 있었던 일 한 가지를 떠올렸다. 자신의 동료 하나가 이와 비슷한 일을 당했던 것이다. 가난 때문에 양평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야반도주하여 내려와 이곳에서 2년째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화수분이란 친구에게 어느 날 어떤 여자 손님이 찾아들었다.

인력거에 오른 그 색시는 다급한 목소리로 어디든지 가자고 했다. 화수분이 ‘어디라니요, 행선지를 말씀하셔야죠.’라고 대답했더니 ‘빨리 뛰어 이 무식한 인간아!’하고 그 색시가 소리쳤다고 한다. 몇 백석 부자의 후예다운 기백으로 화수분은 예끼 이년아 안 태운다 당장 내리거라 맞고함을 쳤다고 하는데, 그 순간 색시가 더욱 날뛰더니 평소 운행비의 두 곱절이나 얹어주고 일단 달리고 보자더란 것이다.

색시의 고함은 무식한 인력거꾼의 예상도 못했던 항변 때문이 아니었고 부지불식간에 현장을 급습한 시커먼 순사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놀라운 사실은 순사들이 그 색시를 연행하는 데만 신경이 쏠리어 화수분이 받은 돈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질 않았다는 것이다.

화수분은 현행범의 돈을 꿀꺽하고 입 다물었다고 나중에 걸고 넘어질까 봐 색시한테 받은 운임비를 고스란히 바쳤지만, 순사들은 이를 무시하고 색시를 끌고가는 데만 몰두했다고 했다.

아울러 화수분은 ‘이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에요! 도와주세요!’ 하고 소리치던 색시의 일갈에 다소 마음이 주춤했지만 쪽바리 순사가 사람도 아니란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지라 자신이 연루되지 않은 것에 흡족해하며 번 돈을 뺏길세라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 화수분은 타향에서 정신이 이상해져 세상 종말이 온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대다가 최근 산속에서 얼어죽었다.)

지금의 박 첨지도 그랬다. 돈을 더 준다는 약속을 이 양복쟁이가 어기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남의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것들은 유식한 놈, 있는 놈부터 손보려 하지 무식한 놈따윈 안중에도 없다. 만약 이 양복쟁이가 어떤 범죄나 일제가 싫어할 운동에 연루된 자라면 동포로서 안타깝기는 하겠지만, 못 본 척할 수밖에 없다.

박 첨지 자신에겐 더 다급한 자신의 일이 있다. 자신의 일도 해결 못 해 피가 마르는데 남의 일을 돌볼 여유는 없다. 남은 상관없이 자신은 돈만 벌면 된다. 돈만. 나라가 어떻게 되든, 세상이 어떻게 되는 자신은 모른다. 무식해서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돈만 벌면 된다.

박 첨지의 이마에도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차가운 것이 이마를 때려 땀방울을 밀어냈다.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 첨지의 다리는 이 험난한 세상을 짓밟기라도 하듯 맥동했고 12월의 추위도 그의 입김에 세력을 넓혀나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땀이 완전하게 마를 것은 아니었다. 먼 곳으로 도는 광동학교 가는 길은 망하동(洞)의 옛 절터를 지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유서 깊고 사찰도 으리으리한 덕상사(德尙寺)는 일제의 약탈과 파괴로 화마(火魔)의 희생물이 되었지만 절터의 유명한 가로수 길은 그대로 남았다. 물론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인적이 드문 겨울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고갯길이지만 말이다. 그거야 어떠랴.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만 혈안이 된 박 첨지에게 풍광과 낙엽의 정취 혹은 민족정기의 파괴 따위는 아무런 관심사도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지금 그가 진행하는 덕상사의 이 가로수 길은 500미터 길이의 오르막으로 되어 있고 경사도 아주 급하다는 것이다. 인력거를 끌고 올라가는 길은 힘이 들고 내려가는 길은 위험하다. 아마도 이 오르막을 다 오르면 오늘 하루 인력거는 더 이상 끌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양복쟁이가 셈을 더 쳐준다면 그럴 가치는 충분하다.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오랜만에 웃는 얼굴로 아내와 개똥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번 돈만으로도 돈 구경도 못한 지난 날과 비교하면 대단히 큰 성과다. 왠지 모르게 저 양복쟁이는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한 돈을 더 줄 것 같아 보였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배운 사람 같아 보였고 근본도 악해 보이지 않았다. 주머니가 두둑해 보였고 능력이 있어 보였다. 도시의 모든 인력거꾼들이 기피했던 덕상사 오르막 가로수길. 그래, 내가 오늘 한 번 당해 볼련다.

박 첨지는 시큼한 자신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살아있다는 증거였고 아직 쓸만하다는 격려였다. 팔에 힘을 꽉 준 박 첨지는 서서히 속력을 올렸다. 평지에서 속도를 붙여 뛰어 올라야 오르막을 조금이라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잠깐. 잠깐만 멈추시오.” 양복쟁이가 말을 걸었다.

“왜 그러십니까?”

고개 돌린 박 첨지의 시야에 몸을 일으킨 양복쟁이가 들어왔다.

“내리겠소.”

“여기서요?”

“아니, 여기가 목적지란 말은 아니요. 오르막길이 나왔으니 내려서 가잔 거요.”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냥 타고 계십시오.”

