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챠없는 살인마

가챠없는 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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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작은 창문조차 없이 최신형 스마트폰 3대가 유일하게 구석에서 최소한의 밝기로 등불을 대신하고 있는 어두운 방이었다. 그 약한 불빛을 등지고 있는 검은 실루엣의 사내가 낸 목소리는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전혀 따뜻하지 않고 군대 선임의 목소리처럼 차가웠다. 상대방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사내는 벽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누르면서 다시 말했다.

 

“일어나라고 했다.”

 

불이 켜지자, 방 한가운데에 빨간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세상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는 누가 봐도 꿈나라에 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편안해보이는 얼굴과 달리 강제로 앉힌 듯 팔과 다리가 의자에 묶여 있었다. 방금 켜진 불 때문에 뒤척이는 모습을 잠깐 보였지만, 이내 깊은 수면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검은 옷의 사내는 어이가 없어서 살짝 코웃음을 쳤다. 사내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방금 냈던 목소리와 다르게 높은 톤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

 

“아이고! 이 화상아! 아직까지 자고 뭐하는거야! 회사 가야지!”

“아… 엄마… 오늘 오랜만에 휴가 냈어… 제발…”

 

빨간 체크무늬 셔츠의 남자는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출근하라는 잔소리에 휴가라고 받아친 남자는 아직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일단 자신을 깨우는 사람이 엄마가 아닐 뿐더러, 누가 봐도 침대가 아닌 의자에 사지가 묶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에게는 지금 잠이 제일 중요하기에 그런 사소한 오류는 신경쓰지 않고 다시 수면을 취했다.

 

검은 옷의 사내는 이것 또한 예상했다는 듯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잠시동안 생각을 하고 난 뒤, 앉아 있는 남자의 왼쪽으로 갔다. 그러고는 장난기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나직히 속삭이듯이 말을 꺼냈다.

 

“대표님 버그가 나타났는데요.”

“뭐! 그럴리가 없어! 철 지난 만우절 농담도 아니고 말이야!”

 

빨간 체크무늬 셔츠 남자가 온몸을 비틀면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의자에 묶여있는 상태였기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방 안을 살펴보던 남자는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드디어 이쪽을 봐주는구나.”

 

검은 옷의 사내는 어느샌가 빨간 체크무늬 셔츠의 남자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으며 말했다.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친 빨간 셔츠의 남자는 아직까지도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는 생각을 시작했다. 일단은 모르는 사람이 자신 앞에 있고, 모르는 장소에서 팔과 다리가 묶여 있는 상태. 이걸 뭐라고 정의해야할까? 잠시 생각해봤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아 나는 납치당했구나.’

 

“저는 선량한 시민입니다… 왜 이러시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착하게 살았습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사내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걱정마세요, 이희태씨. 저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그냥 단순한 헤드헌터입니다.”

“어? 제 이름을 알고 계시네요. 그리고 헤드헌터라면 저를 스카웃 하시는건가요? 저 이제는 대표라서 책임져야할 직원들도 있고…”

 

그 소리를 듣자 검은 옷의 사내가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희태씨가 뭔가 잘 못 아시는게 있는거 같은데.”

 

그는 벽에 걸려있던 물건 중 하나를 집었다. 원래 용도라면 나사를 조이는 용도로 쓰는 물건이지만, 왠지 다른 용도로 쓸거 같은 빨간 손잡이의 스패너였다. 파여있는 부분이 많이 있지만, 깨끗히 닦아놓아서 새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제가 말하는 헤드헌터는 헤드, 띄고 그리고 헌터입니다.”

 

희태의 구레나룻에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방울이었지만 마치 유전이 터지듯 신나게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모든 일 잘 풀렸다고 콧대가 높아져있던 상태였기에 이런 변수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갑자기 몰려오는 황당한 정보들 때문에 결국 희태는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응답 없음’ 표시가 뜨면서 전부 종료되어 버린 컴퓨터를 바라보는 사람의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인생도 세이브, 로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

“뭐라는지 모르겠고, 일단 잠깐만 있어봐.”

