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 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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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주석은 작품 속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해설입니다.

1

마침내 문이 열렸다.

너무 많은 계단을 뛰어 올라온 탓인지 숨이 찼다. 습관적으로 주위를 살폈지만 옥상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옥상을 돌아보다, 난간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내려다본 도시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주머니에서 구식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팔목에 붙이는 니코틴 패치가 생산되기 시작한 이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뭘까.

담배에 불을 붙이며 생각했다. 눈부신 어둠 속에서 각양각색의 호버크래프트들이 어지럽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빌딩의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쉬지 않고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거기, 그녀가 웃고 있었다.

2

“이런 년들도 잡아줄 수 있소?”

키가 작고 체구가 다부진 사내가 찾아온 것은 이틀 전이었다. 일이 없어 병원을 찾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눈이 흐려지는 증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망박박리(網膜剝離). 운명 같은, 아니 하나의 낙인 같은 병.

“앉으시죠.”

“앉을 정신은 없소. 급하니까.”

“그럼 용건부터.”

“십대 여자아이 둘이요. 몸을 파는 계집들이지. 아주 악질이라 우리 회사에 끼치는 손해가 막심해. 잡아주시오.”
“홀로그램 있습니까?”
“물론이지.”

사내는 주머니에서 UDC를 꺼내들었다. 버튼을 누르자 초록색 레이저가 방 안을 채우더니 그 사이로 은은하게 입체 영상이 피어올랐다.

“처음부터 이런 피부를 바랐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기대 이상이었죠. 언제까지 열여덟일 수는 없잖아요? 시작하세요. 존슨 앤 존슨.”

영상에 등장한 여자는 케이티 윤이었다. 세기의 슈퍼스타. 순수의 히로인. 가수로 시작해 연기자로, 이제는 광고모델로까지 성공한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의 여신이자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안드로이드들이 판을 치는 연예계에서, 유일하게 인간 출신으로 정상의 자리까지 오른 소녀. 모든 것이 만들어지는 이 세계에서 그녀는 인조(人造)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은 유일한 존재였다. 언제까지 열여덟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녀가 출연하는 광고는 늘 인간을 대상으로 했다. 안드로이드라면 언제까지나 열여덟일 수 있으니까.

“이 사람을 잡아달라는 말입니까? 이 여자는……”

“케이티 윤이지. 내가 미쳤소?”

사내는 명함을 내밀었다.

“매니저요. 그 아일 사칭하고 다니는 쓰레기들을 잡아달라는 거지.”

3

사내가 돌아간 뒤 나는 한참동안 그가 남기고 간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G&P Entertainment Group
이사 카톤 밀러

그의 등장이 남긴 첫 번째 의문은, 무엇보다 등장 자체였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스타를 관리하는, 역시 대기업이나 다름없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이사이자 그녀의 총괄 매니저인 그가 왜 나 같은 무명의 체이서를 찾아왔을까. 케이티 윤에 관한 사건이라면 경찰에서 기꺼이 대규모 수사병력을 내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경찰에 의뢰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머리에 총 맞았소? 얼씨구나 하고 기자들부터 달려들 텐데. 조용히 처리해 주시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건 그거요. 조용히. 찍 소리 안 나게. 알겠소?”

사내는 집게손가락을 입에 연신 가져다 대며 말했다. 케이티 윤의 얼굴을 그대로 옮겨놓은 복제 안드로이드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 한 년이 아주 똑같다더군. 지저분한 새끼들 같으니. 가진 거라곤 순수함밖에 없는 애를 복제해다가 창녀로 써먹어? 그 안드로이드 짝퉁 때문에 요즘 우리 회사 이미지가 말이 아니오. 주가에도 영향이 있고. G&P에서 안드로이드를 쓴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그렇게 쉽게 스타를 찍어낼 수 있다면 우리가 왜 이 고생을 하겠소? 게다가 옳다구나 하고 거기에 환장하는 사내새끼들이라니. 분명 배후세력이 있을 거요. 암, 그렇고말고. 어쩌면 MJ 쪽일지도 모르지. 악랄한 새끼들. 그것들까지 일망타진해 주시오. 뭐, 혼자서 힘이 부족하다면 다른 체이서들과 연계해도 좋소. 단, 그 전에 내게 알려줘야지. 분명한 건 절대 경찰은 안 된다는 거요. 경찰 새끼들은 입이 싸단 말이야, 대체적으로. 알겠소? 실패보다 더 나쁜 건 새나가는 거야. 보안! 그게 가장 우선이오.

