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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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튼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았다. 일본 아저씨가 이곳저곳 식당을 돌아다녔다. 그가 이것저것 먹는 한가한 장면들이 지나갔다. 드라마의 백미는 동네에서 돌아다녀 보면 진짜로 있을 만한 곳에 들어가서 진짜로 먹을 수 있을 만한 음식을 먹는 데 있었다. 배우는 평소에 내가 아무 신경도 안 쓸 만한 사람인데도, 그가 바삭바삭한 튀김을 씹으니 전율이 흘렀다.

그때 갑자기 그 바삭바삭한 소리가 멈췄다. 소리가 죽으니 드라마의 본질도 함께 죽었다. 나는 휴대폰의 볼륨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 보았다. 인터페이스가 나타났지만 아무 차이가 없었다. 아직 2년도 안 지났는데, 이 놈의 휴대폰이 벌써 망가졌나? 나는 혼자 괜히 궁시렁거렸다.

“– –?”

그런데,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허리를 일으켜 침대 위에 앉았다.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입을 벌리고 소리를 냈다.

“- – – – – – -“

목에서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옆의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에 연결된 헤드셋을 썼다. 컴퓨터로 아무 음악이나 재생했다. 들리지 않았다. 나는 볼륨을 최대로 높여보았다. 들리지 않았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삐 하는 이명이라도 들리길 기대했다. 들리지 않았다. 그 어떤 청각적 자극도 느낄 수 없었다. 이명도 없었다. 귀가 꽉 찬 느낌도 없었다. 현기증도 없었다. 어떤 갑작스러운 감각도 없었다.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

무서웠다. 몇 주 전에 읽은 책이 기억났다. 그 책에서는 뇌의 한 부분이 망가지면 그 부분에 대한 기억도 사라진다고 했다. 작가는 모든 색각을 갑자기 잃어버린 화가를 소개했다. 그 화가는 빨간색과 초록색과 파란색을 기억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그런 색각, 색상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게 말이다. 내 뇌의 청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망가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충격적이었다.

나는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의 메인 넘버를 떠올렸다. 가사와 리듬과 박자를 기억했다. 나는 노래를 불렀다.

“– — — –, – – -, – – – —-?”

내가 부르는 노래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소리를 듣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소리가 어떤 것인지 기억할 수 있었다. 모든 소음과 화성이 머릿속에 떠돌았다. 그 기억에 맞게, 목이 박자와 리듬에 맞게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서웠다. 소리를 담당하는 뇌의 어떤 본질적인 부분이 망가진 것이 아니더라도, 귀가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면? 뇌의 표면적인 부분이 좀 어떻게 되어버렸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지 고민했다. 나는 이어폰을 거의 쓰지 않는다. 사실 음악 자체를 별로 즐겨 듣지 않는다. 최근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 어떤 전조도 없었다. 뭐 두통도 없었다. 그러면 매일 밤 먹는 수면제 때문인가?

인터넷에 수면제의 부작용을 검색하려고 했다. 수면제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면제의 약 위에 쓰인 약어와 모양을 검색창에 쳤다. 내가 먹는 것과 같은 약이 나왔다. 부작용 목록에 난청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병원에 가야지.

옷을 입었다. 내팽개친 휴대폰은 바닥에 뒤집혀 있었다. 휴대폰을 집어들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갑도 챙겼다. 나는 문 밖으로 나왔다. 현관 밖으로 나서자 엄청나게 뜨거운 햇빛과 질척질척한 습기가 나를 맞았다. 썬크림을 바르지 않은 것이 잠시 마음에 걸렸지만, 그게 대순가?

거리로 나섰다. 12시였다. 하늘 위에 뜬 해가 마포구 변두리에 옹기종기 모인 주택들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나는 무작정 도로를 가로질러 뛰었다. 그때 옆에 몰아치는 진동을 느꼈다. 트럭이었다. 경적을 울리면서 급히 멈춘 것 같았다. 소리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귀를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들으면 정확히 알았을텐데.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차가 다가온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었지만, 나는 주위를 계속 돌아보면서 걸었다. 그러다 어떤 사람들과 눈이 잠시 마주치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 어딘가로 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내 뇌가 어떻게 된 것이든, 귀가 어떻게 된 것이든, 작은 문제 같지 않았다. 작은 병원으로 가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 증상이 영구적으로 유지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연세대 대학병원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네 개의 횡단 보도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짧은 거리였다. 나는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빠르게 걸었다.

신촌의 번화가로 들어서자 뭔가 크게 잘못된 걸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꽉 차 있었다. 이 더운 날씨에,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거리에, 고통스러운 열기가 쏟아지는 거리에, 그 곳에 선 사람들은 전부 혼란스럽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인형탈을 입고 춤추던 사람들도 탈을 벗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게 앞에서 마이크 들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던 사람들도 마이크를 내려놓은 채였다. 주저 앉은 사람들도 보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아이패드를 들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아이패드의 내용을 볼 수 있도록 360도로 계속 돌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곳으로 쏠렸다.

「지금 다 안 들려요」

아이패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지금 다 안 들려요. 그 말이 옳았다. 신촌 번화가의 입구에서 대학 병원까지는 차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끼어들어갈 틈이 없었다. 병원 앞의 모습을 보고, 이 불가해한 상황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았다. 도로는 정차한 차들로 완전히 막혔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또 어떤 사람들은 뭔가 크게 외쳤다 – 아니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