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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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찜질방

“박국민 씨. 박국민 씨는 1층 안내데스크로 오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박국민 씨는…….”

안내 데스크에 앉은 날씬한 여직원이 박국민을 찾았다. 내 앞을 지나가던 젊은 여자 둘이 “이름이 국민이래.”라고 말하며 자기들끼리 웃었다. 나는 긴장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스포츠 신문을 얼굴에 바싹 가져다 댔다. 신문지 끝이 애처로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렸다. 벌써 세 번째인데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휴. 길게 호흡을 한 후,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국가 대표 축구팀이 분패했고, 탤런트 C군은 나이트클럽에서 난투를 벌였고, 레이싱모델인 K양은 새로운 화보집을 냈다. 건강보조제 광고를 건너뛰고, 스포츠 토토의 스코어 예상을 넘길 때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박국민인데, 뭔 일입니꺼?”

슬그머니 신문을 내리고 안내데스크 쪽을 바라봤다. 키는 160센티미터쯤 될까? 작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데스크에 한 팔을 올린 채 비스듬히 서 있었다.

“아! 어떤 분이 박국민 씨를 급히 찾아서요.”

“어떤 분, 누가요?”

“네? 그, 그게 방금 전까지 여기 계셨던 것 같은데…….”

당황한 듯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마, 쩍 벌어진 어깨 말고도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는 다른 무언가가 있으리라. 예를 들면 험악한 얼굴이나 흉터 같은. 나는 박국민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그의 얼굴을 그려봤다.

“어허. 이 아줌마 좀 보소. 찾긴 누가 찾았다고 사람을 오라가라야. 엉?”

“어, 어떤 분이, 분명히…….”

여자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애처로울 정도로 빠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자가 찾는 ‘어떤 분’인 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재빨리 신문으로 얼굴을 가렸다.

“에이 씨. 열나게 땀 빼고 있었는데, 이기 뭐꼬?”

박국민이 안내데스크 위로 침을 찍 뱉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죄송……”

“똑바로 해. 확 그냥!”

손을 들어 허공에다 으르고 난 뒤, 박국민이 어기적거리며 자리를 떴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머리에 담았다. 작은 키, 벌어진 어깨, 튀어나온 배, 목에 두른 수건. 여기까지는 다른 사람과 구별할 만한 구석이 없다. 결정적인 건 오른쪽 팔뚝의 문신이었다. 찜질복 반팔 아래로 드러난 희미한 회색 문신. 용인가? 아니면 그냥 글자? 안내데스크를 지나 1층 로비로 들어선 박국민이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헤집고 불가마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눈으로 좇았다. 그러면서 놈의 더러운 몸뚱이를 머릿속에 똑똑히 새겼다.

“손님. 안마의자를 이용하시는 게 아니면 내려오셔야 됩니다.”

“네?”

고개를 들어보니 한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야 다른 손님이 이용하시잖아요.”

“아. 네.”

찜질방 직원의 말에 서둘러 안마의자에서 내려왔다. 엄폐물이 되어 주었던 두 달 전 스포츠 신문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저희 보석 찜질방은 항상 고객 여러분의 건강과…….”

겁에 질려 있던 안내데스크의 여직원이 정신을 차렸는지 매시 정각마다 되풀이하는 안내 멘트를 읊어대기 시작했다.

이곳 찜질방에서 잠복한 지 다섯 시간 째.

드디어, 박국민을 찾았다.

이제, 죽이는 일만 남았다.
불가마방 입구가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토요일 오후라 사람이 꽤 붐볐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애들이 넓은 홀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하얀 수건을 말아 양머리처럼 쓰고 있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민호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 1년 동안 벼르고 벼른 마음은 충분히 독해졌지만, 이상하게도 눈물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빠는 순 울보야.” 만화영화에서 조금만 감동적인 장면이 나와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나를 보고 아들 녀석은 그렇게 놀려댔다. 그러면 나는 또 녀석의 더벅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감상에 젖지 말자…….

목에 두른 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다시 불가마방 입구에 집중했다. 아치형의 나무문 위에 매달린 디지털 온도계가 98이라는 숫자로 바뀌었다. 내가 들어간다면 아마 몇 분도 버티지 못하리라. 하지만 박국민은 벌써 30분째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누군가가 로비에 놓인 커다란 텔레비전의 채널을 바꿨다. 연예인들이 떼로 나와서 말장난을 하던 토크쇼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뉴스가 튀어나왔다.

