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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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김씨 – 6개월 전, 행복아파트 213동 경비실

“형니임~ 형님, 어디 계세요?”

또 그 놈이다. 안 그래도 비실한 소변줄기가 뚝, 끊긴다. 니도 저 목소리 듣기 싫재? 우리 순찰 나간 척 조용히 숨어 있을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며칠째 계속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

“하하, 우리 형님 화장실 계시나보네! 빨리 끊고 나오세요오~ 제가 좋은 소식 들고 왔다니까요.”

좋은 소식은 개뿔, 집 팔아먹으려고 그러겠지. 저놈은 프라이버시가 뭔지도 모르나? 지가 뭔데 조용한 나의 공간을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드느냐 말이야.

“아, 자네가 어쩐 일인가? 이 시간에 가게는 어쩌고 여기까지 왔어?”

“형님 생각해서 가게 문 닫고 쏜살같이 왔죠! 이거 뭐야, 또 라면 드시게요? 아이고 형님, 연세도 있으신데 자꾸 이렇게 라면으로 때우고 그러시면 몸 상하세요! 저랑 가서 돼지갈비에 소주라도 한 잔 하면서 얘기하시죠.”

“나 지금 근무 중이야. 어디 자리를 비우고 나가 술을 먹어? 여기 경비실에서 라면 먹으면 되네. 그리고, 라면이 뭐 어때서? 우리 어릴 때 이게 얼마나 고급음식이었는데!”

“아이고 어련하시겠어요. 212동 213동 주민들은 형님한테 감사패 드려야 한다니까! 이렇게 열심히 지켜주는 경비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겠어요?”

“아 시끄러! 쉰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 바쁜 사람 붙들고 뭐하자는 게야, 지금?”

“우리 형님 진짜 못됐다~ 자기 생각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시고! 형님, 제가 복비 몇 푼 받자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그깟 18평짜리 계약해 봐야 얼마 떨어지지도 않아요. 그런 푼돈에 연연할 제가 아닙니다. 이 집이 급매로 너무 싸게 잘 나와서, 꼭 형님한테 해드리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니까요, 진짜.”

“그럴 돈이 어디 있어? 먹고 죽으려고 해도 나 그런 돈 없네!”

“아따, 이 형님 좀 보소. 누가 그 돈 뺏어갑니까. 이렇게 경비실에서 먹고 자고, 월급 꼬박꼬박 다 모아놓은 거 동네 사람들 다 알아요. 저 아래 신협 우수고객이시라면서요? 형님, 요즘은 있잖아요? 저축의 시대가 아니라 투자의 시대에요. 적금 붓고 정기예금 넣어놔 보세요, 잘 아시겠지만 이자가 쥐꼬리 아닙니까! 그렇다고 형님 연세에 쪽박 찰지도 모르는 주식을 할 수도 없고, 3년 5년 묵혀둘 펀드를 할 수도 없는 거 아닙니까. 답은 딱 하나, 부동산이란 거예요!”

“하이고, 내가 살다보니 부동산업자한테서 부동산 좋다는 얘기를 다 듣는구먼. 복덕방쟁이가 부동산을 권할 줄은 내 미처 몰랐네.”

“하하하, 우리 형님, 베~ 베~ 꼬이셨다니까. 이런 형님이 뭐가 좋아서, 내가 이렇게 발 벗고 도우려고 안달하나 몰라. 오늘밤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내일이면 임자가 나타날지도 몰라서 그래요. 제가 아까 신협 김 과장이랑 통화했는데요, 형님 조건이면 5%대 금리로 이천만 원까지 대출 가능하대요. 전세 끼고 대출 이천 받고 나머지 사천만 마련하시면 스위트홈이 생기는 겁니다. 언제까지 이 난방도 시원찮은 경비실 구석에서 새우잠 주무실 거예요? 형님도 이제 잠만 자는 방, 벗어나셔야죠!”

“사천이 누구 집 애 이름이야? 먹고 죽으려고 해도 난 그런 돈 없네. 게다가 빚이 이천? 요즘 사람들은 빚 무서운 줄 몰라 큰일이야. 이천만 원을 모으려면 몇 년을 뼈 빠지게 일해야 되는 줄 아는가? 내 월급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꼬박 2년이네!”

