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뫼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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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사내가 물었다.

“그건 후회입니다.”

사내는 민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민경은 조금 전까지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고 있었다. 200년 만의 우주 쇼가 어쩌고 하는. 행성이 거대한 십자가 모양으로 연결되고, 그 선상에 직선으로 이어지는 곳이 바로 한국 어디라 해서 때 아닌 관광 붐이 일고 있다고 했다. 민경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사내를 보았다.

기차 안. 자리가 텅텅 비었는데 이 남자는 조금 전에 굳이 옆에 와 앉았다. 그러고는 이상한 말을 건네고 있다. 젊은 여자에게 수작을 부리려 한다는 생각이 들 법하지만, 웬일인지 칙칙한 기운이 없이 담백했다. 마치 오래된 나무를 대하듯 무색무취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상했다.

“이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난 없을 겁니다.”

사내가 다시 말했다.

“다음 역에서 내리시나요?”

결국 민경은 남자의 헛소리에 대꾸해 주고 말았다.

“그런 게 아니라 터널의 어둠 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거란 얘기죠.”

민경은 사내의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더 캐묻지 않고 침묵했다.

사내는 가방을 선반에 올려놓지 않고 굳이 어깨에 메고 있었다. 조그만 메신저 가방이었다. 민경은 문득 경계심이 들었다.

“가방은 왜 메고 계세요?”

사내는 가방을 가볍게 툭 쳤다.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거든요.”

“뭐가 들어 있는데요?”

민경이 웃으며 물었다. 사내도 씩 웃었다.

“마약입니다.”

“네?”

민경은 움츠러들었다. 아무리 그의 인상이 선하고 무해하다지만 가방 안에 든 물건이 마약이라는 데야 움찔할 수밖에 없다. 사내는 하하, 웃었다.

“염려 않으셔도 됩니다. 전 마약상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 반대쪽이라 할 수 있죠.”

사내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전 판사입니다.”

사내가 밝힌 의외의 직업에 민경은 사내를 다시 쳐다보았다. 마약상보다는 판사가 어울리는 외모이긴 했다. 깡마른 몸에 하얗고 유약한 얼굴. 거리를 헤매다 만난다면 부담 없이 길을 물어볼 만한 인상이었다. 후줄근한 면바지에 폴라 티, 점퍼 차림이었는데, 낡았지만 나름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사내가 말했다.

“같은 인생을 수십, 수백 번 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십, 수백 번? 부러운데요. 어쨌든 길게 사는 거잖아요.”

“그렇기도 하겠군요. 하지만 실제로 같은 인생을 반복하게 된다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선생님이 그렇게 살아 보시기라도 하셨나요? 마치 단정하시는 것 같네요.”

자기 말이 우스워져서 민경은 그만 푸훗 하고 웃었다.

“네, 맞습니다. 제가 그 장본인입니다.”

민경은 사내를 말없이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농담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미친 사람 같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근데 전 지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아니, 오히려 아는 사람에겐 이야기를 할 수가 없을 듯해서요. 차라리 모르는 분에게 제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절대로 믿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기차는 들판을 지나 긴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 전 역에서 출발할 무렵 얼핏 보이던 도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창밖 풍경은 서서히 변해 갔다. 가을 들판이 바람에 누웠고, 기차의 단조로운 진동이 몸에 전해져 나른했다.

“근데 왜 하필 저한테 이야기를……?”

“얼굴이 순수해 보였습니다. 이런 말 하면 웃으시겠지만 저한텐 어느 정도 사람이 보입니다. 얼마 더 살았다고 그렇게 자신하냐 하시면, 전 아가씨의 생각보다 오래, 훨씬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 제 눈엔 아가씨의 마음에 동심이 살아 있는 게 보였죠. 그래서 말을 걸고 싶어졌습니다.”

사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색깔 있는 어조도 아니었지만, 따분한 어조도 아니었다. 그의 말에는 민경의 마음에 전달되는 소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알았어요. 괜찮을 것 같네요. 기차 여행도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

민경은 선심을 베푼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껐다.

사내는 웃을락말락 미소를 지어 보인 후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내가 태어났다, 고 해야겠군요.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며 시작하는 『설국』이라는 소설도 있지만, 제 경우엔 밖의 풍광이 아니라 내면의 풍경이 변했습니다. 아, 여기서 터널이란 우리가 탄 기차가 얼마 후 통과할 화남 터널을 말하는 겁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건 앞으로 일어날 일이기도 하고 예전에 일어났던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당시 48세의 나는, 아, 그 당시의 나는 아가씨가 지금 보는 나라고 생각해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큰 차이가 없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조금만 더 들어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이 기차를 타고 조금 있다가 나올 화남 터널을 지났습니다. 무언가 달라진 건 기차가 터널 밖으로 나온 뒤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기차 안이 어딘가 달라진 것 같다는 위화감이 가득 들었어요. 같은 칸에 탄 사람들도 많이 달라져 보였고요. 그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려 했는데, 그때 퍼뜩 깨달은 거예요. 두리번거리려 했지만 나는 두리번거릴 수 없었습니다. 아니, 두리번거리지 ‘않았어요’.

나는 내 의식을 의식했습니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데, 뭐랄까 내 의식 한구석에, 혹은 의식 뒤편에서, 혹은 의식과 겹쳐서라고 해도 좋습니다만, 겹쳐진 이중의 의식을 생생하게 감지했습니다. 사실 감지했다는 말도 정확하진 않은 게, 오감을 통해 외부의 자극을 느끼는 게 감지하는 거지 않겠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내 존재로 내 존재를 느꼈습니다.