“인력거 값을 깎자고 하지 않을 거요. 그냥 내 말대로 합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구둣발이 땅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비쩍 말라서 이렇게 경사 높고 긴 오르막을 어찌 오른단 말이요?”

그는 자신의 급한 사정을 얘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배려한다는 기색을 풍겼다. 그러나 어안 벙벙한 표정의 박 첨지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신 오르막만 지나면 다시 최대한으로 빨리 가줘야 하오.”

그러더니 양팔로 인력거를 떠밀기 시작했다. 인력거의 굵은 바퀴가 천천히 오르막을 향해 움직였다. 힘이 전달되면서 박 첨지의 운행은 한결 수월해졌다.

“이런 손님 처음이지 않소?”

양복쟁이가 말했다. 바퀴가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도 안정되었다. 내리는 비가 두 사람을 똑같이 적셨다. 응당 그래야만 되는 양 박 첨지가 말했다.

“옷 버립니다. 그냥 제가 밀겠습니다.”

“괜찮소. 빨리 갑시다.”

“그래도……, 선생님.”

“내버려 두시오. 조금이라도 빨리 광동학교까지 가는 게 날 도와주는 거요.” 박 첨지가 슬쩍 보니 양복쟁이는 그와 눈을 맞추는 대신 이리저리로 고갤 돌리고 있었다. “내가 수상쩍소이까?”

“아닙니다.”

“술에 취했거나, 무슨 죄를 지어 쫓기는 자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소?”

“아닙니다, 선생님. 절대 아닙니다.”

“알았소, 알았소. 그렇게 정색할 필욘 없소. 난 교편 잡는 사람에 불과하오. 범죄자도 독립운동가도 아니니 안심하시오.”

박 첨지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으로 오르막 중턱에 오른 인력거는 조금씩 바퀴의 회전이 느려지고 있었다.

“인력거 끈 지 얼마나 됐소?”

“이제 한 3년 됩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지 않소?”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듯한 탑승부터 버럭 질렀던 고함을 거쳐 이젠 같이 미는 인력거라니……. 이상한 손님을 만났다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박 첨지가 인력거의 좌석과 손잡이 사이에 굳게 쳐놓았다고 생각했던 장벽은 조금씩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어때요? 힘들지 않은 거요?”

“힘듭니다……. 실은……”

“실은?”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돈이 안 필요한 사람이 어디 있겠소만 무슨 딱한 사정이라도 있소?”

“요즘 통 수입이 줄어서 말입니다……. 마누라가 뭘 잘못 먹고 많이 아프거든요. 아들 하나 있는 게 아직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데 그 바람에 젖도 못 물리고 있지요.”

“그렇군. 열심히 일하는 분인데 참 안타까운 노릇이오.”

박 첨지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생겨났다. 쓰디쓴 미소였다.

“하지만 저 혼자만 힘든 게 아닌뎁쇼. 다 힘들잖습니까?”

양복쟁이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인력거 바퀴가 후진을 하려는 듯 뒤로 움직이다가 멎었다. 박 첨지는 자신을 응시하는 양복쟁이를 놀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오?”

“예?”

“어째서 다 힘들다고 생각하느냔 말이오?”

박 첨지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엔 누가 있을지도 모른다. 쥐도 새도 모르게 덫에 걸린 쥐나 새 꼴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지금 세상이니까. 하지만 박 첨지는 양복쟁이를 어느 정도 신뢰했기에 솔직하게, 그러나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 수가 있었다.

“그야 일본 놈들 때문이 아닙니까?”

양복쟁이의 얼굴엔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한숨 같은 긴 숨을 토해냈을 뿐이다.

“정말로 그게 다라고 생각하오?”

오르막길의 중간에서 인력거가 뒤로 밀릴 듯 말 듯하며 정지해 있었다. 양복쟁이가 완전히 힘을 뺐기 때문이다. 박 첨지는 뒤로 밀려나는 인력거의 무게를 느끼고 다시 팔에 힘을 주었다.

“겨우 일본 놈들 하나가 이 모든 빈곤과 악의 원인인 것 같소?”

“그…… 그야……”

“괜찮소. 말해보시오. 난 비밀첩자도 아니고 독립운동가도 아니오.”

“나라를 뺏은 놈이 제일 나쁜 놈들이 아니고 뭡니까?”

박 첨지는 말을 내뱉고도 불안한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 당신은 내가 생각하는 당신 자신이 맞소?”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당신 자신을 빼앗기지 않은, 당신 고유의 마음과 몸의 주인인 당신이 맞느냐 말이오!”

“예?”

양복쟁이가 인력거를 밀기 시작했다.

“무식이 한이 아니라 정신 차리지 않음이 한이오. 어처구니없는 것도 인정할 의식부터 깨어나야 하오.”

인력거가 다시 천천히 위로 움직였다.

“혹시 저잣거리의 사람들이 예전과 어딘가 달라졌다고 생각되지 않소?”

“그야…… 그렇습죠.”

박 첨지는 유식한 척 애써 보이려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 말이오?”

“모두 더 많이 벌려고 혈안이 되었죠. 악착같이 벌려고요. 나라가 어찌되든 신문물을 빨리 배우는 자들은 더 벌고……”

말허리가 잘렸다.

“아니오! 그것이 아니오!”

박 첨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양복쟁이를 쳐다보았다. 귀기가 서린 눈빛이 동그란 안경알 너머로 번득였다.

“요즘 사람들이 똑같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소?”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