“……경찰 조사 결과 동일범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지난 달 3일에 있었던 홍대 PC방 살인 사건에 이은 연쇄 살인 사건으로 보고 수사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한편, 사건 현장인 신당동 일대의 주민들 중, 사건 발생 시각인 오후 7시부터…….”

“거 원래 보던 거 좀 봅시다. 다른 사람들 다 보고 있는데 뭡니까?”

로비에 누워 있던 남자 한 명이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동조를 했다. 채널은 다시 토크쇼로 돌아갔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불가마방 입구가 열리며 서너 명이 동시에 로비로 나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관찰했다. 모두 얼굴에 수건을 감고 있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내가 찾는 건 문신. 오직 그것뿐이다. 맨 마지막에 나온 작달막한 남자의 오른쪽 팔에 새겨진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놈의 뒤를 쫓았다.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간 박국민은 쭉 늘어선 안마의자를 지나 얼음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나는 얼음방이 마주보이는 위치에 앉아서 놈을 기다렸다. 투명한 유리로 된 얼음방은 바깥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뻣뻣한 동작으로 맨손 체조를 하던 박국민은 몇 분 만에 얼음방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남탕 입구라고 적힌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됐다. 이제 끝낼 순간이 왔다.

밤새 도박을 하고 난 다음 날이면 찜질을 한 뒤 수면실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놈을 따라 남탕으로 들어갔다. 박국민이 찜질복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목욕을 하러 들어간 사이, 사물함에서 3845쪽 짜리 「편람식 조세 법전」을 꺼냈다. 하드커버의 묵직한 그 책 안에는 내 마음처럼 잘 벼린 사시미가 들어 있었다. 휴대하기 좋게 칼날의 길이를 줄이고 손잡이도 짧게 만든 주문 제작품이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책의 가운데 부분을 열었다. 매끄럽게 파여 나간 책장들 속에 들어 있는 시퍼런, 사시미.

내가 칼을 챙기는 사이 샤워를 끝낸 놈이 수면실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수면실에는 아직 시간이 일러서인지 누워 있는 사람이 몇 없었다. 박국민은 제일 안쪽의 2층 침대로 올라갔다. 나는 조용히 따라붙어 놈이 누운 침대의 1층에 가만히 앉았다. 박국민은 눕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일부터 백까지 세 번을 센 후, 책에서 칼을 꺼냈다. 그리고 소리를 죽이며 계단을 올랐다.

박국민은 아랫도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머리맡으로 치운 채 알몸으로 잠들어 있었다. 코를 골 때마다 놈의 두툼한 배가 부풀어 올랐다. 나는 칼을 단단히 쥐고 나머지 손으로 수건을 집어 들었다. 말아서 입을 누르고, 놈의 목에다 칼을 박아 넣으면…….

“영숙아 사랑해!”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뒤편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가 허공에다 손을 몇 번 젓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긴장으로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숨을 죽인 채, 어두운 수면실 안을 다시 둘러봤다. 규칙적으로 바람을 내뿜는 공기청정기 말고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깐. 뭔가 이상하잖아?

일순간 소름이 돋았다.

놈의 코고는 소리가 멈췄다!
미처 대비를 하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왔다. 코끝에 짜릿한 통증을 느끼며 수면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개자슥이! 니 누고?”

박국민이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동작으로 2층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내 배를 밟았다. 헉.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놈을 기다리면서 먹었던 맥반석 달걀이 죄다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발길질이 계속됐다. 뜨거운 통증이 온몸 구석구석을 달궜다.

칼. 칼은 어디 있지?

“야! 니 누고? 누군데 내 목을 딸라꼬…….”

놈이 멱살을 거머쥔 채로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자고 있던 사람들이 깨어나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득히 멀게만 들렸다. 빌어먹을. 꼭 실수를 한단 말이야. 얼마나 죽여야, 구질구질하지 않게, 단번에 끝낼 수 있을까? 응? 민호야.

“어라? 니 이 자슥, 그 아새끼…….”

박국민이 드디어 나를 알아봤다. 놈의 눈이 커졌다.

“그래. 나다. 노멀 맨. 흐흐흐.”

손에 잡히는 「편람식 조세 법전」으로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들고 다닐 때는 우라지게 무거워 고생을 시키더니만, 결국 도움이 되는구나.

얻어맞은 박국민이 순간 비틀거렸다. 몸을 일으켜 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시 발길질이 날아왔다. 명치를 차인 나는 뒤로 넘어졌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허리를 숙였다. 바로 그때, 침대 밑에 떨어져 있는 칼을 발견했다. 앞으로 고꾸라지며 칼을 가렸다.