피린계 약물을 잘못 먹으면 팔다리가 딱히 아픈 것 없이 고통만이 뇌 속에 존재한다고 하죠.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내 의식만이, 아마도 뇌 속에, 존재하고 있었고 그 의식은 또 다른 나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기차가 수원역에 정차했습니다. 화남 터널을 지나고 바로 만나는 역이죠. 거기서 중년 남자 두 명이 올라타더군요. 우리 칸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두 사람은 앞에 서서 신분증을 들어 보이며 큰 소리로 자신들을 형사라고 밝히고는 잠시 검문을 하겠다고 그러더군요.

황당하죠? 지금처럼 민주화된 시대에 형사들이 기차 칸에서 검문이라니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손님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얌전하게 신분증을 내보이는 겁니다. 가방을 든 손님은 형사들의 요구에 일일이 가방을 다 열어 보이더군요. 하나하나 세심하게 체크를 하던 형사들은 마침내 제 자리까지 왔습니다.

전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이게 대체 뭔 짓이냐고.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나의 또 다른 의식은 겁을 잔뜩 먹고 있었습니다. ‘저 아저씨들 말대로 안 하면 붙들려서 감방 갈지도 몰라.’ 이런 유치하고 막연한 공포감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나의 또 다른 의식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움츠려 있었습니다. 스포츠머리를 한 젊은 형사가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학생, 손에 쥔 건 뭐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더군요. 손바닥을 펴보니 갈색을 띤 풍뎅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기억났습니다.

터널을 통과하기 바로 전, 이 기차에서 그 풍뎅이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손에 거머쥐었던 일이요. 그 상태로 터널을 지났고 형사가 올 때까지 쥐고 있었던 겁니다. 어, 하고 나의 또 다른 의식도 놀라더군요. 하긴, 그 풍뎅이의 존재를 또 다른 나는 알지 못했던 거니까요. 형사도 어, 하는 순간 풍뎅이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무튼 그것도 잠시, 또 다른 나는 스스로 겁에 질려 신분증은 물론 가방까지 열어 보였습니다. 형사들은 꼼꼼히 살펴보고 지나쳐 가더군요.

놀랐습니다. 이건 바로 내 30년 전의 기억 속에 있는 장면이었어요. 손에 풍뎅이가 쥐어져 있었다는 것만 제외하면요. 충격이 찾아와 한동안 멍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내가 의식한 나는 놀랍게도 ‘30년 전의 나’였다는 것을요.

그땐 대학에 합격한 겨울이었어요. 2월 어느 날, 고향 전주에서 대학 기숙사에 입소하러 혼자 가방을 들고 기차를 타고 상경하던 길이었습니다. 그때 처음 만난 사복형사들. 아마 수배된 운동권 학생이라도 검거하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느꼈던 긴장감, 형사들의 표정 모두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저한테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내 눈앞에 재현된 겁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장면으로요. 기차도 사람들도 풍경도 모두 30년 전의 것이었습니다.

차창은 위로 밀어 열리는 종류였고, 승객들은 객실에서 담배를 피워 댔으며, 큰 소리로 대화하고 떠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장발인 데다 잠자리 눈처럼 큰 안경을 썼고, 옷차림은 패션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촌스러웠습니다. 모두 낯설었습니다.

차창에 비친, 솜털이 보송보송한 내 모습조차도요.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더 놀라운 건 놀라움을 표현할 수도 없었다는 거지요. 또 다른 나, 그러니까

3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내 몸을 움직이고 명령하고 감정을 느끼고 발산하는 주체는 30년 전의 나였습니다. 그러니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말하자면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향의 의식이었습니다. 오로지 수동적으로 30년 전의 내가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 뿐,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또 다른 의식이 감지하고 인식하는 것 말고는요.

오로지 지금의 의식만이 외로이 공간 없는 공간에, 어디에 속한지도 모르게 내 뇌 속 어딘가에 떠 있었습니다. 예전의 나 자신이 느끼고 말하고 표현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혹시 꿈인가. 하지만 꿈은 분명 아니었어요. 이해할 틈도 없이 사건은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내 의지는 전혀 개입되지 못했습니다. 영한이(아, 편의상 30년 전의 나를 ‘정영한’이라고 제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가 복잡한 서울의 지리에 넋을 잃고서 전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고 길을 잘못 찾아가도 발길을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등허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의 고통은 느끼지 못했지만 답답한 마음은 그 짐의 무게 이상이었습니다. 역에 내려서도 기숙사와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갔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정말 열불이 터지는 일이었지요. 어쨌든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내 기억속의 장면 그대로, 혹은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했지만 벌어지고 보니 기억이 되살려지는 그 일 그대로였습니다.

기숙사에 가서 짐을 풀고 룸메이트하고 인사를 나누고는 밤에는 떠나온 고향과 엄마 생각이 나 공용 샤워실에 가서 혼자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난 그 슬픔과 외로움을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그 영한이가 바로 나였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측은하고 대견하게도 생각했습니다. 그건 내 본래의 의식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내일만 되면 고향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새롭게 펼쳐질 생활에 대한 기대감에 차서 새로운 친구들하고 인사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하고 잠시 웃기도 했습니다. 아니, 영한이와 따로 내가 웃을 수는 없었으니, 웃고 싶은 기분 혹은 생각에 불과했지만요.

