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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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니의 유실물에 대한 전화를 받은 것은 그녀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전화기를 통해 낯선 사내가 또박또박 불러 주는 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를 그저 멍하니 듣고 있었다.

“맞아요?”

채근하는 사내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짜증이 담겨 있었다.

“네, 저희 어머니 지갑이 맞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얼핏 사내가 불러 대는 숫자에 담긴 생일이 익숙해서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 찾아가시겠습니까?”

“찾아요?”

“그럼 안 찾아가실 건가요?”

되묻는 사내의 음성에 노골적인 짜증이 묻어 나왔다.

“아닙니다. 찾으러 가야죠.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정 오시기 싫으시면 착불로 부쳐 드릴게요.”

나는 남자의 제안에 잠시 망설이며 눈앞에 있는 노트북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모니터에는 ‘폭주 노인’이라는 제목만이 흐릿하게 떠올라 있었다. 나는 깜박거리는 커서를 보다가 충동적으로 대답했다.

“지금 찾으러 가겠습니다.”

“그러시면 남한산성 입구에 있는 관리 사무소로 오세요. 차로 오실 건가요?”

“대중교통으로 갑니다.”

“그러시면 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입구’ 역에서 하차하신 다음 2번 출구 방향으로 나와서 버스로 환승하세요. 마을버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버스가 남한산성까지 오니까 아무거나 편하게 이용하시면 됩니다.”

“전철역에서 남한산성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

“걸어서 3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제 됐죠? 오후 5시 30분이면 업무가 종료되니까 그 전에 오세요.”

“한 가지만 더 여쭤 볼게요.”

“뭡니까?”

남자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지갑을 어디에서 주웠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게 중요합니까?”

“좀 궁금한 점이 있어서.”

“주운 사람이 매일 공원에 나오니까 만나서 물어 보시구려.”

그 말을 끝으로 사내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저장해 두었던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어떤 이유로 저장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알람이었다. 나는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내버려 둔 채 대충 세수를 하고 간편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식탁에 있는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병을 꺼냈다. 빈 병이었다.

설거지대에서 물에 잠겨 있는 유리컵을 꺼냈다. 컵은 물속에 오래 잠겨 있었던 탓인지 미끄러웠다. 흐르는 개숫물에 컵을 대충 헹궈 수돗물을 받아 마셨다. 한 컵을 다 마셨는데도 갈증이 가시지 않아 연거푸 몇 번을 마시고서야 컵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식탁 서랍을 열어 ‘살로탄’과 ‘레니원’을 한 알씩 먹었다. 소화제와 진통제 사이에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영양제가 눈에 띠자, 그것도 몇 알 뜯어서 물과 함께 삼켰다. 영양제가 한 덩어리로 뭉쳐서 잘 내려가지 않았다. 물을 마시고 고개를 뒤로 젖혀 넘기려고 해 보았지만 식도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뭉친 영양제를 설거지대에 토해 내고서야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눈알에 벌겋게 핏발이 서 있었다.
천호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자 등산복 차림의 남녀들이 보였다. 대부분 서로를 알고 있는 듯 반갑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나는 열리고 닫히는 자동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그들의 대화를 귓등으로 흘렸다. 갖추고 있는 장비만으로는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것처럼 보였지만, 대화 내용으로 볼 때 그들의 목적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시원한 얼음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내려오는 것이 전부인 것 같았다.

등산객 중 하나가 배낭에서 오이를 꺼내어 몇 조각으로 뚝 부러뜨리더니 사양하는 일행의 손에 쥐어 주었다.

신선한 오이 냄새가 코끝을 어지럽혔다.

공복에 마신 믹스커피 두 잔이 전부인 배 속이 요동쳤다.

나는 혹시라도 옆 사람에게 들릴까 공연히 헛기침을 하면서 전철에서 주운 신문을 펼쳤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K-Pop이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어 소속사의 주식 가치가 몇 천 억에 이른다는 내용,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기사 등등이 몇 면에 걸쳐서 이어지고 있었다.

제목만 훑다가 짐칸 위로 던져 버렸다.

선글라스를 끼고 새빨간 립스틱을 입술선 위까지 덧바른 여자가 아삭거리며 오이를 씹어 대고 있었다. 옆에 앉은 남자가 뭐라고 말하자 여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 댔다. 입안에 아직 덜 씹힌 새파란 오이 조각들이 보였다.

