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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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고구마>

진은 책을 옆으로 밀어 놓고 창 밖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빠는 휴일인데도 일을 하러 가셔서, 란이 이모가 오후 늦게 진을 보러오기로 했어요. 그때까지 진은 혼자였습니다.

시간을 때우려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했습니다. 금붕어에게 밥을 주었고, 설거지도 했고, 선생님께 받은 책도 다 읽었죠. 하지만 벽 위의 시계바늘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낮잠이나 자야지.’ 생각한 진은 하품을 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같이 할래?”

절반쯤 빠졌던 잠에서 퍼뜩 깨어난 진은 창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는 짙은 고동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음?”

‘넌 누구니?’라든지 ‘무슨 말이야?’라고 대답해야 하는 걸, 진은 그저 멍청하게 웅얼거렸을 따름입니다. 꼬리를 끄는 잠에서 헤어 나오려 한동안 애를 쓴 다음에야 진은 겨우 질문할 수 있었죠.

“뭘 같이 하자는 거야?”

소녀는 진에게 환하게 웃어보이곤 창틀 위로 뛰어올라, 발끝으로 깔끔하게 한 바퀴를 돌아보였습니다. 땋은 머리가 얼굴 주변에서 빙글 도는 사이, 머리에 맨 리본이 나비처럼 파닥였습니다.

“‘고구마 쫓아내기’를 같이 할 군단을 모집하고 있거든.”

소녀의 목소리에 가득한 자부심에 진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고구마 쫓아내기’가 뭐야?”

소녀는 계속 발로 맞추던 박자를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았습니다.

“‘고구마 쫓아내기’가 뭔지 정말 몰라?”

소녀는 창틀에서 뛰어내려와 진에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진은 소녀의 시선을 피하며 움찔 뒤로 물러섰습니다.

“모르…겠는데.”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어?”

“없어.”

소녀는 누군가에게 애원하듯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소녀의 가느다란 눈이 이제 동정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고구마 쫓아내기’란 말이지,” 소녀는 이해가 느린 학생에게 하듯 말문을 열었습니다. “남겨진 고구마들을 땅 속에서 몰아내는 거야.”

진의 입 속에서 질문이 보글보글 솟아올랐지만, 진은 그냥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기만 하면 소녀가 전부 설명해 줄 터였으니까요.

“고구마를 수확할 때, 농장 일꾼들의 쇠스랑을 피해 달아나다가 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버리거나 아예 밭 가장자리로 굴러가 버리는 고구마들이 있어. 대부분은 일꾼들이 다시 거두어들이긴 하지만, 고구마 스물 두 알 하고 쪼개진 고구마 열두 쪽 중 하나나 둘 정도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기도 하거든.”

소녀는 어깨를 쫙 폈습니다.

“그런 고구마들에게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려주는 게 내 일이야. 걔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몰라. 물구나무를 서 있는지 엉덩이로 앉아있는지도 모르지. 모든 것이 너무 밝고 또 희미하게 느껴져서, 고구마들은 정신이 나가버려. 만약 이 때 아무도 고구마들에게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전부 제정신을 잃고 멍한 상태가 되어 일꾼들의 욕심 많은 손아귀에 떨어진 다음 자루에 담긴 동료 고구마들과 똑같은 신세가 되는 거야.”

소녀의 구릿빛으로 탄 얼굴 위에서 진지하게 반짝이는 한 쌍의 눈이, 진은 눈부셨습니다.

“고구마라고 해서 꼭 전부 팔려서 인간에게 먹히라는 법은 없잖아. 그렇지 않아? 고구마 한 알이나 두 알 쯤은 운명에서 도망쳐서, 줄기를 덤불로 키우며 자라날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진은 한 쌍의(하나는 외로우니까) 고구마들이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가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땅 속 깊은 곳으로, 좀 더 멀리 산으로, 아니면 그 어딘가로. 그들은 원하는 만큼 계속 꿈을 꾸겠지.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 자라고 싶은 대로 자랄 거야.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에 꽃이 필 테고, 줄기는 명아주마냥 두껍게 자라나겠지. 고구마는 돌처럼 딱딱해져서, 멧돼지들조차도 그것을 먹을 수 없게 될 거야!

“같이 갈래?”

그들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습니다. 진은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당연하지.”