“형님이 그래서 답답하시다는 거예요. 집값은 그동안 가만히 있나요? 15년 채우고 리모델링 하거나 은근슬쩍 옆 동네 뉴타운 개발 들어가면 앉아서 수 천만 원 버시는 거예요. 어떻게들 알았는지, 돈 싸들고 와서 물건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요. 이 집은 나오자마자 제가 딴 데 안 돌리고 형님한테 바로 갖고 온 거예요. 게다가 집주인 사정이 급해서 천만 원이나 싸게 내놓은 알짜배기라고요! 진짜 마누라한테도 주기 아까운 물건인데……”

“그렇게 좋으면 자네 마누라 주면 되겠네. 나 라면 끓여야 되니 어서 가보시게!”

“형님, 언제까지 이렇게 사실 건데요? 형님도 남들처럼 번듯하게 한번 살아보셔야 할 거 아닙니까. 단지상가에 수릉갈비, 거기 주방 아주머니 좋아하시죠? 홀로 되신 두 분이서 한 집에서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면 좀 좋아요? 여기 내 명의로 아파트 있네, 하시면 아주머니도 혹 할 거 아니냐고요~”

“무, 무슨 망측한 소리를……. 누가 누굴 조, 좋아해?”

“우리 형님 얼굴 빨개지신 것 좀 봐~! 그러게 돼지갈비 먹으러 가자니까는. 제가 아주머니 앞에서 형님 명의로 아파트도 생긴다, 분위기 쫘악 잡아드리려고 했더니……. 내 맘을 몰라줘도, 이렇게 몰라줘요! 이참에 아파트 장만하시고, 용기내서 대쉬해 보세요! 아 진짜, 하루하루가 아깝잖아요, 형님 연세에…….”

“시끄러. 비싼 밥 먹고 이상한 소리만 잔뜩 하고 있어! 얼른 나가!”

“잘 생각해 보십쇼~ 내가 장밋빛 인생 설계 다 해 드렸구먼! 내일 오겠습니다아~ 모레는 늦어요, 진짜 내일까지만 기다릴 겁니다.”

스튜어디스 박미정 – 석 달 전, 행복아파트 211동 1304호

“몰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뭔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어~”

“뭐가 달라져 있는데? 없어진 거라도 있어?”

얼굴에 에센스 팩을 붙이느라 고개를 한껏 젖힌 채 김 선배가 묻는다.

“아니, 혹시나 해서 다 뒤져봤는데 없어진 건 없어. 근데 계속 찜찜해!”

“너 요새 무리해서 그래. 비행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잖아!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피곤한 게 어제오늘 일인가? 이 일 하루이틀 한 것도 아니고……. 분명히 나 없을 때 집에 누가 들락거리는 것 같아~”

“누구?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혹시, 옛날에 그 스토커?”

“아니, 그 자식은 이렇게 치밀하지 못해. 따로 짐작 가는 사람도 없고. 근데 집에 올 때마다 무서워서 죽겠어! 얼마 전엔 전기 충격기도 사왔다니까?”

“너, 그래서 오늘 자고 가라고 그랬구나? 스토커한테 나까지 같이 당하라고? 으응?”

하얀 시트지를 얼굴에 붙인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미안미안, 그래도 나 혼자보단 낫잖아. 내가 다음에 맛있는 거 살게, 선배~”

“뭐 이렇게 수다도 떨고 좋긴 하다만, 매일 이러면 어떻게 사냐? 뭔가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 확 이사라도 갔으면 좋겠는데, 집주인 바뀌면서 새로 전세계약 한 지 두 달밖에 안 됐어. 그 전 집주인이 전세금 빼줄 형편이 안 됐고, 새 집주인도 그냥 살아주면 좋겠다고 해서. 차라리 그때 이사를 갈 걸. 이럴 줄 알았나, 뭐?”

“이 정도 아파트 전세가 이 가격이면 나쁘진 않지. 일단 버텨보고, 도저히 안 되겠으면 복비 물고 중간에라도 나가. 계속 이렇게 불안하게 살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응, 그래야 할까봐. 아, 내가 진짜 이것 때문에 늙는다, 늙어! 여기 주름 는 것 좀 봐.”

팩을 붙이고 나도 나란히 눕는다. 장거리 비행 후라 몸이 천근만근이다.

“일단 아쉬운 대로, 경비 아저씨한테 따로 부탁해 놓고. 정 안되겠으면 CCTV 이런 거라도 달아봐. 진짜 스토커든, 니가 예민한 거든, 눈으로 확인하면 마음은 편하잖아.”

“아이고, 그럴 돈 있으면 악착같이 모아서 좋은 집으로 이사 가겠네요~”

“어련하시겠어요, 짠순이 아가씨. 그럼 돈 안 드는 보디가드 겸 애인이라도 구해 보시든지요. 내가 매일 와서 같이 잘 수는 없잖아. 지난 번에 명함 주고 간 그 남자는 어때?”