불현듯, 어릴 적 어머니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직후 어머니와 나는 홍성교도소 옆의 허름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홍성교도소 옆에 살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별 시답지 않은 일로 홍성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고 어머니는 옥바라지를 위해 아예 그 근처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맑은 날이면 어머니는 집 앞 빈터에서 시멘트 부대를 털었고, 나는 밑단의 흰색 실을 뜯는 일을 했다. 꼬투리를 잘 잡아서 잡아당기면 부대 아랫단을 촘촘히 묶고 있던 실이 주ㅊ르륵 한 번에 뜯어졌다.

내가 밑단을 뜯으면 어머니는 여러 장으로 분리된 부대를 바람에 잘 털어서 균일한 크기로 잘라 붙여 좀 더 작은 크기의 종이봉투를 만들었다. 가끔 내가 쌀을 팔러 가면 되로 담아 주곤 했던 봉투였다. 그것이 어머니와 나, 집에 없는 아버지의 생계 수단이었다.

집 뒤편은 텃밭이었다.

어머니는 그곳에 콩, 옥수수, 토마토, 가지, 고추, 오이 등을 심었다.

학교를 마치고 홍성 다리를 건너 긴 교도소 담장을 지나면 개천 옆에 우리 집이 보였다. 집이 보일 때쯤이면 나는 책가방을 덜렁거리며 둑길을 달음질해 내려가고는 했다. 특히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을 때라든지, 구구단을 몇 개 더 외울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거의 구르다시피 둑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며 집으로 달려 들어갔을 때, 그가 보이지 않으면 갑자기 기온이 몇 도는 내려간 것 같았다. 집 안 구석의 어둠은 더 깊어지고 낡은 판잣집은 몇 배는 더 커 보였다.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텃밭으로 달려가면 밝은 햇살 아래 수건으로 머리를 묶고 쪼그려 앉아 밭일을 하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달려온 내게 밭에서 바로 딴 오이를 내밀곤 했었다.

나는 오이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 내고 어떤 안도감과 함께 야금거리며 먹어 치웠다.
환승역인 가락시장, 복정을 지나자 지하철 탑승객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갑자기 지하철이 터널을 빠져 나와 밝은 빛 속으로 돌진했다. 중학교 운동장 옆에 산을 뚫고 새로 건설 중인 도로가 있었고, 도로를 따라 오리구이나 추어탕, 보리밥 등의 음식점이 스트립 몰처럼 죽 이어져 차창 밖으로 스쳐 갔다.

짧은 바깥 구간은 지하철이 다음 역으로 진입하면서 끝났다.

오이를 나눠 먹던 등산객들은 순환 도로를 올라가는 버스로 환승을 한다면서 묵직해 보이는 배낭을 짊어지고 부산스럽게 내렸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벼 마른세수를 하며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을 듣고 있었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터널 구간이 끝나고 남한산성입구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역사는 에스컬레이터 공사로 어수선했다. 계단 절반은 칸막이로 막아 놓았고 유료 보관함 앞은 중장비 기계처럼 보이는 에스컬레이터 부품이 점령하고 있었다. 제자리에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거대한 탱크의 캐터필러처럼 보였다.

계단을 오르자 야채 가게가 있었고, 건장한 사내 몇이 목소리를 높이며 등산객들이나 장바구니를 든 부인들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오이 세 개를 샀다.

오이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덜렁거리며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내가 사는 곳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 이어졌다.

왕복 10차선 도로는 불법 주차된 차들 때문에 좁아져 있었고, 인도 옆에는 사바사바치킨, 파리 바게뜨, GS25, 파스쿠찌, 탑마트, 삼성디지털대리점 등이 죽 연결되어 있었다.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한 풍경이었다. 부산, 경산, 서울, 홍성, 어디를 가든 기시감을 느낄 정도로 똑같은 간판들이 이어졌다. 심지어는 ‘걷고 싶은 거리’라는 명칭까지 같았다.

‘걷고 싶은 거리’ 군데군데 놓인 벤치에는 음료수 캔, 먹다 남긴 면이 불어 있는 컵라면, 아이스크림 봉지 따위가 쌓여 있었다.