십여 분 가까운 대화 가운데 그는 오 분 이상을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데 썼다. 그때마다 나는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 홀로그램 속 케이티 윤을 바라보았다. 십오 초짜리 광고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조금도 지루하다거나 질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도리어 볼수록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볼, 그녀의 입술, 그녀의 눈빛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그것처럼 생생했다. 시작하세요. 그녀가 속삭일 때마다 난 정말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수는?”

“착수금 십만. 못 찾아도 이건 당신 꺼요. 하지만 찾아서 없앤다면 여기에 백만을 더 얹어주지.”

사내는 은색 티타늄 가방을 꺼내 현금을 보여주더니 가방 채로 책상 위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가방만 해도 천불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내가 황급히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습니까? 라고 묻자 사내는 사무실을 나서려다 말고 적선하듯 한 마디를 던졌다.

“펫돌이라고 들어본 적 있소?”

4

막상 사건을 맡았지만 일은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오리무중이었다. 누군가 살해당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플레져 토이로 몸을 팔고 다니는 두 명의 안드로이드를 잡아야 한다. 단서는 그중 한 명이 케이티 윤을 닮았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먼저 D구역의 드로이드로 향했다. 모든 조사는 드로이드에서부터 시작할 것. 경험이 남긴 교훈이었다.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지 못한다 해도 위스키 한 잔쯤은 마실 수 있겠지. 중얼거리며 녹슨 ID 카드를 넣어 시동을 걸었다.

B구역을 벗어날 즈음 구형 호버크래프트가 길을 찾지 못해 자동운전을 포기하고 수동운전으로 모드를 변환했다.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 탓인지 아니면 각종 전파 탓인지 요즘 들어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대기권을 메우다시피 한 위성들은 상공에서 파악한 위치 정보를 쏘아대고, 다른 위성들은 상대방 회사의 위성이 쏘는 전파에 대해 방해전파를 쏘아댄다. 군사용 위성들은 일정한 시간마다 정기적으로 모든 전파를 무력화시키는 전파 폭탄을 떨어뜨리고, 통합정부 소속 위성들은 끊임없이 다른 위성들의 위치와 전파사용을 감시하는 전파를 쏜다. 만약 우리의 눈이 전파를 볼 수 있다면, 이 잿빛 하늘은 수천수만의 갖가지 광선들이 그려내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 같을 것이다. 그러니 십 년도 더 된 이깟 고물 호버크래프트의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한참 달리고 있는데 뒤따라오고 있는 호버크래프트가 눈에 들어왔다. 자동운전 모드라면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뒤차가 바뀌지 않는 경우가 흔하지만, 지금처럼 수동운전일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내 뒤를 좇고 있는 것은 1인용 호버비히클. 미행에 주로 사용되는 차종이다. 나는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천천히 차를 몰다가 드로이드 근처 빌딩숲부터 속력을 내기 시작해 뒤차를 따돌린 다음, 지상주차장 대신 직원들이 사용하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좀 늦었군.”

바 쪽에 자리를 잡자 케이가 말했다.

“글렉피딕, 스트레이트.”

“이미 자네가 들어오던 순간부터 준비해 뒀다네.”

케이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건?”

“그래.”

혀끝으로 술잔 가득 담긴 위스키를 살짝 건드렸다. 마치 소녀처럼 몸을 웅크린 채 액체 속에서 쉽게 나오지 않으려 하는 향기. 한 모금을 입에 물었다가 혀로 입 안을 한 바퀴 돌린 후에 식도로 넘기자, 곧 목 끝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액체의 느낌과 함께 입 안 가득 향기가 솟아났다. 소녀가 입 속에서 비로소 눈을 떴다.

“펫돌이라고 아나?”

“글쎄.”

케이는 술잔을 닦으며 대답했다.

“역시 그렇군.”

“사건과 관련 있는 거야?”

“어쩌면.”

“요즘 새로 오는 손님 중에 펫돌 뭐시기가 있긴 하지. 두 번이나 외상을 줬는데 아직 안 갚았어. 감히 이 케이한테 말이지. 한 번만 더 외상 해달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하던 참이야.”

“어떤 놈이야?”

“나쁜 놈이지, 흐흐. 사실 잘 몰라. 와서 조용히 술만 홀짝거리다 가니까.”

“주소 있나?”

“저번에 남긴 명함이 어디 있을 텐데……”

케이는 선반 아래쪽을 뒤적거리더니 곧 뭔가를 찾아냈다.

“여기 있군.”

