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제2회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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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은 흔하고 흔한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책에서, 드라마에서, 뉴스에서, 중후한 목소리의 연예인이 진행하는 사회 고발 프로그램에서, 범죄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우리 일상의 곳곳에서,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접했을 진부하지만 자극적이고, 안쓰럽지만 불편한 그런 이야기.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 나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떨어트렸다. 아버지는 꿈을 꾸는 표정이었다. 오른손에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과도를 들고, 왼손에는 초록색 술병을 들고 있었다. 그 구역질나는 초록색 병은 그의 손에 있는 게 당연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한시도 손에서 술병을 내려놓지 않았으니까.

어린 시절에는 그 초록색 술병이 아버지 손의 일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 정도로 그 투명한 초록은 그의 손에 있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과도는, 어머니의 피가 흐르는 과도는 그의 손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풀린 동공이 천천히 나를 향했다.

“이제 오냐? 이리 와서 사과 좀 예쁘게 깎아봐. 씨발, 이 년은 사과도 못 깎아.”

아버지가 나에게 과도를 내밀었다. 바닥에 깎다가 만 못생긴 사과 하나가 구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건네는 과도를 받아 들었다. 그 과도로 사과 말고 다른 것을 깎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머리라든가, 아버지의 목이라든가, 아버지의 피부라든가, 아니면 나의 피부라든가, 나의 목이라든가, 나의 머리라든가.

고개를 돌려 누워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의 몸은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고 목은 반쯤 너덜너덜해져 주위로 검붉은 피의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전에도 그녀의 몸이 뒤틀렸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몇 번? 아니, 수없이 있었다. 내가 보지 않았던 것까지 합친다면 더 많겠지. 그녀의 몸을 뒤틀게 한 것은 열에 아홉은 아버지였다. 남은 하나는 그녀 스스로였다. 저것을 이제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나, 내가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이제 어디에 있나.

사실 언제든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든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일 수 있었고 언제든지 나도 아버지를 죽일 수 있었다. 항상 차마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과도로, 어머니를 죽인 과도로 내 안의 ‘차마’를 끊어버렸다. 싹둑 잘렸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의 목을 잘랐다.

사실 이것은 공평하지 않다. 그 동안 그가 우리에게 베푼 폭력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아직 한참이나 공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이란 것이 원래 불공평한 것 아닌가. 나는 어머니와 똑같이 목이 찢겨 그녀의 곁에 풀썩 쓰러지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결국 오늘에서야 모든 일이 벌어졌다.

내 손에 들린 과도엔 이제 아버지의 피와 어머니의 피가 섞여 들었다. 우리는 가족이니, 그래, 가족이니 이제 내 피마저 섞이면 우리는 과도 안에서 다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가 싫었다. 죽어서까지 피가 섞이기는 싫었다. 그래서 새 칼을 꺼냈다. 과도보다 큰 식칼이었다.

과도보다 더 잘, 한 번에 썰릴 것이다. 나는 그때서야 문득 어머니와 아버지를 과도 안에 함께 살게 한 것이 죄송해졌다. 어머니는 죽어서까지 자신을 찌른 흉기 안에 아버지와 함께인 것이다. 각자 다 다른 칼에 살았어야 되는데, 하고 후회를 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내가 떨어뜨린 비닐봉지를 주워들었다. 안에는 어머니가 먹고 싶다던 초밥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던 연어초밥과 새우초밥을 꺼내 뒤틀린 그녀 앞에 두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눈은 감겨 있었다. 만약 떠 있었다면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문어초밥을 입에 넣었다.

어머니가 먹고 싶다던 초밥 상자에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문어초밥이 있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던 돈으로는 제일 저렴한 모둠초밥밖에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언젠가 어머니에게 연어와 새우로만 된 초밥을 사주기로 했었는데, 결국 그녀는 모둠초밥밖에 먹지 못했다. 문어초밥은 그녀가 왜 싫어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나는 초밥을 씹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다.

내가 더 빨리 집에 왔다면 달라졌을까?

내가 초밥을 사러 나가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전날 사과를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면 달라졌을까?

집 안의 모든 과도를 버렸다면 달라졌을까?

어머니는 죽지 않고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는 간단하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는 굳이 사과가 아니어도 어머니를 죽였을 것이고,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그녀를 찔렀을 것이다. 나 역시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언젠가 아버지를 죽였을 것이고, 어머니가 죽지 않았어도 아버지를 죽였을 것이다.

동기나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언젠가는 벌어지고야 말 일이었던 것이다. 단지 그 날이 오늘이었던 것뿐. 어차피 바뀌지 않을 운명이었다. 질긴 문어초밥을 꼭꼭 씹어 삼키자 모든 미련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개운한 상태로 칼을 들어 내 목을 찔렀다.

사라져 가는 의식 사이로 들어서는 안 될 생각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기왕이면 어머니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2

이것은 흔한 이야기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교 근처에서 홀로 자취를 하는 여대생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은 흔하다는 표현을 넘어서 어떠한 상식 같은 것이다. 어떤 범죄자도, 온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 통학하는 건장한 남자를 노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가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은, 대상의 적절성으로 보았을 때, 이보다 더 적절한 표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아주 흔하고 당연한, 범죄를 행할 범죄자에게 있어서 상식적인 일이었다.

나는 수개월째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다.

스토커는 내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집에 갈 때,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때, 도서관을 갈 때, 친구들과 놀러 갈 때,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스토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일이나 학교가 늦게 끝나 밤에야 집에 갈 때는 나의 발에 맞춰 걷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내 걸음이 빨라지면 한 박자 느리게 그 걸음도 빨라지고, 다시 느려지면 한 박자 느리게 그 걸음도 느려졌다. 그래서 내가 공포심에 뛰기 시작하면 그 걸음은 이상하게도 감쪽같이 멈췄다.

그리고 멀어지는 등 뒤로 스토커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울음 같기도 하고 웃음 같기도 했다. 깔깔 웃는 소리 같기도 했고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 모두일지도 몰랐다. 아마도 스토커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미친놈일 것이다.

스토커는 어떤 때에는 자취방 안까지도 들어왔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하지만 점점 이상함을 느꼈다. 밖에 나갔다 오면 집 안의 물건들의 위치가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구겨져 있는 침구의 모양이 다르다든가, 아니면 깔끔하게 펴져 있다든가, 나는 설거지를 했던 기억이 없는데 설거지가 되어 있다든가, 전공서적을 분명 책상 위에 놓았었는데 좌식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든가, 두 번째 서랍에 넣어둔 수첩이 세 번째 서랍으로 이동했다든가 하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없어지는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스토커들이 그렇게 노린다는 속옷도 그대로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내 주변 지인들에게 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는 말할 수 없었다. 공부 따위 때려치우고 다시 내려오라고 하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에 지인들은 너무도 자연스레 네 착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 쉽게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라고도 말했다.

아마 그냥 네 뒤를 걷던 일반인이었을 거라고, 오히려 네가 갑자기 뛰어서 당황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물론 경찰서에도 가보았다. 하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이 없기 때문에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전부 나를 신경과민의 히스테릭한 여자로 보는 것 같았다. 아, 그것은 사실이었다. 당시 나는 신경과민도 맞았고 히스테릭한 것도 맞았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