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예나씨

  • 장르: 일반, 기타
  • 분량: 69매
  • 소개: 예쁘고 인기 많고 게다가 미국 시민권자인 대니얼을 만나 소위 ‘시집 잘 간’ 케이스인 예나씨.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불현듯 한국행 티켓을 끊어 Travel t... 더보기

웰컴, 예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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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보이던 새까만 지평선이 서서히 눈 앞으로 다가왔다. 예나씨는 창문에 달라붙어 밖을 바라보느라 유리창에 코가 닿을 지경이었다. 잠시 후 비행기가 인천 국제공항으로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자 여느 한국인처럼 예나씨는 당장이라도 안전벨트부터 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절부절 하는 예나씨의 마음도 몰라준 채 비행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더니 삼십여 분이 지난 끝에야 가까스로 덜컹하며 활주로에 바퀴를 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예나씨의 심장박동도 두 배 정도는 빨라진 것 같았다.

 

결혼 전에는 한 해가 멀다 하고 수도 없이 들락거린 인천 국제공항이었건만, 지금에 와서는 진정한 ‘롱 타임 노 씨 (long time no see)’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Arrival(도착) 표시를 따라 걸으면서 예나씨는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최근에 제 2 터미널이 생겼다고는 해도 고작 몇 년 사이에 공항이 크게 변했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입국 심사장 근처에는 얼마 전 미국의 TV 쇼에도 나왔던 한국 아이돌 가수의 대형 사진 광고가 한쪽 벽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다. 예나씨는 그 광고 앞에 서서 ‘와우’ 라며 조그맣게 감탄을 터뜨렸다. 수년 전, 영화에서만 보던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에도 예나씨는 지금과 똑같이 감탄을 터뜨렸었다. 다만 그 때 예나씨가 내뱉은 감탄사가 ‘와우’가 아닌 ‘대박’이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여기 저기 정신이 팔려 있던 탓에 예나씨는 그만 민망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입국 심사장에서 내국인 줄이 아닌 외국인 줄에 서 버린 것이다. 지난 4년 내내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살아왔던 예나씨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시끄러운 중국말과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를 외국어에 뒤섞여 당연한 듯 묻혀 서있던 예나씨는 자기 차례가 다 되어서야 가까스로 제 실수를 알아차렸다. 조용하고 재빠르게 서있던 줄에서 빠져 나와 내국인 줄의 맨 뒤에 가서 선 예나씨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까 기내에서 ‘콜라’가 아닌 ‘커크(coke)’를 주문하던 예나씨를 주시하던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그런 예나씨를 흘깃 쳐다봤다. ‘I LOVE LA’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찍힌 티셔츠를 입은 그녀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작은 해프닝과 함께 가까스로 입국 심사를 마친 예나씨는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스마트 폰을 꺼내어 전원을 켰다. 비록 미국의 유심이 심겨진 스마트 폰이지만 사용하는 메신저만큼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이었다. 예나씨의 친구들은 예나씨의 갑작스러운 한국 나들이에 잔뜩 흥분해있었다. 시집을 잘 가더니 연락도 한 번 안 하는 나쁜 계집애라는 둥, 사진만 봐도 벌써 미국 사람이 다 되었다는 둥 어지간한 호들갑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말하는 사진이란 메신저에 나타나는 예나씨의 프로필 사진이었다. 이전에는 금문교 – 예나씨는 ‘골든 브릿지’라고 부른다 – 앞에서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얹은 채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가, 서양인들이 가득한 레스토랑에 앉아 영어로 된 메뉴 판을 우아하게 읽는 모습이었다가, 가장 최근에는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햇살을 듬뿍 받으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프로필 사진 옆에는 ‘Travel to Korea!’ 라고 힘차게 적혀 있는데, 사실 예나씨는 이 메시지를 ‘Travel to Korea! (한국으로 여행!)’이라고 할지, 아니면 ‘Back to Korea! (한국으로 복귀!)’라고 할지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 했었다. 여하튼 예나씨를 반기는 친구들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은 다시 읽어도 예나씨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다만 친구들의 메시지가 어제, 그러니까 예나씨가 비행기에 타기 전인 약 20시간 전에 멈춰있다는 점이 예나씨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예나씨는 메시지 입력 창을 띄워 ‘한국 도착!’이라고 꾹꾹 적어 넣다가, 어쩐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국 전송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다시 찔러 넣었다.

 

각국의 여행지를 상징하는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캐리어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저녁 바람이 제법 스산했다. 예나씨는 짧은 반바지 아래로 드러나 서늘해진 맨 다리를 제 손으로 쓸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쨍 한 날씨에 익숙해져 버린 탓에 초가을 한국의 저녁 날씨가 새삼 낯설었다. 공항 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외국인 여행객 외에는 모두 얇은 긴 소매 또는 긴 바지 차림이었다. 그에 비해 고급 브랜드 마크가 선명한 티셔츠를 청 반바지 안으로 찔러 넣은 예나씨의 옷차림은 너무 로스앤젤레스였다. 예나씨는 서둘러 가방 안을 뒤져 스카프를 꺼내어 목에 둘렀다. 어디에선가 또다시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불어오는가 싶더니, 오렌지색 택시 한 대가 달려와 예나씨의 앞에 멈춰 섰다.