쁘띠 펫 하우스
당신의 외로움을 나누어드립니다

잔뜩 구겨지고 때가 묻은 명함 속에는 광고 카피 같은 문구와 함께 주소가 적혀 있었다. F구역 437섹터, 소돔 근방이었다. 나는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려다가, 생각난 것이 있어 다시 자리에 앉아 메모지를 꺼냈다.

“이거, 포스팅 좀 해줘.”

나는 휘갈겨 쓴 메모를 건네고 드로이드를 빠져나왔다.

5

소돔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마음이 편치 않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중 하나의 이름을 따서 부를 만큼 소문난 범죄다발구역이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돔. 인간들의 죄와 탐욕이 마치 쓰레기 처리장처럼 모이는 곳. 더 이상 물길이 열리지 않는 검은 호수처럼 모든 더러운 것들이 흘러들어와 고인 채 함께 썩어가는 곳. 나는 그곳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어쩌면…… 그곳에서 눈을 감을 것이다. 소돔에 갈 때마다 기분이 언짢아지는 이유는 마치 그 곳이 과거의 요람처럼, 혹은 미래의 무덤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E구역과 F구역을 가르는 경계선에는 대형 전광판이 서 있었다. 소돔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수세기 전으로 되돌아간다. 이 전광판은 그러니까, 일종의 마지막 문명인 셈이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경계선 같은 것. 그 거대한 문명의 빛 속에서 케이티 윤이 미소 짓고 있었다. Can I walk with you? 수줍게 웃는 그녀의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 사이로 여름의 햇살이 쏟아 들어져오고 있었다. 초록색 포플러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좁은 길을 따라 그녀가 먼저 걷기 시작했다. 간간히 뒤를 돌아보는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반짝거리는 분홍빛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났다. 그녀의 뒷모습이 한참 멀어질 때쯤 길 한쪽에 낯익은 음료수 병이 등장했다. 녹차 음료 광고였다. 한 병에 5불씩 하는, 한 번 마시기 위해서는 제법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음료수.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새겼다. 찾아야 한다, 저 얼굴을.

F구역 437섹터.

한참을 더 달려 명함에 적힌 주소를 찾아왔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주소였다. 437섹터 찰스턴 스트리트 12-5. 12와 13은 있었지만 그 사이에 응당 있어야 할 12-5번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있어야 한다는 필연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다만 케이가 건넨 명함에 그렇게 적혀 있었을 뿐이다. 나는 명함을 믿은 스스로가 너무 순진하다고 느껴졌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그러니 영원히 의심하라.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체이서의 첫 번째 덕목을 지키지 못한 행위다. 자괴감과 짜증이 동시에 몰려왔다. 예상치 못했던 허기까지 함께.

“시간 좀 있어요?”

뒤를 툭 치며 누군가 말을 걸어온 것은 그때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젊은 아가씨였다.

“뭐지?”

“재미 좀 보고 가시라고요. 시간과 돈이 있다면.”

“얼만데.”

“그거야 손님에 따라 다르죠. 난 시간당 100불이에요, 최소.”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케이티 윤의 얼굴은 아니었다. 소돔에서는 남자가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니면 두 부류 중의 하나를 만난다. 강도 혹은 창녀. 동그란 눈이 귀여운 그녀는 사람일까, 아니면 안드로이드일까. 아니, 그녀는 강도일까, 아니면 창녀일까.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같이 가지.”

그녀는 얼굴을 활짝 펴더니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리듬을 타고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소돔의 밤거리에 울려 퍼졌다.

6

아가씨가 멈춘 곳은 허름한 모텔 앞이었다.

“들어갈 거예요?”

“그러라고 따라온 거 아니었나?”

그녀는 비웃음인지 미소인지 모를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거야 보통 아저씨들 얘기죠.”

“난 보통 아저씨야.”

“아닌데.”

그녀는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기가 차서 되물었다.

“어떻게 확신하지?”

“범인을 잡을 때 한 가지 이유로 확신해요?”

그녀는 씩 웃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내 지갑이었다.

“너……”

지갑 표면의 액정에서 체이서 등록증이 선명하게 출력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쪽으로 지갑을 던지며 덧붙였다.

“백 불만 뺐어요. 어차피 재미 보러 온 건 아닐 테고, 용건이 뭐예요?”

지갑을 열자, 그녀의 말대로 딱 한 장 있던 백 불이 사라져 있었다.

“대체 언제?”

“영업 비밀이에요.”

“돌려달라고 하지 않을게.”

“인사할 때.”

“맨 처음?”

“응. 그러니까,” 그녀가 덧붙였다. “말을 거는 건 모든 게 끝난 뒤예요.”

