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리스트

  • 장르: 추리/스릴러 | 태그: #네일리스트 #추리단편 #추리스릴러단편선 #이경민 #네일
  • 분량: 68매
  • 소개: 카라 오피스텔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경찰은 피해자 거주지의 아래층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던 ‘나’에게 찾아와 질문을 던진다. 더보기

네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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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손은 종잇장 같았다.

이런 손을 다듬을 때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신경이 곤두서고는 했다. 니퍼의 날을 세워 큐티클을 잘라내는 동안 숨을 쉬는 것조차 불편했다. 개구리처럼 얇은 피부에는 파랗다 못해 보랏빛을 띠는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저 연약한 피부는 조금만 힘을 주거나 각도가 어긋나도 금세 피를 철철 흘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니퍼는 어제 날을 갈아 놓아 다른 때보다 특별히 더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내 왼손 약지에 반창고가 감겨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슬쩍 닿았을 뿐인데 깊게 찔린 듯 피가 멈추지 않아 반창고에는 짙은 핏물이 배어났다.

“어떤 색을 발라 드릴까요?”

여자의 시선이 네일 컬러가 진열된 선반으로 향했다. 옅은 색에서부터 진한 색, 네온컬러와 글리터까지 쭉 훑어 내린 여자의 시선은 가장 높은 첫 번째 선반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높은 채도를 지닌 색들이 모여 있었다.

“저거요. 왼쪽에서 두 번째, 파란색.”

그녀의 긴 손톱 끝은 정확히 D사의 네일컬러인 ‘블루다이아몬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짙은 네이비에 새파란 글리터가 빼곡히 들어 있는 매니큐어. 백열등 아래서 이리저리 비춰 볼 때마다 그 오묘한 빛에 홀릴 듯한 색이었다. 하지만 이런 색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아주 하얀 피부가 아니라면 여간해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처음에 그 색을 칠해 달라며 눈을 빛냈다가 자기 손에 나타난 결과물에 실망하는 여자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매니큐어는 제게 어울리는 주인을 찾은 듯했다.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저런 손을 위해 태어난 색이었다.

“손이 하얘서 잘 어울리겠어요.”

네일리스트의 부가적인 서비스 중 하나는 수다였다. 오피스텔에 세를 얻어 네일숍을 연 후로, 무수히 다양한 직업과 환경을 가진 여자들이 다녀갔다. 자기 손을 잡고 있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무장해제 되는 것인지, 손님들은 굳이 묻지 않은 말까지도 잘 토해 냈다.

‘이렇게 손 예쁘게 하고 가면 남자친구가 좋아하겠네’라는 립서비스에 얼마 전 이혼했다며 깔깔거리던 손님도 있었다.

‘이혼했으니 더 예뻐져야죠’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뒤로는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위자료 얘기까지 와르르 쏟아내고, 반짝반짝 빛나는 손톱을 보며 신이 나서 오피스텔 문을 나섰다.

그 손님이 가고 난 뒤 타이레놀 두 알을 꺼내 급히 삼켰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시술만 받는 손님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지금 ‘블루다이아몬드’를 발라 주고 있는 손의 주인이 그랬다.

“……이 건물이죠? 카라 오피스텔 살인사건.”

나는 손톱 위에 얹은 붓을 신중하게 놀렸다. 블루다이아몬드를 손톱 위에 제대로 발색해 내는 일은 꽤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잘못하면 펄이 뭉쳐 제대로 빛이 살지 않았다. 모든 매니큐어가 그렇지만 이 색은 특히 더 얇고 고르게 펴발라야 본연의 색을 살릴 수 있었다.

“704호였나, 여기가 6층이니까…… 바로 위층이네요? 언니는 안 무서워요?”

말을 하며 손을 움직이는 통에 붓이 슬쩍 빗나갔다. 이런 진한 색은 붓자국이 손톱에 남기가 쉽다. 붓을 도로 통에 넣은 뒤 아세톤을 묻힌 솜으로 반쯤 발리다 만 매니큐어를 닦아냈다.

