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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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땀방울이 뚝 떨어졌다. 숨이 거칠어졌다.

늦은 밤, 세상은 고요했다. 소음이라곤 거친 숨소리와 심장박동이 전부였다. 소매로 땀을 훔쳤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는 눈을 깜빡여본다. 여기서 정신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아영아, 괜찮아?”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가 내뱉는 말이 세상에서 유일한 소리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자욱하게 깔린 어둠이 내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

“아영아, 아영아아!”

쾅쾅, 울리는 소리가 심장박동소리처럼 느껴졌다. 그 소리가 끊어지면 내 생명도 이대로 멈추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럴수록 더 절박해졌다.

문고리를 잡았다. 그때 달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고리를 돌렸지만 문을 열리지 않았다. 철컥철컥 대는 소리가 귓가에 거슬렸다.

“김아영, 문은 왜 잠그고 그래? 야, 김아영!”

문을 잡고 흔들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저녁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으면서 왜 갑자기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상처가 어떤지는 봐야 할 거 아냐? 아영아!”

애원하다시피 소리를 질렀다.

“문 열어, 김아영. 고집 부릴 때가 따로 있지, 도대체 왜 그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길게 메아리가 생겨 퍼져나간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화가 났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아영이한테도 화가 났고 아영이를 혼자 두고 있는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애간장이 다 타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문을 쾅 치고는 숨을 들이켰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게 했다. 너무 화가 나서 문에 머리를 박았다. 쿵쿵쿵. 저주스럽다. 나도, 아영이도, 이 세상도.

씩씩 대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그대로 문 앞에 주저앉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울 수 없었다. 여기에서 꼴사납게 눈물을 보일 수 없다.

바로 앞에서 아영이의 숨결이 느껴졌다. 아영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혁아.”

그 말 한마디뿐이었다.

휴게실 문은 더욱 굳게 닫히고 말았다. 아영이의 숨결이 멀어져갔다.

고개를 돌렸다. 닫힌 창문이 이지러진 세상을 막고 있었다. 덕지덕지 붙여놓은 신문이 흉흉한 귀신처럼 보였다. 나를 비웃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죽은 자들의 역겨운 숨소리도 함께 들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창문으로 다가가 신문지를 잡았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붙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책상에 모아둔 신문지를 집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컬렉터(Collector)’가 남긴 문구였다.

페스트가 세계를 휩쓸던 때, 혜성처럼 나타난 도둑이 있었다. 그는 병마가 가득한 세상에서 붕 뜬 달처럼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람들은 열에 들뜬 환자마냥 그가 남긴 기이한 환상을 보았다. 그의 전설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사라진 날, 함께 사라졌다.

웃기지도 않아.

신문을 구겼다. 희망은 전혀 없었다. 고개를 들었다.

캄캄했다. 끔찍하게도 새카만 하늘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별이 사라졌다.

02.

“에, 별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서 말하자면 먼저 우주의 가스 덩어리부터 말해야 합니다. 에, 그러니까 이 덩어리가 뭉치고 뭉쳐 에너지를 생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별의 시작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점점 성장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때 엄청난 온도를 발산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높은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면서 별은 서서히 사라지고 마는 거죠. 에, 아직 밝힐 게 많지만 지금 일어난 일은 이변이라고밖에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별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TV 소리가 유난이 컸다. 윙윙 올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퍼졌다. 멍하니 TV 화면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는 간이침대에 옮겨지고 있었다. 축 늘어진 팔이 새하얀 천 아래로 삐져나왔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같았다. 누군가 내가 들고 있는 리모컨을 빼앗았다. 윙윙 대는 소리가 사라졌다.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다면서요.’

의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의사는 내 시선을 피했다.

‘치료하지 못하겠으면 자신감 있게 말하지 말란 말이야.’

작열할 것 같은 태양이 병실을 가득 비추었다. 눈이 따가웠다. 에어컨을 틀어도 병실은 더웠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구라쟁이.”

말이 툭 나왔다. 의사가 눈썹을 꿈틀댔다. 그를 밀치고는 병실에서 나왔다.

잦아들었던 소음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매미가 목청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불쾌할 정도로 뜨거운 여름이었다.

03.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 잠이 들었지? 잠깐 잤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나는 문에 귀를 갖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고리를 돌리면서 아영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영아, 아영아, 김아영!”

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때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 이름이 들렸다.

“왜 그래, 혁아…….”

“괜찮아? 문 좀 열어봐. 나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무나도 냉정한 목소리에 힘이 쭉 빠졌다. 그대로 멍하니 앉아서 바닥만 바라보았다. 안도감보다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주먹을 꽉 쥔 채 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영이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러나 언제나 포기하는 쪽은 나다. 결국 문 앞에 등을 기대어 앉은 채 먼 산을 바라보았다.