그제야 모든 것이 맞춰졌다. 시간 좀 있어요? 누군가 내 뒤를 툭, 치며 물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게 아니었다. 묻기 위해 친 것이 아니라, 친 것을 숨기기 위해 물은 것이다.

“사람을 찾고 있어.”

약간은 풀 죽은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그러시겠죠.”

“케이티 윤이라고 알지?”

“슈퍼스타?”

“걔랑 똑같이 생긴 애가 있다던데.”

“음…… 이 동네엔 없어요.”

나는 그녀의 말보다 아주 잠깐 동안의 침묵에 주목했다. 그녀 역시 그런 내 반응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뭐, 그렇게 예쁜 앤 흔치 않으니까.”

그녀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7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자정이 훨씬 지난 새벽이었다. 그녀에게서 어떻게든 백 불의 가치에 상응하는 정보를 캐내려 애썼지만 얻어낸 것은 미미했다. 애슐리. 알아낸 것이라곤 고작 이름뿐이었다. 소매치기 애슐리. 돌아오는 호버크래프트 안에서 나는 그 이름 앞에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단어를 붙여보았다.

대강 몸을 씻고 책상 옆 간이침대를 펴서 누웠다. 눈을 감자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 스쳐갔다. 어떤 것들은 천천히, 어떤 것들은 빠르게. 순서는 뒤죽박죽인 채로 지나가는 영상 속에서 나는 몇 개의 장면들을 붙잡고 반복 재생했다. 그 중 잠들기 직전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영상은 포플러 길에서 뒤돌아 나를 바라보던 케이티 윤의 얼굴이었다.

8

이른 아침, 한 통의 전화가 잠을 깨웠다.

“토이 찾으신 분이죠?”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앳된 목소리의 여자였다.

“그래요.”

“오늘 밤에 시간 괜찮으세요?”

“몇 시쯤?”

“열 시 이후면 좋겠는데.”

“열한 시로 합시다. 대신,”

“네?”

“조건 꼭 맞춰줘요. 포스팅대로.”

수화기 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곧 맑은 음성의 대답이 돌아왔다.

“알겠어요.”

드로이드에 남기고 온 메모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빨리 걸려들 줄은 몰랐는데. ‘플레져 토이 구함. 2:1 매너 있게. 노 헨타이. 케이티 윤 스타일 선호.’ 설사 그들이 내가 찾고 있는 이인조가 아니라 해도, 플레져 토이 뒤에는 그들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케이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고마워, 포스팅.”

“으음…… 이게 누구야. 새벽부터 고맙군. 연락 온 거야?”

“방금.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어.”

“어제 거긴 가봤나?”

“아, 거기. 없는 주소더군. 내가 너무 순진했어.”

“그래? 그럴 리가.”

“아무튼 고맙네. 오후에 시간되면 들르지.”

전화를 끊으려는데 다시 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내가 얘기했던가?”

“뭘?”

“말해준다는 걸 깜빡했어. 명함 주인이 여자란 거 말야.”

통화를 마치자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애슐리. 나는 좀 더 자려던 원래의 계획을 버리고 나갈 채비를 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명함의 주인은 그녀일까?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주소는 뭘까? 그녀는 왜 그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일까? 답을 알 수 없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무실을 나서려던 나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다시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9

정기 강우 시작 5분 전입니다.

호버크래프트 안에서 기상 예보가 흘러나왔다. 잿빛 하늘이 조금 더 검어지는가 싶더니 정확히 5분 후 카운트다운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강우유형은 장대비, 예상 강우량과 강우지속시간은 각각 80mm, 4시간이었다. 나는 우산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젠장, 비라니. 굵은 빗줄기가 창을 때려댔다.

어제 지나쳤던 대형 전광판에서 오늘은 케이티 윤의 또 다른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빛나는 눈동자를 갖고 싶으세요? 저처럼요. 그녀가 눈을 찡긋하자 카메라가 그녀의 눈가를 익스트림 클로즈업했다. 인조 안구 광고 속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그러나 홀로그램으로 보았을 때보다는 조금 슬퍼 보이기도 했다. 표정의 변화나 눈동자 어딘가에 드리워진 그늘 때문은 아니었다. 왜일까. 그녀가 슬퍼 보이는 것은.

다시 F구역 437섹터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곳을 조금 지나쳐 438섹터 끄트머리 즈음에 호버크래프트를 착륙시켰다. 미행이 있을지 모르니 비를 맞더라도 12번지와 13번지 근처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우고 차 밖으로 빠져나오자 예상했던 대로 세차게 비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찰스턴 스트리트까지 걸어가려면 열 블록 정도는 지나야 했다. 나는 몸을 낮게 웅크린 채 걸음을 재촉했다. 오후였지만 이미 어두워진 거리에는 누구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곳곳에 널린 쓰레기와 온갖 폐기물만이 여기가 소돔이라는 것을 일러줄 뿐이었다.