앞으로는 제 감정 표현을 그 정도로 알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후로 전개되는 사건의 연속 속에 난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멍한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영한이가 새 세상에 눈뜨고 느끼고 격렬한 호기심으로 반응하는 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영한이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새 친구들을 사귀는 일에 열중했고, 신나 있기만 했지요. 같지만 다른 두 의식의 기묘한 동거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건들이 기억과 다르더군요. 어떤 건 당시에는 아주 기분이 나빴는데 혼자만의 오해나 삐침에 불과했다는 걸 마흔 후반이 된 지금의 나는 알겠더군요. 어떤 건 지금 보니 굉장히 불쾌한 일이었는데 당시엔 어수룩해서 모르고 지나쳤구나, 싶은 것들도 있었고요.

내가 미팅을 주선한 일이 있었는데, 신건식이라는 친구 녀석이 약속 시간 직전에 안 나가겠다는 겁니다. 미팅 같은 유치한 일에 나가는 일은 자존심이 허락 못 한다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만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역겨운 사고방식이었고, 친구 간에 있을 수 없는 배신행위인데도 전 그냥 납득했습니다.

급히 대타를 구했는데, 다행히 우명렬이라는 친구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선선히 가겠다 하여 위기를 모면했지요. 신건식이라는 친구는 지금 소식도 모르고, 우명렬이는 지식경제부 관료로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결정을 하는 상황에선 정말 열불이 터지더군요. 성기홍이라고, 사회학과 다녔던 기숙사 룸메이트 녀석이 교련 대리 출석을 부탁했습니다.

“받아 주지 마!” 하고 소리쳤지만 영한이에겐 들리지 않았습니다. 영한이는 성기홍의 명찰이 달린 군복을 갖춰 입고 교련 과목에 대리 출석했지만, 교관은 바로 대리 출석을 알아보곤 화를 내며 돌려보냈죠. 영한이는 학생들 앞에서 큰 창피를 당했고요.

영한이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어떻게 대리 출석한 걸 간파했을까. 알고 봤더니, 기홍이 녀석이 대출을 부탁해 놓고는 들통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교관한테 친구를 대리 출석시켰다고 말을 해놓았더군요. 자기만 살겠다고 귀찮은 부탁을 들어준 친구를 곤경에 빠트렸던 겁니다.

정말 약은 녀석 아닙니까? 그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는 걸 넘어서서 다시 겪으니 참 분했습니다. 더구나 난 결말을 아는데 영한이한테는 한 마디도 해줄 수도, 결정을 바꿀 수도 없었으니까요.

과 면접 때 줄을 섰는데, 어중간하게 순서가 엉키자 눈망울이 큰 한 친구가 영한이한테 세련된 서울말로 “앞에 서시죠.” 하면서 비켜 주었습니다. 촌놈 영한이는 내심 놀랐어요. 아직 고등학생의 의식 수준이었던 영한이한테는 같은 나이의 친구가 아무리 초면이라도 존댓말을 한다는 점이라든가 그 친구가 보여 준 예의 바른 몸짓 같은 것이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기 때문이죠.

그 성숙한 친구는 이색적이게도 나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아는 눈으로 바라보니 참 새롭더군요. 나중에 젊은 나이에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큰 사고로 죽게 되는 어여쁜 여학생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건 큰 고통이었습니다만…….

슬쩍 꼬집는 말 같은 것도 들었는데, 당시에는 바보처럼 모르고 지나치기도 했고, 혹은 지나치게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서툴렀죠, 많이. 어설프고 어찌 보면 때가 덜 묻은 영한이의 좌충우돌 대학생활을 그대로 겪으면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잊었던 많은 기억들을 생생하게 재경험하면서 ‘아,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깨닫게 되는 게 말이죠, 일기 속을 살아서 떠도는 기분이랄까요,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영한이가 잠든 시간엔 나 혼자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 분명 난 정영한이다. 이 녀석, 영한이는 30년 전의 나다.

하지만 나는 48세의 정영한이다. 나는 어떤 사건으로 쫓기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전주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마침 그 기차는 30년 전의 내가 대학에 합격하고 서울로 상경하면서 탔던 그 노선이다.

그 기차가 경기도에 접어들어 화남 터널을 통과할 때, 기차 안은 정전이 되었다. 그리고 새카만 어둠. 잠시 후 전깃불이 들어왔고…… 그리고 내가 있었다.

영한이의 의식 속에. 도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48세의 내가 30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때의 영한이 안에 들어와 그 인생을 그대로 반복해 살고 있다. 조금도 영한이를 움직이지 못하면서. 영한이가 느끼는 즐거움, 기쁨, 슬픔, 분노도 그대로 내 것은 아니지만 바로 나의 의식과 겹쳐 있기에 마치 내 것처럼 생생하고 안타깝다.

내 의식은 오로지 관찰과 감각만 하고 일체의 행동과 말과 외부에의 작용을 할 수 없는 순수한 관념적 존재에 불과한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하여튼 그 결말은 시간의 흐름에 맡겨야 했습니다. 물론 나한테는 그 시간의 흐름이란 게 괴상망측했지만요. 내 시간이 아니라 영한이의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영한이의 몸 안에 갇힌 저로서는 조금도 외부에 혹은 영한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었으니까요.