3일. 정확히 3일이 지났다. 여전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지독한 날이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는 검지로 눈두덩을 꾹 눌렀다. 피곤했다. 가슴도 답답했다. 밀폐된 공간은 숨통을 조금씩 빼앗아갔다.

문자가 온 것은 없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봤다. 3일 전에 아이들이 장난으로 올린 글이 있었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 올려 조롱하기도 했고 우리 반 단체 사진이 있는가 하면 공부하다가 지루해져서 책에 낙서한 사진도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깔깔대며 어울렸는데, 지금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앨범으로 들어가 사진을 들쳐보았다.

아영이가 웃고 있었다. 나를 보며 환하고 아름답게. 아침햇살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운 미소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왈칵 울음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울 수 없었다. 폰을 끄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창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에 붙여놓은 신문 틈으로 가느다란 햇살이 들어왔다. 테이프가 떨어진 신문을 살짝 들추어냈다.

바로 앞에 흉측한 얼굴이 보여서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책상에 널브러진 신문지와 테이프를 들었다. 종이를 덧대고는 테이프를 붙여두었다. 그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붙이고 붙이고를 반복했다. 손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두려움이 심장을 파먹어댔다.

죽은 자가 되살아났을 때, 기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굶주린 들개처럼 살아있는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생살을 뜯고 게걸스레 먹어댔다. 한때는 가족이었고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었을 텐데, 자비란 것이 없었다.

사막에서나 볼 법한 신기루가 도시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 죽은 자의 존재는 그러했다. 환영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그것이 사라져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리라 믿었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서 친한 친구가 물어뜯기는 광경을 보게 되면 현실이 얼마나 잔인한지 깨닫게 된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꿈이야. 이건 꿈이야. 수없이 되뇌어도 잔인한 현실은 문신처럼 뇌리에 박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옥이 웃었다. 잔인하고도 끔찍하게 웃어젖혔다.

‘아영아!’

아영이를 찾았다. 죽은 자를 피해 도망가는 아이들 틈에서 아영이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는 달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무작정 뛰었다.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하자.

페스트로 사람이 죽어갈 때 아영이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아기 사슴 같은 눈동자가 잔잔하게 떨렸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휘날리는 머리칼에서 복숭아 향기가 났다. 나는 그 눈이 좋았다. 그녀의 향기가 좋았다. 입가에 파인 보조개가 좋았다. 입에서 나오는 잔잔한 물빛 같은 목소리조차도.

교무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엉망진창이 된 바닥을 바라보았다.

안전한 곳에 와서야 조금 긴장이 풀렸다. 그 끔찍했던 광경을 떠올리니 참을 수 없었다.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내고 위산까지도 토해냈다. 아영이가 내 등을 다독였다.

괜찮아, 혁아?

바람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제야 진정이 되었다. 아영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새하얀 볼에서 진주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괜찮아.

조금 웃어보였다. 아영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무척 맑았다.

04.

새카만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나 몇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꿉꿉한 기운이 피부에 스며들어 끈적거렸다.

“비가 오면 좋겠어.”

아영이에게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혁아.”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아영이는 울었다. 또르르 흐르는 눈물은 맑은 빛을 띠었다.

할아버지의 시신이 화장터에 들어가서야 돌아가신 게 실감이 났다. 병으로 고생하던 나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열에 들끓고, 기침을 끊임없이 해대고 살이 빠져 뼈 윤곽이 다 드러났다.

수척해진 할아버지는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태양이 좋다고 했다. ‘죽으면 화장을 해라. 태양에 녹을 수 있게.’ 평생 낸 시집은 한 권밖에 없으면서 시인이랍시고 마지막에는 제법 시인다운 말을 남겼다.

불꽃이 타올라 할아버지의 몸을 감쌌다. 아영이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혁이, 너에겐 감수성이라는 게 없어.”

눈물을 훔치며 아영이가 말했다. 나는 쓰게 웃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사고로 잃은 후로 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그 유일한 가족이 재가 되어 가는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혼자였다면 울었을지도 모른다. 슬픔이란 슬픔을 모두 껴안은 사람마냥 꺼이꺼이 울부짖었을지도 모르지. 할아버지이기 이전에 나의 친구였고 나의 스승이었으며 나의 아버지였으니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오직 재만 남아 있었다. 그것을 건네받고는 장례식장에서 나왔다.

비가 톡 떨어졌다. 이내 거세지더니 세상을 적셨다.

아영이가 내 등을 다독였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영이가 옆에 있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울지 않을 수 있었다.

05.