 

말과 동시에 사내는 구석에 있는 테이블 쪽으로 갔다. 하늘이 내려준 잠깐의 시간 안에 희태는 어서 살아나갈 방법을 궁리해야만 한다. 그 생각이 들자 희태는 빠르게 주변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둘러보면 둘러볼 수록 우울함에 빠졌다. 저격총부터 시작해서 권총까지 여러 종류의 총기와 그에 걸맞는 부품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반대쪽 벽에는 검정색 양복 여러벌과 다양한 직업의 작업복이 걸려있었다. 마지막으로 등지고 있는 사내가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자, 희태는 약간의 희망을 얻기 시작했다.

 

 

구석으로 간 검은 옷의 사내는 놓여있던 휴대전화들을 바라봤다. 화면 속에서는 캐릭터들이 알아서 열심히 필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좋은 아이템 하나 얻기 위해 몇시간이고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힘겹게 보스를 잡던 시대는 지나갔다. 어릴 때야 팔팔하고 시간이 널널해서 가능했지만, 나이를 먹으니 일하느라 바쁘고 퇴근하면 힘들어서 제대로 게임을 할 기운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자동으로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을 검은 옷의 사내는 두 팔 들어 환영했다.

 

실제로 그는 많은 모바일게임들을 했고, 그에 걸맞는 금액도 썼다. 어렸을 때, 돈이 없어서 월정액 결제를 못해 눈물을 머금고 게임을 접었던 과거가 사내에게는 있었다. 커서 돈을 벌기 시작하자, 그는 어떤 게임을 하더라도 ‘큰손’급으로 돈을 쓰면서 즐겼다. 물론 그만큼 많은 돈을 벌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문직 좋다는게 노력한 만큼 받을 수 있다는거 아니겠는가. 보수만 많이 준다면 어떠한 업무라도 상관없이 조용하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렇지만 이런 사내가 처음으로 의뢰도 받지 않고 현상금을 노리는 것도 아닌, 자신의 의지에 의해 사람을 납치했다. 검은 옷의 사내는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허나 할 수 밖에 없다고 되새겼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사냥을 도는 캐릭터들의 세팅을 끝맞췄다.

 

 

희망을 얻은 희태는 과부하 걸려서 강제종료 당한 아까와 달리,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에 들지 쉬지 않고 생각했다. 볼일을 마친 검은 옷의 사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책상 위에 걸터 앉으며 희태를 바라보았다. 희태가 보기에 킬러의 모습은 자신이 회의 시간에 탁자에 앉던 모습과 유사했다. 차이점이라면 자기 옆에는 장난감으로 너프당한 총이 있었고 사내 옆에는 진짜 총이 있다는 차이 뿐이었다.

 

“이희태. 내가 너를 데려오기 위해서 얼마나 힘쓴지 아니?”

“예? 저를요? 제가 뭐라고…”

“아니야. 넌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 나를 이기다니, 인정해주지.”

 

킬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희태는 무슨 의미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 말을 이어갔다.

 

“감…감사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저한테… 돈이 목적이시면 최대한 빨리 드리겠습니다.”

“돈?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

 

비굴한 희태의 모습을 보던 검은 옷의 사내는 옆에 있던 총을 집으며 말을 이어갔다.

 

“너를 잡기 위해서 몇 주를 공들였는지 모르겠네. 내가 제일 길게 작업했던게 3주짜리였는데, 너 때문에 한 달을 다른 것도 못하고 이 일에만 공을 들였어.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될지 몰라. 내가 나름 업계에서 꽤 단가가 쌘 경력직이라서 말이야.”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킬러의 머리 속에 희태를 잡기 위해서 노력했던 나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회사이름과 위치를 파악하고 주변 지리 조사하는데는 1주일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3주기 더 걸릴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회식 이후 만취 상태의 희태를 노리기로 결심했다. 단 둘만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쉽고 이동하기도 편한 택시를 이용해서 납치를 꾀하였다.

 

문제는 희태네 회사가 영세한 소규모의 게임 개발사였다는 점이다. 게임을 새로 출시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잘 나가더라도 인력이 부족하여 축하 회식을 할 여유조차 그들에겐 없었다. 매일 터져나가는 서버, 뚱딴지같은 버그, 쏟아져나오는 유저들의 불만을 소화하기 위해 그들은 매일 야근을 했다. 매일 저녁을 배달 도시락으로 해결하니 납치할 타이밍이 없었다.