‘을지대학교’로 주인이 바뀐 ‘서울보건전문대’ 정문을 지나자 200미터쯤 위로 남한산성 입구가 보였다. 대학교 주변은 유원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겹살, 곱창, 해장국 등을 주로 하는 술집들이 점령하고 있었고, 대학교도 술집도 서로에게 큰 불만은 없어 보였다.
고가다리 밑의 횡단보도를 지나 남한산성 유원지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는 군데군데 한무, 송해 등 코미디언들의 핸드 프린트가 코멘트와 함께 박혀 있었다. 알 것 같은 사람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도 있었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정면으로 분수대가 있는 광장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주차장, 왼쪽으로 관리 사무소가 있었다.

관리 사무소는 편의점과 붙어 있었다.

나는 먼저 편의점에 들렀다. 가게 안은 아이스크림을 사려는 아이들과 담배를 사는 어른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박카스 한 박스를 꺼내 계산대 위에 놓았다. 화장이 짙은 여자가 고개도 들지 않고 다른 곳보다 이삼십 퍼센트는 비싼 가격을 불렀다. 나는 말없이 셈을 치렀다.

쭈뼛거리며 관리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몇 개의 책상이 덧대어 있는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밖으로 나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관리 사무소 건물 모퉁이에서 한 남자가 알록달록한 알로하셔츠를 입고 하얀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허리를 굽혀 나무젓가락으로 담배꽁초를 줍고 있었다.

“아까 지갑 때문에 통화했던 사람입니다.”

내가 청년에게 말했다.

청년은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화기에서 들렸던 음성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1미터 50센티미터를 간신히 넘겼을 것 같은 50대 남자가 담배를 물고 서 있었다.

“아까 유실물 때문에 통화하셨던 분이신가요?”

내가 물었다.

“아,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 사무실로 들어갑시다.”

남자가 담배 끝을 손끝으로 털어 불똥을 날려 보내며 말했다. 남자가 불이 꺼진 꽁초를 바닥에 버리자, 알로하셔츠가 잽싸게 다가와서 냉큼 비닐봉지에 집어넣었다.

“잘했어.”

남자가 말하자 알로하셔츠는 까맣게 그을린 얼굴 가득 주름을 만들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내가 청년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생각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고, 최소한 마흔은 넘어 보였다. 칭찬을 받고 웃는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벗겨 내는 초등학생을 발견하고는 비닐봉지를 벌린 채 달려갔다.

“여기 시원한 드링크라도 좀 드시죠.”

사무실로 들어간 내가 박카스가 들어 있는 봉지를 내밀자 남자가 의례적인 너스레를 떨면서 받았다. 그는 부산스럽게 책상 서랍을 뒤지더니 원래는 황금색이었던 누렇게 바랜 지갑을 찾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여기저기 귀퉁이가 닳아 있는 닥스 상표의 장지갑이었다.

나는 열어 보지 않아도 어머니의 지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명절 때면 어머니는 아내 모르게 그 지갑을 열어 몇 만 원을 꺼내 떠나는 내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고는 했었다.

“확인해 보시죠.”

“맞습니다.”

나는 잠금장치가 고장 난 지갑을 펼쳐 건성으로 뒤적거리며 말했다.

“누가 주운 것인가요?”

내가 물었다.

“아까 사무실 앞에서 보셨던 녀석이 갖고 왔소.”

그가 이마를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그의 머리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담배꽁초를 줍던 친구 말인가요?”

“그렇소. 어제 저녁에 퇴근하려는데 갖고 왔습디다.”

“어디서 주웠다고 하던가요?”

“산 어디라고 하던데. 뭐 없어진 거라도 있소?”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요. 직접 물어봐도 될까요?”

“그거야 댁 마음대로 하시구려. 허나 대화가 될지는 모르겠소.”

대답하는 그의 입가에 비웃음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남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알로하셔츠는 금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중앙 광장의 분수대 밑에서 몇몇 꼬마들이 낙하하는 물줄기에 흠뻑 몸을 적신 채 깔깔거리고 있었고, 무료해 보이는 노인들 몇이 벤치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노인들 옆으로 비둘기 몇 마리가 무엇인가를 쪼아 대며 종종거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사무실 문을 열었다.

거울 앞에서 가발을 고쳐 쓰고 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맞았다.

“또 무슨 일이오?”

남자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요.”