“아따 마. 그때 확 직이삣으야 되는 긴데. 에이 재수 없어.”

놈이 내 머리에 침을 뱉더니 양발을 넓게 벌리고 섰다. 조금씩, 조금씩 손가락을 움직여 칼을 쥐었다.

“뭘 보는교? 그냥 잠이나 처자지.”

이때다! 구경하던 사람들을 향해 놈이 한 마디를 던질 때, 벌떡 일어나며 사타구니 중앙에다 칼을 쑤셔 넣었다.

“으아아아악!”

박국민이 비명을 질렀다. 혈관 중 어딘가가 잘려나갔는지 더운 피가 온몸으로 뿌려졌다. 나는 칼에 힘을 실어 그대로 밀어 붙였다. 그리고 놈의 몸을 헤집으며 칼날의 방향을 돌려 힘껏 위로 당겨 올렸다. 놈은 흰자위만 남긴 채 까무러쳤다.

나는 재빨리 수면실을 빠져나왔다. 수면실 안에서 비명이 이어졌다.

“경찰에 신고해.”

누군가가 소리쳤다. 피투성이가 된 내 모습을 본 남탕 안의 사람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초조한 마음을 누르며 수건 몇 장으로 몸에 묻은 피를 닦았다. 사물함에서 옷을 꺼내 대충 외투만 걸쳐 입었다. 그리고 곧장 남탕을 나와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살인 사건이야.”

“저 남자가 범인이야!”

시끄러운 소리들이 내 뒤를 따라 붙었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몸을 감쌌다. 젠장. 신발을 잊었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긴 꼬리를 남기며 들려왔다.

2. 1년 전

유괴범들은 모두 네 명이었다. 남자 셋과 여자 하나. 겨울 햇살이 비쳐드는 폐공사장 안에서 놈들은 내 주위에 빙 둘러섰다. 한 명, 양복을 입은 남자만이 한 발짝 정도 뒤에 물러서 있었다.

“뭐라고 적은 거야? 노멀 맨? 골 때리는구먼.”

내 티셔츠 위에 적어 넣은 글자를 보고 비웃은 놈은, 그래, 노랑머리, 내가 첫 번째로 죽인 한성진이었다.

“아따. 뭐 이래 비리비리한 새끼 아를 납치했노? 돈이라도 제대로 준비했겠나?”

심한 사투리를 썼던 남자는 박국민. 침을 한 번 뱉고, 발로 쓱 지우기를 되풀이하던 놈.

“돈은 맞아요. 1억 5000만 원.”

내가 준비해 간 돈을 세어 보던 여자는 두 번째로 죽인 권지혜.

“우리 아들, 민호는 어디 있습니까? 돈을 준비했으니 이제 민호를 풀어주세요.”

어쩌면 그때부터, 놈들이 순순히 얼굴을 드러냈을 때부터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놈들 중 한 명이 내 몸을 뒤져 위치추적기를 찾아냈을 때 이미 각오를 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접선 장소로 지정했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다짜고짜 나를 납치해 승합차에 태울 때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다.

사실은, “민호를 납치했다.”라는 전화를 받았던 눈 내리던 그날 밤에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했던 건지도…….

“이제 됐지 않습니까? 입 다물고 가만히 있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민호 제발 좀 풀어주세요. 이 돈도 전세금 빼서 마련한 겁니다. 이제 더 이상 드릴 것도 없어요. 그러니 제발 민호를…….”

“그 새끼 참. 억수로 시끄럽네.”

박국민이 그렇게 말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나는 똑똑히 봤다. 나머지 두 년 놈, 한성진과 권지혜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는 것도 눈치 챘다. 무언가가 잘못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민호야! 아빠 왔어. 어디 있니? 노멀 맨이 너 구하러 왔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민호야!”

나는 티셔츠를 내 보이며 민호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공사장 지붕에 부딪힌 내 목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울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돌려드리겠습니다.”

한 발 물러서 있던 양복 차림의 남자가 불쑥 말했다.

“암. 돌려드려야죠. 약속은 약속이니까.”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협박 전화를 걸었던 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행동을 지시하던 차가운 그 목소리. 너무나도 태연해서 전화를 끊은 후에도 온몸에 돋은 소름을 털어내기 힘들게 만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 놈이 유괴범들의 리더였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 이름. 마형석.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것 봐요. 한성진 씨. 빨리 돌려드리세요. 민호 군 말입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