“무섭죠. 밥줄 끊길까 봐.”

툭 던진 대답에 여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덕에 또 한 번 붓이 어긋났다. 나는 검지와 엄지를 한껏 오므려 여자의 중지를 쥐어 잡았다. 무언의 짜증이었으나 늦은 밤의 손님은 말을 멈출 줄 몰랐다. 그녀는 붓을 쥔 채 고개를 숙인 내 귓가에 얼굴을 들이밀고 속삭였다.

“몸 파는 여자였다면서요?”
카라 오피스텔 주민들은 704호를 ‘그 집’이라고 불렀다.

엄연히 말하면 그곳은 집이 아니었다. ‘먹고 자는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곳’이라는 전제하에서는 그랬다. 사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 오피스텔에 ‘집’은 없었다. 네일숍에서부터 피부관리실과 마사지숍, 타투 시술업소, 타로 점과 사주풀이를 하는 가게까지. 심지어 무당집도 있었다.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전단지는 그 종류도 다양했고, 똑같이 생긴 철제 현관문 너머는 모두 삶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이 중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별로 없었다. 특히, 704호가 그랬다.

704호에는 정기적으로 여러 명의 여자들이 드나들었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남자들이 그 집을 찾아들었다. 하지만 한 번에 여러 명이 그 집에 드나드는 법은 없었다. 대개 여자가 먼저 도착하고 10∼20분 후에 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두어 시간이 흐른 후에는 들어갈 때와는 반대로 남자가 먼저 오피스텔을 나섰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거나 잠시 외출을 할 때 우연히 본 바로는 그랬다.

‘ㅁ’자 구조인 오피스텔은 내 네일숍이 있는 614호에서 나와 고개를 들면 자연스레 704호가 보였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얼굴이 비교적 뚜렷하게 보였고, 때문에 의도치 않게 종종 그 집을 관찰하게 되었다. 704호에 들어가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도 아래쪽은 잘 쳐다보지 않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이었다. 704호 주변에 경찰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바깥을 살폈으나 누구 하나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아마 일반 아파트나 빌라였다면 대놓고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테지만, 이곳에는 숨어 있는 구경꾼들만 있었다.

옆집도 마찬가지였다. 타로카드점을 봐주는 613호 여자가 박쥐처럼 목만 쑥 내밀어 바깥을 살피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드디어 떠들 사람을 찾았다는 듯 카드 한 장을 흔들어 보였다.

“그 집이야. 어제 나한테 카드 좀 봐 달라더니, 이게 나왔단 말이지.”

손에 들린 것은 ‘죽음’ 카드였다. 타로 점 여자는 그조차 불길하다는 듯 카드 귀퉁이만 손끝으로 잡고 있었다.

“그래서 몸조심하라 일렀는데, 뭐 이번에 받을 손님이 날 죽이려나 보다고 깔깔거리더만. 지가 먼저 죽어 나갔네.”

타로 점쟁이는 집으로 들어가며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공중으로 날렸다. 죽음 카드는 공중에서 나선을 그리며 나풀나풀 날아 오피스텔의 중앙 정원 화단에 떨어졌다.

살해된 여자는 그 시각에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욕정을 풀러 왔던 남자는 침실에 길게 드러누운 여자의 시체에 기겁을 하고 달아났지만 휴대폰을 떨어트리고 가는 바람에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여자의 사인은 독극물 중독이었다.

공교롭게도 6층과 7층의 CCTV는 고장 난 상태였다. 꽤 오래전부터였지만 수리하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경비원인 아저씨는 고작 몇 미터 앞에서 인사를 해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주름에 내리덮인 눈은 거의 장식품이나 다름없었다. 경비실에 앉아서 CCTV 화면을 보는 게 아니라 그저 고개를 같은 각도로 고정할 뿐이라는 건 주민이라면 익히 다 아는 사실이었다.