비바람과 풍상을 그저 견디어 낼 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는 삼림 속의 큰 나무와도 같이요. 아니, 나무와도 다르지요. 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잎사귀를 피우며 가을에는 낙엽을 떨구기나 하지,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나는 법대생이었습니다. 어리바리하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장래의 희망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그저 주변 어른들이 권하는 대로 법대에 진학했더랬습니다. 처음부터 적성에 맞지 않는 과엘 갔으니, 공부는 뒷전이었죠.

게다가 내가 진학한 80년대가 오죽했습니까? 반정부 데모에 최루탄, 수업 거부……. 뭐, 시대 상황이 그랬으니까요. 혼자만의 고뇌였다고 불평하지는 않겠습니다. 대학은 제대로 된 캠퍼스라고 할 수도 없었죠.

나는 선배의 권유에 따라 사회의 모순을 연구한다는 학회에도 가입하고, 은밀하고 위험해 보이는 책들도 많이 읽었습니다. 구정물이 흐르는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본 것 같아 분노했고, 설익은 지식으로 사회 구성체가 어쩌고 토론도 했고, 선배, 친구들과 같이 시위에 참여하고 최루탄 가루도 좀 마셔 보았지요.

물론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술을 마셨고, 당구를 쳤고, 미팅도 했습니다. 여자들과 가볍게 사귄 적도 여러 번 있었고요. 제가 지금은 노숙자나 진배없지만 그때는 뽀얀 얼굴에 선한 인상이어서 날 좋아해 주는 여자애들도 몇 있었거든요. 물론 서툰 탓에 쓴맛도 보았지만 모든 게 신선했고 힘들어도 재밌기만 했던 영한이의 그 1학년 생활을 난 흐뭇한 눈으로 지그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학생활도 1학년으로 끝이었습니다. 2학년이 되니 시위는 시들해졌고, 친구들은 자기 갈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공부를 시작해야 했는데, 법대 공부에 통 정이 붙지 않았어요. 2학년 1년 동안 읽은 책은 『민법총칙』과 『물권법』 200페이지뿐이었어요.

도서관에서 스포츠 신문을 줄창 읽다가 하숙집에 돌아와 버리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3, 4학년 때는 아예 학교에도 거의 나가지 않았어요. 솔직히 법대 친구들이 어딘가 좀 취향에 맞지 않기도 했고요. 법전은 지긋지긋하고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미치도록요. 법률 서적은 먼지만 쌓여 갔죠.

이 무렵 사후의 천국을 약속하는 대신 현세의 몸 그대로 영원히 살게 해준다는 이상한 종교에 빠지기도 하고, 인생이 허무하단 생각에 머리 깎고 출가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난 하얗고 여린 겉모습과 달리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이 시기엔 자기파멸형으로 드러났다고나 할까요. 무상감에 인생의 계획성을 잃고 자포자기한 상태였습니다. 아마 여자에 대한 갈망, 성욕만 없었다면 진짜 출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여자를 많이 만나고 다닌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처박혀 지낼 뿐이었죠.

읽은 책은 철학, 종교 서적부터 만화, 무협지까지 닥치는 대로였습니다. 요즘 히키코모리라고 하죠, 그런 생활을 난 30년 전에 했던 겁니다.

아가씨한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청춘의 방황이라면 차라리 발산하는 쪽이 좋습니다. 안으로, 안으로만 들어가서는 지나고 보면 후회밖에 남지 않거든요.

책 천 권을 읽으면서 젊음을 보낸 사람이나, 여자 백 명을 만나며 젊음을 보낸 사람이나 지나고 보면 같은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음의 깊이도 다르지 않아요. 그렇다면 왜 미친듯이 동굴에서 마늘을 먹어야 합니까.

얼마나 허무합니까. 난 카사노바가 칸트보다 잘못 살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하긴 칸트도 숙녀들을 만찬에 초대해서는 식탁 밑으로 손을 뻗어 허벅지를 만졌다죠.

아무튼, 그런 영한이를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낭비, 그 빛나는 청춘의 낭비!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요.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만은 정말 목에 울화가 꾹꾹 치밀어 단장의 심정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인생을 좀 알았는지 아닌지 가늠하는 내 나름의 기준이 뭔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새옹지마’란 말의 뜻을 진정으로 깨닫고 공감하는지 하는 겁니다.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당시에는 절망했던 일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일 덕분에 다른 치명적인 사건을 피하기도 했고, 기뻐했던 일이 나중에는 인생의 질곡이 된 일이 수두룩했습니다. 그 앞날을 알기에 기쁨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고, 슬픔에도 위로를 찾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군대에 갔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입대를 미루고 나중에 장교라든지 편한 보직으로 가려 했었지만 행정적인 문제가 생겨 잘 안 되었죠. 입대 영장을 받아들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내게 그건 마치 같은 기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판결문과 같았어요.

지금 군대에 가다니. 입대하자마자 오른손 검지를 자르든가 한쪽 눈알이라도 파서 제대해야지, 하는 생각을 벌써 하고 있었습니다. 물러 터졌다고 욕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제 기질 자체가 규율이라든가 명령 같은 종류하고는 100만 광년쯤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구미에 맞지 않는 법학의 그물을 벗어나고 싶어 대학 4년을 몸부림쳤는데 하물며 군대야……. 하지만 그토록 싫었던 군 입대가 결국 엉망진창이었던 내 청춘을 단절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인생사 참 알 수 없지요.

