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랑하면 귀신이 질투한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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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씨가 된다, 아니 간절히 바라면 온우주가 도와준다, 아니 꿈은 이루어진다. 실종된 셀러브리티를 찾아 내거나 강력 사건을 수임해서 코지 미스터리 탐정 말고 본격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스릴러 액션 탐정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더니 이런 행운이 찾아 왔다. 물론 나에게 행운이면 의뢰인에게는 불운이겠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그 날 그 장소에서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이게 다 에리히 프롬 덕분이다. 연애를 책으로 배워 보겠다고 제목만 보고 <사랑의 기술>을 사서 전철 안에서 읽다가 덮어 버렸다. 연애의 테크닉을 다룬 섹시한 책인 줄 알았더니 철학책이었다. 다른 책 사려고 다시 서점에 갔더니 유명 웹툰 작가의 사인회를 하고 있었다. 남자 작가가 여자친구와의 달달한 일상을 그린 웹툰이었다. 그래, 처음부터 너무 서두르지 말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는 소소한 연애부터 시작하자. 온 김에 사인도 받고.

그렇게 한 시간쯤 서 있는데 줄이 줄어들질 않았다. 출판사 직원은 작가가 잠시 화장실 갔다는 말만 반복했다. 삼십 분쯤 지나도 작가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출판사 직원이 급똥 참는 사람처럼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딘가로 계속 카톡을 보내고 소곤거리며 통화를 하더니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작가의 상태가 심각해서 사인회를 종료한다고 했다. 작가의 데뷔작은 똥과 방귀가 난무하는 개그툰이었다. 차기작으로 일상연애툰을 그리면서도 종종 예민한 장을 개그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출판사 직원은 원하는 문구, 주소, 이름, 연락처를 적어두고 가면 사인된 책을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돌발상황이라 그런지 출판사 직원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불안해 하면서 허둥대느라 사인회가 중단된 지 한 시간도 더 지나서야 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원하는 문구로 ‘누구든 무엇이든 찾아 드립니다. 전일도 탐정’이라고 적었다. 출판사 직원의 눈이 커졌다. 직원에게 속닥였다.

“작가님 혹시 화장실에서 기절하셨나요? 아니면 화장실 말고 다른 문제인가요?”

“…화장실 문제가 맞습니다. 지금 설사 때문에 계속 들락날락 하시느라…오죽하면 필명이 ‘장이 예민하고 섬세하다’고 해서 ‘장민세’ 겠어요.”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

“작가님이 화장실에서 오늘 내로 안 돌아오시면 저한테 의뢰하세요. 산 채로 잡아…아니 확실하게 찾아 드립니다.”

“작가님 어디 갔는지 아세요?”

“화장실 갔다면서요.”

슬픈 생각을 해야 하는데…예를 들면 통장 잔고 라든가, 또는 통장 잔고, 그러니까 통장 잔고 같은 거 말이다. 효과는 ‘변비엔 요구르트’보다 빨리 나타났다. 보안요원을 만나자마자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조카를 잃어 버렸어요…혼자서 화장실 갔다 온다고 했는데…”

사인회를 하던 서점은 대형 쇼핑몰 안에 있었다. 이모와 함께 온 8살 남자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울려 퍼지고, 쇼핑몰의 모든 출입구가 닫혔다. 범인은 이 안에 있…아니 실종자가 이 밀실 안에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꽤 지난 후라서 이미 쇼핑몰 밖으로 나갔을 수도 있었다. 보안 요원과 CCTV를 봤다. 장민세는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가 얼마 후에 나와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의류 매장으로 들어갔다. 대충 옷을 고르더니 코너형 사각 탈의실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매장 직원이 탈의실 문을 두드리다가 열쇠로 문을 열고 빈 탈의실에서 뭔가를 주워서 나왔다. 탈의실에서 실종된 사람이 장기가 사라진 채로 몇 달 후 뒷골목에서 발견되었다는 도시괴담인가? 설마 탈의실 문이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통로는 아니겠지.

“아, 여기 보여요. 조카가 언니랑 집에 간 거였네요.”

쇼핑몰의 문이 열렸다. 장민세가 사라진 탈의실에 들어갔다. 문이 2개 달려서 옆 매장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탈의실이었다. 탈의실 바닥에 남겨져 있던 건 장민세의 신용카드였다. 그 와중에 옷값은 계산하려고 했구나. 장민세는 이 매장으로 들어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옆 매장으로 빠져나간 거다.

장민세가 연재 중인 웹툰이 올라오는 날은 3일 후였다. 예상했던 대로 작가의 건강상 이유로 휴재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댓글의 사인회 목격담을 읽었다.