 

택시에 올라탄 예나씨가 ‘H 호텔이요’라고 행선지를 말하자, 아버지 뻘쯤 되었을 법한 택시 운전 기사가 예나씨의 얼굴을 한 번 스윽 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늦은 시간이라 피곤해서였을까? 아니면 좀 더 멀리 가는 승객을 태우고 싶어서였을까? 살짝 훔쳐본 택시 운전 기사의 옆 얼굴은 조금 경직되어 보였다. 긴장한 예나씨는 ‘그냥 공항 버스를 탈 걸’ 라고 뒤늦은 후회를 하며, 미국에서 탔던 택시를 떠올렸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항상 직접 운전했던 까닭에 택시를 탈 기회가 없었지만, 남편과 함께 뉴욕으로 여행을 갔을 때에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었다. 남편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미국 영주권자였고, 한 때는 뉴욕에서 일하기도 했었다. 그런 남편이 마치 진짜 뉴요커들처럼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어서 택시를 세울 때에는 별 것도 아닌 그 행동이 예나씨의 눈에 얼마나 멋져 보였던지. 게다가 아버지 뻘을 훌쩍 뛰어넘는 듯한 백발의 택시 운전 기사가 남편에게는 ‘sir’이라는 경칭을, 예나씨에게는 ‘mam’이라는 경칭을 꼬박 꼬박 붙여주었기에, 서툰 영어에 움츠러들었던 예나씨의 마음이 한 결 녹아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택시가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예나씨는 남편을 설득하여 무려 5달러의 팁을 택시기사에 건네주었다.

 

예나씨가 이런 저런 미국의 추억에 빠져있는 동안 예나씨가 탄 택시는 영종 대교를 건너 본격적으로 서울의 야경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결혼 전부터 해외 여행을 자주 다녔던 예나씨는 세계 주요 관광지의 야경은 거의 다 봤노라고 자부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예나씨가 제일로 꼽는 것은 역시 뉴욕의 야경이었다. 예나씨는 문득 남편과 함께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보러 갔던 일이 떠올랐다. 남편이 휘파람을 ‘휘익’하고 불어서 택시를 세웠던 그 때의 일이다. 미국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잔뜩 멋을 부리고 나선 예나씨 앞에 펼쳐진 뉴욕의 거리는 그 자체로도 이미 뮤지컬을 뛰어넘는 장관이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예나씨는 어느 도시의 야경을 보아도 뉴욕의 야경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예를 들어 홍콩의 야경은 뉴욕에 비해 너무 산만했고 도쿄의 야경은 뉴욕에 비해 좀 진부했다. 그런 예나씨에게 서울의 야경이라고 별다를 게 있을까. 예의 버릇이 도진 예나씨는 지금 그녀 앞에 펼쳐진 서울의 야경을 뉴욕과 비교해 보았다. ‘그러니까 서울의 야경은 뉴욕보다……’ 하지만 예나씨의 생각에 꼭 들어맞는 적절한 형용사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고, 때마침 예나씨의 스마트폰이 국제전화의 수신을 알리기 시작했다.

 

헬로우, 쟈넷? 응, 나 지금 서울이에요. 아니, 아니에요. 돈 워리 어바웃 미. 에브리씽 이즈 오케이. 정말 괜찮다니까. 노, 노, 돈 텔 힘. 대니얼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줄래요?  

 