3년 가까이 바닥을 기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무지막지하고 야비한 인간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고 다치고 깨졌습니다. 혹독한 훈련과 틀에 박힌 생활은 군 생활의 기본이니 제쳐 놓고라도, 탱크라는 별명이 붙은 악독한 선임한테 낭심을 차여 며칠간 걷지도 못했고, 자다가 깨어 하사관의 술주정을 받아주다 못해 그가 복도에 싸놓은 똥을 치웠습니다.

인사계 상사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모면하려 뇌물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조니워커 블루를 사서 동료들과 숙소 근처에서 잠복하듯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비참함에 입술을 깨물면서요.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 사회에서 나보다 약한 놈이 있을까. 나보다 못난 놈이 있을까. 이 허접한 내가 남을, 사회를 바꾸겠다고 설쳐 댔다니,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던가. 나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미세한 치차에 불과했으면서도 내가 속한 기계 전체의 얼개를 인식하고 바꾸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시건방진 짓이었던가.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겸손하게, 내 일에만 신경 쓰자. 내가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다.

난 180도 바뀌었습니다. 아무래도 난 논리보단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의란 걸 코에 건 사람들, 예전에는 그렇게 잘나 보이던 사람들이 위선자로 보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극단이었지만, 군대라는 극단적인 환경 안에 있었던 나는 생각마저 양쪽 벽을 때리는 진자처럼 어느 한 극단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영한이의 심리 상태를 보면서 48세의 나는 그렇게 객관적으로 분석, 관찰할 수 있었지만 당시 영한이는 그럴 수 없었고, 한편으론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대한 나는 겸손하고 솔직하게, 정의니 뭐니 하는 거창한 명분 없이, 그저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사법시험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열중했고, 시험에 붙었습니다…….
기차가 역에 멈춰 섰다. 승객이 두 명 내리고 한 명이 탔다. 객실이 조금은 더 한산해졌다. 사내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생수병을 들이켰다.

“놀라운 이야기네요. 지금은 선생님이 어떻게 이렇게 앉아 계신 건지 궁금하지만 아직 묻지는 않을게요.”

민경의 말에 사내는 눈가에 푸근한 주름을 만들며 미소 지었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의 인생도 새옹지마네요. 결국 정신 차리고 판사가 되셨으니.”

민경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결말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말하려는 새옹지마는 그게 아닌데요.”

민경은 남자를 힐긋 보았고, 사내는 말머리를 돌려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나쁜 기억을 앞두고는 정해진 악몽을 향해 달려가는 운명 앞에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서른의 겨울 어느 날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요…….”

사법연수원생 2년차 시절이었습니다. 그땐 연수원이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낭만이 남아 있었다고나 할까요? 법원 실무 수습 기간이었는데 난 출근하지도 않고 동네 미용실에 가서 느긋하게 머리를 깎고 있었습니다.

미용사가 내 머리를 매만지며 이것저것 말을 걸더군요.

“얼굴이 뽀얀 게 닥터 같으세요.”

“닥터도 뭐 여러 가지겠죠. 닥터 피시도 있고.”

아, 아가씬 기겁을 하시는군요. 압니다. 이 농담이 얼마나 썰렁한지. 근데 난 그 당시 그런 황당한 농담에 재미 들려 있었습니다. 미팅을 나가면 ‘우유 주세요.’ 대신 ‘소젖 주세요.’라고 한다든지요. 대부분의 여자들은 치를 떨었지만 가끔 통하는 때도 있었죠.

난 그날도 미용사와 이런 류의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편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자꾸 피식피식 웃는 것이었습니다. 미용사와 언니, 동생 하는 걸로 봐서 그냥 놀러 온 여자 같았습니다. 내가 돌아보며 “왜 웃으세요?” 하니 급기야 웃음이 터져서는 배를 잡고 옆으로 쓰러지더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하고 마구 손을 저으면서요. 그런데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어요. 여자가 남자를 보고 괜히 웃는다는 건 호감이 있다는 거지 않겠습니까? 그 모습이 내게 전에 없던 용기를 내도록 해주었어요.

미용사가 잠시 딴 데 보는 사이, 삐삐 번호를 달라고 했죠. 그녀는 언니 눈치를 보면서 몰래 적어 주더군요. 종이를 건네며 올려다보는 큰 눈,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조그맣게 벌어진 윗니,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바로 그날 저녁 연락해서 만나 술을 마셨습니다. 처음부터 이야기가 잘 통했습니다. 그녀, 송채희는 나보다 세 살이 적었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고, 남동생 하나가 있었고,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신상은 사실 나중에 알게 된 거고, 첫날에는 그저 온갖 대화와 장난질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몸을 흔들며 끝없이 웃어 댔습니다. 우리는 오빠, 동생 하며 자연스레 사귀게 되었죠.

그녀는 귀여운 얼굴에 유머러스했어요. 작은 일에도 기뻐했습니다. 당차고 의리 있는 성격에 자존심도 강해서 남자의 힘을 빌려 살려는 면모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취향도 곱고 여린 여느 여자완 조금 달랐어요.

사실 여자로서의 매력보다 그런 개성들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새벽에 술 먹고 전화하기 일쑤였고, 차에 탈 땐 안전띠 따위 매지 않았습니다. 자다 새벽에 깼을 때, 그녀는 내가 모아 둔 CD 중에서 본 조비를 꺼내 이웃이 떠나가라 크게 틀어놓고 듣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귀여웠는지.

