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신종 변태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사랑하는 멋쟁이 아버지께
 

 

 

 

 

유달리 교복 리본이 말끔하게 묶인 아침이었다. 붉은색 레이온 리본 끈으로 두 개의 나선을 만들고 빙그르르 서로 교차시켜 매듭을 짓는 단순한 행위가 우연의 은총으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중학교 때부터 교복 셔츠에 리본을 매어 왔지만 이번만큼 정밀한 대칭을 이루며 완성된 적은 없었다.

 

‘불길하다. 불길해.’

 

채율은 셔츠 칼라 사이에 달린 리본을 노려보았다. 핀으로 꽂게 되어 있는 기성품 리본처럼 흠을 찾을 수 없었다. 외고 시험을 치르던 날이 기억났다. 그날도 리본은 오늘처럼 환상적으로 묶였고, 떨어진 학생들 중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낙방했다.

 

복도식 아파트 통로 밖으로 나오니 황금빛 권층운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샛노란 햇살이 그녀가 신은 단화를 조약돌처럼 반짝이게 만들었다. 아파트 단지는 부녀회에서 주최하는 자선 바자회로 시끌시끌했다. 이곳저곳에 천막이 서고 음식 냄새도 코를 찔렀다. 하지만 채율은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새벽까지 풀었던 수학 문제의 좌표, 아침을 먹으면서 읽었던 영자 신문의 표제가 떠올라 머리가 부산했다.

 

지하철역으로 가려면 아파트 정문으로 가는 게 더 가까웠지만 그녀는 언제나 샛길로 다녔다. 단지를 휘돌고 있는 산책로, 여러 갈림길 중에서도 방음벽 쪽으로 난 길. 고층 건물 덕에 드리워진 조밀한 그늘과 음습한 습기가 호젓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오솔길이었다.

 

“저기요.”

 

고무나무 틈 사이에 웬 남자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플라스틱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리고서 곤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길을 잘못 든 모양인데, 고운눈 안과가 어디 있죠?”

 

안과라면 정문 쪽이었다. 몸을 틀어 방향을 가리키려는 찰나. 엄청난 완력이 그녀를 잡아 뒤로 끌고 갔다. 입이 틀어막혀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팔을 휘저었지만 잡히는 것은 방음벽에 줄지어 나 있는 능소화뿐. 당근색 꽃잎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짓이겨졌다. 남자는 그녀의 오른 팔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화살 같은 통증이 의식을 꿰뚫고 지나갔다.

 

‘무는 남자다!’

 

요즘 한창 출몰한다던 변태였다. 바바리맨과 달리 소녀들을 붙잡아 팔목을 깨무는 남자. 변장술이 뛰어나서 아직 누구도 진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남자의 땀 냄새. 스킨 냄새. 까끌까끌한 턱. 치한의 쾌감 어린 신음을 견딜 수 없었다. 채율은 몸부림을 치며 셔츠 깃을 휘어잡았다. 푸른색 히비스커스가 그려진 알로하셔츠가 찢어졌다. 셔츠 깃 사이로 검은 곡선들이 낚시 바늘처럼 구부러져 엉켜 있었다.

 

‘트라이벌 타투…….’

 

치한은 반항하는 채율을 다시 한 번 결박하고는 만족할 때까지 여린 살결을 탐닉했다. 매미들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관음증 환자처럼 음란하게 전해져 왔다. 시간이 흐르자, 욕구를 채운 남자는 소녀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주저앉은 소녀의 턱을 잡고 가방에서 꺼낸 막대 사탕을 물려 주었다. 소문대로였다.

 

남자가 도망치는 걸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수학 문제와 영자 신문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빈집처럼 텅 빈 그녀의 두개골 안으로 땅의 열기와 흙냄새, 달려 나가는 차들의 소음의 감각만이 난폭하게 뛰어들어 왔다. 입안에서는 목캔디처럼 맵고 알싸한 세이지 맛 사탕이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살에 닿던 남자의 혀처럼 뜨겁고 눅눅했다. 구역질을 하며 막대를 집어 던졌다. 사탕은 울타리를 맞고 튀어나와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졌다.

 

물린 상처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몸이 덜덜 떨려 왔다.

 

‘경찰서를 가야 하나?’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맞은 것도 아니었다. 물렸을 뿐이었다.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저, 지금 어떤 아저씨한테 물렸어요.”라고 말한다 한들, 남자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CCTV에 남자의 모습이 찍혔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경찰은 한두 번 순찰을 돌다가 말 터였다. 더구나 하계 보충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서류상으로는 95%가 희망한 하계 보충 수업. 출석은 수행평가와 직결됐다.

 

비틀거리며 단지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차 안에서 대충 지혈을 하고, 손수건으로 묶었다. 한 손으로만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느덧 창밖으로 같은 교복을 입은 개미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방학식을 했던 것이 불과 일주일 전이건만, 다들 줄줄이 경사진 등굣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선암여자고등학교’라 새겨진 화강석 교문 옆에서 복장 단속을 하고 있는 선도부원들이 보였다. 복장 불량으로 적발된 학생들이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끝에 세워진 자견탑까지 행진하고 있었다. 자견탑은 교목인 가시나무를 형상화한 청동 조각물이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방금 전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상담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