대니얼은 다름 아닌 예나씨의 남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수년 전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였다.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이태원의 모든 클럽에서 대대적인 할로윈 파티가 벌어진다는 것은 예나씨처럼 소위 잘나가는 선남선녀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당시에 예나씨는 친구들과 함께 이미 한 달여 전부터 할로윈 파티에서 입을 코스튬을 준비해두고 10월의 마지막 금요일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청바지만 입어도 예쁠 예나씨가 메이드라던가 간호사 같은 코스튬을 갖춰 입고 클럽에 나타나면 뭇 남성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깐깐한 예나씨는 다가오는 남자들 중에서 ‘ㄹ’ 발음을 마치 ‘r’ 발음처럼 완벽하게 굴려서 말하는 대니얼만 상대하기로 했다. 대니얼도 예나씨가 몹시 마음에 든 눈치여서, 시간이 지나 파티가 끝나고 헤어질 때 그는 예나씨의 손에 자신의 명함을 슬며시 쥐어주었다. 아쉽게도 영어가 서툰 예나씨는 그의 명함에 적힌 어려운 직함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니얼의 회사 주소가 미국이라는 사실 하나 만큼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이 되자 예나씨는 망설임 없이 스마트폰을 들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쟈넷과의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은 예나씨는 어딘지 불편한 표정이었다. 예나씨는 계속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별안간 메신저 앱을 켜더니, 친구들과의 대화방을 열어 아까 미처 누르지 못했던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예나씨가 적어두었던 ‘한국 도착!’이라는 메시지가 대화방 창의 맨 아래에 나타났다. 그 상태로 가만히 대화방을 노려보던 예나씨는 이내 메신저 앱을 닫고 그녀가 가장 애용하는 SNS 앱을 켰다. 예나씨의 팔로우 수는 어느덧 4만명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올해 안에 팔로우 수를 10만명까지 채우는 것이 예나씨의 목표이다. 예나씨는 가장 최근, 그러니까 약 20시간 전에 올린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찍은 사진을 클릭하여 댓글을 살폈다. 현재 메신저 프로필의 사진과 같은 것이다. 사진 아래에 있는 ‘Travel to Korea! (한국으로 여행!)’라는 메시지 또한 메신저의 프로필에 적힌 것과 동일하다. 이내 예나씨는 SNS 앱에 딸려있는 카메라 기능을 켜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택시 밖의 야경과 함께 예나씨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순식간에 십여 장이 넘게 찍혔다. 예나씨는 방금 찍은 사진을 주르륵 훑다가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딱 한 장만 골랐다. 예나씨가 애용하는 SNS 앱에는 사진을 편집하는 기능도 있어 매우 유용했는데, 그렇게 예나씨가 시간을 들여 사진의 이곳 저곳을 다듬는 사이에 어느덧 택시는 강변북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건만 도로 위에는 차가 여전히 많았고 주변의 건물들도 태반이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예나씨는 택시 창 밖의 환한 불빛을 받으며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릴 메시지를 골똘히 생각했다. SNS의 메시지는 영어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런 저런 메시지를 입력했다 지우기를 반복한 예나씨는 마침내 ‘Arrived in Seoul. The city shines like stars… (서울에 도착. 도시가 별처럼 반짝인다…)’라는 제법 시적인 문구 하나를 완성했다. 별처럼 반짝이는 도시. 한국말로 하면 촌스러운 표현도 영어로 하면 종종 근사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예나씨가 SNS에서 영어만 쓰는 것을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예나씨의 SNS를 팔로우 하는 사람 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결혼식 직후의 일이다. 예나씨는 결혼식이 끝나고 미국으로 건너가자마자 수일에 걸쳐 하객으로 참가한 친구들로부터 받은 사진과 당시에 고용했던 전문 사진 업체로부터 받은 사진을 적절하게 뒤섞어 자신의 SNS에 업로드 하기 시작했다. 겨우 십여 장의 사진을 다 올리는 데에 며칠이나 소요되었던 까닭은 영어에 많이 서툴렀던 예나씨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한 장 한 장에 어울리는 메시지를 모두 영어로 쓰고자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노력한 보람이 없지는 않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나씨가 올린 결혼식 및 신혼 사진이 작게나마 화제가 되었던 듯 하다. 사람들은 #wedding 이라던가 #marriage, #국제커플, #미국 등의 해시태그를 타고 예나씨의 SNS로 빠르게 흘러 들어왔다. (해시태그만큼은 한국어도 섞어 쓴다는 것이 예나씨의 또 다른 원칙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여쁜 신부인 예나씨와 교포 느낌이 다분한 잘생긴 신랑,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야외 결혼식, 그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차린 신혼살림 사진 등에 뜨겁게 반응했고 또한 열렬히 찬양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예나씨는 더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간이 많았고 달리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신혼여행이 끝나자마자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신혼 살림을 시작한 예나씨는 비단 로스앤젤레스뿐만이 아닌 미국 그 어디에서도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인 대니얼 외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예나씨는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도무지 할 일이 없어 늘 심심해 했던 터였다. 남편을 출근시킨 후 소파에 멍하니 앉아 창문 밖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날이 일주일에 이삼 일은 족히 되었을까. 심지어 로스앤젤레스는 사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어, 예나씨가 하루 종일 바라보아야 하는 창문 밖의 풍경은 일년 내내 똑같기만 했다.

 

그런 예나씨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한 것처럼 그녀의 SNS는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는 고작 몇 백 명에 불과했던 예나씨의 팔로우 수가 삼사 개월 만에 무려 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예나씨는 종종 남편과 데이트를 나가게 되면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두었다가 그 사진을 며칠에 걸쳐 조금씩 올리는 방법으로 SNS를 매일 같이 업데이트 했다. 미국으로 건너 온 이후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것만 같았던 예나씨가 점점 생기를 되찾자 대니얼도 그녀의 SNS 활동을 적극 응원해주었다. 그래서 예나씨는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혼자서 외출하는 대담함도 생겼다. 남편이 출장 가고 없는 주말에는 예나씨 혼자 한인 교회에도 나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귀게 된 쟈넷은 한인 교회에서 만난, 예나씨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이다. 예나씨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온 쟈넷은 예나씨와 서로 같은 처지인지라 통하는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당시에 쟈넷은 십만이 넘는 팔로우 수를 가진 SNS 스타였기에 예나씨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쟈넷은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는 예나씨에게 여러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또한 그들은 자주 만나 ‘브런치 미팅’이라는 것을 하는 사진을 찍어 서로의 아이디를 태그하여 SNS에 업로드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나씨는 쟈넷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