“영업 중인데 실례가 많습니다.”

형사는 신발을 벗으며 들어왔다. 흔히 상상해 오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머리는 단정했고 신발은 운동화가 아닌 가죽으로 된 옥스퍼드화였으며 입고 있는 셔츠와 면바지는 모두 고가의 신사복 브랜드였다. 무엇보다, 여자의 영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사망한 민혜경 씨가 이 집 단골이라고 들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 드릴 게 있는데, 아, 너무 긴장은 마시고요. 어디까지나 조사 차원입니다. 다른 집들도 다 돌고 있어요.”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는 이 공간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눈에 날을 세운 채 오피스텔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사람들 많이 대하시죠? 네일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으레 그렇던데.”

‘네일 아티스트’라는 말을 조금도 더듬거나 어색해하지 않고 말하는 남자를 본 게 언제였더라. 딱히 남편 말고는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네일 아티스트는 네일에 아트를 하는 사람이라는 국한적인 뜻이고요, 정확히는 네일리스트라고 해요. 손톱의 건강을 지켜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니퍼를 닦아 자외선 소독기에 하나씩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모순된 말이긴 해요.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를 지우려면 아세톤을 써야 하는데 아세톤은 손톱 표면을 부식시켜서 약하게 만들죠. 매니큐어도 오래 바르고 있으면 안 좋고요. 손톱은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게 가장 좋은 케어법이죠. 그러면 우리는 밥줄이 끊기겠지만.”

“그러니까 결국 약하게 만들었다가 다시 건강하게 만들었다가 반복하는 직업이란 겁니까?”

질문을 던지는 형사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러나 속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하는 말 같지만 모든 것이 예리했다.

“사람을 많이 대하죠? 이를테면 이런 직업 여성들도.”

형사는 집요했다.

“네, 단골 고객이었어요.”

아마 이 답을 유도해 내기 위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선반에서 VIP 고객 차트를 꺼내 보여 주었다. 안에 기재된 사람은 총 15명으로, 일 년 이내에 1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쓴 사람들이었다.

차트를 넘기던 손은 ‘민혜경’이라는 글자에서 멈췄다. 죽은 여자는 회원권을 끊어 손톱을 관리하던 사람이었다. 현재 남은 금액은 36만원이었지만 앞으로 쓸 일은 없겠지.

“연장, 풀컬러, 스톤?”

“시술 내용이에요. 손톱이 깨져서 팁을 붙여 길게 연장한 후에 컬러를 바르고 큐빅을 붙인 거죠.”

“날짜가…….”

“어제네요.”

나는 붉은색 네임펜으로 큼지막하게 쓴 숫자를 검지로 짚었다.

“특별한 얘기를 하거나 그런 것은 없습니까? 별별 얘기들을 다 하잖아요, 이런 데선.”

말은 툭 던져 놓고 또다시 예리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렇죠. 남자들이 몸 파는 여자들이랑 몸만 섞는 게 아니라 같이 마누라 욕도 하고, 첫사랑 얘기도 하고, 인생 사는 얘기도 하는 것처럼.”

형사는 아무렇지 않다는 내 대답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혜경 씨가 얘기해 주던가요?”

“그냥, 손님들 얘기요. 어제는 상대하기 어려운 손님이 왔다, 요새 들어 지명 건수가 줄어들어 수입이 시원찮다, 친구가 곧 이 생활 청산하고 남자 친구랑 결혼한다더라, 뭐 이런 것들요.”

형사는 다시 여자가 자주 하는 이야기나, 남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느냐며 넌지시 물어왔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어 갈 속셈이었다.

“다른 손님들도 와서 그만큼은 이야기해요. 그런 걸 하나하나 다 기억하다가는 내가 먼저 미쳐 죽을걸요. 적당히 듣고 적당히 흘려라, 이 업계의 미덕이죠.”