설탕보다 설렁탕(Love****)

작가가 사인회 도중에 갑자기 화장실 좀 가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뛰어가서 퍼포먼스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대충살자(Ddong****)

나 바로 앞에서 어떤 여자분이 폰이랑 종이 내밀면서 사인해 달라고 했는데, 사인도 못 하고 뛰쳐 나가더라. 급하긴 했던 듯.

똥줄 타겠다. 왜 연락이 안 오냐…할 때쯤 웹툰이 연재되던 플랫폼 쪽에서 카톡이 왔다. 플랫폼 오픈 때부터 연이어 대박을 터뜨려서 ‘개국공신’대우를 받는 작가가 연재를 중단하고 사라졌는데 손 놓고 있을 순 없었겠지. 연재중인 웹툰은 조회수 1위였다. 흰색과 빨간색 스트라이프 비니를 쓰고 같은 무늬의 니트를 입고 나갔다. SNS에서 장민세의 웹툰을 발견하고 계약한 이후로 쭉 같이 일해서 이제는 사적으로도 친구처럼 만난다는 담당 PD는 날 보자마자 정답을 맞혔다.

“’월리를 찾아라’ 컨셉인가요?”

“동그란 뿔테 안경도 쓰고 올 걸 그랬죠?”

장민세는 마감 시한을 넘겨서 PD에게 이번 작품은 당분간 휴재해야 할 것 같다고만 카톡을 보냈다. 이유를 물어도 답이 없고, 이제는 아예 집도 비우고 카톡이며 메일이며 확인은 하는데 답은 없이 잠적해 버려서 일단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여친이랑 헤어져서 실연의 충격과 소재고갈로 완결하려는 거 아닐까요?”

“이거 오프 더 레코드인데, 민세 작가님은 여친 없어요. 드래곤 타 봐야 판타지 쓰고, 사람 죽여 봐야 스릴러 영화 찍는 건 아니잖아요. 일상툰이라고 해도 그게 100% 작가 얘기는 아니에요. 1인칭 소설이 전부 자전적 소설은 아닌 것처럼요.”

“그럼 맨날 화장실 급하고, 방귀 뿡뿡 뀌고 다니는 것도 허구에요? 매일 아침 쾌변이라면 솔로인것보다 더 충격인데요. 변비라면 그래도 이해해 줄 수 있겠지만.”

“장이 예민한 건 사실이에요.”

“혹시 장민세 작가님…화장실에서 지려서…옷 갈아 입고 그대로 집으로 가 버린 후에 아직까지 이불킥 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만약 그랬으면 소재 생겼다고 좋아할 사람이지 쪽팔려할 사람은 아니에요.”

“사인회에서 작가님이 황급히 뛰쳐나가기 직전에 사인 받으러 온 사람 누군지 아세요? 스냅백에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려서 누군지 모르겠던데요. 혹시 그 사람을 피해 도주하고 잠적한 거라면…짐작 가는 사람 있어요? 채권자라거나…?”

“최근에 대출 없이 서울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 했으니까 돈 문제는 아닐 걸요.”

“그럼 혹시 구 여친?”

“제대로 연애 해 본 적이 없댔는데요.”

“대체 뭘 보여준 걸까요? CCTV로도 그 분이 작가님한테 뭘 보여줬는지 확인불가여서요.”

“웹툰을 프린트해 온 거 아니었을까요? 사인은 받고 싶은데 책 사는데 돈 쓰기는 싫어서.”

“혹시 범죄일까요? 사생팬이 작가를 납치해서 군만두만 먹이면서 자기만 볼 수 있는 만화를 그리라고 강요한다거나…”

“제가 납치해서 감금하고 마감 좀 지키라고 갈구고 싶네요. 웹툰으로 뜨더니 방송출연이랑 광고가 우선이라서 매번 마감 늦어서 나까지 퇴근 못 하게 하고…사람이니까 떴으면 변해야죠. 앗 이건 ‘오프 더 레코드’ 입니다.”

“혹시 누군가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는 얘기 한 적 있나요? 평소와 다르게 불안해 보였다거나?”

“항상 똥 마려운 강아지 꼴이라서 특별히 불안해 보이진 않았는데요. 협박은 작가님이 저한테 했죠. 다른 플랫폼에서 연재 제의 들어온다고. 자꾸 마감 재촉하면 그 쪽으로 갈 거라고. 농담이라고 했는데, 그게 지한테나 농담이지.”

PD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처음 보는 액수의 착수금이었다.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힘을 줬더니 입가에 경련이 날 것 같았다.

“이 정도 금액이면 현상금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