마침내 13번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거리 한쪽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목격했다. 처음에는 맨홀 따위의 뚜껑에서 올라오는 증기가 아닌가 생각했으나, 분명 연기는 사람 키 정도 높이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 안쪽에 늘 휴대하고 다니는 작은 콜트 레이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신속하게 연기가 나는 골목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어멋!”

소리를 지른 것은 여자였다. 12번지와 13번지 사이에 난 조그만 골목길. 어제는 미처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했던 그 좁은 골목길에서 두 여자가 나란히 서서 구식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가 뛰어 들어간 쪽에서 가깝게 서 있던 애슐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권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 옆에, 처음 본 것이 분명하지만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비명을 지른 여자.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 것만 같았다.

“……케이티 윤?”

애슐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 연기보다 옅은 숨이 빗방울 사이로 퍼져나갔다. 애슐리는 나더러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여자와 함께 골목길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10

골목길의 3/4지점, 그러니까 12번지와 13번지 사이의 끄트머리에 작은 철문이 있었다. 쓰레기통과 그 주위에 널린 쓰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이게 12-5번지인건가. 두 여자의 뒤를 좇으며 나는 생각했다. 허리를 잔뜩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입구로 내려가자 지하 통로가 나타났다. 어디선가 비 냄새 같기도 하고 피 냄새 같기도 한 불쾌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들은 익숙한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중간 중간 희미한 불빛들이 보였는데, 불빛의 위치나 정체는 가늠할 수 없었다. 앞서 걷는 둘의 속삭임 말고도 때때로 어둠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 같은 것들이 들려오기도 했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를 썼다.

한참을 걷다가 이번에는 멀리서 조금 큰 불빛 하나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끝까지 다다르자 불빛이 쏟아져 나오는 작은 방이 나타났다. 색색의 벽지로 알록달록 꾸며진 공간이었다. 입구부터 방까지, 대략 2.6피트(약 80센티미터)인 내 보폭으로 천 걸음 이상 걸었으니 족히 0.5마일(약 800미터)은 될 것 같았다. 과거 전쟁 이전에 지어진 프리워(pre-war) 건물들에는 이런 식의 비밀 통로가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돔 건물들의 대부분은 전쟁 전에 지어진 것이었다.

“둘은 무슨 사이요? 당신이 펫 하우스 주인인 거요? 여긴 어디고? 아니, 그보다 이 사람은……”

식탁 겸용으로 보이는 동그란 탁자에 세 사람이 둘러앉자마자 내가 물었다.

“케이티 윤이라고요?”

애슐리가 비웃듯 말했다. 어디선가 잿빛 고양이가 한 마리가 나타나 케이티 윤을 닮은 여자 품으로 뛰어올랐다. 케이티 윤과 똑같이 생긴 그 여자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땅만을 응시한 채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양이가 자세를 바꿀 때마다 간헐적으로 몸을 떨었다.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잠시 후 내가 말하자 고양이가 날카롭게 울어댔다. 애슐리와 케이티 윤을 닮은 여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쁘띠 펫 하우스에 오신 걸 환영해요.”

애슐리가 말했다.

“초대한 건 아니지만.”

순간 나는 망설였다. 지금 이 순간은 어쩌면 완벽한 기회다. 아까 꺼냈던 콜트에 손을 뻗어 11시와 1시 방향에 앉은 두 사람을 쏘는 데는 2.5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케이티 윤을 닮은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 매니저에게 사진과 동영상 자료를 제출한다면 손쉽게 백만 달러를 손에 쥘 수도 있을 것이다. 카톤 밀러가 찾던 일당이 이들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유사 범죄는 언제나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뭘 망설이고 있나?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가 이 사건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 내 안의 목소리가 말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제거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주어진 임무는 살해였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해석이었다. 인간에 대한, 안드로이드에 대한 해석. 사건에 대한 해석. 의뢰에 대한 해석. 그것만이 내 풀리지 않는 갈증이자, 이 빌어먹을 일을 계속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어쩌면 내가 좇고 있는 것은 언제나 사건이 아니라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왜 케이티 윤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거지?”

복잡해진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얘가요?”

애슐리였다.

“당신 말고. 누굴 위해서지?”

“웃기는 소리 하시네.”

“너 말고! 대답해 봐. 왜지?”

“죽고 싶어요?”

애슐리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뭐?”

“아저씬 곧 죽어요.”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