느슨하기 그지없던 법원 시보 기간이었던 데다, 난 연수생 중에서도 유별나게 게으른 편이었기에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오히려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채희가 시간이 더 없었죠. 우리 둘 다 술을 좋아해서 참 많이도 마셨습니다. 극장, 맛집도 많이 찾아다녔고, 내 작은 차로 전국 이곳저곳 많이도 놀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죠. 20년 전 나의 그 모습을 보고 느끼는 나도 즐거웠습니다. 직업을 가졌고, 귀여운 여자친구까지 있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던 때란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다가올 결말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난 채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건 변합니다. 시간은 모든 걸 치유하기도 하지만 모든 걸 파괴하기도 하지요. 내 경박한 마음은 시간의 파괴력 앞에서 폭우 속 촛불에 불과했습니다.

채희를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 성격이 바뀌어 가는 걸 느꼈습니다. 채희가 꼭 내 여동생같이 생각되었어요. 불쌍하고 철없는, 그래서 돌봐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여동생 말입니다. 채희는 달랐어요. 날 진짜 좋아했습니다.

줄곧 남자로서, 자신의 짝으로서요. 그 변함 없음도 어찌 보면 그녀의 의리 있는 성격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한결같은 채희가 난 어느새 부담되고 거추장스러워졌습니다. 점차 그녀와 헤어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날 깨닫고 놀라면서도 내 감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영한이의 그 모습을 보면서 난 딱히 나무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게 나니까, 내 마음을 잘 아니까요. 내 기준에선 뜨겁고 열렬하지 않으면 여자와의 만남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난 좋게 말해서 대책 없는 로맨티스트였고, 감정이 무엇보다 앞선 인간이었습니다.

사랑이란, 그리고 결혼이란 대충 편안한 여자 만나서 아이 낳고 살고 손 붙잡고 나들이 다니고…… 그런 게 아니었어요. 우리 세대에서 유행했던 「열정」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만나서 차 마시는, 웃으며 안녕 하는 그런 사랑 말고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사랑만을 추구했습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여자와 만나서, 전쟁처럼 사랑하고…… 그런 게 사랑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현실에는 없다는 걸 난 한참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책에서 사랑을 배운 자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땐 알지 못했습니다.

여자란 정말 섬세한 존재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당당하고 자존감이 높다 해도 남자의 마음이 변하는 건 귀신같이 감지해 냅니다. 채희도 예외는 아니었죠. 그녀도 내 감정이 예전 같지 않단 걸 깨달았던 겁니다. 우리 사이는 서서히 금이 갔고,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사귄 지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소리 높여 다투기도 했고요.

그러던 중 연수원 과정을 마치고 내가 발령을 받아 광주로 내려가게 되었어요. 난 판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되리라고는 꿈도 안 꾸었던 직업이었고, 어린 눈에는 보기에도 싫고 입기도 싫었던 검은 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내가 그걸 입고 있더라고요.

침착해 보이지만 머릿속에는 극단적인 불덩이가 오가는 이 내가 말이죠. 냉정하고 차가운 가운에 갇힌 얼치기 낭만주의자. 이 어색한 조합이란……. 그로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흐르고 말았네요. 암튼 그 이야긴 나중에 하기로 하죠.

그 무렵 채희와 나는 낯선 도시로 떠났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떠난, 조용한 여행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 떨어져도 계속 만날 수 있을지, 서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약속을 할 수 없단 걸 우린 어렴풋이 서로 알고 있었고,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우리 슬픈 헤어짐이 못박혀 버릴 것같이 느꼈던 거지요.

이름 모를 겨울 거리의 네온사인을 뒤로하고 우리는 모텔에 투숙했어요. 난 걷다가 지친 나머지 옷을 입은 채로 누워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채희가 잠깐 밖에 나갔다 오더니 맥주하고 땅콩 안주를 사왔더군요. 무언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우리 둘 사이는 서먹해져 있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앉아 말없이 채희가 사온 맥주병을 따서 들이켰습니다. 혼자서 두어 병을 비웠을 때쯤, 채희가 술을 조금도 마시지 않고 있단 걸 깨달았습니다.

“왜 안 마셔?”

그녀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서 창백한 얼굴을 조용히 쳐들었습니다.

“오빠, 할 말 있어.”

말소리가 심상찮았습니다.

“뭔데.”

“나, 임신했어.”

난 가슴이 철렁했고, 이어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맥주잔을 방바닥에 내려놓고서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대꾸했습니다.

“분명히 우리 피임했잖아. 근데 어떻게?”

“몰라, 임신이래.”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단 걸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었던 겁니다. 예, 맞습니다. 그 순간 난 정말 나쁜 놈이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그게 말이 돼?”

“정말이야, 오빠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그동안 말 못 하고 있었어.”

“그래? 근데 하필 왜 내가 지방으로 떠나기 직전일까?”

“내 말 안 믿는 거야? 내가 안 했는데 거짓말할까 봐?”

피임했으니 아이를 가졌을 리 없다고 끝까지 우겼습니다. 채희의 얼굴은 실망과 곤혹감으로 일그러져 갔습니다. 내 반응은 아마도 그녀가 예상한 종류의 것이었겠지만,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던 모양입니다. 휴우, 지금도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은, ‘그게 누구의 아이인 거야?’ 이 따위 말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최후의 양심, 마지막 이성이 인간이 되지 못할 구렁텅이에서 날 조금이나마 구해 주었습니다. 난 그 말을 하지 않았다고 기억하지만 혹시 영한이가 그런 말을 할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결국 그런 말은 하지 않더군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채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오빠를 잡으려고 구차하게 거짓말 한다는 거야?”