“저녁 6시까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기서 쓰레기를 줍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려 보시오. 화장실이라도 간 게지.”

“여기 직원인가요?”

“직원은 무슨. 그냥 덜 떨어진 녀석인데 매일 나와서 쓰레기를 줍는 게 일이오. 직원은 휴무라도 있지, 저 녀석은 1년에 하루도 빼놓지 않는다오. 가끔가다 사람들이 커피도 사 주고 용돈도 주고 하니까 그 재미로 나오는 모양이오. 댁도 뭐 물어보려면 옆 가게에서 김밥이라도 하나 사 주면서 물어보시오.”

“알겠습니다.”

나는 전시대에 전열되어 있는 등산로 팸플릿을 슬쩍 집어 들고 문을 닫았다. 여전히 알로하셔츠는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앞에 붙어 있는 김밥집은 가게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규모였다. 하지만 김밥, 번데기, 옥수수, 감자떡, 핫바, 돼지머리고기 등이 오밀조밀 진열되어 있었다. 빨간 배낭을 메고 있는 화장기 없는 여자가 노점상 아주머니의 김밥 싸는 모습을 ‘김연아의 아이스쇼’라도 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흰색 홍보 트럭이 멈춰 섰다.

트럭 옆에 붙은 대형 화면에서는 시립 병원 건립과 관련된 동영상이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나오고 있었다. 운전사가 내리고 몇 가지 조작을 마치자 차량과 연결된 스피커에서 카랑카랑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장, 추진위원회 위원, 시민들이 출연해서 시립 병원 건립의 당위성에 대해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2분 남짓의 동영상을 몇 번이고 보고 있는 사이 귀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알로하셔츠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에서 오이를 씻은 다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고, 계곡 물은 말라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곡 옆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도시락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누군가 질펀한 농담이라도 했는지 아줌마 몇이 목청을 높여 웃어 댔다.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검은색 신형 SUV 한 대가 타이어 마찰음을 내면서 속도를 높여 등산로를 올라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황급히 길 양옆으로 몸을 피했다. 회색 승복(僧服)을 입은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SUV는 물살을 가르는 상어처럼 인파를 가르며 산을 향해 올라갔다.

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멘트 길이 끝나고 소음도 잦아들었다.

흙을 밟으며 걷다보니 능선을 오르는 가파른 길이 나타났다. 나무 계단을 중간쯤 오르자 등이 축축하게 젖어 왔다. 헉헉거리며 능선에 올라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이름도 모르는 새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듣는 새소리였다.

공원 입구에서 유턴해 내려가는 노선버스들이 보였다.

입구가 종점이었다.

인도에는 과일이며 칡즙 같은 좌판을 늘어놓고 있는 사람들, 생계를 위한 간판들, 등산용품을 팔려는 호객꾼들로 번잡스러웠다.

오이를 하나 꺼내 베어 물었다.

향긋하지도 아삭거리지도 않았다. 손님을 유혹하기 위해 유리창 안쪽에 진열해 놓은 음식 모형을 맛보는 것 같았다. 몇 번 씹다가 삼켜 버리고, 비닐봉지에 오이와 함께 넣어 둔 어머니의 지갑을 꺼냈다.

지갑은 내가 선물한 것이었다. 패션 감각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화려하고 번쩍거렸다.

지갑을 펼치자 어머니의 주민등록증이 제일 먼저 보였다.

영정 사진 이후 처음으로 보는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시선을 카메라보다 약간 높게 잡았는지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푸석거리는 오이를 한 입 더 베어 물고 씹었다.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걸신들린 사람처럼 우적우적 오이를 씹어 먹었다. 주린 배를 채우려는 사람처럼 베어 물고, 씹고, 삼켰다.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 손을 넣었을 때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비닐봉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나는 잡지 않았다.

검은 비닐봉지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다 나뭇가지에 걸려 만장(挽章)처럼 펄럭거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집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는 어머니와 내가 있었지만, 그녀는 지하 전세방에서 홀로 죽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경찰에게 전해 듣고 나서야, 돋보기를 쓰고 꾹꾹 눌러 보내던 오자투성이 문자가 끊어진 지 한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 친구분이 연락이 닿지 않아 집으로 찾아갔다가 발견하셨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경찰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나는 낮에 반주 삼아 마신 소주 두 병의 취기로 곤죽이 된 뇌에, 귀를 통해 전달되는 말의 의미를 새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일단 사고사의 가능성이 높지만 병원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서에 한번 오셔야 합니다.”