 

그래서 킬러는 야근이 끝나서 지쳐있는 희태를 납치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지하철이 끊기는 시간이면 자가용이 없는 희태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길어야 1주일만 대기하면 될 줄 알았지만, 그런 안이한 태도는 우리나라 프로그래머들을 얕본 것이었다. 그들은 퇴근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들은 퇴근을 하지 못했다. 라꾸라꾸 침대가 1인 1개씩 구비되어있는 완벽한 복지를 자랑하는 희태네 회사였다. 냉장고 있음, 온수 나옴, 컵라면 제공 등의 다른 중소기업의 훌륭한 복지를 뛰어넘는 수준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밤이 아닌 낮에 씻거나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들렸고 당연히 비싼 택시 대신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희태 또한 회사의 대표이지만 택시를 탈만큼 부자는 아니었다. 사내는 항상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의뢰를 받았기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타겟은 처음 겪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이럴 때 나타나는 것. 상대해본 경험은 없지만 일단은 인내심 있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참고 기다리다보면 수가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매일 회사 앞에서 택시를 타고 기다린지 다해서 한 달째, 드디어 희태가 마음의 여유가 생겨 새벽 1시에 택시를 호출하였다. 그날은 희태네 게임 속 뽑기 상자에 SSR등급의 5성 전설 카드가 추가된지 5일이 지난 날이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양복의 사내의 분노가 최고조에 달하던 날이었기도 했다.

 

킬러는 오래 기다린 만큼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희태를 택시에 태웠다. 휴대전화를 통해서 구조신호를 보내지 못하게 전파방해장치를 설치했고 난동을 부릴 것을 대비하여 수면가스 살포장치도 장착해두었다. 자신은 마시지 않기 위해서 조수석 서랍, 즉 글러브 박스에 방독면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출발하고 30초가 지나 사거리에서 빨간불에 걸리자 사내는 뒤를 슬쩍 보았다. 그러고 뒤를 돈 상태로 한심한 듯 한참 동안 희태를 쳐다보았다. 희태는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치과에서 벌리라고 해도 불가능할 크기로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기에 킬러는 특별한 조치없이 방으로 옮겨왔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

 

납치 과정을 다시 복기하다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밝히는 사내였다. 희태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살기 위해서 “아이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화가난 사내는 익숙한 솜씨로 권총을 장전하고 머리를 향해 겨냥했다. 희태는 모델건으로는 수백번 봤지만 실제로는 처음 본 권총의 싸늘함에 온 몸이 차가워졌다. 몸이 얼어서 아무 것도 못한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너가 더 잘 알거다.”

“저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살려주십쇼!”

 

사실 희태에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억울했다. 그는 정말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집을 담보로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월세는 사무실 보증금에서 지불했다. 진짜 벼랑 끝에 자라는 작은 나무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중이었다. 마지막 도전으로 생각하고 내놓은 게임이 바로 전국민과 더불어 킬러 또한 즐기는 “HIT.E 온라인M”이었다.

 

희태네 게임은 집을 팔아야지 살 수 있다는 검이 존재하는 그 유명한 게임을 이기고 매출순위 1위를 차지했다. 하루 매출이 100억 단위로 찍히는 게임을 하루만 이겨도 엄청난 뉴스인데 현재 한 달째 순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팬티빼고 다 담보로 잡혀있다고 봐도 무방했던 희태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줬다. 물론 아직 사귄적이 없어서 희태는 그 기분을 잘 모른다.

 

“HIT.E 온라인M”이 성공한 요인의 첫번째는 당연히 재미였다. 무언가 창의적인 시스템을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모바일게임들이 가지고 있던 흥행요소들을 적절히 섞었다. 특히 자동사냥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귀찮음을 돈으로 사는 많은 ‘핵과금’ 유저들을 제대로 노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핵과금’ 유저들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매출 1등을 달성할 수 있었다.

 

“허… 잘못이 없어? 너희가 내놓은 뽑기를 보고도?”

“저…저희는 법이 지키는 선에서…”

 

희태는 사내의 얼굴 표정이 굳어가는 것을 보자 하던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희태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제일 좋은 등급의 무기인 SSR등급의 5성 전설 카드가 상자에서 나올 확률이 0.00018%이지만 그는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 홈페이지에 확률을 공지한다면 낮든 높든 상관은 없었다. 이론적으로 55만 5천 556개의 상자를 뽑으면 나오는 확률이어도 위법은 아니었다. 상자 하나에 3천원이니까 겨우 18억 3333만 4천 8백원만 쓰면 뽑을 수 있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