“비가 오면 좋겠는데.”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창문을 모두 닫아놓아 교무실은 푹푹 쪘다.

교무실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문을 잠그고 책상을 밀어 문 앞에 두었다. 창문 근처에도 책상을 옮겨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쳐두었다. 그것들이 안을 보지 못하게 아래쪽 창문에는 모두 신문지를 붙여놓았다. 그들이 보지 않을 때에 몰래몰래 붙여놓았지만 곳곳에 틈이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공포는 본능을 일깨운다. 살고자 하는 마음만이 남는다. 끔찍했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내팽개친다.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귀청을 찢을 것 같은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아무리 떨쳐내도 그것은 뇌리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으아아아악!”

귀를 막았다. 환청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저리 가, 이것들아!”

갑작스레 파고든 소리에 깜짝 놀랐다. 너무나 선명한 소리였다.

소리가 다시 들렸다. 서둘러 창문에 붙여놓은 신문지를 조금 떼었다. 트럭 위에서 한 남자가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 주위로 시체가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 학교 교복에 잠깐 멈칫했다. 숨이 턱 막혔다. 죽은 자가 살아나기를 바라지 말자. 이건 죽은 자에 대한 모독이다. 신은 우리에게 가장 끔찍한 저주를 안겨준 것이다. 주먹을 꽉 쥐며 창문을 열어젖혔다.

남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어서 움직임이 둔했다. 트럭을 향해 손을 뻗는 좀비를 막대기를 휘휘 휘둘러 쫓아내는 게 고작이었다. 더 몰리기 전에 좀비들의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소리를 지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좀 더 효과적인 게 필요했다. 창문턱에서 내려와 책상 서랍을 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들 중에서 호루라기를 갖고 있는 분이 있을 텐데.

“아, 있다!”

서랍 구석에 있는 호루라기를 집었다. 손이 떨려서 몇 번이나 호루라기를 떨어뜨렸다. 초조할수록 떨림은 더 심해져만 갔다. 겨우 손에 쥐고는 열려 있는 창문 위로 올라갔다.

삐이이이이이익!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소리가 허공으로 메아리쳤다. 다시 호루라기를 불었다. 몇 번이고 다시 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호루라기 소리를 들은 좀비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트럭으로 향하던 방향을 틀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느릿느릿, 거북이가 기어가는 속도보다 더 느리게 죽은 자의 몸뚱이가 움직였다.

나는 창 밖을 살폈다. 다행히 내 주위에는 좀비가 없었다. 창문틀을 한 손으로 꽉 잡고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야아아! 여기야, 여기! 여기라고!”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트럭으로 시선을 옮겼다. 남자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해요?! 빨리 뛰어요!”

다급하게 외쳤다. 남자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굼벵이도 저거보다 빠르겠네.

“빨리 뛰라니까요!”

필사적으로 외쳤다. 좀비가 걸음을 빨리했다. 나는 교무실로 내려왔다. 무기가 필요했다. 그들이 교무실로 들어오는 날에는 모든 게 끝장이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남자 쪽을 바라보았다. 남자를 향해 손을 뻗는 좀비가 있었다.

“위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막대기의 끝을 좀비 머리에 꽂았다. 그리고 재빨리 트럭에서 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배낭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가느다란 것이 단순한 막대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좀비들이 걸음을 멈추고 다시 남자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남자가 좀비의 머리에 그것을 꽂고는 도로 뺐다.

붉은 핏줄이 흩날렸다. 좀비가 등에 있는 짐을 잡고는 그 위에 매달렸다. 그가 가방을 흔들어대며 그것을 떨어뜨리고는 꼬챙이를 꽂았다.

가방을 버리고 오면 더 빠를 거 아냐!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내 앞으로 거무죽죽한 손이 뻗어왔다. 나는 뒤로 물러나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밖으로 던졌다.

“제길,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책상 위에 있는 화분을 들었다. 물을 주지 않아서 잎사귀 끝이 시들어 있었다. 힘차게 화분을 좀비에게 던졌다. 주위를 재빨리 살핀 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대걸레를 집어 들어 몰려오는 좀비에게 휘둘렀다.

남자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소리쳤다.

“비켜, 비켜, 비켜어어어어어!”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은 꽤나 고통스럽다. 나를 공격하는 자들 중에는 한때 내가 알고 지낸 사람도 있었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같이 웃고, 떠들고, 때론 선생님께 같이 혼나기도 한 그런 사이. 그 얼굴이 눈앞에서 뭉개지는 광경을 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안도감도 없었다. 그저 고통이 더해질 뿐이다.

그렇지만 마냥 감상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죽었다. 이미 썩어 문드러진 시체일 뿐이다. 주먹을 꽉 쥐고 심호흡을 했다. 남자가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가방을 던져요! 이쪽으로 던지세요!”