나는 어물거리며 어디로 찾아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경찰이 불러 주는 장소를 볼펜으로 꾹꾹 눌러 라면 국물이 말라붙어 있는 신문지에 적었다. 그리고 어눌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 고통은…….”

“일찍 발견하셨으면 사실 수도 있었답니다.”

경찰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비난이 담겨 있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매운 라면 국물과 소주가 식도를 역류해 코와 입으로 넘어왔다. 눈알이 빠질 것처럼 팽창되었고 콧구멍이 타는 것처럼 쓰라렸다. 나는 채 소화되지 않은 면발과 소주를 게워내고 또 게워냈다.

어머니는 넘어지면서 탁자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갑 안에 돈은 없었다. 꼼꼼하게 적어 놓은 교회 친구들 연락처와 전화 카드, 교통 카드로 사용되는 현금 카드, 단골 미용실의 종이 쿠폰이 있었다. 네 번째 ‘파마’ 칸에 도장이 찍힌 쿠폰에는 8/19라고 볼펜으로 써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문자가 온 날짜였다. 그리고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내 증명사진이 있었다. 증명사진 속의 나는 지나친 포토샵과 지나간 시간 때문에 허옇게 바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거리던 비닐봉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나무 계단을 밟으며 능선을 내려왔다.
광장이 가까워 오자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는 청년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천국에 가는 길을 알려 주는 전단지를 전해 주었다. 나는 청년이 준 종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잰 걸음을 놀렸다.

광장은 더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시립 병원 홍보 차량은 여전히 똑같은 동영상을 내보내고 있었고, 대학교 교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 있었다. 그들은 번갈아 가면서 마이크를 붙잡고 새로 부임한 재단 이사장이 몇 십 년 된 대학교의 명칭 자체를 바꾸려 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가발을 쓴 관리 사무소 직원은 차단기 앞에서 막걸리 배달 트럭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배달 직원은 차단기 안으로 들어가서 편의점 바로 앞에서 물건을 내리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고, 직원은 담뱃재를 흩뿌리면서 규칙 위반이라서 안 된다고 우기고 있었다.

관리 사무소 옆 창고 근처에 알로하셔츠가 있었다.

그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천원 지폐 몇 장을 부채처럼 펼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흔들어 대고 있었다.

“돈 많네. 누가 줬어요?”

내가 물었다.

알로하셔츠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얼른 지폐를 셔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면 그거 더 줄게요.”

“하, 하나?”

알로하셔츠가 새카맣게 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잘 대답하면 더 많이.”

“마, 많이?”

“많이.”

“이, 이렇게?”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나무젓가락을 떨어뜨리며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어디서 주웠어요?”

내가 어머니의 지갑을 보여 주었다. 알로하셔츠는 어머니의 지갑을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모, 몰라. 나 아니야.”

“관리 사무소에서 이거 아저씨가 주워 왔다는데?”

“나 아니야.”

그는 고개를 완강하게 흔들어 댔다.

나는 알로하셔츠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가 이 지갑에서 돈 꺼냈어요?”

“아, 아니야.”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도망가려고 했다. 나는 얼른 남자의 셔츠를 잡아챘다. 남자가 털퍼덕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냈다.

“아저씨가 지갑에서 돈을 꺼냈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어요. 지갑을 어디에서 주웠는지만 말해 줘요. 그럼 이것도 줄게요.”

알로하셔츠의 눈에 갈등의 빛이 어렸다.

내 말이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눈치였다. 나는 지폐를 그의 눈앞에서 흔들어 댔다.

“정말 줄 거야?”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이야. 산에서 주웠어.”

남자가 산 위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산 어디요?”

“그냥 산.”

“어딘지 다시 갈 수 있어요?”

“몰라.”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알로하셔츠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서 더 이상의 정보를 알아낸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손에 쥐고 있던 지폐를 남자의 손에 넘겨주고 일어섰다.

남자는 셔츠 주머니에 넣었던 지폐에 내가 준 지폐까지 합쳐서 펄럭거리며 흔들어 댔다. 나는 지갑을 손에 들고 버스 종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버리는 거 봤어.”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