진과 소녀는 밭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습니다. 두 명으로 이루어진 군단이었죠. 그들은 다치지 않도록 서로를 지켜보며 도랑을 뛰어넘고 울타리를 넘었습니다. 길가의 꽃들이 소녀들에게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어디로 가니?”

“‘고구마 쫓아내기’를 하러 가고 있어.”

“와, 대단해!”

소녀들은 미소를 짓고, 꽃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다음 마을 외곽에 있는 고구마 밭으로 계속 원정을 이어갔습니다.

고구마줄기들이 밭의 가장자리로 치워져 있었습니다. 고구마줄기는 무침으로 먹으면 맛있으니까 함부로 버려지지는 않았어요. 소녀는 줄기를 부러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랑 사이로 기어가, 땅 위에 한쪽 귀를 대었습니다. 진이 망을 보는 동안 열심히 귀를 기울이던 소녀가 기쁨으로 반짝이며 진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소녀가 속삭였습니다.

“다섯이야! 땅 속에 남은 고구마가 다섯 알이나 있어!”

“정말?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거 아냐?”

터져나갈 듯 즐거워하며,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돼?” 진이 물었습니다.

“내가 보여줄게.”

소녀는 땅에 구멍을 하나 파고, 진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손짓했습니다. 소녀는 구멍에 입을 대고 크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리 가면 살고, 이리 오면 죽는다. 도망가라, 고구마야, 도망쳐!”

진도 무릎을 꿇고 친구를 따라했습니다.

“저리 가면 살고, 이리 오면 죽는다. 도망가라, 고구마야, 도망쳐!”

소녀들은 재빨리 일어나, 할 수 있는 한 힘차게 발을 구르며 밭을 돌아다녔습니다. 고구마들이 들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발을 굴렀죠. 고구마 다섯 알이 모두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밭에서 도망치길 바라며. 뱅글뱅글 돌면서,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지그재그로.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어느덧 소녀들은 달리고 있었습니다. 속력을 점점 높이며 달리는 사이 그들의 눈은 반짝이고, 뺨은 장밋빛으로 빛났습니다.

“신난다!”

“예이!”

충분히 높이 뛰어오르면 혹시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순간 생각한 진은 눈을 감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높이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곤 발을 헛디디며 땅으로 넘어졌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진은 땅에 얼굴을 절반쯤 파묻은 채 말했습니다. 소녀가 한입 가득 문 흙을 뱉으며 히죽 웃었습니다.

“나도.”

그들은 바로 누워 점점 깊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쯤이면 전부 도망쳤겠지?” 진은 혼잣말하듯 말했습니다.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연하지.”

침묵 속에서 그들은 평화로 흠뻑 젖은 채 대자로 누웠습니다. 대지는 등 밑에서 감미로운 냄새를 풍겼고, 공기는 따뜻하고 부드러웠습니다. 햇빛이 소나기처럼 한가득 쏟아지는 가운데, 미풍이 소녀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진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게으른 하품을 한 진은 몸을 공처럼 말고 잠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요것들!”

커다란 목소리가 그들의 머리위에서 천둥처럼 터졌습니다. 소녀들은 눈을 번쩍 뜨고 튕기듯 일어나, 농부의 손아귀를 겨우 피했습니다.

“내 고구마 밭에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재빨리 주위를 둘러본 진은 밭고랑이 완전히 반대로 나 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발뺌을 수도 없었죠.

“죄송해요, 할아버지!”

농부의 이글대는 눈길을 등에 받으며, 소녀들은 최대한 빨리 도망쳤습니다. 일단 농부가 보이지 않는 곳에 도착한 그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죠. 입 밖으로 굴러 떨어진 웃음이 자유롭게 굴러갔습니다. 히히 하하 웃으며 그들은 다시 울타리를 넘고 도랑을 뛰어 넘었습니다. 즉석에서 지어낸 노래들을 부르며, 햇빛 속을 즐겁게 걸어 집으로 돌아왔지요.

고구마들은 성공적으로 도망쳤고, 소녀들도 그랬습니다!

* 영어로 먼저 쓴 것을 우리말로 옮긴 거라 군데군데 어색한 부분이 있어요.
어색한 걸로 따지면 이야기 전부가 다 어색하지만 ㅠㅠ

혹시 이 이야기의 영문버전에 관심 있으시면 마일리지/ 유료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리보기 기능을 이렇게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실험해 봅니다 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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