너무 방어적으로 답한 것일까. 형사는 턱을 몇 번 쓸더니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그렇게 쳐다본들 더 해줄 이야기는 없었다.

“색깔이 정말 많네요. 민혜경 씨가 발랐던 것도 있나요?”

형사는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는 매니큐어가 진열된 선반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거예요.”

나는 선반 제일 위쪽에서 매니큐어 병 하나를 꺼냈다.

“예쁘죠? 블루다이아몬드라고 해요.”

“이름 참 호화스럽네요.”

‘겨우 이까짓 게?’라는 말은 일부러 자른 듯했다.

“여자들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니까요. 남자들은 그런 이름 잘 못 외우겠지만.”

숍 안을 하나하나 긁어내듯 살피던 형사의 시선이 벽에 걸린 액자에서 멈췄다. 늘씬한 금발의 백인 미녀가 상반신을 노출한 채 관능적으로 펼친 손가락만으로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손톱에 칠한 블루다이아몬드는 모델의 눈빛만큼이나 아찔했다.

“아름답죠?”

입을 다문 채 멍하니 포스터를 보던 형사는 내 질문에 정신이 돌아온 듯 헛기침을 했다. 처음 이 컬러가 나왔을 때 오묘한 색깔만큼이나 화제가 됐던 것이 바로 이 포스터였다. 당시 무명이었던 모델은 이 포스터 하나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블루다이아몬드는 저주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기도 해요. ‘호프 다이아몬드’ 일화가 유명하죠. 그 보석을 가진 사람마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거든요. 그 보석을 거쳐 간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이는 마리 앙투아네트예요. 단두대에서 목이 날아간.”

나는 손으로 목을 뚝 자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니까, 가지고 있으면 죽는다, 아름답지만 독이 있다, 뭐 그런 의미로군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고……. 거참, 오싹한데.”

나는 병을 백열등 아래로 가져가 이리저리 돌려 보여 주었다. 빼곡한 글리터가 마치 진짜 다이아몬드처럼 불을 뿜었다.

“오싹한 이야기 하나 더 해드릴까요?”

손님이 아닌 사람과 말을 섞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하는 말에 형사가 보이는 반응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저 모델은 자살했어요. 청산가리를 먹었다나……. 그때 블루다이아몬드의 저주라면서 떠들어 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외국 모델이라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빈자리에 도로 블루다이아몬드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무슨 색을 발랐는지도 다 기억을 하십니까? 손님들이 많다면서.”

“이건 워낙 특이해서요. 찾는 사람은 많지만 어울리는 사람은 많지 않죠. 처음에는 이 파란빛에 홀려 집어들었다가 도로 내려놔야만 하는데, 혜경 씨 같은 경우엔 잘 어울려서 종종 바르곤 했어요. 저도 특별히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잘 어울리는 손을 가진 손님을 만나면 반가울 수밖에.”

형사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참, 재미있는 얘길 많이 듣네요.”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이 오피스텔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던지고 싶었을 본론을 꺼내들었다.

“경비원이 그러더군요. 민혜경 씨가 죽기 전날 밤에, 614호에 사는 여자가 밤중에 갑자기 집에서 뛰어나와 7층으로 올라갔다고.”

형사의 어조는 담담했다.

“그것이 704호에 갔다는 증거가 되나요? 게다가 우리 오피스텔 경비원은 시력이…….”

“나쁘죠. 하지만 이곳에서 오래 일하면서 오피스텔의 구조나 어디에 누가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귀신같이 잘 기억하더란 말입니다. 그날 밤 614호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누가 나오는 걸 봤다고. 그리고 저는 704호에 갔었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짧은 침묵이 스쳐 지나간 뒤 형사는 조사차 재방문할 수 있으니 협조 바란다는 의례적인 말을 하며 현관으로 갔다.

“형사님.”

나는 등을 보인 채 신발을 신고 있는 그를 불러 세웠다.