“내게는 그렇게 보이는데? 왜 하필 오늘이냐고!”

난 화를 냈습니다. 솔직히 인정하겠습니다. 이것은 거짓이 섞인 화였습니다. 난 그 시간을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참에 채희를 떨쳐 버리자, 라고 무서운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거칠게 화를 냈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면 나하고 병원에 먼저 갔겠지? 그렇지 않아? 일방적으로 나한테 통보하면 내가 믿어야 해? 그런 거야?”

되지도 않는 논리를 주워 섬겼습니다. 그 말 잘하던 채희가 한 마디도 하지 않더군요. 숙인 얼굴 아래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널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아무래도 우린 여기까진 것 같아. 잘 있어!”

마지막으로 거칠게 소리치고는 그대로 일어서서 외투를 걸치고 모텔 방을 나갔습니다. 채희는 턱 밑으로 눈물을 뚝뚝 흘린 채로 굳어 버린 석고상처럼 방바닥에 멍하니 앉아만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지독하게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난 오한에 떨면서 방향도 모르는 거리를 무작정 뛰어갔습니다.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습니다.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겁하게도, 이걸로 채희와는 헤어질 수 있게 되었다고 안심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괜한 싸움을 만들어서 화를 버럭 냈고, 그럴듯한 이별의 구실을 만들었던 겁니다. 가장 채희의 마음을 헤아렸어야 할 순간에 말이죠. 난 택시를 잡아타고 “터미널!”을 외쳤습니다.

그때 얼핏 보았습니다. 택시의 룸미러 어두운 한쪽, 저 뒤쪽 멀리에서 채희가 뛰쳐나오고 있는 모습을요. 휘몰아치는 겨울 밤바람에 그녀의 얇은 블라우스가 머릿결과 함께 흩날렸습니다. 룸미러 속의 그녀는 내 흔적을 찾으러 눈물 젖은 얼굴로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난 일부러 얼굴을 뒤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48세의 난 피눈물을 흘리고 싶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소리를 지르고 싶었습니다. ‘바보 자식! 이 더러운 자식아! 돌아가!’ 하면서요. 영한이는 내 무언의 외침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물론 들리지 않은 거지요.

뼛속까지 나쁜 놈이군,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점은 변명하고 싶습니다. 난 채희를 사랑하면서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까지 타락했다고 사실과 달리 기억하며 스스로를 책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채희를 저버리고 더 나은 현실적 조건을 갖춘 여자와의 결혼을 꿈꾸었다는 따위의 저급한 동기? 그것만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내 이유는, 채희를 결혼할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오로지 그 이유였습니다.

정말, 정말 좋은 여자지만, 여동생 같은 느낌만으로 결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난 그때까지도 환상 속에 있었으니까요.

아기? 물론 채희의 말은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채희는 그런 거짓말로 남자를 잡으려 할 만큼 자존심 없는 여자는 절대로 아니었으니까요. 나와 헤어지면 아이를 지우든가, 알아서 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정영한이는 나쁜 놈이죠. 아주.

그날 이후 채희에게서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난 채희가 그래도 한 번쯤은 연락을 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살을 에는 겨울밤, 나를 찾기 위해 홑옷만 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모텔을 뛰쳐 나왔던 채희였으니까요.

하지만 끝내 연락은 없었습니다. 술 먹고 삐삐 한 번은 칠 만한데 그것도 없었습니다. 채희는 그만큼 고고한 자존심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나도 연락하지 않았죠.

그래도 채희하곤 미워서 헤어진 게 아니니까, 처음에는 자주 생각이 났습니다. 나중에는 ‘가끔’으로 빈도수가 줄다가 어느새 ‘거의’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건 30대 정영한의 본래 의식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48세의 나는 오히려 채희 생각을 많이 했으니, 참 아이러니하죠. 아마 참혹하게 추웠던 그날 밤을 두 번이나 겪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인생이 내 기대와 달리 정말 별 볼 일 없었다는 걸 처절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지금 한 말대로, 그 뒤의 인생은 생각보다 싱거웠습니다. 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딴 길을 과감하게 찾을 만큼 중뿔난 인간이 아니었고, 금세 판사라는 직업에 적응했습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열망, 회한도 곧 머릿속에서 지워졌습니다. 그저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다른 취미 없이 그저 가끔씩 술 마시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하지만 그럭저럭 무난한 일상을 이어 갔습니다.

이때의 난(48세의 나 말입니다.) 정말 지루해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질 영한이의 평탄하고 별일 없는 인생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더욱이 직업이 얼마나 따분합니까.

난 판사라는 직업을 다년생 식물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정적이고 변화가 없는 생활이죠. 친구는 자꾸 줄어 갔습니다. 여자, 결혼? 물론 꿈은 계속 꾸었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가니 별수 없었습니다. 내 관념 속 로맨티스트는 사라져 갔고, 힘든 객지 생활에 그저 따뜻한 밥, 깨끗한 와이셔츠, 그런 것들이 아쉬워졌습니다.