“누구? 아, 그 남자? 대학 때 아이스하키 선수 했다고 하고 덩치도 좋긴 하더라, 크크. 근데, 남자를 매일 집으로 데려오란 거? 이 사람이 진짜!”

“히히, 뭐 겸사겸사, 진도도 빨리 나가고 좋은 거 아닌가?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 소리야. 덩치 좋은 남자랑 같이 다니면, 스토커 지도 겁먹을 거 아니니. 옛날에 스토킹 당하던 거 생각나서 더 불안한 거 같아, 너~”

“아이씨, 그런가? 그때도 어찌나 끔찍했던지……. 내 눈앞에서 그 사람만 없애준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더라니까?”

“나도 생생하게 기억나, 니가 얼마나 진저리를 쳤는지. 근데, 그 사람은 어떻게 떼어낸 거야?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지 않았나?”

뭐, 뭐야, 이 언니, 별 걸 다 기억하고 있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응? 으응, 그렇게 됐어. 경찰에서 일하는 아는 분이 중간에서 잘 해결해 주셨지.”

“그래? 진짜 다행이다. 이번에도 문제 있으면 그 분한테 부탁하면 되겠네! 아직도 연락돼? 어떻게 아는 분인데?”

“그냥 어찌어찌 하다가~. 진짜 이번에도 스토킹이면, 언니 말대로, 그 분에게 부탁해야겠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에휴~.”

“왜 한숨을 쉬어? 아니라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대도 해결방법이 있는걸! 마음 편하게 가져, 아가씨.”

“그래그래, 알았어. 언니밖에 없다. 몸도 피곤한데, 맥주 한 캔씩 어때?”

“어우, 말을 많이 했더니 갈증난다 야. 후딱 가져와보셩~”

“히히, 알았어. 금세 대령하겠습니다.”

고개를 젖힌 채 냉장고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저 언니, 괜히 데려왔네. 쓸데없는 생각만 나게 만들었어. 젠장, 기분이 영 별로다.

경비원 김씨 – 5개월 전, 행복아파트 213동 경비실

211동 1304호. 오늘도 불이 꺼져 있다. 사흘째다. 이번엔 먼 나라로 가는 비행기를 탔나보군. 이전에도 가끔씩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던 그녀를 본 적이 있다. 얼굴에는 곱게 화장을 하고, 숱 많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올린 모습이 참 예뻤다. 언젠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고서야, 스튜디어스인가 스튜어디스인가 하는 비행기 승무원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매일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다녔구먼. 키도 늘씬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했더니, 그래서였어.

내가 계약할 집이 211동 1304호라는 걸 알았을 때도, 그녀가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집주인이 같은 아파트 경비원이라면 행여 무시할까봐, 일부러 얼굴 내밀지 않고 복덕방쟁이가 알아서 하게 두었기 때문이다. 놈이 하도 재촉하는 통에, 떠밀리다시피 산 집이지만, 사고 나니 행복했다. 2년 전세계약을 마쳤으니, 2년 동안 죽어라 대출을 갚으면, 저 집이 완전한 내 것이 된단 말이지. 그 사이 집값이라도 오르면, 한 몫 단단히 쥘 수도 있단 말이지.

야간이나 새벽에 순찰을 돌 때도, 밤에 잠이 안와서 뒤척이다가도, 211동 쪽을 바라보면 마음이 뿌듯했다. 내가 살지는 못해도 밤이면 환하니 따뜻한 불빛이 들어오면 좋으련만, 어찌된 일인지 불이 켜져 있는 날보다 꺼져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관리사무소 김양에게 부탁해, 모든 입주민이 작성하게 되어 있는 신상카드를 들춰보니 비행기 승무원, 오다가다 몇 번 본 적이 있는 그녀였다.

그렇구먼, 이 나라 저 나라 날아다니느라 집을 자주 비웠구먼. 잘 되었네. 자네가 없는 동안 우리 집은 내가 잘 지키고 있으면 되니 말일세. 집은 걱정 말고 마음 편히 출장 다니시게.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꾸벅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내 나이 내일 모레 육십, 평생 처음 가져보는 내 집. 거기에 저렇게 예쁜 그녀가 산다니, 이건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닌가. 그 떠버리 복덕방쟁이가, 내 인생에 복덩어리를 가져다주었어. 대출은 끔찍이도 싫지만, 정기예금보다 몇 배는 더 뿌듯하고 든든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부동산, 부동산 하는 건가.

복덕방쟁이는 계약서와 함께 대여섯 개가 달린 열쇠꾸러미를 내밀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