그가 가방끈을 내렸다. 가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이 옆으로 기울어진다. 가방에서 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안 돼!”

쓰러진 그를 중심으로 좀비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죽은 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품에 안았다. 바로 뒤에 좀비가 있는 것도 보지 못한 채 두 손으로 가방을 들어 올리고는 내 쪽으로 던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가방이 내 바로 뒤로 떨어졌다. 생수가 바닥에 데구르르 굴렀다.

“창문 닫아!”

그가 가뿐하게 창턱을 뛰어넘고는 소리쳤다. 쾅 소리가 날만큼 세게 창문을 닫았다. 그것으로 안심할 수 없어 걸쇠를 잠갔다. 안쪽 창문까지 모두 잠갔지만 바로 앞에 좀비가 있었다. 그들은 손을 들어 창문을 긁고, 두드리고 밀었다.

남자가 내 고개를 꾹 누르며 몸을 숙이게 했다.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열기가 훅 끼쳐왔다. 그들은 한참이나 내 옆에서 맴돌다가 서서히 멀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손을 들어 뭔가를 가리켰지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무, 물!”

한참 후에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생수 통을 집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뚜껑을 따고는 벌컥벌컥 마셔댔다.

“후아, 죽는 줄 알았네.”

남자는 나에게 물을 건넸다. 나는 한 모금 마시고는 그에게 도로 건네주었다. 물은 미지근했다.

“여기 학생이야?”

“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트럭 위에 서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가 턱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그냥, 이래저래. 저놈들 피해 오다보니 여기까지 왔지.”

“배낭은 왜 안 버리셨어요? 배낭만 없었어도 금방 달려왔잖아요. 덕분에 저도 죽을 뻔했어요.”

“버리라고? 어떻게 모은 식량인데 그냥 버려?”

그가 가방을 자기 쪽으로 끌었다. 가방에서 뭔가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그것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까 휘둘렀던 무기가 그거였나. 끝이 우산 손잡이처럼 생겼다.

남자는 가방을 뒤집어 내용물을 모두 쏟아냈다. 가방 안에서 온갖 물건이 나왔다. 음식이며, 책이며, 옷가지도 있었다. 맨 마지막에 원형 모양의 긴 통이 하나 떨어졌다. 남자는 그것을 집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그거, 우산이에요?”

“이거?”

그는 나에게 통을 들어보였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그의 옆에 놓여 있는 것을 가리켰다.

“아아, 이거 말이지.”

남자가 나에게 뼈대만 남은 우산을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낡은 우산을 하나 주웠는데, 꽤 쓸 만하더라고. 무기 구하는 게 쉽지 않아서 그냥 닥치는 대로 주워들긴 했는데, 다 버리고 이거 하나만 남았지, 뭐야. 총이라든가, 검이라든가 이런 무기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깝다는 얼굴로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거 갖고 싶으면 가져도 돼. 그걸로 녀석들의 머리만 노려. 그러면 다시는 안 깨어날 거야.”

“그런 것도 아세요?”

“그럼. 좀비에게 물리면 산 사람도 좀비가 된단 사실도 알고 있지?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아.”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그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지? 이해가 되지 않다. 하기야 아무렇지 않게 좀비를 무찔렀지.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는 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통에만 신경을 썼다.

남자는 먼지가 묻었을까 봐 입으로 통을 호호 불고는 소매로 그것을 조심스레 닦아냈다. 다른 물건은 그냥 방치해 둬도 그것만은 소중한 물건처럼 다뤄서 시선이 멎었다. 불면 깨질까, 놓치면 흠집 생길까 두려워하며 어루만지는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혁아, 혁아……!”

“아영아!”

휴게실 쪽으로 달려갔다. 문에 바짝 가까이 다가갔다.

“아영아, 나 여기 있어.”

“혁아, 무슨 일이야? 소리가 나던데, 괜찮아?”

거친 숨소리와 함께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룻밤 사이에 아영이는 쇠약해졌다.

“아영아, 괜찮아? 문 열어봐.”

“난, 난 괜찮아. 나보다도 혁이 네가…….”

“나도 괜찮아! 괜찮으니까 문 좀 열어줘.”

머리가 아찔해졌다. 주위의 온도가 급 하강했다. 팔에 소름이 돋다. 남자가 내 옆으로 다가와 문 앞을 기웃거렸다.

“누구야? 친구?”

“혁아, 혼자가 아니니?”

“어, 아가씨네. 아가씨, 안녕. 왜 이런 곳에 혼자 있어?”

아영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좀비에게 물리면 산 사람도 좀비가 되는 사실도 알고 있지.’

남자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