부식되는 동판처럼 야금야금 먹어 가는 나이를 종내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식은 연탄재만큼의 온기조차 느끼지 못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금세 아들도 둘 낳았습니다. 생활은 조금 편해졌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서류를 들여다보며 눈을 혹사하고 하루하루 자세가 구부정해져 갔고, 완고한 노인네 같은 법조문의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유머 감각도 하루하루 잃어 갔고, 집에 돌아와서는 묵묵히 밥 먹고 TV 보다가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고…… 정말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죠.
“그런데 아까 무슨 사건에 연루되어 쫓기게 되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민경이 물었다. 사내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렇죠. 정영한의 조용한 인생을 마무리 지은 사건이었죠.”

민경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푸념한 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내는 씁쓸하게 말했다.

민경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의식 외에 다른 존재는 없는 듯해 보였다. 물론 그의 말대로라면 그건 외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이니,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이 사내가 오로지 하나의 의식하에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면, 두 개의 의식이 공존해 왔다는 사내의 말이 온통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내게 완전히 새로운 인연의 탄생을 알렸다고나 할까요.”

사내가 말했다.

“그게 뭐죠?”

민경이 물었다.
내 의식이 가장 견디기 힘든 때는 역시 나쁜 결과를 알고 있는 사건에 빠져 들어갈 때입니다.

그땐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영한이에게 제발 결정을 되돌리라고, 한 걸음만 달리 하라고 간절히 말해 주고 싶었지만 불가능했죠. 영한이에게는 끝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그 실수를, 그 치명적 발걸음을 여전히 굳건하게 내딛었습니다.

1년 여 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은 우연이었죠.

하루는 돈을 잘 버는 친구가 술 한잔 사겠다고 불러냈습니다. 전 부장판사로 승진한 지 3, 4년 된 무렵이었고, 서울의 어느 지법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아까 말했듯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중년의 남자로 조용히 사회의 한구석에서 나이를 먹어 가는 중이었지요.

원래 판사란 사람들 만나는 게 늘 조심스럽고, 누가 한턱 낸다고 하면 특히 더 그렇지만, 이 경우는 중학교 동창이었고, 업무적으로 아무런 관계될 일이 없는 터라 마음 편하게 만났습니다. 이름 대면 아실 만한 회사 중역인 친구인데, 부업으로 부실채권 투자를 해서 큰돈을 땄다고 하더군요.

강남의 어느 룸살롱엘 갔습니다. 친구 두 명이 더 있었어요.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룸살롱은 거의 10년 만에 간 거였습니다. 돈으로 서비스를 사는 그런 데는 좋아하지 않거든요.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도 볼 겸 만나서 어울렸던 거지요. 발렌타인 17년이 세 병 들어왔고, 과일이며 한치며 인삼이며 각종 안주가 줄줄이 나왔습니다. 물론 어여쁜 아가씨들도 옆에 앉았죠.

얼큰하게 취했는데, 소변이 보고 싶어져서 방을 나왔습니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볼일을 보고, 혼자 나왔는데, 나도 좀 취했습니다. 그만 방을 잘못 찾아들어간 거죠.

방문을 열었는데, 생소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좀 숙맥인 편이라 그저 아가씨들하고 농담을 주고받거나 노래 한 곡씩 뽑으며 노는 정도였는데, 이 방은 달랐습니다. 밴드는 없고, 사이키 조명이 돌아가는 가운데, 테이블 위에 아가씨가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치마 사이에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중년 남자가 머리를 처박고 있었습니다. 내가 문을 열자 그 남자는 고개를 쑥 들었습니다. 벗은 목에 넥타이만 대롱거리고 있었습니다. 붉고 처진 피부와 거대한 뱃살은 마치 털 깎은 불곰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때 그냥 후다닥 나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난 좀 취했었습니다. 분명 아는 사람 얼굴이었어요. 하긴,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장면에서는 아는 체 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요. 난 그만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상대방 남자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유심히 보더군요.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후 이맛살이 확 찌푸려졌습니다. 그 남자도 그때 날 알아보았던 거죠. 뒤늦게 “죄송합니다. 방을 잘못 찾았습니다.” 하고 방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어디서 봤더라, 생각을 더듬었습니다.

잠시 후 아뿔싸, 싶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색이 짙은 ‘배달변호사회’라는 변호사 단체가 있는데, 그는 그 대표로 있는 이철환이라는 50대 변호사였습니다. 《법률신문》에서 그 사람의 사진을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알고 있었고, 아까는 취한 김에 아는 사람으로 착각해서 인사를 해버린 것이지요.

그 사람은 얼마나 민망했을까. 신문에는 늘 점잖게 웃는 얼굴로 나왔었는데. 게다가 뭔가 정의로운 일을 하는 양 실렸는데 밤의 내밀한 공간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고 말았으니. 내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고, 이제 와서 어쩔 수는 없었죠. 그 사람도 한 박자 늦게 날 알아본 것 같았습니다. 법정에서 만난 일은 없지만, 가끔 내가 쓰는 글이 사진과 함께 《법률신문》에 실린 일이 몇 번 있었고, 그래서 그쪽도 역시 얼굴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난 그 변호사 단체가 주도하는 정치 문제에 가타부타 아무 관심이 없었고, 그 사람의 그런 행태를 굳이 떠벌리고 다닐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럴 만한 한 조각의 관심조차 없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합니다. 난 그저 혼자서 피식 웃고 치웠을 뿐이지만, 이날의 해프닝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이철환이라는 그 남자는 지독하게도 권력욕이 강한 남자였고, 자신이 거머쥔 힘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으며, 치부를 들킨 모욕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힘을 한껏 발휘하는 데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남자였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서너 달이 지난 무렵이었습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