“혜경 씨가 독극물 중독으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무슨 독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아직 성분 분석 중이긴 한데, 증상으로 봐서는 시안화칼륨이 확실합니다.”

형사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조금의 떨림이나 깜빡임도 없이, 얼굴의 근육과 미세한 경련까지도 다 잡아낼 것처럼.

“시안화칼륨?”

“아, 그렇게 말하면 모르시겠구나. 청산가리요, 청산가리.”

허허,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내친 김에 질문을 더 던졌다.

“범인은요?”

“남자관계를 파다 보면 나올 겁니다.”

이런 것쯤 뻔하다는 말투였다. 직업여성이 자신이 일하는 업소에서 살해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살인사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

“혜경 씨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는 남자는요? 그냥 손님? 아님 애인?”

“본인은 애인이랍디다.”

그가 나가고 다시 문이 닫히고 나자 오피스텔에 나직한 침묵이 찾아들었다. 이 오피스텔의 단점 중 하나는 외부로 난 창이 없어서 채광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창문들은 하나같이 중앙 정원을 향해 나 있었다. 때문에 시계를 보지 않고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나는 이곳에 시계를 들여놓지 않았다. 휴대폰에도, 노트북에도 시계 기능이 있기에 굳이 장만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노트북은 오늘 켜지 않았고, 아까 밥을 달라고 칭얼거리던 휴대폰도 지금은 완전히 꺼져 있었다. 내가 시간을 알 수 있는 도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지금이 오후 5시쯤 되었으리라는 짐작은 가능했다. 그림자의 길이로, 주변을 감도는 공기의 무게로 느껴지는 어떤 기운 같은 것에 적응이 되면서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녀가 어제 내 숍을 찾은 것도 이 시간대였다.

그녀의 왼손 엄지손톱은 너덜너덜했다. 치아로 잘근잘근 뭉개 놓은 손톱의 끝이 위태롭게 갈라져 있었다. 심지어 물어뜯은 그 손톱도 팁으로 연장한 가짜 손톱이었다. 손톱에서 팁을 분리해 내자 손가락의 반을 겨우 가린 진짜 손톱이 보였다. 그 끝은 가짜 손톱과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했다.

“하도 물어뜯어서인지 이제는 잘 자라지도 않아요. 징그럽죠?”

그녀는 자신의 치부를 들키기라도 한 양 조심스레 말했다.

“가짜 손톱이라도 붙여놓으면 덜할 줄 알았는데 웬걸요. 똑같이 물어뜯고 있는 걸 보니 내가 미쳤나 싶은 게…….”

여자가 내 숍에 오기 시작한 지 3개월 동안 찢겨진 엄지손톱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볼 때마다 놀라고는 했다. 네일리스트를 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손과 손톱을 봐 왔지만 저토록 심하게 물어뜯은 경우는 흔치 않았다. 흡사 피라냐에게 물렸다가 놓여난 손톱 같았다.

나는 반밖에 남지 않은 손톱에 영양제를 발라 주고 팁을 붙여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럼 이번엔 큐빅을 붙여 줄게요. 반짝이는 거라도 붙어 있으면 좀 덜 하지 않을까? 서비스로 해줄게요.”

“어머, 언니, 안 그래도 되는데.”

일 년에 몇백 만원씩 들여 손톱을 갈고 다듬는 여자라도 서비스라는 말에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플라스틱 통을 열어 큐빅 몇 개를 꺼내 엄지손톱에 올려 주자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마치 처음 봉숭아물을 들여 본 여자애 같았다. 무지갯빛 광택이 도는 흰색 스톤을 가장자리에 붙이는 것으로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다.

“예쁘다.”

여자는 황홀한 눈으로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길고 단단한 가짜 손톱 아래에 볼품없이 찢겨진 진짜 손톱이 숨겨져 있는 건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리라.

“일부러 손톱 끝에 가깝게 붙였어요. 물어뜯지 말라고.”

그녀는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여전히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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